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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5: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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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 36
죄와 은혜
로마서 5 : 20 - 21
서 론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바울은 5:12절부터 계속해서 독특한 방법으로 논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현격한 대립 점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사실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의와 은혜의 승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대조는 바울이 증거 하려는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다시없는 설명 이 되기 때문에 비슷한 이론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론적으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1. 율법이 가입한 이유
바울의 율법론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반론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 중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 바울이 말하는 율법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의 논리에 있어서 바울의 주장은 율법무용론이 아닌가하는 이론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 이유로 바울은 율법이 사람에게 의를 줄 수 없다고 말할 뿐 아니라 그 율법이 사람을 (그리스도인) 정죄 할 수도 없다고 하니 그러면 율법은 무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언뜻 이 말씀이 가리키는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됩니다. 가입했다는 말은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이 가입은 뒤따라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따라 들어온 것인가? 율법이 가입했다는 것은 율법이 죄를 따라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죄나 은혜처럼 그 자체가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따라 들어 온 존재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죄와 관련된 존재로, 죄 때문에 죄에 따라 가입된 존재가 바로 율법인 것입니다.
(2) 가입하였다는 말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뜻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롬5:13). 여기서 우리는 율법과 죄와의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 엄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란 존재는 율법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있기 전에도 이미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3)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 말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넘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하다는 말은 ‘플레오나조’로 풍성하다란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죄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죄가 있었으면서도 죄가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율법이 들어오자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죄가 일시에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숨겨졌던 죄가 폭로되었습니다. 이 같은 죄는 인간사회에 풍성할 정도로 넘치게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고, 이 세상이 죄악 세상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죄가 인간세상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율법으로 의를 얻거나 죄를 감소하거나 죄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왕 노릇하고 있으므로 더욱 깊은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의롭고 선하고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죄의 기준이며 심판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정없이 인간의 죄악을 들추어내고 그 죄악을 정죄 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을 의롭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요 바로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어 그 죄를 정죄 하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율법에서 정죄하고 있는 바와 같은 죄인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선행과 의로운 행실은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영광에 두고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정죄 받기에 합당한 죄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치도 아니 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과 공로를 인정치 않는 일은 그 무슨 죄보다도 더 정죄 받아 마땅한 죄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3:18).
2. 넘치는 은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범법함이 없었기 때문에, 죄는 있었지만 그 죄가 죄로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율법이 개입하므로 율법에 의하여 죄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자 인간의 죄가 이 세상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게 되었고 의인이 하나도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개입시키신 하나님의 의도십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3:22).
(1)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율법과 함께 은혜를 개입시키신 것입니다. 율법을 개입시키신 일은 오직 은혜를 개입시키시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방편에 불과하셨습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의를 주실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으로 인간의 죄를 정죄 하심으로 죄의 모습과 그 정죄의 두려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의와 영생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2) 그런데 그 은혜는 죄보다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넘쳤다는 말은 죄를 삼켰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죄를 덮어 그 위에 넘친 상태를 의미해 주기도 합니다. 그 이유와 증거는 죄는 아담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는 흥미로운 비교이기는 하지만 사실인즉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상대인 것입니다. 아담은 땅의 생명을 가진 자요,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이시며, 아담은 피조물이요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아담은 범죄자요 그리스도는 속죄 자이시며, 아담은 산영이요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고전15:45).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죄를 이기고 소멸할 수 있는 충만한 은혜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요1:14 ; 엡2:7). 주님의 그 풍성하고 넘치는 은혜는 죄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셨습니다(요5:24).
결 론 : 율법은 죄를 행하면서도 죄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정죄의 사슬에 메이게 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죄 값인 사망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절망 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율법과 함께 은혜의 선물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불순종에서 나온 죄의 권세를 능히 이기고 정복할 수 있으므로 죄의 세력보다 더욱 넘쳤습니다. 이것은 마치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처럼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게 된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정죄하면서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므로 인간의 생명을 정복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의를 주시기 때문에 이 의로 말미암아 인간을 지배하는 왕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은혜가 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정죄를 이깁니다. 사망의 권세도 이깁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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