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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믿음 나름입니다

출애굽기 궁극이............... 조회 수 1830 추천 수 0 2013.05.13 15:05:47
.........
성경본문 : 출1:1-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1-7.

 

1-7: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믿음하면 그저 될 텐데 믿음을 왜 분석해야 하는가? ‘믿음하면 다 되는 거 아니요? ‘믿고 하면 해 주신다하는 이거 믿음이요, 믿음이 아니요?

 

믿음에는 무슨 무슨 믿음이 있다고 그랬지요? 신념적 믿음이 있고, 신뢰적 믿음이 있고, 신의적 믿음이 있고. , 그러면 그 중에서 믿고 하면 해 주신다하는 이거는 어디에 속한 것 같아요? ‘믿고 하면 해 주신다하는 이 말속에 숨어있는 게 있지요? ‘해 주신다고 하는 게 자기 뜻을 이루어 주신다는 데 붙인 것 같아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신다는 데 붙인 것 같아요?

 

믿고 하면 해 주신다하는 이 말을 구별하지 않고 들을 때에는 딴 사람보다도 믿음이 굉장히 강한 그런 느낌으로 들리지요. 뭔가 깡아리가 있고 굉장한 믿음 같아요. 그렇지요?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라고 하기보다는 신념으로 보는 게 좋다. 자기의 신념. 그러니까 그 속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신의적 신앙에는 구원이 있어요. 그러나 신념적 신앙에는 무엇이? 구원이 없어요. 그러니까 구원이 없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이 아니다 그 말이요.

 

그러면 기독교 외에 믿고 구하고 비비고 하는 이방종교에도 구원이 있어요? 이방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볼 때에 뭔가가 대상을 향해서 믿으니까 신앙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거는 구원이 있어야 신앙이다 그 말이요. 이방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건 신앙이 아니라 그 말이요.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이 아니고 그럼 그게 뭐요? 자기 신념이고 미신이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신앙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느냐? 오늘 누구 방송이야? ‘믿고 입만 크게 벌려라. 그러면 가득 채워준다그러던데, 오늘날 기독교에서 그런 성경구절을 대면서 그런 게 신앙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우리가 신앙적인 믿음을 왜 가져야 하느냐? 그렇게 할 이유가 뭐냐? 천국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하는 이거는 계약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독권적으로 해버렸어. 성부 하나님의 계약이 있지요?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자를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로 삼겠다고 하신 이 계약을 하나님은 위약치 않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계약은 뭔가 하니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자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형벌을 주님이 받고 죗값지불도 주님이 하셨다. 또 의의 옷을 입히는 것까지 예수님이 다 도맡아서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의 계약은 뭐냐? 아무리 인간이 강퍅할지라도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그 인간의 이성의 자유를 건드리지 않고 감화 감동을 주어가지고 회개케 합니다. 성령이 책임을 지고 그걸 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건드리지 않고 믿게 한다는 걸 인간이 한다면 참 어렵겠지요?

 

그러면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에 그게 어떤 식이겠어요? 이성을 건드려 놓으면 부정적으로 대립이 될 거고 팍 튈 거 아니요? 그런데 처음에는 누구든지 대립이 됐지. 그런데 이 이성과 대립이 되지 않고 믿게 한단 말이요. 구원이 되게 한다. 그러니까 이성으로 하여금 완전히 자기가 좋아서 피동적 능동적으로 자원적으로 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제 1 목적물로 지음 받은 자를 성령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 그런데 성부 하나님의 계약이라든지, 성자 하나님의 계약이라든지, 성령 하나님의 계약이라든지에 대해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랬을 때에 아는 우리가 꼭 주님과 대립과 마찰과 충돌을 일으켜 가면서 믿어야 합니까, 아느니 만큼 대립이 안 되고 순순히 순순히 자동적으로 믿어나가야 하는 겁니까?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까? 그게 어려워요?

 

이 세상은 천국의 교육재료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누림이 있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천국의 누림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봄이 되면 꽃구경 가고 얼마나 놀기 좋습니까? 조그만 전축 들고 가서 춤추고 노라리 할 거 아니요? 그 뭘 보여주는 거지요? 그래, 천국의 누림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교육재료로 보여주는 겁니다.

 

한 번 가만 생각을 해 봐요. 일하는 것보다도 노는 게 더 좋은데, 노는 것도 친구와 같이 재미스럽게 노는 것이 더 좋지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 속에 어째 그런 게 들어있을까 그 말이요. 참 희한하지 않아요? 우리를 천국에서 누림성자로 지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세상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돈을 미리 많이 벌어놓고 누리며 살지요. 그거는 세상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실력이 없는 사람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어렵게 살지요.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의 자유로서 누릴 수도 있고 건설할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거는 먹고 마시고 노라리 하는 거. 건설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면에서 건설이라. 우리는 이 땅에서 누림성으로 사는 게 아니고 성화구원 건설이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면 우리의 누림성은 천국에 있다. 신령계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건설을 해야 한다. 손에 집히면 집히는 대로,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을 가지고 전부는 건설을 해 나가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은 건설재료란 말이요. 누림성이 아니란 말이요.

 

우리가 성경으로 볼 때에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이것은 육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영을 가리키는 겁니다. 미중생자는 영이 죽었습니다. 그렇지요? 아직 영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미중생잔데, 그러니까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 있으면서 지금은 안 믿지만 앞으로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미중생자인데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자가 누군지는 모르잖아요? 현재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섞여서 살기 때문에 아직 영이 살아나지 못한 사람은 다 불신자라고 하는데, 이들 모두는 영만 죽어 있습니다.

 

이들은 영이 죽어있지만 이성은 살아있고 몸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몸속에는 감각성이 있고 신경이 있습니다. 피부로 느끼는 자요 이성으로 느끼는 자입니다.

 

우리 인간이 과학으로 발명된 기구를 사용하면서 기쁨을 누린다든지, 음식의 맛을 느낀다든지 하는 이런 거는 육체가 죽으면 중단이 되는 거지요.

 

성경적으로 보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영과 육이 결합된 상태로 있으면 그는 현재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자를 천국에 갖다놔 봐야 그 죽은 영에게는 그 천국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신령세계는 영적인 세계인데 죽은 그 송장이 천국에 들어간들 그 천국이 그 송장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은 느낌성이 누림성이 있는 존재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지었다 그 말이요. 그래서 우리 각자는 인생아, 너는 고상한 누림성과 느낌성이 있는 존재인 줄을 알아라. 땅의 것을 가지고 누려보았댔자 몇 년, 몇 십 년을 가지고 누리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특수목적으로 지었습니다. 특수목적이란 게 뭘 보고 특수목적이라고 하는 것이냐 하면 궁극적 목적적 영원적이고 결과적인 천국의 누림성에 목적을 두고 지었다는 말입니다. 특수목적이다 그러면 그것을 염두에 두고 특수목적이라 그런다 그 말이요. 알겠어요? 나로 하여금 천국을 하나님처럼 누리게 하려고.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가지고 민감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목적입니다. 그런데 인간 내가 누림성에 있어서 느낌성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느낌성이 빠르고 느낌성에서 강하고 민감하면 즐거움 쪽으로 생각을 하면 사람이 굉장히 즐겁지요. 그렇지요?

 

혼자 산보를 갈 때에 혼자 느끼는 느낌성과, 색다른 사람과 둘이서 산보를 갈 때의 그 느낌성이 다릅니까? 확실히 다를까요? 안 해 봤어? 강아지하고 가도 다르지.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고 느낄 수 있는 특별목적으로 지음을 받았다.

 

우리가 임시적인 세상에서도 느낌성적으로 그렇게 진하고 깊은 느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인데 이걸 영적이며 신령한 것으로 한 번 생각을 해봐요. 그게 얼마만큼 진할까?

 

그런데 사람이 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생명과를 먹고 그렇게 맛이 있다고 그래요. 눈알이 새까매가지고 또렷또렷하고 졸지도 않고 듣는데, 어떤 사람은 맨 뒤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어. 맛이 하나도 없는 거라. 결국 누구 손해일까?

 

하나님의 나에 대한 염려는 내가 지옥에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하는 그건 당신이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해 놓으셨으니까 그 걱정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하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걱정을 한다 그 말이요. 왜 그 걱정을 해요? 나를 무슨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특수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 면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 말이요.

 

여러분들, 기독교의 신앙을 이치적으로 깨달아야 돼요. 지금 성경을 보면 구구절절이 그런 걸 염려해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지시를 하고 사건 환경을 주고 다 그렇게 돼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어느 구절을 들여다봐도 그 면에 있어서 똑같은 말이요. 그렇지요?

 

믿는 우리가 그런 사상을 구체적으로 가지면 어떤 성경을 읽어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그 의사성을 끌어내지요. 우리에게 왜 그 명령을 했나? 왜 그 심부름을 시키느냐? 바로 그걸 목적을 두고 한단 말이요. 이렇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특수목적이 있다.

 

당신의 우리를 향한 목적이 특수하니까 우리를 지으실 때 특수적으로 지었다 그 말이요. 그런 목적 하에서 우리를 특수적으로 지은 거다 그 말이요. 괜히 하나님이 짐승은 짐승대로 만들고 사람은 사람대로 만들고 그렇게 종류가 다르게 만든 게 아니고 특수목적 하에서 특수적으로 우리를 지은 거다. 누가 그렇단 말이요? 내가 그렇단 말이요. 그러니까 나는 특수목적적으로 살아야지요.

 

그런데 우리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그러한 특수목적적으로 살아왔다고 느껴집니까? 아니지요. 그냥 인간이니 밥 먹고, 인간이니 말하고, 인간이니 그저 일하고 하나는 그거는 생각이 깊지를 못하고 얄팍한 거지요. 우리가 그런 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때는 진하게 느껴져요. ‘이렇게 살 내가 아니로구나. 내 일생을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듯이 살다가 갈 내가 아니로구나.’ 그렇지 않아요?

 

비록 평택시내의 쓰레기를 치우는 직업을 가졌더라도 속에 들어있는 그 정신 사상성은 무슨 목적으로 살아요? 특수목적을 가지고 사는 거다. 그 정신이 없으면 인간의 가치가 없어요. 자기가 자기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데야, 자기가 자기의 가치성을 떨어뜨리는 데야 누가 그 자기를 올려주겠어? 그렇지 않겠어요?

 

천국을 하나님 당신처럼 누리게 할 그 목적으로 인간을 지으려니까 인간이 어떤 특수성을 가져야 하느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에 우리의 모양대로 짓자그랬단 말이요. ‘우리의 형상대로 짓자한 그게 뭐지요? 하나님과 같은 인격자로 짓자는 것이지요. ‘모양이라, ‘형상이라고 하는 게 우리 인간의 말로 알아듣기 쉽게 그렇게 쓴 것인데 그 말의 뜻은 인격성이고 속성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부활이 있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끝난다면 인간이 짐승들보다 낫다고 할 게 있어요? 없어요. 오히려 짐승보다 못하지요. 짐승들은 먹는 거 걱정은 안 하잖아요. 죽을 때 누구를 그리워하는 그런 건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간만은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서 눈을 뜨고 죽고, 못 먹어서 입을 벌리고 죽고 하지요. 왜 그럴까?

 

여러분들, 사람 죽는 거 봤어요? 여러분들, 사람 죽는 거 많이 보세요. 그 하나도 무서운 거 아니에요. 나는 송장 많이 만져봤어.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피부에 온기가 있고 그러잖아요? 사람이 죽어놓으면 뱀 만지는 것 같아. 뱀 만지면 끈끈한 습기 같은 게 있고 차디차지. 송장 만지면 그래요. 차요.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입은 옷 속의 이나 벼룩 같은 게 다 기어 나와요.

 

그리고 혹시 여러분들, 비가 막 오고 번개가 치는 밤에 운전을 하고 가는데 저 앞에서 누가 소복을 하얗게 입고 우산을 탁 쓰고 옆에 와서 나 좀 태워주시오해서 태워줬는데 감각이 이상해서 옆을 쳐다봤거든. 쳐다보니까 그 여자가 목 아래만 있고 머리가 없어. 목에서 피가 주루룩 떨어진단 말이요. 그럴 때 놀랄 필요가 없어요. ‘귀신이 뭐가 무서워이래놓으면 귀신이 기가 막힐 거야. 아무리 무섭게 나타나도 무섭긴 뭐가 무서워.

 

귀신이 제 딴에는 무섭게 하느라고 나타난 건데 뭐가 무서워이래놓으면 귀신이 꼼짝도 못 해. ‘그게 뭐가 무서워, 목에서 피가 나면 피가 나는 거지 뭐그러면 되는 거지 무섭다고 엄마야하고 언덕배기로 차를 몰면 어떻게 되겠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요. 하나님이 무섭지. 그렇지 않아요? 하다 보니 별 소리가 다 나오는구나.

 

우리 인간은 불멸의 존재다. 그러니까 우리의 느낌성도 누림성도 영원불멸성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력이 에누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절대로 에누리가 없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고 이루어 놓은 것은 절대로 에누리가 없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바울이 감옥이 주는 그 느낌성을 기쁨으로 느꼈어요, 슬픔으로 느꼈어요? , 기쁨으로. 얼마나 기뻤을까? 그래, 그 때 바울이 그 감옥 속에서 기쁨으로 느끼는 그 느낌성은 어느 느낌성이었느냐? 육이냐, 이성이냐, 영이냐? 영이지요. 영의 기쁨이었지요.

 

그러면 어느 게 육의 기쁨이고, 어느 게 영의 기쁨이요? 여러분들, ‘영적 영적, 영의 기쁨, 영의 생각자꾸 그러는데, 또 성경에도 영의 생각이 있고 육의 생각이 있는데 어떤 게 영의 생각이요? 나는 이렇게 있는데 영이 있어가지고 나도 모르게 영의 생각을 하고, 또 나는 여기 있는데 나도 모르게 육의 생각을 하고 그런 겁니까? 육의 생각은 뭘 보고 육의 생각이라는 거요?

 

내가 지금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지요? 이걸 누가 하는 거요? 자기가 하는 거지요. 그러면 영의 생각, 육의 생각하는데 생각을 하는 내가 둘이라는 것입니까?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다 근거를 두고 행복을 찾고 만족을 찾고 하는 이건 무슨 생각? 육의 생각. 반면에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가 그 하나님을 생각하니 기쁘고, 천국을 생각하니 기쁘고, ‘이 세상에서 사건 환경 일어나는 거는 하나님이 당신 닮으라고 그러는구나하는 그런 생각은 무슨 생각? 영의 생각이라. 그렇다 그 말이요.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혼돈이 안 되지요?

 

그러면 직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할 때 그 일 자체는 뭐요? 일 자체는 육의 일이지요. 그런데 일을 하는 그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기에 근원을 두고 하는 활동이면? 영의 일이지요. 그러니까 일을 하는 그 자체가 영의 일이요? 일은 일이지. 그런데 그 일을 할 때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지하는 자기의 생각이 있잖아요. 같은 일이라도 그 생각에 따라 영의 일도 되고, 육의 일도 되는 겁니다. 우리의 세상살이를 영의 생각을 가지고 한다면 무서울 것도 없고 괴로울 것도 하나도 없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내가 이 돈을 벌어가지고 부자가 돼서 예수를 편안하게 믿어야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게 영의 생각이요, 육의 생각이요? 육의 생각이지요. 그런데 그걸 따질 줄 모르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까 그걸 영의 생각이라고 그러거든. 못 깨달으면 할 수 없지 뭐.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죽음의 선에서 육과 이성 이런 것은 다 끝이 나도 영의 느낌 감각은 천국에까지 여전히 가는 겁니다. 부활체는 영육 결합체가 아니고 영육 단일체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활 전이니까 영육 결합체이지요? 부활 때는 단일체로 화해진다.

 

그리고 천국은 하나님만 누리는 곳. 천국은 하나님이라야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못 누려진다. 그러니까 예수님으로 통해서 우리가 그 천국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닮아가야 된다. 성령님께서는 닮게 하는 그 역사를 한다 그 말이지요.

 

인간 대 인간의 사랑도 애정적 수수관계는 되지요. 그렇지요? 인간 대 인간의 사랑도 주거니 받거니가 된단 말이요. 그런데 인간의 사랑도 한 쪽만 주고 한 쪽은 안 받으면 맛대가리가 없을 거라. 그렇지 않아요? 그 무슨 맛이 있을까? 주거니 받거니, 주는 맛도 있고 받는 맛도 있고. 그런데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끼리 애정적 수수관계성을 가질 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걸까요? 아니요? 그럼 무슨 사랑이요? 영과 육이 결합이 되어 있는 동안에 하나의 맛보기로 보여주는 거다.

 

하나님은 불신자도 사랑하고 만물도 사랑하고 다 사랑하지요? 뭘 보고 그걸 느낄 수 있어요? 그렇지. 안 믿는 사람에게나 만물에게도 비도 내려주고 햇볕도 내려준단 말이요. 그러나 불신자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못 느낍니다. 느낌성에 있어서 둔감하단 말이요.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을 해도 못 느껴. 그 사랑에 둔감이지요.

 

그 왜 그럴까? 첫째는 불신자 그들은 영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껴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

 

믿지 않는 사람은 안 믿으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보면 다 같은 성도라도, 그리고 영이 중생을 했는데도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느끼는 느낌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요. 깨달음의 차이도 있고. 그렇지요? 영이 살아났는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면 이거 어떻게 되겠느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건 만고 멍청이지요. 어쨌든 믿어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기쁨은 그 무엇이 와서 삭감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품에 감염되는 것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느낍니다. 그러니까 못 느끼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민감하게 입지 못한 증거다.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갈면서 참자. 참자. 좀 더 참자하는 극기라든지 극복이라든지 고역이라든지 이런 거는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한 증거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요구성과 하나님의 소원성은 나에 대해서 어찌하든지 성품을 진하게 입어라. 하나님의 성품을 진하게 입어라.’ 그래서 말씀을 주고 진리와 영감을 주고 사건 환경을 주는 것입니다. 왜 그걸 주느냐? 진리와 영감이 없이는 하나님의 성품이 감염이 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감염이 되라고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을 준다 그 말이요.

 

사람이 세상을 자꾸 돋보면 그 사람은 무엇에 그만큼 감염된 사람이지요? 세상에 대해 그만큼 감염된 사람이다. 자꾸 눈만 뜨면 술 술 술 술한다면 그 사람은 무엇에 감염된 사람이요? . 아주 술도가가 됐구만. 감염이 아주 원료 뭉테기가 됐어. 그렇지요?

 

하나님의 성품에 감염된 사람은 부자들이 아무리 진주 목걸이에다가 반지에다가 목에다 손가락 마다마디마다에 끼어도 그게 시시하게 보인다 그 말이요. 신의 성품에 감염이 되면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성격을 닮아요.

 

아무 교회 아무 집사를 보니 십일조를 내더니만 저렇게 부자가 됐다하는 이것은 믿음이 좋은 소리요, 세상 쪽으로 타락이 된 소리요? 어떻게? 타락된 소리로 들립니까, 믿음이 좋은 소리로 들립니까? ‘아무 집사가 저렇게 십일조를 내더니 부자가 됐다. , 부자가 됐다.’ 이게 타락된 소리요, 믿음이 좋은 소리요? 타락된 소리다.

 

우리 기독자는 죽음의 선에서 하나님에게 감염된 것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간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입기 위해 살아야 된다. 일은 못해도, 돈은 못 벌어도 빈부귀천 남녀노소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된다.

 

어떤 환난 역경이 와도 그 환난 역경에다 마음을 두지 말고, 거기에 마음을 두면 고통스럽고 괴롭지요? 아무리 어렵더라도 거기다 마음을 두지 말고 이런 속에서 누가 하나님의 성품을 더 진하게 입고 가느냐하고 경주를 해야 된다. 참 이게 어렵겠지요? 그래서 예수 바로 믿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죽음 저 넘어가서 보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신의 성품을 입고 가는 이게 우리 인생의 성공입니다. 그것이 된 것만큼 천국에서의 누림과 느낌성이 달라진다.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자권이 동등권, 영생권이 동등권, 자유성이 동등권, 또 자기 만들어진 대로 주권을 가지는 것도 다 동등권이요. 이건 다 동등권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격차성은 작자의 실력에 따라 천국의 누림성이 각기 다르고, 활동성이 다르고, 거기에서 오는 느낌에 격차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조만간에 천국에 갈 자이니 세상에 있는 동안에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100% 받아가지라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입혀주기 위해서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오늘 이 말씀 속에 애굽에 70명이 내려가서 430년이 지난 후에 장정만 해도 60만 대군으로 이렇게 나오는 그 속에 하나님의 숨어있는 뜻이 들어 있는 것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것이 옛날 지나간 하나의 과거사가 아니고 이 역사를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현실이 있으니 만큼 이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되겠는가하는 그것이 들어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원합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그 마음을 인격성을 속성을 도덕성을 능력성을 지혜지식성을 100% 닮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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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5 잠언 말씀을 따라가자 잠23:1-26  최장환 목사  2013-05-15 3093
9044 사사기 신중함과 담대함의 병행 삿6:33-40  이한규 목사  2013-05-14 2457
9043 누가복음 변화의 기적이 나타날 때 눅9:28-36  이한규 목사  2013-05-14 2126
9042 사사기 힘을 내세우지 마십시오 삿6:17-32  이한규 목사  2013-05-14 1942
9041 사사기 하나님의 부르심 삿6:1-16  이한규 목사  2013-05-14 2253
9040 사사기 인생 승리의 요인(2) 삿5:14-31  이한규 목사  2013-05-14 2028
9039 요한복음 그래도 사는 길은 있다 요21:13-14  이한규 목사  2013-05-14 1783
9038 누가복음 청년의 마음으로 일어나십시오 눅7:11-17  이한규 목사  2013-05-14 2206
9037 사사기 인생 승리의 3대 요인 삿5:1-13  이한규 목사  2013-05-14 2064
9036 사사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삿4:11-24  이한규 목사  2013-05-14 2111
9035 사사기 리더에게 필요한 5대 덕목 삿4:1-10  이한규 목사  2013-05-14 2333
9034 사사기 인물 되는데 없어도 되는 것 삿3:31  이한규 목사  2013-05-14 1700
9033 마태복음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 마7:7-8  이한규 목사  2013-05-14 2502
9032 잠언 어린이주일-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잠29:17  이정수 목사  2013-05-13 2518
9031 고린도전 정녕, 사람을 존귀하게 대접하여야 합니다(3) 고전13:1-13  이준엽 목사  2013-05-13 2095
9030 마태복음 정녕, 사람을 존귀하게 대접하여야 합니다(2) 마18:10  이준엽 목사  2013-05-13 1888
9029 창세기 사람을 존귀하게 대접하여야 합니다(1) 창1:26-28  이준엽 목사  2013-05-13 1967
9028 다니엘 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 단5:13-24  이정원 목사  2013-05-13 1946
9027 다니엘 살아계시는 하나님 단5:1-12  이정원 목사  2013-05-13 2559
9026 다니엘 회심을 위한 징계(2) 단4:18-37  이정원 목사  2013-05-13 1724
9025 다니엘 회심을 위한 징계 단4:1-17  이정원 목사  2013-05-13 1827
9024 다니엘 불 속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단3:19-30  이정원 목사  2013-05-13 2335
9023 다니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단3:1-18  이정원 목사  2013-05-13 2979
» 출애굽기 믿음도 믿음 나름입니다 출1:1-7  김경형 목사  2013-05-13 1830
9021 누가복음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해야 할 이유 눅18:1-8  한태완 목사  2013-05-12 3719
9020 누가복음 구원얻을 자의 고백-(1)한쪽 강도의 고백 눅23:39-43  강종수 목사  2013-05-12 1798
9019 갈라디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갈5:16-25  한태완 목사  2013-05-11 5043
9018 출애굽기 신앙은 노선보다 계열이 더 중요합니다. 출1:1-7  김경형 목사  2013-05-10 1597
9017 로마서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 롬5:19  한태완 목사  2013-05-10 5576
9016 갈라디아 자아와 이기심을 버려라 갈2:20  한태완 목사  2013-05-09 2451
9015 요한계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자 계6:1-17  최장환 목사  2013-05-08 3291
9014 고린도후 영적 사자로 살아가자 고후4:1-18  최장환 목사  2013-05-08 3259
9013 요한계시 새 하늘과 새 땅 계21:1-6  정용섭 목사  2013-05-07 2256
9012 요한복음 예수는 하나님이다 요10:22-30  정용섭 목사  2013-05-07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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