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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기준과 수준
안개가 짙게 깔린 1707년 10월의 어느 어두운 밤, 대영제국은 함대의 거의 전부를 잃었습니다. 해상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클로디즐리 쇼벨 제독이 대서양에서 함대 위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영국 남서해안을 향해 뻗은 실리 군도(Scilly Isles) 끄트머리에 숨어있던 암초와 기함이 정면충돌한 것입니다. 뒤따르던 함선들도 차례차례 암초더미에 부딪혀 침몰했습니다. 그 결과 4대의 전함과 2,000명의 군인들이 수장되었습니다. 바다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대영제국으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쇼벨 제독의 회고록을 살펴보면, 사건의 원인은 그렇게 놀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위도와 경도의 개념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전해져왔으나, 1700년대까지만 해도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습니다. 재앙은 제독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경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정확히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커스 버킹엄과 커트 코프만의 공저인 [유능한 관리자]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준은 중요합니다. 자기가 있는 곳의 위치를 말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정해져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위치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집니다. 앞에 있는 선생님을 기준으로 할 때는 앞에서 몇 번째 줄이 되지만 옆에 있는 창문을 기준으로 하면 창문에서 몇 번째 줄이 됩니다. 물체의 위치는 기준으로부터의 거리로 나타냅니다. 따라서 기준이 달라지면 같은 물체의 위치일지라도 나타내는 표현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터법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거리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미터법 도량형을 고안한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1년 탈레랑의 건의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영원히 변치 않을 도량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당시의 단위체계는 1피트의 길이만 8백가지가 넘을 정도로 엉망이었답니다. 이들은 파리를 통과하는 자오선의 절반, 즉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1천만분의 1을 1m로 정했습니다. 이 미터법을 널리 보급한 사람은 나폴레옹이었습니다. 1875년 미터조약이 체결됐고 1889년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미터 원기(原器)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1m의 정의도 변했습니다. 지금은 '빛이 진공 속을 2억 9천 9백 79만 2천 4백 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거리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물리적 기준을 이의 없이 수용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모두가 약속 체계로 인정해야 할 물리적 기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정신적 기준들이 있습니다. 행복의 기준, 아름다움의 기준, 좋음의 기준 등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행복과 불행, 미와 추, 선과 악 등을 판단합니다. 그 중에는 자신의 기준을 마치 물리적 기준처럼 절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식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태어나 아테네 근처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하여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려 죽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집과 편견으로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만 바꾸면 부자도 될 수 있고 아름다움도 소유할 수 있는데 자신이 설정한 기준으로 스스로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과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기준을 절대시하지 말고 좀더 다른 기준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땅에서 하늘로 기준을 높여보면 어떨까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봅니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몽골족들은 보통 사람의 시력이 '2.9'이고, 시력이 아주 좋은 사람이 '7.0'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시력이 그토록 좋은 이유는 넓은 초원에서 멀리 바라보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삶의 기준을 높이면 삶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땅의 기준을 하늘의 기준으로 옮기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이생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세를 보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미국의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연방준비은행 연구원들이 여러 나라의 국민 소득에 종교 문제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높은 나라가 덜 부패하다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부패 지수가 낮은 나라일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다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인생은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절대화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수준이 달라집니다. 기준을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높이면 인생의 수준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수준으로 비상합니다.
열린교회/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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