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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4: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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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3.4.28 주일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회심을 위한 징계(2)
단4:18-37
성경의 역사를 살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실하다’는 말은 ‘미쁘다’, ‘성실하다’, ‘충성되다’라는 말과 통합니다. 영어로는 ‘fathful’입니다. 우리말로 풀어본다면, ‘믿을 만하다’, ‘약속을 지키다’, ‘진실하다’, ‘성실하다’, ‘충성되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7:9)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시36:5)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시119:89-90)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렘애3:22-2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10:23)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도 신실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서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것은 한결같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변함없이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신실한 성도를 기뻐하시며, 얼마든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우리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잊어버리거나 알고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통해 무서운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로 하여금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별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경고를 망각하고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무서운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는 왕의 보좌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
느부갓네살 왕은 꿈에 하늘에 까지 닿은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새들이 거기에 깃들이며, 육체를 가진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베어 버리고 새들과 짐승들을 다 쫓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루터기가 하늘 이슬에 젖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그 꿈을 해석해달라고 명령했습니다.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18절)
왕의 꿈을 들은 다니엘은 충격을 받고 놀라서 번민했습니다. 그 꿈은 느부갓네살에게 무서운 일이 닥치게 될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19절)
이제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놀라운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을 들어봅시다.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 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20-22절) 다니엘은 왕이 꿈에서 본 큰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 문학에서는 왕을 나무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꿈의 다음 부분을 말합니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23)
이 부분이 느부갓네살이 꾼 꿈의 핵심입니다. 이제 다니엘은 그것을 해석합니다.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24-26)
다니엘이 왕에게서 꿈을 전해 듣고 놀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엄청난 벌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러한 무서운 일이 닥치지 않도록 왕이 해야 할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27절)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날려버리다
다니엘의 해몽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매우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동안은 다니엘이 가르쳐준 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조심하는 태도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다시 교만하고 포악한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일이 실제로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9절에 보면 ‘열두 달이 지난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서 조심하다가, 몇 달이 지나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 경고를 무시했거나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경고를 무시한 느부갓네살에게 큰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이러한 느부갓네살의 모습은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나 어떤 충격적인 일로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조심합니다. 믿음으로 살며 말씀을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차츰 다시 해이해져버립니다. 그리고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느부갓네살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서원하고 다짐했던 것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는 잊어버리거나 무시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고, 우리에게 한결같이 대해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한 번 결단하고 서원한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말씀을 순종하며, 결단하고 서원한 것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의 교만
느부갓네살은 어느 날 왕궁 옥상에서 산책을 하던 중 바벨론의 전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바벨론은 사막에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곳에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워 찬란한 도성을 만들었습니다. 바벨론 도성의 광경은 느부갓네살 자신이 보기에도 대단했습니다. 바벨론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업적에 크게 고무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30절)
느부갓네살이 그렇게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며 낮추십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삼하22:28)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교만은 패방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난 일
느부갓네살이 꿈을 통해 받은 경고를 망각하고 제 멋대로 교만하며 악한 일을 버리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던 무서운 일을 느부갓네살에게 행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교만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31-32절) 그리고 그 순간 느부갓네살에게는 바로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임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33절)
느부갓네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난 일은 일종의 정신병인 수광병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수광병이란 환자가 자신을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병입니다. 실제로 우광병에 대한 사례는 많다고 합니다. 우광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고 소처럼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환자는 자신의 원래의 신분을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래에 영국의 정신병원에서도 이런 환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상담을 해도 소용이 없고, 병원에서 주는 음식은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밖에 나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었는데, 잡초는 뜯어먹지 않고 좋은 풀만 뜯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손끝만 닳고 상처가 났을 뿐 영양에는 별 손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이런 수광병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느부갓네살을 이렇게 벌하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제국을 호령하며,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느부갓네살이 밖으로 뛰쳐나가 들에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머리는 풀어헤쳐 독수리처럼 지저분해졌고, 손톱과 발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괴상한 짐승의 몰골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다시 회복된 느부갓네살
느부갓네살은 졸지에 괴상한 짐승처럼 되어 풀을 뜯어먹으며 들에서 지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렇게 정해진 기간을 지냈습니다. 일곱 때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략 7년이라고 친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겠습니까? 교만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들에서 풀을 뜯어먹으면서 짐승처럼 지내던 느부갓네살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를 다스리시며 왕들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의 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34-35절)
느부갓네살은 상당히 오랜 기간을 들짐승처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그의 모든 권세가 회복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36-37절)
역사의 기록
바벨론의 고대 기사들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큰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 다른 고대의 기록은 그가 어떤 신령한 자에게 잡혀 갔다고 하거나, 또는 그가 이상한 괴질에 걸렸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사이에 느부갓네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를 겪은 후 느부갓네살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세와 영화를 더욱 크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교만을 꺾고 하나님을 섬기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과 화목한 후에야 진정한 행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하시며, 우리도 하나님께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잊지 않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그토록 다짐하고 결단했던 것을 망각하고, 하나님께 받았던 경고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금 해이해져서 순종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하십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임한 하나님의 징계는 정말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때 징계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서원하며 다짐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경고를 받고 새롭게 결단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그것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만일 그것을 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고 있다면 징계를 받기 전에 돌이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처럼 완악한 자도 결국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도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회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정한 베스트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끝까지 전도해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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