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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신앙인의 자세

느헤미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736 추천 수 0 2013.04.20 2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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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느1:1-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3.3.3 주일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31.1절과 신앙인의 자세
느1:1-11

지난 금요일 '제94주년 3.1절 기념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3.1절은 국권을 잃어버린 우리 민족이 국권을 회복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일어난 날입니다. 세계 역사상 각 나라마다 혁명운동이나 민족운동은 일어났으나 3.1운동처럼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궐기한 투쟁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3월에서 5월까지 1천 5백여 회에 걸쳐 2백만 명 이상이 전국 2백 18개 군 중 2백 11개 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때 신앙인이 앞장섰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약 4백만 명에 이르렀답니다. 이중 숨진 이는 7천 5백여 명,실종자 1만 5천여 명,부상자 1만 6천여 명,검거된 이는 4만 7천여 명입니다. 그 때 희생자 대부분이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독립선언서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인사였습니다. 그 당시 천도교 200만, 유교 불교는 300만을 넘어서는 교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독교의 교세는 당시 인구 2,000만에 35만 명 신자 곧 1. 2%에 불과했습니다.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자가 기독교인이 2,039명, 천도교인 1,063명, 유교인 55명, 불교인 41명으로서 기독교인이 60% 이상을 차지했던 것이 역사에 남은 기록입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남긴 비밀 문건 속에는 "이 민족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의 교회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기독교는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민족에게 희망을 던져 주었습니다. 국민의식을 바꾸었습니다. 미신을 타파하고, 신분제도를 철폐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하고 모든 백성을 평등하다는 사실을 전파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민족의 고난을 대신 지고 국민을 계몽시키는 교육을 일선에서 감당하였습니다. 50년 이상 된 근대화된 학교시설은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 사학들이 신앙인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식병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동산병원, 예수병원 등 병원을 세워 백성을 살렸습니다. 민영익을 살려낸 것도 궁중에 들어간 알렌 선교사였습니다. 독립투사 중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도 안중근도 기독교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로였고 김구 선생님도 기독교인이었고 건국 준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여운영 선생님도 신학을 공부한 전도사였고, 건국 준비위원회 지방 위원들은 대부분 목사나 장로가 할 정도였습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 개회될 때 임시의장 이승만은 단상에 올라가 사회봉을 잡고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로 개회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일동 기립한 가운데 이윤영 의원(목사)가 기도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94년이 지났는데 지금 우리 신앙인은 나라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까? 3.1절을 맞이하여 우리 신앙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건전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민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시대적 과업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1-3)

 

오늘 성경에 보면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 별명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2장 10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흥왕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이 가는 곳에 회사가 흥왕하고, 사업이 흥왕하고, 가정이 흥왕하고, 교회가 흥왕하여야 합니다. 가는 곳마다 파괴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들고, 비난을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 저녁에 우리 교회 한 집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작년에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월요일 독일에 출장을 간다고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주일에 예배 맞추어 오려고 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 고장으로 하루 늦게 되었다면서 120억 정도 수주를 해 기도해주어 감사하다는 문자였습니다. 회사 사장으로, 신앙인이 믿음을 가지고 세계 시장을 누비며 국위를 선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신앙인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가 흥할 수도 있고 쇠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렇게 민족을 흥왕케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수산궁입니다. 페르시아 궁전입니다. 지금 말하면 미국 백악관에 있는 것입니다. 궁전에서 그의 직책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술 맡은 관원입니다. [아닥사스다]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술 맡은 관원은 총리급에 해당되는 고위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서실장 쯤 되는 고위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식사 때마다 술 맡은 관원은 독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왕의 술을 검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가장 깊은 신뢰를 받는 사람이 오르는 자리였습니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데 그가 이런 지위에 오른 것은 특별히 왕의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총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가 보장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합니까? 2절에 보십시오. 형제 하나니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습니다. 나라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생존의 위협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장엄한 모습은 살아지고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어 폐허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보고를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나라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4)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였습니다. 나라의 일에 사명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민족의 주권을 잃었을 때 3.1운동에 동참한 사람은 자신의 일로 사명의식을 가진 것입니다. 그는 가정이 평안합니다. 권력이 있습니다. 물질이 풍부합니다.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위해 슬퍼했습니다. 그는 금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하여 금식하였습니다. 조국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조국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왕이 왜 이렇게 근심이 많으냐고 물어 볼 때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느 2: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일은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민족의 과업을, 회사의 과업을, 가정의 과업은 내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우리 신앙인은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요즈음은 너무나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청문회를 보십시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아들은 군대에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투기를 하고 횡령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는 직책을 맡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앙인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편협한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입니다. 3.1운동을 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나라를 위해 내어 놓았습니다. 상황윤리를 쓴 죠셉 플레쳐는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미움은 존재를 인정하지만 무관심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가정 일을 내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의 일을 내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해야합니다. 교회의 일을 내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극도의 개인 이기주의, 지역 패권주의, 가족 이기주의, 기업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소아의식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대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하고 직장, 사회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흥왕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2.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중보자의 위치에서 ‘내 책임이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4하-10)
느헤미야는 나라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이 황폐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금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합니까? 금식하며 기도합니다.(4) 주야로 기도합니다.(6) 죄를 자복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범죄했습니다. 내 집이 범죄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범죄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민족의 불행에 대하여 내 탓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남 탓으로 돌리는 원망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백성이 잘못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중보자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아닙니다. 무엇을 잘 못했다는 것입니까? 인류의 죄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은 것입니다. 경제를 왕으로 섬긴 것입니다. 경제의 신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부의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르게 부를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불황이라고 말을 하며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문제가 아닙니다. 극도의 물질주의가 문제입니다. 소돔 고모라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롯이 탐내는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도덕적 문제였습니다.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사람입니다. 민족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지극히 타락하여 멸망시킬 때 누구를 찾습니까? 의인입니다. 노아 홍수 때 먹고 살지 못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킬 때 누구를 찾습니까? 노아입니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에드워드 기본(e. gibbon)은 [로마제국의 쇠퇴와 패망의 역사]라는 저서에서 로마의 패망은 야만족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내적 도덕적인 퇴폐 대문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1)이혼율의 급격한 증가 (2)고율의 세금과 투기장과 향연을 위해 낭비한 공금의 유용 (3)퇴락추구의 광적 상태 (4)거대한 군비 확장 (5)종교의 타락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정 러시아가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세시대가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 발달로 경제 집중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였습니다. 양곡 도매가격이 영국는 500%, 프랑스는 700% 올랐습니다. 전매업자, 고리대금업자가 성행합니다.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철저히 배금사상에 젖어있었습니다. 유럽 토지의 1/3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모자라 돈놀이를 하고 성직을 매매하고 사제들은 교회를 돌아다니며 돈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큰 교회를 맡으려고 이전투구를 하였습니다. 돈이면 지옥에 간 사람도 천국에 갈수 있다고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16세기 순시 보고서에 의하면 네덜란드 사제 25%가 독일 남부의 신부 33%가 첩과 동거하며 살았고 심지어는 신부를 위한 창녀촌이 생겼습니다. 이 어찌 하나님이 가만히 놓아두겠습니까? 루터를 통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으로 경제 구조가 변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쾌락주의가 만연되었습니다. 감옥은 범죄의 학습장이 되어버렸고 음주와 방탕으로 사회가 썩어갈 때 교회는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사회적 혼란과 빈부의 갈등, 경제적 도덕적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한 사람들이 웨슬리 형제들과 휫필드 일행이었습니다.
19세기 중엽 미국이 노예문제로 내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살육이 정당화되고 도덕적으로 지극히 타락할 때 그들을 변화시킨 사람이 무디입니다.
우리가 민족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죽음의 위험 앞에 있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금식하며 왕앞에 나아갔습니다.(스4:16)
모세는 자기 백성이 범죄할 때 차라리 자신을 죽여주고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출 32:32)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주십시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질 지언정 내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역사 이래 이렇게 잘 사는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역사 속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살았던 때가 언제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 이래 1천 번의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6.25 이후 전쟁 없이 이렇게 잘 사는 때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1945년 해방 당시 우리 나라 신앙인은 30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천만 명 넘었습니다. 1949년 인구가 2018만이었는데 2012년에는 5천만이 넘었습니다. 4820만이 되었으니 인구 성장은 약 2.4배쯤 성장했는데 기독교의 성장은 33배의 성장입니다. 굶주림으로 시달렸던 나라가 이제는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권에 진입하였습니다. 선교를 받던 나라가 1955년 4월 태국에 처음으로 최찬영, 김광명 선교사 부부를 파송함을 시작으로 2012년 169개국에 2만 5665명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42년에는 45세였는데 지금은 여성은 84세 남성은 77세가 되었습니다. 대학교도 47년에는 학생수 2만, 학교 24개였는데 2012년에는 학교 251개로 대부분 대학에 다닐 수준이 되었습니다. 전화 가입자도 46년에는 3만 6천명이던 것이 지금은 개인이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동차도 48년에는 1만 5천대이었던 것이 지금은 가정마다 차가 있습니다. 세계 조선 산업 1위입니다. 세계 철광 제조산업 1위입니다. 반도체 생산률 1위입니다. 컴퓨터 보급률 1위입니다.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OECD국가중 초고속무선인터넷 보급률100%는 대한민국뿐입니다. 학교 정보화 시설, 대학진학률 세계1위입니다. OECD평균 대학진학률 56%, 대한민국 82%, 미국60%, 일본48%, 독일 36%, 영국 57%, 스위스38%입니다. 땅은 230개국 중 100위도 체 안되는 데 대단한 발전입니다. 산업혁명으로 근대 지구촌 고도성장의 전형으로 꼽히는 영국은 170년간 9배의 GDP 파이를 키웠고 일본은 57년간 14배의 GDP 성장세를 보였지만, 한국은 1960년 이후 48년간 32배로 국부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8년째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흡연율, 음주율, 낙태율, 성형율, 이혼율, 교통사고 사망률, 사교육비, 청소년불행지수 세계 1위입니다. 맘몬(물신) 숭배는 도덕성 타락과 음란으로 이어집니다. 가정이 중독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민 8명 중 1명이 알코올이나 인터넷, 도박, 마약에 중독돼 사회경제적 비용만 연간 109조 5,000억 원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중독 전문가 단체인 ‘중독포럼’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알코올 중독자는 155만 명, 인터넷 중독자는 233만 명, 도박 중독자는 220만 명, 마약 중독자는 1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 명 중 618만 명이 4대 중독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인명을 경시합니다. 범죄 시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8시간 10분마다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사람 생명의 존귀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생각이 사회 구석구석 퍼져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사람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합니다.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돈이면 지옥에 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쾌락을 즐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명경시 풍조는 자연스럽게 황금만능주의, 쾌락 지상주의로 연결이 됩니다. 일 년 술값으로 14조, 성매매로 24조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성매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33만 명으로 이는 20, 30대 여성 취업 인구의 8%나 된다고 합니다. 쾌락이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을 찾아가는 불나비처럼 쾌락의 불더미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자세는 느헤미야가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금식하며 통회 자복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이 민족을 위해 통회 자복하는 책임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민족의 가치, 태도, 신념들이 너무 하나님이 싫어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가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하면 북방의 화로가 쏟아질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부터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진정 행복하게 사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경제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살길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회개의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를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도덕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하나님을 잃은 것은 즉 신앙을 잃은 것은 다 잃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어려운 일을 자원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해야 합니다.(11,2:5)

 

느헤미야는 회개의 기도를 드린 후에 무엇을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2장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을 재건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합니다. 먼저 왕에게 가서 요구합니다. 왕의 허락을 받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성 재건에 몸을 바칩니다. 그는 술맡은 관원으로서 궁전에서의 모든 편안함과 안전함을 포기했습니다. 호화로움 대신 파멸이, 명성대신 비난과 조롱과 중상모략이 올 것이지만 그는 기꺼이 나라를 위한 일에 자신의 안정을 바쳤습니다. 그는 궁정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나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완성하는 고생을 자처하였습니다. 느헤미야에게 번민이 없었겠습니까?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됩니다. 그에게는 그만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편안히 쉴 수 있었고 부담 가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이 희생하였습니다. 자신이 헌신하였습니다. 자신을 드렸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기 위하여 무너진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무너진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무너진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자신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99%가 아닙니다. 100%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원하여 졌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기쁨으로 졌습니다. 그는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의 성벽 재건은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흥왕을 시기하는 외적들이 있습니다.(2:10, 19; 4:1,7) 반대는 점점 더 심해집니다. 비웃습니다. 분개하며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방해합니다. 6장에 가면 중상모략을 합니다.
내적이 방해가 있었습니다.(3:5) 돈 많은 귀족들은 참석하지 않습니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로 심한 갈등이 백성들 가운데 있습니다.(5:1,2) 이자놀이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경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5:10)
개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100명 가운데 72명이 불행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61명은 어려움 속에서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으며, 11명은 삶의 기로에 놓일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 때문입니까?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미국 주간 포브스지는 최근 갤럽에 의뢰해 전 세계 155개국 주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56위였습니다. 경제규모가 선진국 수준인데 비해 국민들의 행복도는 중진국 가운데서도 중위권 정도인 셈입니다. 견고하게 구축된 사회복지 시스템이 없는 것입니다. 경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듭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화려한 직업으로 꼽히는 연예인 중 1년에 500만 원도 못 버는 '극빈곤층 연예인'이 최대 1만 8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국민 중 560만 명이 빈곤층이라고 합니다. 자영업자 720만 명 중 414만 명은 월 100만원도 못 번다고 합니다. 창업한 뒤 3년을 버틴 자영업자는 46.4%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국세청·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17.7%) 다음 입니다. 그만큼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하단 뜻입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 4,790억 원으로, 전체(231조 9,560억 원)의 6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OECD 19개국 중 우리나라보다 부의 쏠림이 심한 건 미국뿐입니다. 한국 경영진은 '직원의 18배' 가져가고 있습니다. 명문대 생 30~40%는 소득상위 10% 자녀이고, 로스쿨 생 5명 중 1명은 강남 사람이라고 합니다. 60년 국민소득이 65$이었는데 지금은 2만 불이 넘었는데도 만족은 300배는 고사하고 2배도 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자신이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5:14)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일을 합니다.(2:8,18) 결국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공을 하였습니다.(6:15)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민족을 흥왕케 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우리의 직장을 우리의 교회를 흥왕케 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실행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취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만하고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개혁하고 변화를 일으키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어제 우리 집사님 중 한 분이 140억 사업에 2등으로 낙착되었다고 기도해달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주 어떤 집사님이 이야기하는데 작년 300억 매출 목표를 놓고 몇억 부도가 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멀리 사시기 때문에 수요일 예배에 나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 실패하고 두 번 실패한다고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가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되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 구하면 히스기야처럼 죽음의 질병에서도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구하면 한나처럼 불임에서 아이를 잉태하는 기적을 체험받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세처럼 외적을 물리치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안된다고 하나님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방법이 없다고 하나님도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성취하고자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데는 외부적 적도 있고 내부적 적도 있고 자신의 안에 있는 적도 있습니다. 특히 우는 사자처럼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영적 세력이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유혹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력 앞에서도 무릎 꿇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환난이나 위협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잠24:16) 사도 바울은 우리가 비록 질그릇 같지만 보배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8)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9)”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어두울 지라도 밤하늘의 별은 어두면 어두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같은 사람이 이 땅에 있다면 우리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야 같은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어 다른 나라에게 노예처럼 살고 있는 백성, 예배의 처소마저 파괴되어 삶에 희망을 상실한 민족에게 느헤미야는 희망을 주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 무너진 곳이 너무 많습니다. 정치, 경제, 도덕, 질서, 자존심, 가정, 교회, 학교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모든 일을 내일로 생각하십시오. 민족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어 달리십시오. 민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하십시오. 성취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상가요, 문필가인 헨리 소로우는 사람이 국가에 봉사하는 방법은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육체로서 봉사하는 일인데 농장이나 공장에서 생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요, 둘째는 두뇌로서 종사하는 자들인데 교육, 기술, 지식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종사하는 지성인들이요, 셋째는 양심으로 봉사하는 자들인데 순교자나 각 층에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느헤미야처럼 쓰임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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