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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7: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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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 53
생명과 계명
로마서 7 : 10 - 13
서 론 : 바울은 10절에서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도다”고 깊은 탄식을 합니다. 이 탄식은 바울이 체험하고 있는 탄식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어떤 사람이 그 율법에서 의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를 받는 원리를 깨닫게 된 “나”라고 하는 사람의 탄식입니다. 율법은 분명히 인간에게 생명이 약속되어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니, “나”라고 등장한 이 사람은 율법에 대한 참뜻을 깨달은 이후에 그 율법과 생명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큰 모순을 발견하게 되면서 갈등과 번민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I. 도리어 사망을 주게 된 계명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과 계명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근원적으로는 한가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이 주신 전체적인 광의의 법을 말하는 것이요 계명이란 그것을 세분한 구체적인 조항으로 이것을 십계명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1)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란 그 계명자체에 있는 뜻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계명이 인간에게 생명에 이르게 하려고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그것을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해석입니다. 그 이유는 계명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생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레18:4-5, 신6:25, 눅10:25-28).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약속을 거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3:21). 우리는 율법의 목적과 한계를 다시 한번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들에게 만약 너희가 율법을 지킨다면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뜻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생명을 주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율법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요 율법자체도 하나님의 이 같은 약속을 거스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그 계명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계명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는 못할망정 왜 사망에 이르게 하였는가? 이 일에 대한 설명은 죄와 율법과의 관계를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세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계명이 오게 되자 인간의 죄가 그 계명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단에게 있어서 대단히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사단이 인간의 죄악성(탐심)을 자극하여 그 계명을 범하도록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 종으로 죄에 팔린 몸이기 때문에 그 사단의 공격을 따라 계명을 어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나라고 하는 인간은 육신이 연약하여 그 계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계명은 결국 나로 하여금 더욱 죄인 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음 셋째로 그 결과 계명은 나에게 생명은 고사하고 그 계명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나를 죽이는 죄
사단은 언제나 자신을 광명한 빛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죄는 자기를 숨겨서 가장하는 수법으로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창3:1-5에서 아담과 하와가 겪은 경험을 통해서 우리 앞에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를 속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I) 죄는 나로 하여금 행동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것은 괜찮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이처럼 마음으로 범하는 죄에 대하여 제 10계명으로 정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죄가 어느 기회를 엿보아 우리 앞에 나타날 때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모습은 인간에게 매력을 줍니다. 그 매력의 충동을 강하게 함으로 다만 우리의 눈으로 죄를 바라보게 하고 그것을 받아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3) 죄는 이것을 해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속입니다. 하와에게 들려 준 뱀의 말이 그러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창3:4). 죄는 자신의 모습을 인간으로 하여금 탐심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에 하와에게 보였던 것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게 한 그 방법으로 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4) 다음에 죄는 너는 죄를 범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죄 함이 없기 때문에 죄로 걱정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속삭이면서 안심시킵니다.
(5) 죄는 우리에게 한번쯤이면 아무 상관이 없으니 한번하고 그만 두면 된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이때 인간은 죄의 무서운 결과를 생각하는 이성을 상실해 버리고 그 함정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이와 같은 속성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고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3. 죄와 사망을 선사한 것이 과연 율법인가?
이런 면으로 볼 때 계명은 결코 악한 것도 불의한 것도 아닙니다. 율법이야말로 거룩합니다. 죄인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온 율법에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명이야말로 의롭습니다. 지키는 자에게 의를 주는 하나님의 의의 표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선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절대 선합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율법이 우리에게 선한 판결을 내려 줄 수가 없을 뿐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두 죽게 된다고 해도 그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입니다.
(1)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이처럼 선한 것이 나에게 사망이 되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해답은 바울 스스로가 간단히 내리고 있는데 “그럴 수 없느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이 오게 된 것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한 율법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이 있기 이전에도 죄가 우리 인간에게 있었고 이 죄로 이미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율법은 다만 인간에게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죄를 죄로 들추어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 온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2) 사실인즉 우리 인간에게 사망을 가져온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의 악한 죄가 선한 율법을 매개로 하여 주검을 선언하게 한 것입니다. 율법이 있기 이전에는 우리는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죄인인줄을 몰랐고 그 죄 값이 사망이란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인간사회에 개입됨으로 인간의 죄가 죄로 드러나게 되었고 그 죄 값으로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심히 죄인 된 사실을 보여 주었고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죄에 대한 정죄함을 밝혀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 인간들에게 악을 행하는 존재로 군임 한 것도 아니요 죽음을 선사하는 존재로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밝혀 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경종 했을 뿐입니다.
결 론 :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죄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6:12).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지만 그 옛사람의 습성은 아직 우리의 죽을 몸(육신)에 남아 있습니다. 이 세력은 주인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우리를 속여서 지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 힘을 우리의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물리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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