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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친해지기 9: 좋은 밭 되기

마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101 추천 수 0 2013.05.27 19: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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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3:3-9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하나님과 친해지기 9: 좋은 밭 되기
2008년 4월 26일(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마태복음 13:3-9, 19-23

. 9절만 다시 읽어볼까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무슨 뜻일까요? 귀없는 사람 없쟎아요? 무슨 의미입니까? 같은 비유의 내용이 있는 누가복음 8:8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더 의미가 명확해지지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렇다면 들을 귀란 무엇입니까? 반대로 하면 안듣는 귀, 못 듣는 귀도 있다는 말인데, 무엇을 의미할까요?

  들을 귀는 다르게 말하면 들을 수 있는 귀, 듣고 깨닫는 귀, 듣고자 하는 귀를 말합니다. 반면에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귀도 있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귀도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보면요, 들을 귀 있는 자들이 있고, 안듣는 귀, 못 듣는 귀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듣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귀나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세상을 이기는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저절로 생기는 것 아닙니다.

호세아서 4장에서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사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데, 그러러면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들을 귀이고 무엇이 듣지 못하는 귀입니까? 우선 들려야 합니다. 무언가가 막고 있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막고 있는 것들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듣는다는 말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에 담는 겁니다. 마음으로 듣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즉 내 인격과 삶으로 듣는 겁니다. 그것이 듣는 겁니다.

귀로만 듣고 말면 그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깨달음이 와서 담기는 하는데 거기에만 머문다면 그것 역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귀로 듣고 마음에 담아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들음입니다. 그러기에 들음과 행함은 같은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 무엇이냐? 들은 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들음과 행함이 같은 겁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귀 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씨뿌리는 자는 일차적으로는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종류의 밭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먼저 첫 번째 밭을 봅시다. 첫 번째 마음밭은 ‘길가’입니다. 길가란 밭 사이에 나있는 농로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단단해진 땅입니다. 땅이 단단하다 보니까 씨가 떨어져도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새가 와서 먹어 버리게 됩니다.

  이런 마음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14절에 있는 것처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마음이 굳어지게 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가서 땅이 굳어진 것처럼, 우리 마음 가운데 사람들의 수많은 교훈, 철학, 지식, 경험들이 지나가서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굳어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나는 성경에 대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마음 가운데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이미 그것들에 의해 마음이 굳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똑똑한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습니다. 자신이 믿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학자의 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자기가 배운 지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믿지 못하는 이유를 댑니다.

제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잘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자신이 믿지 못하는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소개한 바 있는 이어령 박사가 그 예입니다.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했던 사람이었거든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논리가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는 기독교신앙을 사회 현상으로만 인정을 했지 신앙의 대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나이들어 그가 예수님을 만나 그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다고 스스로 말했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어령 박사가 예수 믿는 것에 대해 명언을 했지요? "나는 예수님께 항복선언을 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께 대한 항복선언이라는 겁니다.

그동안의 나의 학문과 지식과 철학과 경험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데 장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 모두 예수 이름 앞에 다 내려놓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어령 교수는 그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은 성경 말씀을 날마다 연구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지요. 사도 바울은 헬레니즘의 화려한 지식과 쥬다이즘의 전통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때문에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데만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고상한 지식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동안 그가 자랑해왔던 모든 지식과 학문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던 겁니다.

  우리가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배우는 것 중요합니다. 소홀히해서는 안됩니다. 철학과 많은 경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문제인 것입니다. 무익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듣고 보고 경험하든지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지성도 거듭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우리의 지식과 학문과 철학과 경험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말씀을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15절에 보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라고 되어 있는데, 죄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완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설령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는 것을 더디해서는 안됩니다. 죄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은 죄를 회개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죄와 하나님은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크고 작건 상처를 받게 됩니다. 서운함이 생기고 마찰이 생깁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상처가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놔두면 상처가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립니다. 바로 쓴뿌리가 됩니다. 쓴뿌리가 되면 독을 품어 냅니다. 그래서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굳어지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상처와 쓴뿌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상처와 쓴뿌리를 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사단이 와서 빼앗아가 버립니다.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되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단은 말씀이 씨를 뿌리기 전에 빼앗아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소개한 바 있는 C.S. 루이스가 이것을 아주 잘 설명을 했습니다. 그는  ‘악마의 편지’라는 책에서 길가와 같은 마음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대영제국의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도서관에 들르는 습관이 있었기에 습관에 따라 그 날도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책 중에서 손에 쥐어진 책이 신앙에 관한 책이었고, 이 책을 읽어보다가 노신사의 마음 속에는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 속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점심 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그는 잠시 전 마음 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 악마는 그 마음 속에 다시 말하기 시작합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밥부터 먹고 보자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어렴풋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이미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 노신사의 뒤에서 악마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루이스가 설명한 것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 한번쯤은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어떤 날의 설교는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어떤 날의 설교는 나를 깨우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갈등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그분은 어떤 분인가? 그 분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축도와 함께 예배가 끝납니다. “뭐, 다음에 생각하지.”

  예배가 끝나면 여느 때처럼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당으로, 혹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를 나누고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돌아갑니다. 내가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이, 내가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다는 사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저 내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 스쳐가는 생각만 가지다가 말씀은 사단에게 빼앗긴 채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럴 때 우리 뒤에서 사단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길가와 같은 마음밭의 비극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없기를 바랍니다.

. 두 번째 밭은 흙이 얇은 돌밭입니다. 이 밭은 씨가 뿌려지면 뿌리는 내려집니다. 그러나 흙이 얇고 그 밑이 돌이기 때문에 깊게 뿌리가 내려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가 돋은 후에는 타버려 뿌리가 없어지고 말라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20절의 예수님의 설명처럼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금방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빨리 뜨거워졌다가 빨리 식어버리는 사람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혜도 잘 받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아멘’ 하면서 잘 받는데, 정작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는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에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환난과 핍박이 닥치거나 생활에 큰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때, 혹은 신앙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때 쉽게 다운되거나 신앙을 져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욥기를 읽을 때마다 그렇게 말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용광로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말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이란 용광로에 들어가면 모두가 정금과 같은 신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있는 사람은 정말 고난으로 인해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깊어져서 정금같은 믿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의 뿌리가 없는 사람은 금방 흔들려버리고 나중에는 정금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용광로에 그나마 있던 믿음까지도 다 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는 것입니다. 땅 밑에 있는 돌맹이들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뿌리가 깊게 내려지면 그 뿌리로 인해 돌맹이들이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힘들어도 깊게 뿌리를 내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이 고난의 때에라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통해 그 믿음의 더욱 견고해지고 정금과 같은 신앙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세 번째 밭은 가시떨기 밭입니다. 7절에 보면,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은 비옥한 땅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떨어지면 뿌리도 깊게 내리고 잘 자라납니다. 그러나 가시가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어도 쉬원치 않습니다.

가시떨기 밭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을 보면, 22절,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막혀 있어요. 말씀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입니다. 말씀을 잘 받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름대로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과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친한 사람 가운데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 순수하고 믿음도 좋고 뜨겁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집안에도 부모님의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늘 눌려있습니다. 늘 염려가 있고, 돈에 대한 눌림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믿음에 비해서 열매가 적음을 봅니다. 그 정도의 믿음이라면 많은 열매가 맺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찌 염려가 없고 돈에 대한 필요가 없습니까마는,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우리를 누르는 것이 되면 우리의 신앙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31)고 하셨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여러분들 가운데 주님을 믿고 사랑은 하는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욕심 때문에 눌려있거나 세상의 것들을 잡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결코 그 믿음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가장 미련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을 붙들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똑똑한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똑똑한 사람입니까? 쓸 데 없는 것 놓아야 할 것 다 놓고,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들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제가 교육전도사 때 중고등부와 더불어서 찬양단을 지도했었는데, 찬양단 단장을 맡은 장로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청년들을 보면 너무나 부끄럽고 부럽다.” 이 분은 40대 중반에 장로가 된 분입니다.

그러나 정작 청년의 때에 이 분은 세상의 것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이 토목과 출신인데, 건설현장을 다니다 보니까 맨날 하는 것이 술마시고, 노름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실력은 있어서 빨리 승진을 해서 중직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했고, 교회에서도 장로가 되었지만, 이 분은 늘 후회하는 것이 청년의 때를 세상적인 것들만 쫓아가다가 허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봉사하는 청년들을 보면 부끄럽고 부럽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청년들이 있는데, 우리 청년들 청년의 때에 이 자리에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에 세상의 것에 정신이 팔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축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청년의 때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다 포기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와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이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하나님의 예배하는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발을 못붙이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꽉 채우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네 번째 밭은 좋은 땅입니다. 이 땅은 비옥하고 아무런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뿌리도 잘 내리고 잘 자라서 백배, 육십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23절에 보면 이러한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8:15에 보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달아 지키어 인내함으로 마침내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마음 밭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왜 듣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듣습니까? 아니면 설교를 듣기 위해서만 듣습니까? 목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듣습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듣습니까? 무엇 때문에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동기가 분명해야 합니다.

  좋은 밭이라는 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설교를 듣는 이유는 내가 들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내 삶 속에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들은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그 거룩하고 뜨거운 동기를 가지고 말씀을 듣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밭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인데,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부임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첫 예배 때 기가 막히게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 모두가 다 은혜를 받고, 목사님 잘 모셨다고 기뻐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목사님은 지난 주일 설교를 그대로 했습니다. 교인들은 고개를 까우뚱하면서 “목사님이 지난 주일에 설교한 것을 잊으셨나?”하면서 중얼거립니다. 이사도 하고 취임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보다 생각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일에도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주일에도 역시 똑같은 설교입니다. 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우리가 목사님을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 했을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물었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하실 겁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 목사님 그 후 그 교회에 계속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말씀을 듣는 동기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위해 들어서도 안되고, 그저 예배에 참석했으니까 들어서도 안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듣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기 위해서 듣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태도로 들으면 결코 그 말씀으로 인해 여러분들을 변화받질 못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짧은 기간에 교회를 세워 소문난 교회를 이룩했던 비결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듣는다면 그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나를 고치시고, 내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을 바꿀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하면 나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마음과 태도로 말씀을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분들은 자신이 좋은 밭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곤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길가와 같아, 나는 돌짝밭이야, 나는 가시떨기 밭이야, 나는 안돼’ 하면서 단념하지 마십시오.

  희망은 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현재의 마음밭이 좋은 밭이 아닐지라도 좋은 밭이 될 수 있는 희망이 늘 있습니다. 저를 보면 알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좋은 밭은 아니었습니다.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나있었을 때는 길가와 같았고, 믿음이 어릴 때에는 흙이 얇은 돌밭과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고 사는 것이 힘들 때는 그로 인해 염려가 많아 가시떨기 밭 같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십시오. 꽤 괜찮은 밭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몇 가지 말씀드린 것처럼, 내 마음밭이 길가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하고,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의 마음밭을 바꾼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련하고 교만하고 목이 곧은 사람을 깨닫게 하시고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그래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혹은 듣거나 전할 때마다 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을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는 은혜,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알고 아멘하며 순종하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 말씀은 내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뿌리내려졌고,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으로 역사하였고, 내 삶에 열매를 얻게 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을 사모하며 듣고 지키고자 하는 열망과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들 안에 있는 굳은 마음, 돌덩이들, 가시덤불을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네 가지 마음 밭은 고정적이거나 숙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길가도, 돌짝밭도, 가시밭도 개간하고 돌을 깨뜨려 제거하고 가시를 불태우면 좋은 밭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개간작업은 성령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대하거나 들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성령께 바치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감동을 주시고 역사하시는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들의 마음밭은 옥토와 같은 좋은 밭이 되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어, 요한복음 15:8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과실을 많이 맺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증명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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