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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최용우............... 조회 수 2152 추천 수 0 2013.06.04 22: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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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5: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sermon/685743 

jys.jpg 정용섭 목사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1-5, 성령강림후 1주(삼위일체주일), 2013. 5월26일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부터 유대교라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모두 유대교로부터 종교적 영양분을 받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재림을 기다리면서도 여전히 유대교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겹치면서 이제 기독교는 더 이상 유대교와 함께 길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에서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가 당시의 신학적인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가 왜 유대교와 결별했는지, 그리고 오늘 기독교 복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율법입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은 삶의 규범입니다. 지금 우리로 말하면 실정법입니다. 그런 규범은 필요합니다. 그걸 통해서 세상의 질서가 잡힙니다. 법이 없다면 세상은 카오스로 떨어질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한계를 정확하게 뚫어보았습니다. 롬 3:20절은 이렇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게 하지만 의롭게 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바울은 롬 1,2장에서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법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사람은 다 죄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법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혹은 교만하게 할뿐입니다. 바울은 전혀 새로운 의를 말합니다. 사람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의로움을 얻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인 ‘칭의론’입니다.

 

바울의 자랑거리

바울은 이제 롬 5장에서 칭의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었기 때문에 두 가지 사실을 자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2b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문장을 루터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미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말 성경이 즐거워한다고 번역한 헬라어 ‘카욱사오마이’는 자랑한다는 뜻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영어성경도 번역에 따라서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사용합니다. 어쨌든지 바울은 여기서 미래의 영광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건 분명히 기독교인들에게 자랑거리입니다. 기쁨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만이 아니라 두 번째로 환난까지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입니다. 영광을 자랑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시련과 어려움까지 자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바울은 바로 뒤에서 설명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결국 희망 안에서 살게 한다는 겁니다. 자학인가요? 광신인가요? 바울은 자학적인 사람도 아니고 광신에 빠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인간과 그 삶의 실체를 정확하게 뚫어보는 사람입니다. 환난을 당하면 사람은 인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렸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유달리 인내심이 강합니다. 인내를 통해서 사람의 내면세계는 탄탄해집니다. 본문이 말하는 연단이 바로 그런 것을 가리킵니다.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탄탄한 인격이 있을 때 희망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난을 만나면 힘들어합니다. 더 나가서는 자포자기를 합니다. 삶이 파괴되기도 합니다. 불안, 짜증, 분노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환난, 인내, 연단, 소망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 신앙의 힘이 있어야만 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인 희망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었을 때만 환난이 우리의 삶을 승화시킵니다.


바울이 말하는 희망은 막연하게 잘 될 거라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런 희망은 처세술이나 심리학의 차원에 속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희망은 구체적인 신앙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말한 자랑거리의 첫 대목을 루터의 번역으로 다시 기억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실 미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희망이 바로 시련을 통해서 도달하게 될 희망입니다. 헬라어로도 똑같은 단어인 ‘엘피조’를 씁니다. 바울의 자랑거리 두 가지는 결국 똑같은 겁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이 희망이야말로 단순히 신앙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의 차원에서 환난을 넘어설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말 자체를 낯설어 합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당장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친구를 사귀는 거를 더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일상에서 성실하게 사는 건 중요합니다. 우리 교우들도 모두 그렇게 살고, 또 그렇게 인정받는 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숲속에서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큰 나무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나무도 중요하고, 풀도 중요하고, 중간에 부러진 나무도 중요합니다. 어떤 나무나 풀이든지 살아있을 때는 좀 달라보여도 죽으면 모두 흙이 될 뿐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결국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그 영광에 참여할 것에 대한 희망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마 5:3절에 나오는 팔복의 첫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실제로 가난한 자까지 포함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난은 사람들에게 경원의 대상입니다.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마태복음은 역설적으로 그런 이들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그들에게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경쟁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입니다. 더 이상 욕망을 실현하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걸 가리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실제로 이해가 되시나요? 그걸 믿으시나요? 그런 희망으로 마음이 설레신 적이 있으신가요? 대답은 각자가 다 다를 겁니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거고, 점점 또렷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거고, 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분도 있을 겁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이게 왜 억지로 되지 않을까요?


그 이유를 바울은 본문 5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좀 현학적인 발언처럼 들리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명백한 진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야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혼이 충만한 사람이 되면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에 부풀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롬 8:37절과 39절에서도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는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신 이로 말미암아’ 넉넉하게 이긴다고 했고, 그 어떤 세상의 이념과 권력도 우리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낭만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달라고 막연하게 기도합니다. 또는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건 바른 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예수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인 이유는 그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유대교가 주장하는 율법과는 다른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제 우리는 행위와 업적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더 깊이 아셔야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작동원리에 완전히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걸 거래로 생각합니다. 반대급부로만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돈도 잘 벌어야 하고, 못난 사람은 못 살아야 합니다. 좋은 뜻으로라도 모든 게 ‘기브 앤 테이크’ 원리로 돌아갑니다. 믿음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율법 종교가 그것을 가리킵니다. 거기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상세하게 규정됩니다. 그 규정, 그 규범대로 잘 하는 사람이 종교적으로도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혁명적인 주장을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 그런 모든 규정과 규범은 그 능력을 잃었다고 말입니다. 그 방식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단지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가릴 것 없이 믿음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신약성서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랑 말고는 해명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듯이 우리 마음에 채워지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으로 기뻐하고, 그것을 자랑하면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환난까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능력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또는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성령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채워졌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지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성만으로 본다면 악한 사람들도 뛰어납니다. 지성은 단순히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일 뿐입니다. 수학 계산 능력이 뛰어나거나 암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지성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 지성을 통해서는 예수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지성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또는 종교나 정치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이 다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고전 1:21절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바울은 비록 세상에서 학문적으로 수준이 낮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채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령이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하게 하는 존재론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생명의 영입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은 성령이 오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왜 성령을 채우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성령을 채워주시면 분명하게 알고 믿을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결과만 알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믿게 되었다는 그 결과 말입니다. 이걸 놓고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늘 공평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거부하지 않았다고 말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거부한 겁니다.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령 운운해도 성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그런 속마음을 사람은 판단할 수 없지만 성령은 판단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거부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임하실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후 첫 주일이자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놀랍고 신비한 구원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성령은 그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생명의 빛이 그 사람의 영혼을 강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바울의 고백처럼 환난까지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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