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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1

빌립보서 이익환 목사............... 조회 수 1845 추천 수 0 2013.05.27 19:52:35
.........
성경본문 : 빌2:5-11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1"
2007년 12월 15일(토) 텔아비브욥바교회 대강절 셋째주
본문 : 빌립보서 2:5-11

  오늘은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왠지 사랑이 생각나고 그 사랑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입니다. 사랑에 관한 시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어떻습니까? 괜찮나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류시화 시인의 첫번째 시집에 있는 시로, 사랑하는 사람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맞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마치 임마누엘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노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안에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그 의미로 볼 때 쓰는 신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육신,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진리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성육신입니다.

성육신, 한자로는 이룰 成, 고기 育, 몸 身, 직역하면 육신을 이루었다, 육체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누가요?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가르켜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진리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로 보여지게 나타났다, 즉 구약성경에 가끔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했다고 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인데, 우리와 똑같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를 입고, 그것도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진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리이며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논리와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요?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시는 것, 즉 성육신, 그것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나도 죄인이고 당신도 죄인입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인정하십니까? 죄인이 감당해야할 형벌이 무엇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입니다. 죄인이 감당해야 할 형벌은 죽음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한 후 찾아온 것이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는 형벌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를 범한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죄인을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죄와 하나님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죄를 범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해결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누군가 자신을 위해 피를 흘려 죽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구약의 희생 제사입니다. 양이나 소, 비둘기를 대신 죽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죄인인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 대신 양이 죽고, 소가 죽고, 비둘기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대속입니다. 대신 값을 치룬다는 뜻입니다. 나 대신 죽음이라는 죄의 값을 치루는 것이 대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구약의 희생제사는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끊임없이 희생제물을 바쳐야만 합니다. 수많은 양과 소와 비둘기가 나 때문에 죽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피는 인간의 피가 아닙니다. 그저 짐승의 피입니다. 짐승의 피로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방법일뿐입니다.

  결국 영원하고 완전한 해결책은 사람 중에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이기에 누군가 나를 위해 죽어도 그것은 그저 자기의 죄를 안고 죽은 것이지 내 죄를 대신 지고 죽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 죄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해결방법은 단 하나, 죄없는 인간이 죽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죄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밖에 없는 성자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본문 6절의 말씀처럼 성자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십니다. 죄 없으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의 몸 그대로 죽어야만 해결되는 방법, 이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없으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을 빌어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이고,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을 말하는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임마누엘,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성육신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이라는 사건 가운데 담겨있는 진리이며 사실입니다. 믿습니까? 진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진리지만 이 진리는 설명되어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해되는 것입니다. 성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할 수 있지만 진리는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육신을 설명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처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본체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게 하실 만큼'이란 뜻입니다. 더불어 '그 독생자 예수님을 나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실 만큼'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이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진리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이해가 되는 분 손들어 보세요. 내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합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요.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어요. 이것 설명할 수 있나요? 왜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하느냐고, 왜 그 사람을 위해 죽으려고 하느냐고 물을 때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니까' 이것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야만 했고, 예수님 역시 나 때문에 하나님으로서의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면 '사랑하니까' 이 말밖에 없어요.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냐고 그 이유를 물어보면 '사랑하니까' 이 말밖에 없어요.

  사랑에는 설명이 필요없어요. 사랑하는 자체가 설명이에요.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다 버리고 이 땅에 올 수 있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죄 없어도 나를 위해 죽으실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사랑이예요. 그게 예수님의 사랑이예요.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사실을 내가 인정하는 거예요. 받아들이는 거예요. 다 이해되어서, 다 믿어져서가 아니예요. 아직도 다 이해 안되요. 다 믿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예요.

그렇게 받아들일 때 내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요. 그래서 내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만들어가셔요. 내 안에 가득찬 더러운 것들 대신에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나가셔요. 내 안에 있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저주와 음란함과 불순종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나가셔요. 그러면 점점 예수님의 사랑이 이해가 되고요 믿어지고요, 그래서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예배할 수 있게 되요.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예요.

  그러므로 그 출발은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나를 위해 성육신 하시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속성입니다. 예수님 역시 사랑이 그분의 속성이고 정체성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그 이유 하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6-8절에서 그것을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포기하신 것'이고, 창조주로서 피조물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랑하면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사랑해 보니까 알겠어요. 저도 사랑해 보니까 내 권리, 내 이익, 내 것, 포기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그럴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사랑해 보니까 제가 높임 받기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낮아질 수 있고 섬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그것이 내가 손해본다, 자존심 상한다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저도 사랑해 보니까 내게 있는 것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주고 나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현재 온누리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하용조 목사님이 연예인 교회를 개척 담임할 때의 고백인데요. 1974년도에 당시 명 MC로 이름을 날렸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와 함께 연예인 교회를 개척했었습니다. 구봉서 장로 이런 분들과 함께 교회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섬김을 받을 줄만 알지  섬기는 법을 모릅니다. 하목사님이 설교할 때도 물한컵 떠 주는 사람도 없었고, 교회를 청소하는 사람도 없어서, 하목사님 혼자서 교회 청소하고, 예배 끝나고 성도들이 돌아갈 때는 택시까지 잡아 줘야 했답니다. 그래도 연예인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면서 목회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답니다.

그런데 3년 정도 지내고 나니까 입에서 자꾸 이런 말이 나왔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래서 이분이 도망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합리적으로 도망가는 방법은 유학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도들 모르게 입학 허기서와 장학금을 받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산에 가서 금식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저 가겠습니다." 기도하는데 기도응답이 왔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대요. "하나님,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목사님 마음 속에 이런 응답을 주시더랍니다. "언제는 안 그랬냐?"

  그때 깨달았답니다. 변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연예인 성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습니다. 변한 건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이지요. 사랑이 없으면 허물이 보입니다. 언제는 허물이 없었나요? 허물은 언제나 있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데 그때는 안보였어요. 왜요?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안보였을 뿐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보이더랍니다. 무엇을 깨달았어요? 자신의 사랑이 식어진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하목사님은 다시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실 때까지 연예인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사랑하면 자기의 것을 포기해도 그것을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자기가 낮아져서 섬겨도 자존심 상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무례한 행동이나 생각없이 내뱉은 말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하면 허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허물로 보이지 않고, 설령 허물로 보이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섬기는데 장애가 되지 않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청년들을 지도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전통적인 교회여서인지 어른들 가운데 청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분들이 많았었습니다. 주일날 교회 오는 복장도 마음에 안들고, 예배라고 드리는데 전자기타에 드럼에 시끄럽고, 이게 예배인지 딴따란지 도무지 마음에 안들고, 헌금도 별로 안내는 것들이 왜 그다지 예산은 많이 달라고 하는지 마음에 안들고... 도무지 마음에 안드는 그런 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주일 오후예배 때 제가 설교를 했었는데,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청년들 가운데 보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파랗게 물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남자 청년들 중에도 귀걸이 하는 친구들도 있고, 코걸이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볼 때 마음에 드시던가요? 마음에 안드시죠?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노인분들이 하얀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것과 다를 것이 뭐 있습니까? 노인분들이 빨간 옷 입으시고 치장하시는 것과 같은 것 아닙니까? 둘 다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뻐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볼 때는 청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지 몰라도 청년들도 사실은 예쁘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그렇게 하고 오더라도 어예쁘게 봐주시고 이해해 주십시오.'

  청년들을 사랑하면 그런 것들이 허물로 보이지 않아요. 솔직히는 눈에는 조금 거슬리지만 그것때문에 청년들을 판단하고 지적하고 정죄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것이 청년들을 이해하고 섬기고 사랑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예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허물로만 봤다면 성육신이 가능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허물로만 봤다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있었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허물로만 봤다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허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허물을 못본다는 말도 아니예요. 분명히 허물이 있어요. 허물이 보여요. 그런데 그 허물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아요. 그 허물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거절하고 정죄하지 않아요. 그 허물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 사람의 허물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데 있어 조금도 장애물이 되지 않아요. 그것이 바로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예요. 사랑이 없는 눈은 그 사람의 허물을 봅니다. 단점을 봅니다. 실수를 봅니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더 허물이 커집니다. 못마땅한 것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득찬 눈은 그 사람의 허물이 보여도 그 허물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어요. 사랑으로 그 허물을 덮을 때 그 허물이 고쳐져요. 변화되요. 이것이 사랑의 힘이예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어요.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어요. 내가 실수해도, 내가 여전히 허물이 많아도 나를 사랑하셔요. 그런데 그 사랑이 나를 더욱 허물이 많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허물이 줄어드는 사람으로 만들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켰어요. 나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가셔요. 이것이 사랑의 능력이예요.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서로를 섬긴다고 할 때, 또한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가 어떠해야할까요?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너의 마음을 채우라, 예수님의 눈이 너의 눈이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 이스라엘에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사셨던 성지 이스라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은혜이고 복입니다. 힘든 것은 타국에서의 삶이기에 힘든 것이고, 성지에서 산다는 것은 분명 은혜이고 복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사역을 주셨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도록 해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복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의 섬김이 어떠해야할까요? 우리의 사역이 어떠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충만해야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우리의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입니까? 무엇이 예수님의 눈입니까?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눈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고 눈입니다. 사랑하기에 자기의 유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낮아질 수 있고 그 낮아짐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허물이 보여도 그 허물이 사랑의 장애물이 되지 않는 사랑이고, 그 사랑으로 마침내 허물을 고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길 바랍니다. 이 사랑의 눈이 우리의 눈이 되어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족을 대하십시오. 남편을 대하고 아내를 대하시고, 자녀를 대하시고, 부모님을 대하시고 형제를 대하십시오. 여전히 허물이 있어요. 거슬릴 때가 있어요. 내 심기를 건드릴 때가 있어요. 상처줄 때가 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을 먼저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웁시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눈으로 봅시다. 그럼 그러한 허물이 내가 사랑하고 섬기는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허물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 허물이 고쳐지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안을 때 그 허물이 고쳐집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합시다. 우리 모두는 다릅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성격과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적인 스타일도 다릅니다. 생각도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채워질 때 우리는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허물과 약함이 결코 우리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허물을 보더라도 같이 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눈으로 서로를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할 때 우리 안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대합시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처음 교회에 나오시거나 오랫동안 떠났던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청년들이 그렇고, 출장 오신 분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상처가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상처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텔아비브 지역에는 믿지 않는 한인들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이스라엘 선교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만나고 대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분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이유는 예배당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가 이미 어떤 사역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자짓하면 사역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섬김을 위한 섬김을 할 수 있습니다. 봉사를 위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 땅에서 교회를 세우고 우리가 많은 영혼들을 섬기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방법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채워질 때 우리는 능히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섬길 수 있고, 보다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길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그리고 더욱 힘써 사랑합시다. 우리의 사랑이 지금은 작을지라도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이 될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고 겸손히 낮아져 사랑하는 이 사랑이 예수님의 성육신의 이유인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서로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성육신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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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8 마태복음 사랑 마22:23-33  신윤식 목사  2013-05-29 1348
9137 마태복음 신자의 하나님 마22:23-33  신윤식 목사  2013-05-29 1603
9136 마태복음 어떻게 살것인가? 마22:15-22  신윤식 목사  2013-05-29 2148
9135 마태복음 천국은? 마22:1-14  신윤식 목사  2013-05-29 1815
9134 마태복음 머릿돌 마21:42-46  신윤식 목사  2013-05-29 1725
9133 마태복음 악한 농부 마21:33-41  신윤식 목사  2013-05-29 1839
9132 마태복음 회개 마21:28-32  신윤식 목사  2013-05-29 1886
9131 마태복음 저주 받은 나무 마21:18-22  신윤식 목사  2013-05-29 1783
9130 마태복음 나귀 타신 예수 마21:1-11  신윤식 목사  2013-05-29 2375
9129 마태복음 은혜의 나라 마20:1-16  신윤식 목사  2013-05-29 1708
9128 이사야 삶에서 얻는 교훈 사20:1-6  최장환 목사  2013-05-29 2942
9127 예레미야 꼭 필요한 사람 렘17:1-11  최장환 목사  2013-05-29 3313
9126 출애굽기 애굽의 생산 방해작전을 아십니까? 출1:8-14  김경형 목사  2013-05-28 1859
9125 시편 복의 통로가 되세요 시1:1-6  류공석 목사  2013-05-27 2587
9124 시편 복 있는 사람이 되세요 시1:1-10  류공석 목사  2013-05-27 2409
9123 출애굽기 홍해를 건넘같이 출14:10-20  류공석 목사  2013-05-27 2441
9122 빌립보서 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2 빌2:5-11  류공석 목사  2013-05-27 1488
» 빌립보서 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1 빌2:5-11  류공석 목사  2013-05-27 1845
9120 마태복음 껍데기 성탄절은 가라! 마2:1-12  류공석 목사  2013-05-27 2446
9119 에배소서 내가 기도할 때에 엡1:15-19  류공석 목사  2013-05-27 2196
9118 마태복음 하나님과 친해지기 9: 좋은 밭 되기 마13:3-9  류공석 목사  2013-05-27 2101
9117 마태복음 하나님과 친해지기 5-8 : 예수 그리스도 마16:13-16  류공석 목사  2013-05-27 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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