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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2287 추천 수 0 2013.06.04 22: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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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4:8-17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sermon/682791 

jys.jpg 정용섭 목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요한복음 14:8-17, 성령강림주일, 2013.5월19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별설교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뒤에 만난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고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고아들의 마음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그리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한쪽이 텅 비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고아였습니다. 예수님 없는 상황을 견뎌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을 때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공동체를 떠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힘들게 버텼겠지요. 예수 부활 경험도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서 끝났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복음서와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승천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연결되던 모든 것들이 끊겨진 상황입니다. 이제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 구성원들은 예수 없이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예수의 재림을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대도 접어야만 했습니다. 재림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처한 상황이 머리에 그려지시지요? 현재 예수는 없고, 재림은 지연되고, 예수를 직접 목격했던 초기 증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마치 춥고 배고프고, 날은 어두워지는 그런 상황에서 골방에 모여 앉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걱정하고 있는 고아 남매들과 같았습니다.


바로 그때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예수님의 고별설교입니다. 체포당하시기 직전,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요 14-16장에 나옵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제자들이 크게 상심하고 힘들어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곧 떠나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거나 어떤 것을 요구합니다. 베드로, 도마, 빌립, 가룟 유다입니다. 오늘 설교에 직접 관계되는 도마와 빌립의 말만 들어보겠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 당신이 가는 길이 어디냐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요 14:6절에서 그 유명한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음은 빌립이 나섭니다. 그는 아버지를 보여주면 당신이 우리를 떠난다 해도 안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과감한 진술입니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바로 이 진술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구축해나갔습니다. 유대교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진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유대교가 요구하는 토라와 할례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즉 생명을 얻기 위해서 다른 대상을 찾아나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기만 하면 됐습니다.

 

파라클레토스

문제는 실제로 예수님이 없는 상황에서 그 믿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떠난 뒤에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6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번역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helper(도우미), intercessor(중재자)입니다. 이 단어는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음역되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파라클레토스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탁받아 그 일들을 선포하거나, 미래의 종말론적인 심판을 선포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보혜사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잘 와 닿지 않으면 성령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요 14:26절은 보혜사를 바로 성령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오늘은 전 세계 교회가 성령강림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 절기의 역사적 배경은 사도행전 2:1절 이하에 보도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지만, 그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은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옵니다. 성령이라는 말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한국교회처럼 성령을 강조하는 교회도 많지 않습니다. 성령 세미나라는 은사운동도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어떤 종교적 엑스타시를 경험합니다. 그게 무조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서가 그것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기도 하고,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현상들이 제법 많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해도 많습니다. 부작용도 많습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령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성령을 착한 귀신쯤으로 생각합니다. 무당들이 신들림 굿을 통해서 악한 귀신을 쫓아내듯이 기독교인도 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을 불러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예수의 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 구해서 파라클레토스, 즉 성령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2:1절에도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거기서 파라클레토스는 예수님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령은 곧 예수님입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예수님은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다른 방식의 활동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즉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성령이면 성령이지 무슨 예수의 영이냐, 골치 아프다,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서방 기독교가 ‘필리오 케’(그리고 아들로부터)를 니케아 신조에 포함시킨 이유도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예수의 영이라는 말은 예수 사건을 아는 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증거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성령을 받았는지 아닌지, 성령에 충만한지 아닌지를 알려면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예수에게 일어난 일에 심취합니다. 그것이 그의 영혼을 불사릅니다. 이는 마치 시적 영감에 사로잡힌 시인들과 같습니다.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예수에 관한 것들이 늘어납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여러분이 연애하던 시절을 생각해보십시오. 저절로 상대방의 모든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맛난 걸 먹더라도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많은 신자들이 신앙적인 곤란을 겪습니다. 예수에 대한 뜨거움이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결혼 이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부부 사이에도 뜨거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개중에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에게만 열정을 바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예수님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대신 교회생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납니다. 교회당 짓고, 의료봉사 나가고, 주일학교 교사나 운영위원도 되고, 또는 장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과연 예수님과 관련된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판단에 있습니다. 그런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게 없으면 성령이 떠난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자신의 신앙생활이 실제로 예수에 대한 관심인지, 아니면 교회 일을 통한 자기만족인지 말입니다. 그걸 구별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늘 예수님의 일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마녀재판이나 십자군 전쟁도, 그리고 지금 교회 안에서 벌어진 이전투구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으니까요.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바쁘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것에 신경을 쓴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심정이야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성령으로부터 멀어진 증거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이유가 무언지 아시겠지요? 이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걱정거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게 해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내다보십시오. 그것이 구원을 얻는 일보다 더 중요한가요? 생명을 얻는 일보다 더 중요한가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그건 목사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실제로 세상살이를 해보면 다를 거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억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파라클레토스를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다음에 그 보혜사를 설명하는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는 겁니다. 진리는 참된 것입니다. 진리를 가리키는 헬라어 ‘알레테이아’는 탈(脫)은폐의 성격이 있습니다.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는 계시라는 의미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당연히 진리를, 즉 참된 것을 따라야만 합니다. 남이 말하기 전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의 영을 따르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재물이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업을 키우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 그렇게 경쟁하고 업적을 내세우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한도를 넘었습니다. 뭐가 진리인지에 대해서 눈을 감고 무조건 부자가 되고 큰 교회가 되는 것에 목을 맸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의 영을 따르지 않습니다. 성령과의 관계가 끊어졌거나, 또는 아주 느슨하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살아도 지금 당장 탈이 나지 않습니다.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 수도 있고, 기회가 닿으면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결국 물거품처럼 쉽게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거기에만 매몰되면 결국 우리 인생도 물거품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기자가 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했는지 아시지요? 단순히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거나, 학문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진리가 바로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영은 바로 진리의 영입니다. 즉 예수님으로 인해서 진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요 1: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진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시겠지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게 하는 이가 바로 파라클레토스, 즉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예수의 영이고, 진리의 영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다음의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 연륜과 함께 예수를 통한 생명이 무엇인지 점점 깊이 알아가고 있으신가요? 그게 점점 명료해지고 있나요? 아니면 날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을까요? 거기에 실제로 관심이 있으신가요?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성령을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충만하게 받았는지에 대한 시금석이 됩니다.


설교 시작할 때 저는 고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고아는 무의식적으로도 근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아인지 모릅니다. 늘 근심을 이고 사니까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설교본문 바로 다음 구절인 요 14:18절에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요 14:18)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인 파라클레토스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고아 신세를 면했습니다. 그래도 세상의 근심을 단숨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근심이라는 게 끝이 없습니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근심이 나타날 뿐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것 안고 살아야 할 겁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근심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으로 축소시켜야만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영적으로 고아가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바로 그 성령이야말로 생명을 알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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