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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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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49
구원의 목적
로마서 7 : 1 - 4
서 론 : 바울은 로마서 7장 초두에서 율법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를 폭군적인 남편과의 혼인관계로 비유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 가운데서 벗어났으며 또 어떻게 새로운 신랑을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설명은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우리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 함을 얻었으므로 다른 이에게 혼인올 해도 그 일은 결코 불법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이처럼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목적이 분명히 있는데 그 목적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1. 바울의 변명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혹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에게 오해를 살만한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많은 대적자가 있었고 그들과 진리에 대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바울의 대적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바울의 해석을 ‘무 율법주의’ ‘반 율법주의’ ‘탈 율법주의’라고 매도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제일 안타깝게 여긴 것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벗어났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생활을 설명하며 이해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였습니다.
(1)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러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는 반론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롬3:20). 바울이 주장한 그 단면만 본다면 바울의 말은 분명히 ‘율법 폐기론 자’의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이 같은 반론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 오해인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인간에게 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죄에 있으며 이 정좌는 사람으로 죄를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는데 있으신 것입니다.
(2) 다른 또 하나의 악의적인 비방은 사람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그리고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하였으니 은혜아래 있는 사람들은 죄를 범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 율법주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면 죄 가운데 살아가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칠 것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반론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단호하게 그들의 주장을 부정합니다. “은혜를 더 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반격하고 있습니다.
(3) 바울의 이 같은 문제가 7장에 와서 혼인관계를 비유로 하여 강력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 율법이나 폐 율법적인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뜻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뜻은 율법을 버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을 버렸다는 것은 양심을 버렸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율법이 없는 생활은 인간의 생활이 아니라 금수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바로 율법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양심이 율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롬2:14).
(1)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죄인을 정죄 합니다. 율법의 정죄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율법의 정죄는 죄 값을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되고 있습니다(롬6:23). 이 같은 사망의 선언은 율법의 정죄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율법의 정죄 함이 없는 것입니다(롬8:1).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이처럼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2)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모든 죄인들을 지배합니다. 죄의 종들을 지배하는 역할을 율법이 합니다. 율법은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율법의 지배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명령과 그 지배아래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의 명령과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은 목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율법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죽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이처럼 논증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롬8:3,4).
(1)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폐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죄 가운데서 살아가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하심”에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실인즉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혀 버린다고 하셨습니다(요15:2).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약2:26).
(2) 하나님을 위하여 맺는 열매란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율법사에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말씀하셨습니다(마22:34-40). 이 강령은 율법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율법으로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요13:34).
결 론 : 하나님을 위한 가장 위대한 열매란 우리의 전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0:31). 이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한 평생에 이루어야 할 계속적인 열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받은 새로운 생명으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다. 이 열매야말로 하나님을 위하여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갈5:22, 23). 이런 열매들은 율법아래에서의 열매보다 차원이 높을 뿐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이룰 새로운 계명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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