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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 : 정원 | 출판사 : 영성의 숲
판매가 : 15,000원 → 13,500원 (10.0%, 1,500↓)
하루 종일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아무도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주님과 같이 공부하고 주님과 같이 일하며 언제나 항상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마시며 주님의 은총에 의지해서 사는 삶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기 영혼을 지키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방언을 할수록 우리는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생각을 넣어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게 되고 더 깊은 갈망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움이 점점 더 일어나고 사무치게 됩니다. 그 사랑, 그 애정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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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기도의 은혜와 능력3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을 한 챕트당 단 단락씩 옮겨 적었습니다.
이 내용은 책의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은 위의 책표지를 클릭하여 책을 구입해서 보세요.
1.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이유 -경험
경험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방언에 대하여 즐거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당연히 방언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리석은 전도자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함부로 전파하는, 성령의 인도와 감동도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전도로 인하여 안티기독교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처럼, 방언을 하는 사람 중에 일부 교만하고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언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2.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이유 -입장
통계적으로 보면 성령의 역사와 방언을 강조하는 교단의 경우 숫자적인 면에서 성장이 빠른 것으로 나타나는 보고가 많이 있습니다. 전통교단이 성장이 정체되고 점점 침체되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서 이러한 성장은 인상적인 것이며 이것은 방언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반면에 은사는 이미 끝났다고 가르치는 신학자의 입장에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삶의 변화와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방언을 못하거나 -사실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하지 않는 것이지만- 은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분별과 경험이 부족한 사역자의 입장도 방언이나 방언의 나타남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3.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이유 -환경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환경은 성향, 의식, 가치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방언에 대한 인식도 그렇습니다. 정치계보다 더 보수적인 곳이 종교계입니다. 자기가 속한 교단이나 교리가 가르치는 것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가 속한 교단이나 교회에서 방언을 좋은 것이라고 배우면 그는 좋다고 느낄 것입니다. 나쁘다고 배우면 나쁘다고 느낄 것입니다. 가르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모를 것입니다.
4.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이유 -기질
나는 방언을 하는 것이 시끄럽고 요란하고 천박하고 유치해 보인다고, 그런 것은 싫다고 하는 이들을 더러 보았습니다. 이런 것은 방언을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의 기질과 관계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영적이거나 신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의 기질이 방언을 싫어하는 것이며 방언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기질은 방언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우아하고 세련된 기질의 사람으로서 단순 무식한 스타일을 싫어하고 한심하게 보는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5. 방언에서 부흥이 시작된다
방언이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와 임재가 풍성한 곳에서는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은 다른 곳은 침체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교회와 사역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으며 성령의 은사와 역사를 받아들이고 사모하는 교회는 부족한 면이 있고 약점이 있어도 활기가 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방언과 부흥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많이 있습니다.
6.세상의 영광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세상의 영광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영의 역사는 소멸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과 그 충만한 역사, 역동성은 어떻게 상실되었을까요? AD 312년 라이벌 막센티우스와의 운명을 건 일전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합니다. 이제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하여 카타콤으로 숨을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가 더 이상 고통과 환란의 종교가 아니라 부와 명예와 영광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와 명예를 위하여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심령의 가난함, 주를 향한 순결한 갈망이 사라지고 세상의 영, 세상을 사랑하는 영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교회의 순결은 더렵혀졌고 교회는 이방인과 같이 섞였습니다. 성령이 소멸되었습니다.
7. 부자와 권세자를 대접할 때 교회는 병들어간다
부와 권세를 가진 이들을 높여주고 대접할 때 교회는 병들어가게 됩니다. 부와 권세를 가진 모든 이들이 다 영적으로 무덤덤하며 갈망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부와 권세는 사람의 마음을 높아지게 만듭니다. 이들은 세상 어디에 가서도 항상 대접을 받게 되며, 혹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해 부와 권세를 가지고 보복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자들, 권세자들을 교회에서 대접하고 중직에 앉히게 되면 교회에서 서서히 성령은 소멸되고 점차 세상 부자와 권세의 영이 교회를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부자에 대하여 접대하려는 자세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약2:1-7)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돈이 없다. 그러나 내게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이다."(행3:6-8)
8.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아니고, 성도들의 숫자도 아니고, 테크닉도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잃어버린 것은 '주를 향한 갈망과 눈물'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에 대한 미친 듯한 갈망이 일어납니다. 미친듯한 사모함이 일어납니다. 기도 없이는, 사모함이 없이는, 눈물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영적 병자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밋밋한 상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9.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말라
교회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가 아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결코 아무나 받아주시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받아주시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낮추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받기 위해서 주님을 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거들먹거리며 높아져서는 주님이 주인으로서, 왕으로서 교회에 임하실 수 없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영은 침체되고 허무해집니다. 그래서 다른 대체거리를 찾게 됩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데서 즐거움을 찾고 가슴을 채울 거리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세상의 영들에게 사로잡히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10. 조용한 교회는 부흥되지 않는다.
조용한 교회가 부흥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영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기도도, 찬송도, 복음 전파도, 설교도... 모든 것은 입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고 하나님께 말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하나님의 영이 흐르고 움직입니다.
말하지 않고 속으로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영은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은 그대로 잠잠한 상태에 있습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영이 눌린 것입니다. 현실의 삶에서도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며 마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은 감정이 눌리고 대인관계가 눌리며 삶이 눌립니다.
11. 사역자는 강력한 기도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역자는 강력한 기도, 강력한 부르짖는 기도, 강력한 발성에 대하여 익숙해져야 합니다. 조용하고 약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설교할 때 거기에는 풍성한 흘러나옴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교양있게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부르짖고 절규하시면서 그분의 마지막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영이 흘러나오는 것은 해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아하게 아이를 낳는 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가슴을 찢고 몸을 찢을 때 겉사람이 무너지고 영의 풍성함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12.능력의 근원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내면에 세상 보다 더 크신이가 있음을 우리가 안다면,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능력의 근원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습니다.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하듯이 간절하게 주님께 나아가 토하고 부르짖고 방언을 하면 우리는 그 영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원리이며 방법입니다.
13. 지성소가 아닌 곳에서는 침묵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뛰노는 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성소의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는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사랑이 많고 세상의 섞임이 않기 때문에 바깥뜰에서 더 깊이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침묵을 하면 오히려 어두운 영들의 공격을 받아 많은 눌림과 고통의 증상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영성을 추구하는 많은 순진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증상입니다.
14. 영이 막히면 세상의 영에 눌려서 힘들게 산다
오늘날 영적으로 충만한 사역자들도 드물고 그러한 성도들도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발성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며 간절히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 영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역동성이 부족하므로 성도들은 세상을 정복하지 못하고 세상에 눌립니다. 일이 많아서 힘들고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세상의 영에 눌려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5. 방언으로 충분히 많이 기도하십시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방언기도의 분량이 충분하고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기초체력입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많이 하면 할수록 영감이 발달하게 됩니다. 영의 감각이 생기며 영의 충만함을 얻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그 의식이 발전합니다. 방언도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이 언어를 사용할수록 영적인 의식이 자극을 받고 발전합니다. 그래서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지식이나 통찰력이 생기고 다양한 영의 기능이 일어나고 발전하게 됩니다. 방언은 가장 일반적이고 쉽게 나타나는 은사이며 이 은사의 충분한 활용을 통하여 다양한 다른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방언기도의 충분한 분량을 채우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두십시오.
16. 충분히 빠른 속도로 기도하십시오
초기 상태에서는 방언을 비교적 빠른 속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어도 30분이상을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처음으로 방언이 임했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성령은 초기에 급하고 강하게, 빠르게 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빠른 속도의 방언은 성령의 흘러나옴에 유리합니다. 마음의 속도, 생각의 속도는 몸의 속도보다 빠릅니다. 몸은 천천히 걸어가지만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또한 영의 속도는 생각의 속도보다도 빠릅니다. 빠른 속도의 방언은 영의 흐름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개천에서 물이 흐를 때 너무 느리게 흐르면 개천의 더러운 찌꺼기가 정화되지 않지만, 비가 와서 물이 많이 불어나 물의 속도가 빨라지면 더러운 것들은 다 씻겨나갑니다. 빠른 방언을 통해서 영의 흘러나옴이 빠르게 진행되면 우리의 의식과 감정의 찌꺼기들이 빨리 정화될 수 있습니다.
17. 가슴 정화에 힘쓰십시오
초기에 방언을 할 때 가슴에 있는 모든 찌꺼기들, 답답한 것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어 청소한다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머리는 그저 잠잠하게 두고, 가슴에 집중하여 방언을 하십시오.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들이 초기 방언을 통해서 흘러나오게 하십시오. 가슴에 마음을 둔 상태에서 방언을 계속하면 가슴이 시원해지게 됩니다. 시원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방언을 하십시오.
18. 가슴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십시오.
평소에 우리는 가슴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감정을 표현했다가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상처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감정을 억압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가슴의 눌림을 표현하고 울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감정과 슬픔을 위로하시며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아이처럼 행복해지게 됩니다. 당신의 감정,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감정을 성령 안에서 방언을 통해 충분히 풀어놓으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영을 자유롭게 합니다.
19.마음의 변화가 필요할 때는 빠르게 방언을 하십시오
마음이 울적할 때, 기분 전환을 위해서 흔히 '바람을 쐰다'는 말을 하지요. 빠른 속도로 방언을 하면 영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어둡고 불편하고 우울한 감정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곧 마음이 회복되어 즐겁고 편안한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20.마음이 불안하거나 안정이 필요한 상태일 때는 천천히, 낮고 강력한 방언을 하십시오.
차분하게, 강건하게 힘을 주어서 선포하듯이 방언을 할 때 영이 강건해지고 담대해집니다. 마치 사자가 으르렁거리듯이 낮게 방언을 하면 우리는 내부에서 강한 힘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감이 생기고 강건해지게 됩니다.
21.이유 없이 불안해질 때에는 불안이 사라질 때 까지 충분히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방언을 하면 할수록 영적인 감각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일이 초기에 자주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악한 영들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거나, 아니면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영이 감지하고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때는 그저 단순히 방언을 소리내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은 기도이며, 우리의 이성은 알지 못해도 무엇인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도에는 효과가 있으며 응답이 있습니다.
22.악한 영들이 느껴질 때 강력하게 방언하고 대적하고 꾸짖으십시오
방언을 할수록 영의 감각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악한 영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갑자기 주위에 선명한 악령의 세력이 있음을 감지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불안하고 불편한 기운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 때 그냥 지나가지 말고 강력하게 방언을 외치고 대적하십시오. 굵은 톤으로, 낮은 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강력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자동적으로 방언이 강력해지며 강한 파워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강력하게 대적하다보면 온 몸에 전율이 오거나 소름이 끼치면서 서서히 그러한 느낌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평안이 오면 대적하는 것을 멈추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평안은 악한 세력들이 물러갔음을 의미합니다.
23. 기계적으로 방언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하십시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우리가 물건처럼, 비인격적인 존재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어떤 언어를 주시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의식 없이 기계적으로 하지말고 인격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가슴의 소원, 영의 소원, 깊은 속의 소원을 부드럽게 경청하는 자세로 하십시오. 속의 영이 말하고 싶은 것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동참하는 마음으로 들으면서 하십시오. 그렇게 내면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반응하고 존중하면서 방언을 할 때 방언은 더욱 더 아름다워집니다.
24. 배에서 깊이 끌어내듯이 방언하십시오.
가슴에서 무엇인가를 부드럽게 끄집어내는 듯이 방언을 하는 것이 인격성과 영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배에서 깊이 끌어내듯이 방언을 하는 것은 권능과 굳건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배에 힘을 주고 낮은 음으로 천천히, 육중하게 배의 깊은 부분을 끌어내듯이 방언하십시오.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배에 힘을 주고 강력하게 방언을 충분히 하면 평안과 기쁨과 후련함이 일어나면서 마치 생수의 강이 흐르는 듯한 시원함과 기쁨, 권능을 맛보게 됩니다.
25.때로는 기계적으로 방언하십시오. 단순히 충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으로 많이 탈진되고 힘이 없을 때, 영의 충전이 필요할 때, 이때는 충분히 많이 기도의 분량을 채워야 하므로 그저 단순하게 빠른 스피드로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단순히 속에서 나오는 대로 단순한 발음을 반복해서 하십시오. 이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적 충전이 이루어지면 평안한 마음이 일어나며 그러면 다시 인격적인 방언, 대화식의 방언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둔감해서 사람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인을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마음과 생각이 민감해서,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고 눌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질의 사람은 기계적이고 강력한 방언을 해서 감각을 다소 둔탁하게 하고 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6. 빠른 속도로 방언을 하면서 리듬에 맞추어서 춤을 추고 몸을 움직이십시오
이것은 역동성을 증가시키고 영을 활발하고 강건하게 합니다. 소극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이렇게 활발하게 기도하고 영을 풀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몸을 복종시킬 때 우리의 몸도 영을 표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27.스트레스나 답답함이 있을 때 낮은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본의 아니게 TV나 세상 문화나 음악에 노출되어 그 외부의 기운이 안으로 들어와서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그것을 토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령이 답답해지다가 눌리게 되고 나중에는 영감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맑은 영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부에서 들어온 악한 기운을 토해내야 합니다. 이때는 낮은 방언으로 권위 있고 강하게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영적인 청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급적이면 세상의 문화에 접촉하지 말며, 세상이 주는 즐거움들, 영상문화를 멀리 하십시오. 그것은 심령의 감각을 죽이며 주님과의 내적인 교제를 방해합니다.
28.원치 않는 생각이나 음성, 소리가 자꾸 떠오를 때 빠른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귀에 들어온 세상 노래의 가사가 속에 서 계속 맴돈다든지 잠시 지나쳤던 TV의 영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영이 맑을수록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영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것은 세상 기운이며 우리의 영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소극적으로 있으면 그 생각이나 충동에 빠져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아주 간단한 처방은 빠른 속도로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강력한 소나기가 대기를 맑게 하는 것처럼, 강력한 바람이 공중의 먼지를 다 날려버리는 것처럼 빠르게 방언을 토하면 그 소리는 점점 사라지게 되어 마음이 개운하고 평화롭게 됩니다.
29.자기의 약점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방언하십시오
오래 동안 끊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기도하면서 방언하십시오. 자기가 자주 넘어지는 약점에 대해서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대체로 그러한 죄나 약점에는 악한 영들의 개입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기질적인 약점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유전을 통해서 오는 영적 공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죄와 약점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떤 방해와 공격이 있는지 정확하게 다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방언을 계속하면 속에서 이상하게 무엇인가 풀어지면서 회복이 오게 됩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약점을 극복하게 되고 이기는 순간이 많아지게 됩니다.
30.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육체적인 귀로 듣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감정이나 이성으로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고 감각이 깨어나지 않으면 그 음성을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이성이 발달하여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들은 영의 기능이 억압되어서 그 감각이 깨어나기 어려우며 음성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충분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언을 충분히 많이 하면 저절로 느낌과 감각이 일어나게 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느끼게 됩니다.
31.주님께 질문을 드리고 답을 기다리면서 방언하십시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무턱대고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자주 주님께 주님의 원하심에 대해서, 인도하심에 대해서 묻고 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답변은 물리적으로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 영적 감동으로 오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적 감동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물으면서 방언을 하고, 답을 기다리면서 방언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기도의 방법입니다. 평소에도 방언을 해야 하지만 질문을 드리고 답을 기다릴 때는 더 집중적으로 방언을 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방언을 하다보면 차츰 어떤 감동을 느끼게 되며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러한 방면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32.마음에 불편한 것이 있거나 주님이 싫어하시는 느낌이 있으면 방언을 하면서 물으십시오
양심에 무엇인가 거리낌이 있거나 내주하시는 주님이 안에서 싫어하시는 감동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물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평소에 자주 주님께 묻고 기다리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항상 주님이 원하심을 따라, 기뻐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방언을 하면서 떠오르는 감동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잘못이 있다면 선명하게 그것을 느끼게 되고 불편함이 시작된 근원을 깨닫게 됩니다. 아직 충분한 확신이 없다면 좀 더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답을 얻을 수 없으면 중단해도 됩니다. 주님께서 어떤 경고하실 일이 있으면 분명하게 답을 주실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사소한 일에 대하여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반응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33.방언을 하면서 듣게 된 음성이나 감동에 순종하십시오.
방언을 하면서 주님의 감동과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은 그 음성을 듣고 인지하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단지 듣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듣고 분별을 얻은 후에는 당연히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주 물으며 주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자주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주님의 경고나 책망을 받았다면 우리는 깨닫는 즉시 바로 회개하고 순종하여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죄에 대해서는 그것을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며, 어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만약 순종하지 않고 묻는 것으로 그친다면 거기에는 유익이 없을 것이며 그러한 불순종이 반복되면 더 이상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4.부르짖으며 포효하는 방언을 하십시오. 그것은 권능을 얻게 하는 강력한 기도입니다.
방언은 우리 안의 영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면서 강력하게 부르짖으면 그 영의 흘러나옴이 강력해집니다. 마치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처럼, 알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온 몸에 힘을 주고 얼굴을 찡그리고 강력하게 방언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이 기도는 일종의 노동과 같으며 힘이 드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온 힘을 다해서 강력하게 드리고 나면 전신이 상쾌해지며 영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영의 충만함에 사로집히게 됩니다.
35.방언 기도와 마음의 기도를 적절히 분배하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으로 하는 기도이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음이 흥미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다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마음으로 기도한 후에는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영의 기도와 마음의 기도를 섞어서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섞어서 기도할 때 영도 충족되고 마음에도 만족을 얻게 됩니다.
36.기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십시오
처음부터 아주 강력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묵상으로 깊이 기도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처음에는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보통의 톤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 제목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영의 충만함을 위해서는 점점 더 뜨겁고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37.집회에서 통성으로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평소의 집회에서 통성기도를 드리는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특히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방언으로 시작하면 곧 영이 힘을 얻고 기도가 잘 풀리게 됩니다.
38.주님의 임재가 강렬할 때는, 더 이상 소리를 내어서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고 그 안에서 안식하십시오.
강렬하고 뜨겁게 기도하다가 주님의 임재가 선명하게 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더 이상 뜨겁게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용히 기다리며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부르짖어 방언을 하며 강력하게 한 참 기도를 쏟은 후에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입을 벌리기도, 움직이기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성령께서 가까이 임하셔서 사로잡고 계신 상태이기 때문에 억지로 힘을 내서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도 성령 안에서 조용히 안식하면서 그분과 교제해야 합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그 임재 아래 머물러야 합니다.
39.강력한 방언기도와 부드러운 방언 기도를 조화롭게 반복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리듬이 있고 반복됩니다. 계절도 반복되고 낮과 밤도 반복됩니다. 해와 달도 교차하여 움직이고 파도도 밀려왔다가 밀려갑니다. 이처럼 자연은 두 가지 성향이 반복되며 움직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 대한 강력함과 부드러움은 반복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그것은 영적 피로감과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강력하고 뜨거운 방언기도는 능력이 있고 유익합니다. 그러나 강하게만 기도하면 그것은 탈진을 가져오며 거칠어지고 공격적인 성향이 됩니다. 부드럽고 안식하는 기도는 아름답고 달콤합니다. 그러나 부드럽게만 기도하면 연약해지고 눌릴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부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입니다.
40.걸어다니면서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초기에는 특히 방언으로 기도하는 분량을 많이 늘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절약해야 합니다. 필요 없이 사용하는 시간을 절약하고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 의미없는 수다를 떠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주님과 같이 영으로 교제하며 대화하는 것은 아름다우며 많은 유익이 있는 일입니다.
사용할 시간이 많지 않은 이들은 걷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잡념에 빠지는 것보다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걷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행복입니다. 방언을 하는데는 머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걸으면서 편안하게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41.자기 전에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자기 전의 의식상태는 밤새 이어지기 때문에 기도하다가 잠이 들거나 기도한 후에 그 상태에서 다른 것에 의식을 빼앗기지 않고 잠이 든다면 그는 아주 행복한 수면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충만한 내용의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42.새 일을 시작할 때, 인도하심을 구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필요하지만 특히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하고있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떤 전환점에서 새로운 인도하심이 필요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아무런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감동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나 선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자료나 정보를 수집하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우선순위는 명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이나 편안한 삶이나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과 같은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희생하더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주님을 누리고 섬길 수 있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는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43.새로운 영역, 공간에 갈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예를 들어 이사를 가게 되었다거나 사무실을 새로 이전하게 되었다거나 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가게 될 때에는 그 공간에 대한 정화가 필요합니다. 강력하게 방언을 외치며 대적하고 부르짖으십시오.
44.중보기도를 드릴 때 방언기도를 사용하십시오.
다른 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릴 때, 그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방언 기도를 드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45.근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눌려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방언하십시오.
주변에 영적으로 눌려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를 돕고 회복시켜야 합니다. 상대방이 믿는 사람이며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기도함으로 회복을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십시오. 이때 방언기도는 아주 유용합니다.
그를 위하여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곁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이 영적인 능력은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전율을 느끼게 되며 상대방의 영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방언을 하면서 그의 배후에 있는 악한 세력을 결박합니다. 그렇게 충분히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며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합니다. 다음날 상대방을 보면 그가 달라져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방언기도의 능력은 아주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46.일이 힘들 때, 어려울 때, 해야할 과제가 밀려있을 때 힘차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47.중요한 상황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방언으로 준비하십시오
48.위기상황에서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49.가슴을 토하듯이 부르짖는 방언에 익숙해지십시오.
50.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하지말고 조용히 관찰하십시오.
51.가슴에 떠오르는 감동을 과감하게 선언하십시오.
52.감사를 드리면서 방언으로 찬양하십시오.
53.기존 찬송을 가사대로 부르다가 감동이 오면 가사에 방언을 대입하여 부르십시오.
54.하나의 음을 선택하고 그 음에 맞추어 방언으로 찬양하십시오
55.오~ 하고 길게 높은 음으로 소리를 올려 찬양하십시오.
56.집회에서 방언으로 찬양하십시오.
57.주님과 대화하듯이 방언을 드리십시오.
58.방언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방언이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고 도우십시오.
59.사역자는 집회 전에 적어도 30분 정도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60.사람을 상담하거나 돕기 전에 방언으로 준비하십시오.
61.집회에서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를 자주 시키십시오.
51.평신도 지도자들이 통성기도와 방언기도에 익숙해지게 하십시오.
52.집회에서 방언찬양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하십시오.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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