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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가 되세요

시편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587 추천 수 0 2013.05.27 19:52:35
.........
성경본문 : 시1:1-6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복의 통로가 되세요
2008년 1월 19일(토)
본문 : 시편 1:1-6

  여러분 모두 지난 한 주 동안 복 있는 사람으로 사셨습니까?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했지요? 무엇을 소유해서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가 있어서 복되고, 죄악을 멀리함으로 복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고 순종함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복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어떤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아니하고 늘 푸르름을 간직하고 열매맺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바로 복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와 같은 시편 1편의 말씀으로 복 있는 사람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3절과 관련된 말씀인데,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지난 주에 나누었지만,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단지 인생의 가뭄을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는 개인적인 믿음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해 보니까 그것이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믿음의 열매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인 것 같지는 않아요.

묵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과 연결을 해보니까 3절의 말씀의 의미가 더 크게 보이더라구요. 그 말씀이 바로 창세기 12:2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특별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와 연결을 해보니까 시편 1:3의 의미가 분명해 지더라고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구절은 조금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좀 의역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직역하면 “너는 복이 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맞는 번역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판에서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고쳐 번역해 놓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복의 근원이 사람입니까? 아브라함입니까? 아니예요.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라고 해도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것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바른 번역은 “너는 복이 되라”이고, 좀 더 강조를 하면 “너는 복덩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금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금덩어리가 있습니다. 음식물에 소금덩어리를 넣습니다. 그러면 이 소금이 서서히 녹습니다. 그래서 그 짠맛이 사방으로 퍼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패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그러나 소금은 그 자신의 짠맛을 잃지 않습니다. 바로 이 소금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너는 복이 되라”는 말씀은 소금덩어리가 주위에 짠맛을 퍼뜨리고, 부패를 막는 것처럼 너도 복덩어리가 되어서 네가 있는 곳에, 그곳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어느 곳이든 네가 있는 곳에 은혜의 맛, 축복의 맛, 복음의 맛, 예수 믿는 맛을 퍼뜨리고, 너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고, 너로 인해서 썩어져 가는 세상이 깨끗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금이 그 짠맛을 결코 잃지 않는 것처럼 너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되 네가 받은 복 잘 간직하고 너의 거룩함과 순결한 믿음을 잃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저 나 하나 복 받고 은혜 받아 잘 사는 사람 되지 말고, 내가 받은 복 때문에,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봅니다. 만일 “너는 복이 되라”는 말씀을 그 뜻을 살려 의역을 한다고 하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가 아니라 “너는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으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과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은 그 때문에 복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그의 후손들이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복을 주는 복의 근원이어서가 아니라 복의 통로가 되어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다른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통로가 무엇입니까?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개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통로입니다. 또한 어떤 것을 받아서 다른 곳으로 흘려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통로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파이프라인이고, 시편 1:3절에 나오는 시내를 생각해도 됩니다.

3절을 볼까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이 구에 나오는‘시내’의 경우 그 본뜻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시냇가, 시내라는 말을 들을 때 생각나는 영어 단어가 무엇입니까? ‘stream’일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stream'이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 '시내'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פלגי מים'으로 '수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영어로는'water channel, 혹은 running waters'입니다. 위에서부터 물을 받아 아래로 잘 흐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수로를 말합니다. 시골에 가면 이런 수로가 많이 있지요? 농수로라고 하는데, 저수지에서 물을 받아서 논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수로입니다.

  파이프라인, 혹은 수로가 제대로 된 통로가 되려면 어떠해야 합니까? 연결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중간에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연결이 끊어져 있거나 중간에 막혀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통로가 아닙니다. 연결이 끊어져 있으면 물을 받지 못하거나 줄 수 없습니다. 중간에 막히면 그건 물을 공급하는 통로가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위험물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지저분한 예지만, 한국에서 섬겼던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교회 아래에 있는 사택에 살았는데, 그 때 화장실 변기가 막힌 적이 있습니다. 일을 보고 마무리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 화장지를 툭 건드려서 화장지가 통째로 변기에 빠진 겁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둘 중 하나죠? 꺼내던가, 믿음을 가지고 물을 내리던가.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래도 제가 목사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 집 변기는 능히 화장지 두루마리까지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사실 화장지 빠졌다고 그거 손으로 끄집어내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물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잘 내려갔습니다. 다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집 큰 애가 일을 보고 물을 내렸는데 조금 내려가더니 안내려가는 겁니다. 제가 거기서 그만 두었으면 좀 나았는데, 다시 한번 물을 내렸습니다. 수압에 의해서 내려갈 거라고 믿고 말입니다. 아니 그런데 아예 안내려가고 물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거의 넘칠 만큼. 거기까지면 괜찮은데 조금 있으니까 아래에 있는 것이 역류를 하는 겁니다. 결국 물이 넘쳤지요.

굳이 상상은 하지 마세요. 나중에 뚫긴 했지만 그 때까지 정말 곤욕이었습니다. 냄새는 나지, 급하긴 한데 일도 볼 수 없지 참 힘들었던 하루였습니다.  

  좀 지저분한 예였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는 아주 적절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것을 배출하고 깨끗한 물을 채워주는 변기의 통로가 막혔을 때는 도리어 오물을 담아내고 악취를 풍기는 것이 되고 맙니다. 메마른 논에 물을 대는 수로가 끊기고 막혔을 때 그 수로는 생명을 공급하는 통로가 아니라 논도 말라죽게 하고, 자신도 온갖 쓰레기 더미를 안고 악취를 내며 죽어가는 죽음의 통로가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축복의 통로인데, 그 통로가 막히면 이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밀어내고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그 통로가 막히면 깨끗하게 하기는커녕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자기에로 역류하고, 오물을 담고 악취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통로가 막히면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자신까지도 악취를 내며 썩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겁니다.

  무서운 겁니다.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겁니다. 통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중간에 막힘없이 잘 흘려보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잘 연결이 되어있고, 중간에 막힘이 없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마음껏 누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은혜와 복을 흘려보내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3절은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시내라는 본 뜻 자체가 수로,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입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나가는 출구는 무엇일까요?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지 않겠어요? 출구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수로 옆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왜 이것이 축복이 흘러나가는 통로, 출구가 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생각해 보세요. 수로 옆에 심겨진 나무가 열매를 맺었습니다. 수로에는 물이 항상 흐르기에 나무의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그 푸르름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그 열매 자기가 따먹었습니까? 그 열매 혼자 따먹고 잎사귀로 뜨거운 햇빛 가리고, 그래서 그 나무는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니지요.

  열매는 나무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그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쉬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즉, 이 말씀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뭄 가운데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았는데 가뭄에 지치고 굶주린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어 생명을 얻고 그 잎사귀 아래 그늘에서 쉼을 얻고 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냇가에 심은 나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 받아 잘 먹고 잘 살았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인데 이 나무는 원래 시냇가에 있었던 나무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성경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되어 있어서 뜻이 약합니다. 그래서 언 듯 보면 원래부터 시냇가에 있었던 나무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보다 정확한 뜻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나무는 원래는 광야, 메마른 땅에 있던 나무인데, 그 나무를 시냇가로, 물이 항상 흐르는 수로가 있는 곳으로 옮겨 심었다는 말입니다.

  누가요? 하나님께서! 벌써 여기서 은혜가 되지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원래는 광야, 메마른 곳에서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 옆으로 옮겨다 심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메마른 광야에서 은혜의 강물 앞으로 옯겨다 심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 먹고 잘 살라고? 아니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항상 물이 흐르는 하나님의 시냇가 옆에 있음으로 어떠한 인생이 가움이 와도 말라 죽지 않고 오히려 풍성한 열매와 푸르름을 맺고, 뿐만 아니라 내가 맺은 열매와 푸르름으로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게 하라는 뜻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전에 한번 소개를 한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자주 접속하는 개인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이지선 자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ezsun.net)입니다. 책으로도 나왔지요. 이지선 자매는 대학생으로 참 예쁘장하게 생긴 자매입니다(첫번째 사진).

지금으로부터 약 7년 반전에, 그러니까 2000년 7월 30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빠차를 타고 돌아가다가 그만 서울역 앞 도로에서 술에 만취한 사람이 몰고 가던 차에 충돌해서 차가 전소가 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밖으로 튕겨져 나왔는데, 이지선 자매는 타고 있던 차와 충돌한 뒷 차 사이에 끼여서 화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오빠가 황급히 끌어냈지만 이미 숯덩이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화상을 입었는가하면 오빠가 지선 자매를 구한 후에 응급차로 이송을 하면서 구한 것을 후회를 했답니다. 이렇게 숯덩이가 되었는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차라리 죽게 놔둘 것을 구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했답니다. 그 정도로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보면 지선 자매의 화상 입기 전 사진이 있고, 화상을 치료하고 있는 사진들도 올라와 있습니다(두번째 사진, 세번째 사진). 수없이 수술을 많이 했고, 지금은 그래도 많이 치료가 된 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자매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삶의 용기를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인생의 가뭄이 찾아왔지만, 지선 자매는 그 고통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 결코 자신을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사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겁니다.

그 받은 은혜들을 글로 남겼는데,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고난 지 반년 정도 지난 2001년 1월 11일에 쓴 글입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버렸지만….
가고 싶은 교회도 성가대도 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지만..
그렇게 모든걸 잃은 것같지만

약함가운데, 상처투성이 몸가운데, 짧아진 손가락에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손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내가 기도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삶을 누리게 하시며,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하실 것을 믿습니다.

지선이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며칠전부터 산책을 시작했어요.
병원로비에서 뛰기도 하고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밀기도 하고
거의 한달만에 밖에 나갔어요.
병원 나무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트리장식도 보았구요,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봤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있어서 흰눈도 보게하시고 추운겨울을 다시 맞게하시니’

  하나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01년 1월 15일에 쓴 글인데, 제목은 "아니예요, 아니예요"입니다.

며칠 할아버지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시는 할아버지는 당신의 손녀딸 이마에 새 피부가 자란다는 말에
의술이 고맙다고.. 요즘엔 의술이 참 대단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요..아니예요.아니예요!
의술이 고마운게 아니예요.

엄마 친구분이 이 기적같은 소식을 들으시고는
애가 젊어서..살성이 좋아서 자라나는 구나... 라고 말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작지만 낼수 있는 가장 큰소리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니예요!아니예요!'

의사가 아침저녁으로 드레싱을 해주어서도 아니고
내가 젊은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살성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의학으로도 설명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고
지선이의 상한 얼굴에 새 피부를 덮으십니다. 할렐루야~!

  어떠십니까? 참으로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외에도 참으로 눈물겨운 글들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그 그들을 읽으면서 위로와 용기를 받고 있는 겁니다. 어떤 친구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자살을 결심했다가 지선 자매의 글을 보고는 삶의 용기를 찾고, 자신이 너무나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지선 자매의 글을 보고는 부끄러워하면서 감사하면서 살겠노라고 결심을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지선 자매가 인생의 엄청난 가뭄 속에서도 열매와 푸른 잎사귀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 옆에 심겨져 있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로가 막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가 맺은 열매와 푸른 잎사귀의 은혜를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복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고난을 당한 지선 자매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멋있지요? 저는 홈페이지를 보면서 감사했어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참 증인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다른 이름은 복의 나무입니다. 복의 통로입니다. 자신만 가뭄 속에서 말라버리지 않고 살아남아 열매 맺고 푸른 잎사귀를 유지하는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복과 은혜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까지도 힘을 얻고 위로받고 살 힘을 얻게 해주는 복의 나무, 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의 통로입니다. 나 하나만 복 받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받은 복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복 받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주는 복의 통로입니다. 믿습니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축복입니다.
나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나를 통해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나로 인해서 한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나로 인해서 공동체가 깨끗해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받는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축복의 통로로 사는 것이고, 수로 옆에 심겨진 나무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6절에 보면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정하신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야다”(ידע)입니다. “아주 자세히 안다, 마치 부부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처럼 잘 안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동사입니다.

이 야다라는 단어에서 2차적으로 파생되는 뜻이 ‘보살피다’, ‘보호하다’, ‘지키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책임져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기에 보살펴주시고 지켜주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로 서길 원하는 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예배를 즐거워하는지, 내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뜻에 따라 살기를 힘쓰는지, 내가 얼마나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섬기며 살아가는지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겁니다.

또한 내가 그렇게 살다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겁니다. 내 인생에 찾아온 가뭄이 무엇인지도, 그 가뭄 때문에 내가 당하는 고통도, 그러나 그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연결되어서 말씀의 은혜로 말라 죽지 않고 오히려 열매 맺는 것 다 아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와 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복 받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도 다 아십니다.

  다 알기에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문제 해결해 주신다는 겁니다. 더욱 큰 복과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멋있지요? 정말 멋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러한 모습과 삶이 바로 예수믿는 사람들의 멋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의 나무가 되어 어떠한 가뭄이 와도 풍성한 열매와 푸르름을 맺고,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그런 삶, 이것이 제가 평생에 원하는 바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신앙고백이기도 한데, 제가 이스라엘에 온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습니다. 92년도부터 기도해왔던 이스라엘 선교와 목회준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에 왔지만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었습니다. 재정적인 준비도 없었고, 남들은 공부를 마무리짓는 나이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왔습니다.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이스라엘에서의 삶이었지만 돌아보면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오면서부터 줄곧 질문했던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지금이었나?'하는 것입니다. 더 젊을 때, 두세번 이스라엘에 가려했던 그 때에 문을 여시지 않고 왜 지금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사야서 55:8-9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내가 생각하는 때,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때,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길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생각이 옳으냐? 하나님의 생각이 옳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말씀에 100% 동감합니다. 제 생각처럼 젊은 나이에 왔다면 공부는 더 진전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공부만 했거나 아니면 공부한다고 하면서 더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온 것이 저로 하여금 목회 현장에서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했고, 그 경험이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뜻하지 않게 텔아비브 욥바 교회 담임목사로 이끄시는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까지의 목회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왜 그때에 나를 이스라엘로 이끄셨는지를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를 봐도 부족한 것이 너무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통해 텔아비브 욥바 교회를 세워나가길 원하셨고, 부족하고 무익한 종이지만 많은 분들을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평생의 삶과 목회에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이 말씀처럼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무익한 종이지만, 저를 통해, 또한 목회의 동역자인 아내를 통해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저의 평생의 목회에서 복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연약한 영혼들을 일으키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도구로 쓰임받길 소원합니다.

  저는 복의 종착역이 아닌 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복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복의 통로, 그것은 결코 그 복이 자신에게만 머무는 사람이 아닙니다. 복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자신에게만 머물 때 그 사람은 그 복으로 인해 망칠 수 있습니다. 복은 흘려보낼 때 복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들을 복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문제는 실제적으로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의 통로로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봅시다. 올 한해, 그리고 평생을 사는 동안 복의 통로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의 통로가 되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늘 푸르른 나무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살아가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어 살아나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나를 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좋으셔서 내 삶을 인정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 곳곳에서 이런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 이 땅이 복된 땅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로 일구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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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1 출애굽기 흘림이 좋으면 흐름이 좋다 출20:1-5  강문호 목사  2013-05-31 2565
9150 사무엘하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삼하3:1  강문호 목사  2013-05-31 3588
9149 출애굽기 조상의 죄 때문에 기도하라 출20:5  강문호 목사  2013-05-31 3037
9148 누가복음 고백할 때마다 성장한다 눅5:1-11  강문호 목사  2013-05-31 2442
9147 출애굽기 나는 애굽에서 피라미드만 쌓다 갈 존재인가? 출1:1-7  김경형 목사  2013-05-31 1794
9146 잠언 성도가 지녀야 할 마음 잠4:23  한태완 목사  2013-05-31 2477
9145 누가복음 현명한 재물관 눅12:13-21  김홍도 목사  2013-05-30 1934
9144 마태복음 주의 마음으로 마25:31-46  신윤식 목사  2013-05-29 1862
9143 마태복음 종의 비유 마25:26-30  신윤식 목사  2013-05-29 1718
9142 마태복음 깨어 있으라 마25:1-13  신윤식 목사  2013-05-29 2244
9141 마태복음 종말 마24:3-14  신윤식 목사  2013-05-29 1844
9140 마태복음 차별 없음 마23:1-12  신윤식 목사  2013-05-29 1717
9139 마태복음 다윗의 주 마22:41-46  신윤식 목사  2013-05-29 1570
9138 마태복음 사랑 마22:23-33  신윤식 목사  2013-05-29 1348
9137 마태복음 신자의 하나님 마22:23-33  신윤식 목사  2013-05-29 1603
9136 마태복음 어떻게 살것인가? 마22:15-22  신윤식 목사  2013-05-29 2148
9135 마태복음 천국은? 마22:1-14  신윤식 목사  2013-05-29 1815
9134 마태복음 머릿돌 마21:42-46  신윤식 목사  2013-05-29 1725
9133 마태복음 악한 농부 마21:33-41  신윤식 목사  2013-05-29 1839
9132 마태복음 회개 마21:28-32  신윤식 목사  2013-05-29 1886
9131 마태복음 저주 받은 나무 마21:18-22  신윤식 목사  2013-05-29 1783
9130 마태복음 나귀 타신 예수 마21:1-11  신윤식 목사  2013-05-29 2375
9129 마태복음 은혜의 나라 마20:1-16  신윤식 목사  2013-05-29 1708
9128 이사야 삶에서 얻는 교훈 사20:1-6  최장환 목사  2013-05-29 2942
9127 예레미야 꼭 필요한 사람 렘17:1-11  최장환 목사  2013-05-29 3313
9126 출애굽기 애굽의 생산 방해작전을 아십니까? 출1:8-14  김경형 목사  2013-05-28 1859
» 시편 복의 통로가 되세요 시1:1-6  류공석 목사  2013-05-27 2587
9124 시편 복 있는 사람이 되세요 시1:1-10  류공석 목사  2013-05-27 2409
9123 출애굽기 홍해를 건넘같이 출14:10-20  류공석 목사  2013-05-27 2441
9122 빌립보서 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2 빌2:5-11  류공석 목사  2013-05-27 1488
9121 빌립보서 그리 하실 수 있었던 까닭 1 빌2:5-11  류공석 목사  2013-05-27 1845
9120 마태복음 껍데기 성탄절은 가라! 마2:1-12  류공석 목사  2013-05-27 2446
9119 에배소서 내가 기도할 때에 엡1:15-19  류공석 목사  2013-05-27 2196
9118 마태복음 하나님과 친해지기 9: 좋은 밭 되기 마13:3-9  류공석 목사  2013-05-27 2101
9117 마태복음 하나님과 친해지기 5-8 : 예수 그리스도 마16:13-16  류공석 목사  2013-05-27 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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