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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의 생산 방해작전을 아십니까?

출애굽기 궁극이............... 조회 수 1859 추천 수 0 2013.05.28 14:20:48
.........
성경본문 : 출1:8-1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8-14.

 

8-14: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우리가 여기 내용적으로 그대로 볼 때에 애굽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땅에서 나가라고 그럽니까, 못 가게 붙잡고 있습니까? 왜 못 가게 붙잡고 있는 거요? ‘너희들 나가면 고생한다. 그러니 애굽 땅에 있으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다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는 그런 마음에서 못 가게 붙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려먹기 위해서 붙잡고 있는 건지? 후자. 확실합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다 그 말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잘 하라고 그럽니까, 하나님 섬기는 데로 보내지 않고 붙잡고 있으려고 그럽니까? 왜 붙잡고 있으려고 그러지요? 세상이라고 하는 세상은, 불신세상은 여러분들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자기들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거지요.

 

그러면 마귀가 성도를 보고 세상을 자랑을 하고 가지라고 합니까, 가지지 말라고 그럽니까? 가지라고 하지요. 그러면 애굽사람들이 가진 속성이나, 불신세상이 가지고 있는 그 속성이나, 세상적으로 나가는 교회나 가지고 있는 목적이 같아요, 달라요?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같아요, 달라요? 같지요.

 

지금부터 3500년 전의 애굽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드는 것이나, 불신세상이 성도를 붙드는 것이나 똑같고, 마귀가 성도를 붙드는 것도 똑같고, 또 예수님을 믿어도 세상적으로 나가는 사람의 그 속성도 마귀의 속성이나 똑같고. 그렇지요?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은 겁니다. 질이 똑같다 그 말이요.

 

좀 더 좁혀서 여러분들 속에 세상적인 성분이 들어있으면 그 성분이 믿음적으로 향해서 나가고자 하는 자기의 마음을 믿음 쪽으로 가라고 그럴까요, 자꾸 붙들까요?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수락적인 영감을 받고 있어요. 또 수락적인 영감이 오면 말씀을 잘 받는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 다음에 각성적인 영감의 감화를 받으면 받은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성경이 깨달아진단 말이요. 성경이 깨달아지는 사람은 각성적인 영감의 감화를 받고 있다. 한 성령인데 적응성에 있어서 그렇다 그 말이요.

 

순간적으로 깨달아졌다가 멈추어 버리면 깨달아진 게 사라져 버려요. 소낙비 오는 밤에 번갯불이 번쩍 하면 산천초목이 다 보이지요? 그러나 번갯불이 사라지면 다시 캄캄해져요. 그런 것처럼.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계속 깨달아 나가면 자꾸 분별력이 생기지요? 분별력이 자꾸 생긴 사람은 각성적인 영감의 감화성을 받고 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조명적인 영감의 감화를 받는 사람은 지혜력이 나옵니다. 이럴 때는 이렇고 저럴 때는 저렇고, 당길 거는 당기고 거짓 것은 버리고 하는 그런 면이 나와요.

 

또 이제 사역적인 영감이 나오게 되는데 수락적인 영감, 각성적인 영감, 조명적인 영감 이런 것이 한꺼번에 있으면서, 그 다음에 실력이 되니까 그 다음에는 사역이 나오는 겁니다. 몸의 활동이 나온다 그 말이요. 그런 영감의 감화성을 충만히 받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잘 전도를 하고 잘 가르치기도 하고 그런 사역이 나온다 그 말이요. 복음증거의 사역 활동이 나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사역 활동도 성령의 감화에 의해서 돼 나오는 겁니다. 알겠어요? 성령 받았다고 펄펄 뛰고 넘어지고 뭘 봤다 그게 아니고.

 

성령의 영감의 감화를 충만히 받은 사람은 팔팔 뛰고 넘어지고 삼층 천에 왔다 갔다 그런 거 하나도 안 봐도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치적으로 깨달아서 이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잘 증거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실력가라 그 말이요. 그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성령의 감화에 사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디서 배웠던 얼마나 배웠던 비뚤어진 지식을 갖고 있으면 자기 양심도 비뚤어집니다. 그리고 가치 판단 평가를 내리는 그것이 전부 다 비뚤어집니다. 알겠어요?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혀 종교를 모르는 사람이 불교에 들어갔습니다. 불교에 들어가니까 부처 같은 거 세우고 그 앞에서 촛불 놓고 음식도 놓고 기도하고 그러거든. 절의 중들이 부처를 이렇게 떠받들지 때려 부숩니까? 여러분들, 그 부처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요? 텅텅 비어있고 지푸라기고 그래요. 그런데도 그것을 신성시 하지. 그러니까 늘 불고 털고 닦고 그러지. 자기가 닦아주고 청소해 주고는 왜 그 앞에서 절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 불교에 들어갔던 그 사람이 이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바로 배우고 옳은 지식이 들어가 놓고 보니 돌부처 같은 그게 어떻게 보여요? 신성시 보입니까, 우상으로 보입니까? 그게 우상처럼 보이면 때려 부수지요. 하나님께서 그런 거 절대로 섬기지 말라 했고, 성경에도 보니 부처 같은 그런 거 전부 다 때려 부쉈잖아요.

 

문제는 이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식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옳은 지식이 양심을 지배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활동이 나온다 그 말이요. ‘, 이거 놔두면 안 되겠다하고 부수거든. 사사기에 보면 그런 거 막 부숴 버리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옳은 지식을 갖기 전에는 자기 양심적으로 부처 같은 거 보면 이랬거든(숭배). 왜 그럴까? 지식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를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옳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옳은 사람이 돼요. 옳은 사람은 어디서 돼요? 뭘 많이 가지고 있어야? 옳은 지식을 많이 갖고 있어야. 알겠어요? 정확한 옳은 지식은 이 성경, 하나님 지식밖에 없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옳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지식과 견줄 수 있습니까? 견줄 수 없어요. 불신세상의 모든 지식은 아담 타락 이후로 타락된 기존지식에서 나온 거라 그 말이요. 근본이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옳은 지식이 아닌 거, 하나님의 옳음이 아닌 것을 자기 속의 주격적 기준으로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양심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옳다고 그래도 모두는 비뚤어져 버렸어. 생각도 비뚤어지고 행동도 비뚤어진 행동이 나온다. 남 보기에 비뚤어진 행동을 한다는 그게 아니고 그 생각이 벌써 비뚤어져 있으면 그 생각에 의해서 하는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 눈에는 옳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비뚤어졌다 그 말이요.

 

길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남쪽으로 나 있고 하나는 북쪽으로 나 있어요. 그 길을 따라 한 사람은 남쪽으로 내려가고 한 사람은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북쪽으로 올라가면 어디로 가는 거지요? 북한으로 올라가는 거지요. 무턱대고 북한으로 올라가면 죽는 거지. 남쪽은 자유고.

 

그랬을 때에 북쪽 길로 가는 사람은 전부 다 술 먹은 것처럼 비틀비틀하고 갑니까, 바로 걸어갑니까? 길을 걷는 걸음걸이가 전부 다 비틀거리고 술 먹고 오줌 싸고 그런 식으로 걸어갑니까, 바로 걸어갑니까? 바로 걸어가는 거지. 그러나 그 길로 들어서서 가는 것은 결과가 안 좋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것은 망하는 거고 제 죽는 거고. 그렇지요?

 

이걸 신앙적으로 끌어들여서 생각을 해 본다면 하나님의 지식을 갖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 말씀 깨닫고, 정신을 신령계 천국에다 두고, 이 세상의 모든 사건 환경을 이용하고, 그 속에서 깨달아 나가며 살지요. 이게 옳게 살고 바로 사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믿는 사람이 다 이러지를 못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비뚤어진 지식을 가지고 믿을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전부 다 세상적으로 목적을 두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타락된 길이고 타락된 삶이고 그렇단 말이요.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속에 진리가 가득 들어있는 사람은 옳은 지식이 나오고 옳은 생각이 나오고 옳은 말이 나오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음이 되고 이익이 되고 유익이 돼요.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의 모든 말은 나오는 말마다 돈 얘기, 세상에서 뭘 많이 갖는 얘기, 부자 되는 얘기, 잘 되는 얘기, 누리는 얘기, 놀러가는 얘기. 그거 빼놓으면 뭐 있어요?

 

안 믿는 사람이 내가 이런 생각을 가져서야 되나? 오늘 내가 교회 가서 진리말씀을 배워야지그런 생각을 합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 믿는 사람이니까.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생각이 안 들어가고 전혀 모르지요.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노는 이거 빼놓으면 없단 말이요. 그 정신이 타락된 생활이라. 타락된 길이라 그 말이요.

 

우리에게 성경을 왜 줬느냐? 여러분들을 향해서 옳은 지식, 하나님 당신의 지식을 가지라고 이 성경을 줬다 그 말이요.

 

학생들도 잘 들어요. 하나님의 옳은 지식이 기준이 돼가지고 세상지식은 보조지식, 생활에 활용하는 지식, 생활적으로 써먹는 지식, 이용하는 지식으로 삼고 살아가면 그 사람의 생각 마음 두뇌는 잠자는 법이 없어요. 그 사람의 속에서 아주 생동력 있게 약동을 해요.

 

성경에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죽었고?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 생명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자기의 기준적 지식으로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생동력이 있고 활동력이 있어요. 살아서 움직이는 겁니다. 전부 다 살리는 운동이고, 사는 쪽으로 나가는 거고, 천국 쪽으로 나가는 거고. 그것이 아닌 것은 전부 다 세상 아래로 사망계로 내려가는 생각이고 활동이고 심판 아래란 말이요.

 

불신세상은 하나님의 그 고상한 지식에 미치지를 못해요. 올라가지를 못해요.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근원적으로 다르고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의 최고의 지식으로 삼아가지고 살아요. 그러면 가치판단 평가성에서 생활하면서 활동력이 있고, 그 지식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노력 것만 하면 공부가 돼 나가지. 그런데 책갈피 속에 가수사진 넣고 다녀? 그 정신은 썩었어.

 

물론 사춘기 때는 그런 경험이 있을 수도 있어요. 나도 경험한 거고. 사춘기 때는 항상 남녀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속에서 늘 발동을 해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제재를 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뭐가 돼. 길거리 똥개모양으로 될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자기를 자꾸 제재를 해. 자기를 자꾸 다스려. 다스리는 게 더 아름다워. 안 그러면 그건 볼장 다 봤단 말이요.

 

40대가 되면 세상에서 자꾸 돈을 가지려고 그래요. 왜냐하면 노후대책 세우려고. 3, 40대는 자꾸 돈 생각, 세상생각, 부요한 그게 잔뜩 들어있어요. 사춘기 때는 그런 게 없어요. 어린아이 때는 맨날 노는 생각이고.

 

이제 나이가 많이 들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죽을 준비를 해야 될 텐데 평소에 세상 쪽으로 살아온 그것이 속에서 기준이 돼 놓으니까 늙은 노인들이 앉아서 얘기하는 거 가만 들어보면 늘 자기 자랑이지. 자기 자랑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맨 자기 자랑이야. ‘나는 뭐 했다. 뭐 했다. 씨름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못 나가.

 

우리의 이성은 지식이 없이는 움직이지를 않아요. 남녀 이성이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는 그 이성 말이요. 지식이 없으면 움직이지를 않는다. 우리의 이성이 하나님의 진리지식과 결합이 돼서 움직이면 그의 마음은 천국 쪽으로 향하게 되고, 세상지식과 자기 이성과 결합이 되면 그의 마음은 세상 쪽으로 내려가게 되고. 올라가는 게 좋아요, 내려가는 게 좋아요? 올라가는 게 좋지요. 내려가면 밟혀요.

 

그리고 누구든지 인간 자기는 날 때부터 어떤 지식이던 지식을 갖고 나오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자라나면서 배우는 거지. 세상지식도 배우고 하나님의 지식도 배우는데, 하나님 지식이 기준적 지식이 돼야 된다. 세상 물리적 지식은 전부 다 일반적 보조적 지식입니다.

 

이성이 하나님의 진리지식과 동반이 돼가지고 양심을 통해서 나오는 이것이 조명적 영감의 감화입니다. 여기서 활동적 영감의 감화가 나온다 그 말이요. 그 인간은 참 고상해진다.

 

그런데 여러분들, 그런 거 경험했지요? 자기 혼자 있어도 누가 자기 마음속에 구정물을 쏟아 붓지는 않았는데 자기 속에 뒤숭숭한 그런 거 있어요, 없어요? 괴롭단 말이요. 괴로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지식을 가지고 밝게 살아야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죄 지은 것을 남이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부끄러워요. 자기 혼자 알고 있으면 양심이 부끄럽고. 그렇지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양심도 부끄럽고 죄다 부끄러워요.

 

,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의 죄 지은 것이 공개가 된 것이 많을까요, 공개가 안 된 것이 더 많을까요? 어느 게 더 많을까요? 공개 안 된 것이 더 많지요? 확실히 그럴까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한 행동 죄 이것은 몇 가지 안 되지요? 그러나 마음속으로 짓는 죄는 다른 사람이 못 보니까 별의 별 더러운 죄를 다 짓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문제는 그 날에 가서는 적나라하게 다 드러난다. 그것이 있기 때문에 현재적으로 우리들에게 그게 경계가 되지요. 뿐만 아니라 내가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거나, 죄 지은 걸 잊어버린 것도 있는데 이런 죄도 또 드러납니다.

 

죄인 줄 모르는 죄란 자기가 죄를 전혀 안 지어서 모른다는 그 말이 아니고, 또한 죄를 지었는데도 이성이 의식을 못한다는 게 아니고 자기는 분명히 옳다고 했으니 옳은 줄만 알지.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기준성에서 볼 때는 그것이 비뚤어진 걸로, 잘못된 걸로 죄로서 나타난다 그 말이요. 그런데 그 때에 가서는 회개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회개해도 그대로 있고, 통회 자복을 한다고 해도 그 죄는 그대로 있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지난날에 죄 지은 것을 통분히 여기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회고적 영감이라고 그래요. 옛날 것을 생각하면서 아주 마음 아프게 여기는 것. 여러분들, 예수님을 믿고 옳은 지식을 받아 가면 자기 속에서 현재적 깨달은 하나님의 옳은 지식이 옛날에 지은 그 모든 행동 활동 말, 다른 사람을 향해 한 모든 것이 평가되고 판단이 날 거에요. 그것은 회고적 영감이라.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소용은 없지만 그러나 그게 있어야 돼요. 그게 있어야 현재를 바로 살고 미래적으로 또 바로 나갈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 옛날에 내가 이렇게 한 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됐구나하고만 있지 않고 그것을 뜯어 고쳐서 다시는 그 짓을 안 하는 이게 회개란 말이요. 이해가 되지요?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은, 믿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기를 잡고 싸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누리면서 살려고 하는 거, ‘어떻게 하면 좀 편해볼까?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다가 가볼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누림성으로 세상에다 맛을 들이고 늴리리야도 하고 두들기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볼까?’ 하는 이것은 자기의 천국이 다 절단 나 버려요. 자기의 구원이 다 절단 나 버려요. 그리고 우리 기독자로서 뚜렷한 방향을 모르면, 자기가 사는 방향 목적을 모르면 어떤 선한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은 자기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 출애굽기를 볼 때에 이 출애굽에서 기독자의 사상이 확립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진리의 사상이 확립이 되고 진리의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70인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갔지만 그 70인이 430년 동안 이스라엘로 살았습니까, 애굽으로 살았습니까? 70인이 애굽에 들어갈 때에 70인 속에 그 생각 마음이 있잖아요. 그 신앙심이 있잖아요. 70인이 애굽 속에 들어가 가지고 430년을 지나는 동안에 그 신앙심이 그 정신이 변치 않고 그대로 지켜나간다 그 말이요. 이게 얼마나 놀라워요?

 

70인이 히브리인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대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축복된 그 정신 그 신앙이 현상유지만이 아니라 신앙적 능력적으로 순장이 돼야 되고 주관하게 돼야 되고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부강해야 되고, 그 다음에 대 히브리인으로 나와야 된다 그 말이요. 그게 얼마나 놀라우냐?

 

우리가 볼 때에 현상유지만 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애굽족화 되고 애굽에 동화되고, 동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화동돼 버리고 이렇게 되기 쉬운 것인데 그 속에서 강해지면서 확대되면서 나왔다 그 말이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을 볼 때 아주 큰 걱정이요. 제가 아무리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다른 교회 다른 교훈,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교훈을 갖고 와서 어느 면이 잘 되었는지, 어느 면이 비뚤어졌는지 이리 저리 대고 심사를 해보아도 내가 가는 이 길이 옳다고 믿어지는데, 그런데 이 진리정신 사상이 내가 죽고 나면 현상유지만 되는 게 아니라 강해지면서 확대되면서 나와야 되겠는데, 내가 볼 때에 우리 집부터 틀렸어. 난 대 걱정이에요. 바라볼 것은 집사님들 가정밖에 더 있겠어요?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외가 되고 핍박을 받고 남이 안 알아주고 할지라도 이 진리정신 사상이 예수님 오실 때까지 부강되고 확대되고, 이 시대에 있어서 신앙정신적 사상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그 면에 쓰임이 되면서 그 시대의 주격적인 신앙으로 나와야 되겠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세상 잡고 누리고 세상 보고 좋다고 하고 세상을 부러워하면 그거는 누구 말대로 김이 팍 새버린 거요. 그거는 뭐 앞으로 교회 오나 마나 현실에서 그냥 판단이 나버리는 거지요. 그 때에 애굽세상이 문물이 발달이 됐겠습니까? 그러니 노예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노동이지. 그러나 지금은 문물이 발달이 돼가지고 차 있으면 놀라가려고 그럴 거고. 안 그래요?

 

저는 성경 이거 거짓말로 보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되리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이게 옛날 여담입니까? 그건 아니지요.

 

이 세상은 애굽이니까 믿는 자가 이 애굽세상에 살려면 사상적으로 마찰과 대립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남 멱살 잡고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는 그런 의미로서 마찰이라는 말이 아니고 사상적으로 마찰이 된단 말이요. 마찰이 돼야 옳지. 안 믿는 정신하고 믿는 정신하고 마찰이 안 돼요? 마찰이 돼야지. 안 그래요? 안 그럴 바에야 예수를 믿지 말든지. 마찰이 되는 법이에요. 마찰되고 충돌되고 대립되는 그곳에서 자기의 실력을 키워가는 거 아니겠어요? 따라합시다. ‘이곳은 전투장이다. 누릴 곳이 아니다.’ 어디가 그렇단 말이요? 이 세상이.

 

430년이 지나는 동안에 대 히브리인으로 나오는 이 자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가진 정신이 전투적으로 살았을까요, 누림성으로 살았을까요? 전투적으로 살았지요.

 

우리가 불신세계를 가만히 보면 각 나라는 나라끼리 싸우고, 지방은 지방끼리 싸우고, 정치는 정치끼리 싸우지요. 그러면 교회는 안 싸웁니까? 교회도 교회끼리 싸우고, 가정적으로 보면 가정적으로도 싸워요,

 

물론 일반세계에서는 사상전이라기보다도 가정적으로 일반적으로 보면 어떻게 하면 돈 뜯어내서 편안히 살아볼까하는 그 면에 대해서 제 뜻대로 안 해 준다고 죽이고 싸우고 그거지.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 세계에서 신앙정신을 가지고 볼 때에 가정에서도 대립이 되고 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모두는 혈육싸움이고 모두는 경쟁이에요. 이건 전부 다 저질적인 싸움이다. ‘어떻게 하면 많이 가져볼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많이 먹어볼까?’ 하는 목적에다 두고 싸우는 싸움은 저질적인 싸움이다.

 

일반인들은 인류적 차원에서 그 싸움을 싸웁니다. 그러니까 그 싸움은 인류적 차원에서는 싸워야 할 싸움이에요. 싸워야 돼요. 일반적인 면에서 그렇다 그 말이요. 신앙 면에서는 그 싸움을 싸우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신앙전에서 볼 때 그거는 저질적인 싸움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싸워야 할 싸움이다. 안 싸우면 자기가 도태되고 밟히고 죽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싸움이요? 신앙적 싸움 아니요? 신앙 사상적 고차원적인 싸움을 싸워나가는데 소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가지고 싸우고 싸워서 대 이스라엘로 나오는 거 아니요? 싸워서 나온 거지요.

 

그 싸우는 싸움은 올라가는 싸움이지요? 올라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그 다음에 그 정신을 가지고 일반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가 인류적 차원의 그 싸움은 능가를 해야지요.

 

신앙인이 신앙사상의 싸움도 없고 그저 마냥 시간만 보내고 노력도 없고 하는 그건 있을 수 없어요. 그러면 일반인들로부터 짓밟힘을 당해요. 신앙 때문에 짓밟힘을 당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도 보면 한국이 지금 그렇잖아요? 물론 대통령이 목적을 세워놓고 세계화로 냅다 부르짖고 있지요? 또한 각 나라마다 국제대열로 올라가기 위해서 국제대열에서 싸우고 있단 말이지요. 그거는 일반적으로 바로 하는 거요. 안 싸우면 안 되지. 안 싸우면 타 민족으로부터 침범을 당하고 노예생활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참 저는 일반적 차원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큰일이에요. 살림살이 가구 있지요? 그거 집에 들여놓았으면 쓸 수 있는 데까지 써요. 부서지면 손을 봐서라도 쓰고. 그런데 그게 아니고 멀쩡한 것을 내버려서 불태우고 하지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가구 살 돈 모아놨다가 건설적으로 쓰고 복음에도 쓰고 인간에게 유익되게 하는데 쓰고 해야 돼요.

 

창세기에 보면 지키고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했지요? 인간이 그걸 못하니까 자기가 죽는 거 아닙니까? 신앙의 차원에서 우리는 쓸 수 있는 거 내버리면 안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추궁이 와요. 두려운 겁니다. 책임추궁이란 언젠가 그것도 없어서 고통당할 때가 올는지 모른단 말이요.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았는지? 날 때부터 부강한 집에서 태어났는지? 그 보면 머릿속이 텅텅 비었어.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하는 건 요만큼도 없어. 일반적인 옳은 지식도 없어요. 물질을 아껴 쓰는 것도 없고. 그러니 누가 죽어요? 그로 인해 수해니 공해니 생기면 누가 죽느냔 말이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고 둔팅인지?

 

인류적인 차원에서 싸움이 있는데, 인류 전체를 해치는 것이 무엇이냐? 인류 전체를 해치는 것이 무엇이냐? 공기의 오염도 있고, 수질오염도 있고, 공해 이런 등등 자연물에 대한 오염성은 공산주의 그런 사상보다도 더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까 민족적 그런 사상은 부분적이지만 수질오염 공해오염 또 무슨 오염하는 이것은 인류 전체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그 말이요. 알겠어요?

 

우리는 더 올라가서 영적인 차원에서 싸워야 할 기독자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차원에서 신앙적으로 오는 오염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한다고 해서 그게 다 생명의 말씀이냐? 그렇게 보면 안 된단 말이요. 교훈적으로 세상적인 것 저질적인 것을 먹게 되면 그건 세상오염이요. 이건 아주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것 때문에 와요. 알겠어요? 신앙의 오염 때문에 온단 말이요.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신앙이 오염이 되면 하나님이 그 가정을 쳐요. 그 다음에 교회적으로 전체 교회가 오염이 되면 이거는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왜 오지요? 불신자가 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겁니까, 하나님이 자녀들이 속된 말로 망나니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부모가 남의 자식을 두들겨 패요, 자기 자식을 두들겨 패요? 우리가 일반 이치적으로도 보면 빤한 거요. 이치를 가지고 따져서 신앙생활을 해야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모든 이스라엘은 이방사상과 싸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적이 누군가 하니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그 점도 명심해야 돼요.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의 적은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예수 안 믿는 정신을 교회에 갖고 들어와서 퍼뜨리는 겁니까? 어느 게 우리 적이요? 처음 거요, 나중 거요? , 그래요. 그게 우리 적이에요. 내부가 썩으면 그건 무너져요.

 

싸우기 위해서는 소속만 심사하지 말고 입장을 심사하라. 소속은 눈에 보이니까 어느 소속으로 되어있던 쉽게 알 수 있어요. 문제는 그 사람의 신앙의 입장이 있어요. 그 입장을 심사하란 말이요. 알겠어요? 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말하는 게 하나님의 입장이냐, 세상입장이냐? 그 입장을 잘 심사해야 돼요.

 

우리가 이스라엘에 입장이 아니면 애굽에 입장이요. 또 애굽에 입장이 아니면 이스라엘에 입장이지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 중간은 어느 입장이지요? 애굽입장이지요.

 

우리는 나는 애굽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이다그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는 물질계의 것을 먹고 마시며 살지만 나는 천국백성이다. 나는 여기서 누림성으로 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길러야 할 곳이다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내전도 잘 싸우고 대외전도 잘 싸우고 즉, 몸 밖의 싸움도 잘 싸우고 몸 안의 싸움도 잘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몸 밖의 싸움과 몸 안의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유혹적인 싸움이 많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처음 들어갔을 그 때는 애굽에 셈족이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쉽게 총리대신이 되었어요. 그 이후에 왕이 바꼈지요. 새 왕이 나니 이제 핍박이 나오는데, 그 때 왕은 함족입니다. 여부스족속. 이 함족은 가나안부터 유브라데 남쪽까지 여부스 블레셋 길르앗 등등이 있는데 이들 중에 일부가 애굽에 내려가서 애굽의 본토족이 된 겁니다.

 

또 셈족인 힉소스족 일부가 애굽에서 살았지요? 이거는 아브라함의 형제 아람 족속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애굽에서 왕이 되면 바로를 붙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르느고 그 뒤에 바로, 또 뭐가 돼 나가겠지요? 그렇게 이름이 붙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 섭리적으로 볼 때에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기 위해서 셈족인 힉소스족이 왕이 된 겁니다. 그리고 요셉도 또 히브리족이고. 이 셈족들을 애굽 본토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는 이 힉소스족들의 공로를 인정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250년 내려오면서 하나님께서 왕을 바꿔쳐 버렸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란 요셉의 이름도 모른다는 그 말이 아니고 요셉의 공로를 무시하는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요셉족에게, 히브리족에게 탄압이 왔어요.

 

그 탄압 중에 무슨 방해공작이 있지요? 생산 방해공작. 그렇지요? 16절에 보면 조산할 때에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이면 살려라하지요. 생산 방해공작이 와요. 생산 방해공작이 오면 결국 죽는 거 아니요? 커가고 자라가고 하는 게 없잖아요. 우리는 생산을 잘 해야지. 신앙적으로 본질적인 생산 이거 안 하면 기독교라고 볼 수가 없어요.

 

이제 역사는 그렇지만 이 본문이 우리에게 뭘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힉소스족의 뿌리는 셈족이고, 또 같은 족이지만 히브리족은 잘 살았습니다. 그 후에 모두 왕이 또 바꿔졌지요? 여기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은 육신이 편안해지면 그는 육이 왕이 된 겁니다. 육이 왕 된 거.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의 왕을 바꿔쳐 버려요. 왕을 바꿔쳐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으로.

 

어쨌든 왕이 바꾸어지니까 이스라엘에게는 핍박이 와요. 잘 믿어서 핍박이라면 그것도 좋겠는데 그게 아니지요. 이래서 왕이 둘이 바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나라 왕을 바꿔치웠어요? 애굽의 왕을 바꿔치웠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으로 바꿔치웠습니다. 그 다음에 바꿔치운 것은 우리 기독자들이 자기 속을 육의 왕으로 바꿔치운 거지요.

 

그러니까 왕을 바꿔친 걸 우리가 그 때 당시 역사적으로 애굽의 왕을 바꿔치웠구나그렇게만 보지 말고 우리는 또 계시적으로 보면서 자기 개인적으로도 내 속의 왕을 바꿔치우지는 않았나 살펴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정신을 보아서 그 사람의 왕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교회의 왕은 누구인 것 같아요? 목사님이 왕입니까, 주님이 왕입니까? 그냥 말이 아니라 우리교회에 흐르는 흐름성이 있잖아요. 사상이 흐르는 흐름성. 주님이 왕이고, 진리가 왕이고.

 

그 다음에 목사님이 세상을 계속 가르쳐주고, 교인들이 세상을 바라고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다면 그거는 무엇이 왕입니까? ? 그거는 누가 왕이요? 그거는 세상이 왕이고, 애굽이 왕이지요. 그 교회는 바로가 왕이란 말이요. 우리는 교회의 왕을 볼 줄 알아야 돼요. 목사 속의 왕을 볼 줄 알아야 되고.

 

오늘날 교회는 믿는 자로서 자기 속에 왕이 분명해야 돼요. 물론 주님이 왕이어야지요. 그러나 좀 더 나아가서 진리가 왕이다그래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자기 속에서 진리지식이 주격으로 되어있는지? 주인으로 되어있는지? 우리교회도 진리지식이 주격으로 되어있는지? 그렇다면 그건 주님이 왕이요 하나님이 왕이지요. 목사가 교인들에게 세상을 잔뜩 부풀리고 먹이면서 왕처럼 행세하고 신처럼 행세한다면 그거 되겠어요?

 

교회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옵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장성이 진리가 아니면 세우지를 말아야 돼요. 혹 개인적으로 실수해서 잘못되는 그런 거 많아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주장하는 그 주장성은 진리여야 한다.

 

진리가 왕이 되면 영적인 면에서 부강해집니다. 그 사람은 진리지식의 통치를 받게 돼요. 알겠어요? 진리가 왕이 되면 영적인 면이 부강하게 된다. 꼭 잊지를 마세요.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나 교회나 개인이나 보면 모두 왕이 똑같아. 바로가 왕이 됐어.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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