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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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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양의섭 목사 |
참고 : | 2008-03-06 왕십리중앙교회 http://www.wangjoong.org/ |
출10장 1-11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라
1. 이 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후, 어느 신문에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 또는 하고픈 말 한 마디씩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더라구요. ‘장로이신 대통령께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공감 가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사람들은 대개 겸손합니다. 표를 의식해서 그런지 모든 후보들이 겸허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정작 대통령이 되면 고집스러워지고, 교만해집니다. 좀처럼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자리가 그만큼 위대하고,
막강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 대통령이, 평생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다가 대통령이 된 이가, 자기 힘을 믿고, 자기의 권세에 도취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된다면 그 앞날은 매우 걱정스러워집니다. 정말 바라기는 그가 평생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2.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 때 ‘농담’으로 여겼던 이들이 있습니다. 소돔 성에 살던 롯의 사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것이니 빨리 성에서 나가라는 말에, 그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가 그날 하늘로 임하는 심판의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집에 몇 대 독자가 태어났습니다. 매우 귀한 독자이기에 집안 식구들 모두 귀하게 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아이가 버릇이 없어져서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꼭 반대로 하였습니다. 어른들 말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반대로 하였고, 어른들은 그게 귀엽다고, 총명하다고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서 놀던 아이를 보고, 할아버지가 차들이 다니니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어 ‘얘아, 이리로 온’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평상시 하던 대로 할아버지를 보고 씨익 웃더니 반대편, 길가 쪽으로 냅다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곤 달려오던 차에 치어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평상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농담으로 여기고, 의식적으로 어기는 것을 재미로 삼지 마십시오.
애굽의 통치자 바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 정도가 아니라 애당초 무시했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이 되었고, 자존심이 상하여 의식적으로 부인했고, 나중엔 적당히 타협하려다가 의도대로 안 되니까 화를 내고 물리쳤습니다. 그리곤 그 말씀 때문에 망하였습니다.
10가지 재앙이 계속하여 바로에게 쏟아집니다. 처음에는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더니, 그 재앙의 정도가 심해지자 바로는 맘이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자존심이 상하여 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의 재앙입니다. 우리는 사실 메뚜기 재앙이라는 말에 실감이 안 납니다. 메뚜기가 무슨 재앙입니까? 없어서 못 먹는데? 그런데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메뚜기 재앙은 정말로 최악의 재앙 중 하나였습니다. 메뚜기가 떼를 이루어 사람이 먹을 모든 농작물을 먹어치우기에 메뚜기 떼가 한번 지나갔다 싶으면 그 지역은 굶어죽는 이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먹을 것을 메뚜기가 다 먹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메뚜기 재앙이 여덟 번째로 선고됩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못 들은 체 하고 모세와 아론을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큰일이구나 싶은 이들이 일어섰습니다. 7절,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러다간 나라가 망한다 싶어 신하들이 일어나 간청을 하여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타협을 하다가 바로는 제 풀에 화가 나서 모세와 아론을 이번에는 내쫓아버립니다.
버릴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자존심은 상하고, ... 결국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귀를 막아버립니다. 너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너무 자기를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맛보긴 해서 어느 정도 그 위력은 이젠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서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못 들은 체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이 전하여졌는데, 싫다고 고집 부리는 것은 어떤 경우엔 매만 재촉하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과 싸움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는, 주어진 주님의 말씀엔 빨리 엎드리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면 삽니다.
다른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십시오. 그 말씀은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을 심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십시오.
참된 신앙심은 어디서 출발하는지 아십니까?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면 어디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러기에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합니다. 경외란 단어는 두렵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사랑의 하나님을 너무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언제나 사랑만 운운하다 끝나는 분으로, 물렁한 분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폭풍을 일으키고, 산을 부수고, 땅을 가르고, ...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십시오.
목사는 두렵지 않은데, 그 목사가 전해주는 주의 말씀은 두려워하십시오. 교회학교 선생님은 두렵지 않은데, 그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주의 말씀은 두려워하십시오. 선포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는 살 것이고, 불순종하고 무시하고 경홀히 여기는 자는 결국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 두려워한다면, 여러분에겐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지도자 크롬웰의 묘비가 그렇다더라구요. “하나님을 두려워한 사람, 그래서 세상이 두렵지 않았던 사람이 여기 잠들다.”
이 묘비가 여러분의 묘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말씀을 두려워 순종하는 가운데 가장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늘도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여 주옵소서. 늘 종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영적 감각을 풍성케하여 주옵소서. 그 말씀이 내 맘에 흥이 되든 부담이 되든 순종케 하옵소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은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말씀이 오늘도 내 귀에, 내 마음에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순간순간, 갈래길이 나올 때마다 감동으로 임하는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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