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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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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문호 목사 |
참고 : | 2010.7.11.)갈보리교회 http://calvarymm.onmam.com |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요 21;15-17.
고등학교 동창 친구중에 큰 사업가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방에 여자 목사님 한 분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강 목사님! 우리 교회는 작은 2층 세 교회인 것을 아시지요? 남편이 목사님 친구 회장님 직장에서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내고, 전기세, 물세를 내면서 교회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회사가 어려워서 사원들을 많이 줄인 데요. 우리 남편도 퇴출자 명단에 들었어요. 남편이 그 회사를 그만 두게 되면 우리 교회를 없애야 돼요. 목사님! 전화 좀 해주세요.>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까지 전화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 빈부차가 너무 심하여 내가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하였습니다.
<나 강 문호인 데 한번 만나고 싶다.>
그 친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강 문호. 네가 전화를 다 하고 왠 일이냐?>
<만나고 싶은 일이 생겼어.>
<그래. 만나자. 모야모야로 와.>
모야모야는 상류층이 만나는 식당인데 한 사람당 무조건 17만원인 식당입니다. 내가 만나자고 하였으니 내가 돈을 내야 합니다. 나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잠간이면 되거든. 우리 교회 앞에 해장국 집이 있는 데 그 곳에서 잠간 만나자.>
<모야모야로 와.> 자꾸만 그리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했습니다.
<너는 사업가니까 그런 돈이 부담되지 않지만 우리 목사들에게는 부담이 돼. 해장국집에서 잠간 만나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말이었습니다.
<내가 돈 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와.>
나는 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는 이 식당에서 자주 식사하니?>
<자주가 아니야. 매끼 다른 사람을 만나며 이 방이 내 전용방으로 이 방에서 만나.>
오늘 제목을 기억하세요.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본론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만나자고 하였니?>
나는 그 분의 명함을 주면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너 이 사람 아니?>
<몰라.>
<너 이 사람을 퇴출시키면 이 다음에 하나님께 혼난다.>
무슨 말이냐고 묻기에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몰랐지.>
그리고 명함을 넣고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연락이 왔습니다. 퇴출시킨 것이 아니나 진급시켰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제일 먼저 가셨습니다.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찾고 계신 중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는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부활 후 다시 만날 때도 역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 하였기에 주님이 오셨는데도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고기가 153 마리 잡혔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예수를 예수로 알아보고 외쳤습니다.
<주시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다가 이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같이 생선을 구워 떡과 함께 조반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베드로와 오고갔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오늘 대화 내용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이 조반을 잡수셨다는 말은 이 곳 한번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식사하셨는 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이 없으셨다는 말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마지막 식사는 유월절 식사였습니다. 이 이야기외에 예수님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식성은 어떠하셨는 전혀 기록하여 주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아침 식사 시간은 몇 시였는 지, 점심 식사 시간은 몇 시였는 지 저녁은 어떻게 하셨는 지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장소도 전혀 없습니다.
누구와 식사하셨는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몇 분 동안 식사하셨는 지 기록도 없습니다.
제가 부흥회 가려고 하면 사무실로 전화가 옵니다.
<강 목사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 하나요?>
그 때마다 사무실에서 낙지를 좋아 한다는 말을 하여 줍니다. 그래서 부흥회가면 웃으면서 말합니다.
<우리는 강목사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 하는 지 알아요. 제일 좋아 하는 음식은 산 낙지,
두 번째 좋아 하는 음식은 죽으려고 하는 낙지, 세 번째 좋아 하는 음식은 죽은 낙지지요?>
예수님이 어떻게 식사하셨는 지는 성경 기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영혼 구원이 성경 기자들의 관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렴프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다른 사람들과 식사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항상 사람들과 접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오늘 제목이 나왔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예수님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셨고, 수많은 사람이 찾아 오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심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번 사람이 그 길에 길들여져 있으면 더 좋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만 가게 되는 것을 관성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지름길이 생겼는 데도 불구하고 늘 가던 길로 가게 됩니다. 운전하다 보면 자기가 다니던 길로만 가게 됩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관성의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실패의 관성의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보면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책상에 앉아 있어도 집중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는 매 달 저축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는 신용카드 대신 돈을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물 쓰듯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물을 돈 쓰듯이 합니다. 전기 하나라도 아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미국의 재벌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정원 한 구석에서 촛 불 두 개를 캐놓고 책을 읽다가 그가 갔더니 하나를 끄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책 읽을 때에는 두 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에는 한 개면 족하지요.>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으츠는 <괴짜를 좋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괴짜로부터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펫는 <매일 한 권씩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1월 1일 한 명과 식사하는 비용이 1억원입니다. 1억원 주면서 식사를 하면서 그가 투자하라고 하는 곳에 투자하면 수 억을 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보다 독서량이 5배 많은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톡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누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든지 답장을 꼭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 성학 우리 지역 광진구 구청장님과 둘이 식사를 세 시간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초대장 보내든지 초대장 보낸 곳을 다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청장이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커피의 대명사 스타 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매일 점심식사는 다른 사람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화하면서 정보를 얻고 관계를 맺어 나갔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예수님도 그랬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가요?
1. 관계를 말합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식사 한번 같이 해요.>
이렇게 말할 때에는 밥 먹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계를 갖자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조반을 잡수셨습니다. 밥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는 최고의 관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전에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는 그리 끈끈하지 않았었습니다. 배반도 하였습니다.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반을 하신 후에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의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관계를 말합니다.
나는 부흥회를 자주 나갑니다.
지난 주간은 20,000명이 등록한 과천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점심만 세 번 같이 먹었습니다. 나머지 식사는 나 혼자 호텔에서 하였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20.000 명 교인중에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분은 두 끼 식사를 같이 한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같이 식사한다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크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있을 때 백악관에 방 하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 식사를 대통령하고 하고 헤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정치 헌금을 1억원 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한 끼 식사하는 것으로 1억원이 아닙니다. 그 후부터 대통령과 교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방이 많이 있습니다.
하룻밤 교회에서 자고 나와 식사를 아침같이 하고 헤어지고 1억원 내라고 하면 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천국에 가서 하나님 집에서 하루 밤 자고 하나님과 둘이 식사를 하고 1억원 선교 헌금하라고 하면 할 사람이 줄을 설 것입니다.
하나님과 독대하고 식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일가요?
식사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이 속회나 모임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고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면서 매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셨을 것입니다.
2. 한 공동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부활하신 후에 조반을 잡수셨습니다. 간단한 식사 조반같지만 그 식사로 베드로와 예수님은 영원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조반 후에 오늘 날 23억 8천만명의 세계 최대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작은 식사같지만 식사속에는 엄청난 공동체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사 습관은 다른 나라 식사 습관과 다른 데가 있습니다.
서양은 조금 조금 날라 옵니다. 대화시간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만든 음식을 다 차려 놓습니다. 그리고 먹어야 먹은 것같습니다. 말하지 말고 빨리 먹어야 합니다.
중국집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들어서자 말자 말했습니다.
<빨리 주세요. 빨리 가게.>
중국 집 주인이 짜장면을 빨리 만들어서 갖다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빨리 먹어요, 설거지 하게.>
우리 민족은 빨리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습관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옛날부터 밥먹으면서 말을 하면 복이 달아 난다고 밥먹을 때에는 조용히 빨리 먹고 나가라고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식사하면서 조용히 먹는 것이 최고의 예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식사시간이 이야기 시간입니다. 식사 시간 외에는 묵묵히 일하는 시간입니다. 침묵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식사 시간만 되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국은 아예 식사 시간이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즐거운 만남의 시간이요, 유쾌한 정보 교환의 시간입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는 동네마다 사랑방이 네 개는 꼭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모이는 노 사랑, 중년들이 모이는 중 사랑, 10대들이 모이는 아 사랑 그리로 여인들이 모이는 안 사랑이었습니다.
노 사랑에는 늘 노인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노인정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 이름짓기, 이사나 장담그는 날 받기, 문맹자가 많던 시대니까 제사때 축문 쓰기등은 노사랑에서 담당하였습니다.
대신에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내장은 무조건 노사랑으로 보내어 노인들을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습니다.
중사랑에는 중년들이 모여서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 동네 새우젓 장수, 소금장수, 땜쟁이들이 오면 중사랑에 들러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들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정보 교환소였습니다.
10대들이 모이는 아사랑에서는 멍석 만드는 법, 짚신 만드는 법, 예절 공부들을 하였습니다.
안 사랑에는 저녁 설거지를 다 하고 여인들이 모여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는 여자들의 스트레스 푸는 장이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것이 함지박에 물을 담고 바가지를 거꾸로 담고 시어머니나 신우 머리로 알고 두드리면서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또래로 모이기를 좋아 하였던 민족이었습니다. 늘 같이 모이는 이들이 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일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먹는 것만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돌아 가면서 밥을 해 날랐습니다. 아니면 쌀을 모아 같이 밥을 해먹었습니다. 밥을 한 사람이 가지고 오든지, 해 먹던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솟 밥입니다. 식사 공동체는 놀라운 공동체가 됩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는 말은 공동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3. 문제 해결을 말합니다.
같이 식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가요? 문제 해결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가장 좌절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배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심지어 가정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편안한 생활도 버리고 예수님을 3년 동안 죽자 살자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맥없이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실망입니다.
좌절입니다.
허탈입니다.
그는 배운 것이 도적질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갈릴리로 나갔습니다. 고기를 잡다가 다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 조반을 같이 먹은 것입니다.
주님과 식사를 하면서 생의 목적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식사를 하면서 분명히 알았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식사중에 이런 대화에서 인생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식사를 한다는 의미는 밥먹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조반을 같이 하면서 대화한 것을 시간을 재보면 겨우 12초입니다. 식사는 한 시간 가량 하였을 지 모릅니다. 짧은 대화 긴 이야기 속에서 베드로는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일생을 바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을 발견한 날은 생일날 보다 나은 날이라고 칼 힐티가 말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식사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설교 준비하면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지구 상에서 부모님 추도일에 밥을 퍼놓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습니다. 어느 나라 가 보아도 추도일에 밥을 퍼놓지 않습니다. 같이 밥을 먹자는 의미는 정말 의미심장합니다.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관계요, 공동체요, 문제해결입니다.
4. 전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조반을 잡수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
전도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식사하시면서 전도 사명을 베드로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식사하면서 오직 예수님 이야기, 복음 이야기를 하면서 전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본질입니다.
가족 수를 물을 때 미국과 우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사람은 “How many family do you have?" 라고 묻습니다. 가족이 몇 이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은 식구(食口)가 몇 이냐고 물어 봅니다. <먹는 입>이 몇이냐고 묻고 있는 말말입니다. 한 솟에 밥을 같이 먹는 이가 바로 한 가족입니다.
1992년 12월 18일 로스엔젤레스 산마테오에 살고 있는 메리 제인 셰퍼드라는 여인이 죽었습니다.
그 때 그 일대 모든 상가들은 문을 닫고 공휴일처럼 지내면서 그를 애도하였습니다. 약속한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는 데 한 도시가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슬퍼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 가요?
메리 제인 셰퍼드는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영접한 후 예수님을 닮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신 후부터 그의 생각과 행동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입니다.
먼 곳까지 가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으니 자기가 살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늘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면서 사랑하였습니다. 정성껏 이웃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방 천장에 빨래 줄같이 거미줄처럼 이리 저리 매어 놓고 그 집에 초대되어 식사한 이들의 이름을 한 종이에 한 명씩 적어서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방문한 날자도 같이 적었습니다. 카드 색깔도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집 천장은 어느 덧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같이 온통 방문자 이름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자연히 하루 기도시간도 늘어 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평범한 가정 주부인 자기가 이웃을 위하여 할 일이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웃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자기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마치 개선장군이 지나가는 것처럼 환영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식을 치룰 때는 온 도시가 애도분위기였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
이 여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식사 시간이 전도 시간이 되었는 예수님의 식사는 우리 식사의 모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하셨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식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요?
1. 관계를 말합니다.
2. 공동체를 말합니다.
3. 문제 해결을 말합니다.
지난 주간의 일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6월 17일 감리교 감독회장 후보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감독회장 출마를 결심한 순간부터 <왜?>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왜 좋은 교회를 떠나려고 합니까?
왜 성막 쎄미나를 중단하려고 합니까?
왜 부흥회를 안 하려고 합니까?
왜 저술활동을 중단하려고 합니까?
왜 목회자가 정치하려고 합니까?
그러나 가장 많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진흙탕속으로 들어가십니까?>
<왜 64살에 은퇴하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편안할 때에는 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일군은 이런 때 일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안 된다. 새 사람을 찾자>라는 감리교의 요구 토양위에 후보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출마부터 역풍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 교회 역풍
교인들은 어떻게 기도하여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 하였습니다. 당선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인지, 낙선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인지 몰랐습니다.
<당선되면 웃을 것이고, 떨어지면 춤출 것입니다.>
나가지 말라는 출마 역풍이 교회부터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2. 감신 강풍
후보 등록을 하고 보니 감신 세 명, 목원 한 명이었습니다. 끊임없는 단일화 강풍을 제일 많이 맞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가장 후배입니다. 다음 기회는 나밖에 없습니다. 지난 선거에 강흥복 목사님 참모였습니다.
감신이 단일화하지 못 하면 선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거센 강풍을 거의 다 나 혼자 맞아야 했습니다. 이는 역풍이 아니라 강풍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일화하면 제일 먼저 양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하였습니다. 동문회에서는 나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단일화가 문제였습니다.
3. 외부 태풍
기자 회견에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김국도 목사님이 보험을 든 후보라는 소문이 있는 데요?>
남부 연회 어느 목사님 물었습니다.
<김 국도 목사님과 같이 골프쳤습니까?>
김 국도 목사님과의 연계 소문은 전국적이었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골프장에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여 안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김 국도 목사님과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걸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김국도 목사님을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적인 하자만 없다면 한번쯤 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내가 감독회장이 되었다면 100번 1000번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독 타임즈 박 영천 목사가 배재 후배이고 내 집회에서 병고침의 체험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김국도 목사님 진영에 많은 분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소문이 난 것입니다. 김 국도 목사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표를 의식하여 나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매도하였습니다.
이 바람은 역풍이나 강풍이 아니라 태풍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바람은 내외적으로 맞으면서 선거전에 임하였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한번 또는 두 번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나만 처음이었습니다. 선거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돈이 얼마나 드는 지도 몰랐습니다. 왜 돈이 드는 지 어렴프시는 알았지만 실제적으로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민한 감각으로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등록 후 20여일 동안 뉴스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참모들이 추려주는 그 날 그 날의 선거 정세가 유일한 뉴스였습니다. 인터넷을 점검하여 요약하여 주는 것이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감신대 목원의 대결이 아님이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승리의 확신이 밀려 왔습니다. 저의 예감은 항상 적중하였습니다. 큰 일 때마다 하나님이 묘한 영을 주셨었습니다.
무르익고 있을 때 송 원영 장로님과 이 주익 목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담금을 12월 31일까지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후보 자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완강한 나와 타협이 되지 않자 일어서려고 하다가 이 주익 목사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문앞에서 이 주익 목사가 내 손을 붙들더니 예언 기도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너는 하박국 선지자 같다. 화해자가 될 것이며 머리가 될 것이다. 으뜸이 되고 본이 될 것이다.>
기도를 마치자 말자 내가 말했습니다.
<이 목사! 나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나가라는 것이다.> 이 목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네요. 나가셔야 겠네요.> 그리고 헤어지고 이튿날 송 장로님은 나를 부담금을 걸어 재심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재정은 장로님들 몫이라 내가 챙기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선관위에서 요구하는 것은 <부담금 완납 증명서>입니다. 나도 그렇게 냈고, 선관위도 그렇게 받았습니다. 둘 다 몰랐습니다. 이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 부담금이 늦었던 모양입니다.
공로는 분명하지만 법은 냉정하였습니다. 법만 보이지 뒤에 사정은 보지 않는 것이 법입니다.
7월 6일 13;00 하림각에서 재심이 있었습니다.
과반수 이상 참석에 3분의 2 찬성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결되면 향후 5년간 피선거권에 제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나를 끔찍하게 여겨주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을 표결에 붙여 가결되고 나면 강 문호 목사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아까운 사람을 살리자. 서류에 하자가 있었던 것이니 등록 취소로 결정하자. 그리고 5년 제한 피선거권 제한에 걸리지 않게 하고 등록금 5천만원을 돌려주자. 다음에 도전할 기회를 주자.>
그래서 후보 등록이 취소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불같이 퍼져 나갔습니다.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1. 우선 상대 후보들이 경쟁자 한 명을 제거하였으니 좋아 하였을 지 모릅니다. 짐작입니다.
2. 우리 교인들이 좋아 하였습니다.
3. 등록금 5천만원을 대 준 이에게 전화하였습니다.
<감사했어. 도로 준다니 도로 줄 께.>
그도 좋아 하였을 것입니다.
4. 아내가 좋아 하였습니다.
<여보. 나는 진심으로 좋아요. 당신이 당선되어 64살이 은퇴하는 것 싫었어요.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실탄 공급이 내 일었는 데 늦게 나마 이 짐을 벗은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그러나 울고 있었습니다.
5. 부흥회 약속하여 놓았던 교회들이 당선되면 부흥회가 취소될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의 쉬는 주간없이 부흥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좋아 할 것입니다.
나는 후보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후보는 잃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너무나 많이 얻었습니다. 내 사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큰 교회를 두고 매일 출근하였던 차 창규 목사, 6개월을 교회에 자며 검검한 김 재성 장로,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목사님들, 장로님들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두 주후 이런 분들과 함께 며칠 해외에 다녀 오려고 합니다. 이들의 고마움에 많이 울었고, 또 울 것입니다.
그 외에 전국의 수많은 지지자들은 저의 영원한 친구들이 될 것입니다. 장사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버는 것이라는 탈무드 말이 생각났습니다.
선거는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감독회장이 되고 나면 그 날 밤 12시부터 100년 기도실을 만들어 기도하는 감리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게는 돈이 따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 400억 모금을 하여 감리교 컨벤션 센터를 짓고 싶었습니다.
김 기택 감독님에게 배운것인 데, 시작부터 끝까지 감독회장 명목으로 들어오는 거마비, 사례비 모두 모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젊음을 불태워 감독회장 모델을 만들고 싶었었습니다.
이제 아쉬움으로 남을 뿐입니다.
마침 그 날이 내 생일이었습니다.
후보 등록이 취소 된 것을 모르나 생일만 아는 이들이 수없이 문자멧세지가 정신없이 울리고 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선거에 승리하기 바랍니다.>
새 세상으로 돌아 온 것같습니다.
동굴을 빠져 나온 것같습니다.
위로 문자 멧세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뒷 정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1만명 교회>를 향하여 매진할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 하였던 성도들을 사랑하며, 239기에서 중단되었던 성막 쎄미나를 복원할 것입니다.
91번째 책 집필에 들어갈 것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누구를 밀어 줄 것입니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재 출마할 것입니까?>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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