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4657번째 쪽지!
□ 믿음과 행위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신교(Protestant)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행위'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종교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삶이 가장 불량스럽습니다.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그냥 눈가리고 아웅 하면서 대충 사는 것입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 중의 하나가 수도원 수도사들의 고행(苦行)을 실랄하게 조롱하던 어떤 교수님이었습니다.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등에 바위를 매달고 폭포를 기어오르고, 높은 나무 꼭대기에 겨우 무릎을 꿇을 공간만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안 내려오는 수도사들은 참 바보들이야. 그냥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데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서 고생을 해? 인간의 수도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학우들은 교수님의 조롱에 동조하듯 와하하하하하 웃으며 '아멘'을 했지만 저는 '아멘'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삶과 성 프란시스코에 대해 나름대로 혼자 책을 사서 보며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나 오늘날의 많은 개신교인들은 수도원 수도사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고행을 하는 것이 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수도사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수도사들이 고행을 하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죄성을 뿌리뽑기 위해 고행을 해서라도 육체를 다스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결(성결)한 사람이 되기 위한 거룩하고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하고 고백만 하면 그 순간부터 죄가 없는 순결한 사람으로 쨘! 하고 변신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고백만 가지고는 주님 앞에서 새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고백은 시작일 뿐입니다. 믿음으로 진짜 고백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행위로도 고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서로 분리된 둘이 아니라 그냥 하나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짜 구원받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짜 믿으면 내 안에 있는 죄를 두고보지 못합니다. 고행을 해서라도 그 죄의 뿌리를 뽑아내고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성화된 모습으로 서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면서 뒤돌아 서서는 개가 토한 것을 다지 집어먹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죄를 짓는 사람은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최용우
♥2013.5.23 나무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글에 공감하시면 추천 버튼을 꾸욱 눌러주시는 센스^^
댓글 '10'
참샘
우리는 왜곡된 가르침을 너무 많이 받아 왔습니다.
유대교는 율법주의라서 아니고
천주교는 교황주의라서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저도 여러 책들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위로 내려오는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개신교만의 독점물이 아님을 말입니다.
유대교와 천주교도 동일하게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에 의해 구원에 이른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위로써 자기의 믿음을 증거하여 보여주는 것 까지 은혜받은 자들로서 당연하게 담당하는 것이지요.
개신교는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나온 종갓집들을 욕해 보아야 누어서 침밷기인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만 옳다고만 하며 행위로써는 본이 되지 않으니
꽹과리에 불과한 자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행위로써만 믿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교훈의 글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한 기준은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고 살아가는 이나 최후의 순간에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어리석은 영혼에게 동일하게 적용이됩니다.
잘못깨닫고 잘못 알아서 구원을 못받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삶으로 살지못하고 은혜가운데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일에는 소홀히 하고 예배참석과 교회일에 열심으로 하는 것도 어찌보면 수도사들의 고행과 같이 행하는 삶들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떠하든지 주님은 만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기 원하시며 우리 역시 그 긍휼함 속에서 구원 받은 사람으로 긍휼의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일입니다.
Philip Im
이 말씀이 맞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위'를 소홀히 한 측면은 종교개혁 이후 특히 신비주의,성공주의에 빠진 후세들에게 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많은 경건한 개혁주의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오히려 율법주의자 같은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곧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가 아닌 것은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마땅히 감사함으로 바른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른 행위를 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수도사들의 고행에 관하여는 일면 이해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고행을 하여 육체를 다스리고 죄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고행은 잠시 유익은 줄 수 있지만
영원한 유익은 없습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