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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30: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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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탐심을 버리십시오 (잠언 30장 15-17절)
디모데후서 4장 21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말합니다. 왜 사도 바울은 그런 간절한 전보를 보냈을까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겨울 전에 오라고 한 실제 이유는 배편 때문입니다. 당시 겨울에는 지중해를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에 배를 타지 않으면 적어도 넉 달을 기다려야 하기에 겨울 전에 오라고 한 것입니다.
한번 기회가 지나면 다음 기회가 오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성공은 기회를 잘 포착해 해야 할 일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60이 안 되신 분은 영어 공부도 더 늦기 전에 하십시오. 젊어서도 못한 것을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지만 네트영어로는 가능합니다. “이 나이에 뭘 하나?”라고 하지 마십시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입니다. 그런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항상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고 준비하십시오. 베짱이처럼 지내면 인생의 겨울에 허전해집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많이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가 신랑이 더디 오자 등불이 꺼졌습니다. 그때 기름을 구하러 나갔지만 그 사이에 신랑은 왔고 문은 닫혔습니다. 나중에 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처럼 기회를 놓치지 말고 기회가 지나기 전에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늘 자신의 기름을 점검하십시오. 기회를 놓치면 인생 발전도 그만큼 더디게 됩니다.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디모데는 겨울 전에 오라는 바울의 편지를 받고도 교회의 여러 바쁜 일 때문에 즉시 떠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일을 다 처리하고 지중해로 나가자 이미 겨울바람에 항해가 중단되어서 이듬해 4달 만에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바울이 순교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무덤을 찾아 무릎 꿇고 울면서 그 일을 평생 한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너무 바쁜 일 때문에 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래서 때로는 쉼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03년 4월, 아버님이 위독한 소식을 듣고 형제들이 돌아가며 미국 LA를 방문할 때 비수기라서 비행기 값이 66만원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2주간 맡기는데 학원비와 생활비도 쓰고 할머니에게 용돈도 드릴 겸 80만원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비행기 값이 어른 3분의 2 가격인 47만원에 나왔습니다. 맡기는 돈이나 비행기 값이나 별 차이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남겨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LA에 도착해 아버님을 뵙자 폐암 말기로 폐가 90% 이상 망가져 거동이 힘드셨습니다. 그때 우리 부부가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아이들의 할 일은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미리 말했습니다. “얘들아!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보는 거니까 최대한 기쁘게 해드려라!” 그러자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재롱을 많이 부렸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미소도 지으시고 어렵게 입을 떼어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고 좋아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얼떨결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큰 효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가치는 비행기 값을 훨씬 능가했습니다. 사실 잘 살아도 그런 경우에 자녀를 데리고 미국의 할아버지를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못했는데 그냥 엉겁결에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드리면서 효도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입니다. 앞에서는 잘 잡히지만 지나면 붙잡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잡으십시오. 특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나중에 제일 후회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보다 많이 살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날, 잘 나가는 한 사업가에게 낯선 사람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무개 씨! 이제 사업만 하지 말고 예배에 힘쓰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많이 나누며 사십시오.” 사업가가 말했습니다. “저도 그럴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젊으니 좀 더 돈을 벌고 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찾아와 그 낯선 사람은 똑같은 말을 했고 그 사업가는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업가가 한참 결재 도장을 찍는데 그 낯선 사람이 또 찾아왔습니다. “이제 저도 더 이상 오지 않겠습니다. 정말 이번에는 예배와 나눔을 결단하십시오.” 너무 귀찮은 마음이 들어 그를 사무실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나랑 같이 갑시다.” 사업가가 말했습니다. “저 바빠요. 오늘 바이어와 만날 약속이 있어요.” 바로 그때 얼음장처럼 찬 손이 그의 목덜미를 쥐었습니다. 알고 보니 죽음의 사자였습니다. 그 사업가는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제 곧 인생의 겨울이 옵니다. 더 늦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바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부모님에 대한 섭섭한 일만 많이 기억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두뇌는 항상 섭섭한 일에 대한 기억력은 아이큐 150 이상이고 좋았던 일에 대한 기억력은 아이큐 80 이하입니다. 그 말은 무수한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깊이 깨닫고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최대한 잘해드리십시오.
<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삶 >
성경은 효도를 대단히 중시합니다. 십계명의 첫 4계명은 하나님 관계에서의 계명이고, 나머지 6계명은 인간관계에서의 계명입니다. 그 인간관계에서의 계명 중에 첫째로 언급된 것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입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축복과 행복을 위해 제일 중요한 삶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란 뜻입니다. 그처럼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 필요할까요?
1. 드리는 삶
본문 15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사람의 두 딸이 어떻게 삽니까? 끊임없이 “달라! 달라!”고 하며 남을 의지하는 의타적인 삶을 살든지 남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처럼 삽니다. 그처럼 “달라! 달라!”는 삶은 반드시 불행을 낳지만 “드리자!”는 삶은 반드시 행복을 낳습니다.
옛날에 가난했을 때 부모님은 어디선가 먹을 것을 구해오셨고 어떻게든지 학비를 마련해오셨습니다. 그때 육체는 영양 부족으로 잘 자라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 마음은 비교적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나중에 보면 배불리 먹고 자란 부잣집 아이는 탕자가 되지만 부모의 눈물을 먹고 어렵게 자란 아이는 선한 리더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합니다. 어렵게 살았어도 부모의 눈물을 통해 자란 자녀들은 대개 거룩한 효자가 됩니다.
살면서 “철이 들었다!”는 말은 결국 받는 삶 위주로 생각하다가 드리는 삶 위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철이 들어 거머리 인생을 끝내십시오. 거머리는 거머리를 낳고 기생충은 기생충을 낳습니다. 효자는 효자를 낳고 불효자는 불효자를 낳습니다. 성인이라면 부모님께 “달라!”는 자세를 버리고 오직 “드리자!”는 자세만 가지십시오. 그래야 나중에 자신의 자녀도 드리는 자녀가 되고 드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녀가 됩니다.
본문 16절에는 만족을 모르는 것 4가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을 뜻하는 스올, 아이 배지 못하는 태, 물로 채울 수 없는 땅,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입니다. 그 말은 달라는 태도를 가지고 만족할 줄 모르면 지옥 같은 삶, 생명력이 없는 삶, 사막처럼 메마른 삶, 욕심의 불길에 타버린 삶이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요새 갑의 위치에 서서 을의 위치에 선 사람의 고혈을 빼먹는 거머리 인생들이 얼마나 욕을 많이 먹습니까? 일전에 한 청소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당시 청소 관리자가 상납하는 사람은 좋은 곳에 배치하고 상납하지 않는 사람은 힘든 곳에 배치하니까 분하고 억울해서 자살한 것입니다. 그때 청소부들은 월급 80만원 중에 20만원을 상납했다고 합니다. 거머리는 배가 차면 떨어지는데 거머리 인생은 그보다 더 지독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게 재물을 모아 좋게 잘 쓰면 복된 일이지만 거머리 인생들은 남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고 사회를 진흙탕으로 만듭니다. 그처럼 존경받지 못하는 거머리 인생의 성공은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 정당한 승부로 성공하고 그 성공을 나누는 것까지 해야 참된 성공입니다. 그처럼 거머리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가정에서부터 드리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효도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훈련과목입니다.
2. 존중하는 삶
본문 17절 전반부 말씀을 보면 아비를 조롱하면 눈이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힌다고 합니다. 그 말은 부모를 말로 조롱해도 안 되지만 조롱의 눈빛조차 보여도 안 된다는 암시입니다. 결국 부모를 최대한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부모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까? 부모님의 무수한 은혜를 받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부모님이 부모 역할을 잘 못했어도 그것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지 기본적으로 자녀들은 최대한 부모님을 존중하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가지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 일반적인 감사는 감사할 것이 있을 때 감사하는 일시적인 감사입니다. 둘째, 상대적인 감사는 어제의 삶을 생각해보고 “그래도 지금이 낫지.”라고 하면서 감사하고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내 처지가 그나마 낫지.”라고 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셋째, 절대적인 감사는 환경이 어떻든지 삶 자체로 인해 감사하고 특히 구원받은 삶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감사가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성도입니다.
살면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많이 하며 넘치게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최고로 좋은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가정도 행복해지고 최고의 자녀 교육도 이뤄집니다. 부모들이 감사하며 살면 자녀들도 감사하는 자녀로 변합니다. 그처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려면 특히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인 IQ가 높아야 감사도 잘하게 됩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를 작게 보고 신세진 것이 많다고 생각해야 감사도 넘치게 됩니다. 셋째,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일은 잘 될 거야! 내 때가 반드시 온다!”란 소망이 있어야 감사도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하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런 감사가 결국은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상처와 수치와 고난도 많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돕는 손길 때문에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살면서 받은 것들은 많지만 자신이 한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크신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효도는 제대로 하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부부간에도 서로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오래 산 부부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부부간에 오래 살았다는 말은 서로 빚을 많이 졌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는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찬송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얼마나 실감나는 찬송입니까?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할 말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은혜를 못 갚고 살았습니다.”란 고백뿐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사람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사십시오. 특히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최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부모님을 최고로 높여드리십시오.
3. 순종하는 삶
본문 1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면 역시 비참한 운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부모님께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21장 20-21절 말씀을 보면 자녀가 부모를 거역하면 잡아다가 장로들에게 데려가서 부모가 “내 아들이 순종하지 않고 방탕하게 삽니다.”라고 외치면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큰 죄로 보셨습니다.
때로 이해되지 않는 일에도 이삭처럼 순종하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할 때 이삭은 20세 전후의 청년이었고 아브라함은 120세 전후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이 너를 제물로 바치라고 했단다.” 그때 이삭은 “아버지! 노망 드셨어요?”라고 대들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순순히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누웠습니다. 그런 절대 순종이 있었기에 이삭이 가는 곳마다 축복의 샘이 터진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깨지는 가장 큰 이유는 효의 부재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도 잘 충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 초대교회 때는 효와 믿음을 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순종을 중시했습니다. 그처럼 때로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납득되지 않아도 힘써 순종하면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 탐심을 버리십시오 >
이제 거머리의 두 딸처럼 부모님께 “달라! 달라!”고만 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부모님께 드리고, 부모님을 존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 원초적인 탐심을 극복하고 복 받는 제일 기초 훈련과목을 잘 통과하십시오. 왜 사람이 행복하지 못합니까? 가장 큰 이유는 마음에 도사린 탐심 때문입니다. 왜 가정의 행복이 파괴됩니까? 역시 탐심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왜 사회에 혼란과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깁니까? 역시 탐심 때문입니다.
요새 탐심 때문에 형제간에 다투고 심지어는 재판까지도 합니다. 특히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닌 부모님의 유산을 더 갖겠다고 싸우는 모습은 더욱 가관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모의 가슴이 찢어지겠습니까?
어느 날, 재벌 회장의 임종을 앞두고 한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 후 옆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고 큰 소리가 났습니다. 목사님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그 재벌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자식들이 유산 문제로 싸우는 겁니다. 저러다 살인이라도 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가난했으면 이런 다툼이 없었을 텐데 자식들을 잘 살게 해준다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안고 삽니다. 누가복음 12장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형제간에 재산 문제로 다투다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산에서 3분의 2는 형이 갖고 3분의 1은 동생이 갖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유산을 혼자 다 차지하려고 하니까 동생이 예수님께 와서 “형에게 명해서 재산을 나누게 해주세요!”라고 한 것입니다.
앞으로 유산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양보하십시오. 그리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에게 최대한 상속시키십시오. 미국에서는 변호사의 공증을 통해 자식보다 자신의 뜻을 이룰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있는데도 자기와 함께 했던 개에게 유산을 다 물려줍니다. 자식들이 개만도 못했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한 가장의 딸이 결혼하면서 집에서 기르던 개를 달라고 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개가 다시 와서 그 가장의 대문을 긁었습니다. 가장이 개를 반가이 맞으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딸보다 낫구나!” 자녀들은 쉽게 은혜를 잊지만 개는 주인의 은혜를 못 잊어서 발가락을 핥습니다. 그런 개만도 못한 모습을 보이며 부모가 뼈 빠지게 번 돈을 더 가지겠다고 부모의 임종 침상에서 싸운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게다가 유산 문제로 동서 간에 싸운다면 그것은 더욱 가관입니다. 친정 문제에서 사위는 가만히 있고 시집 문제에서 며느리는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친정과 시댁 문제는 그 집 아들딸이 해결하게 해야지 사위나 며느리가 개입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서 결국은 동서들 간의 싸움이 형제들 간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근질거리는 투쟁심을 잘 억눌러 외면해야 할 것은 외면하는 지혜를 발휘하십시오.
그처럼 유산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받고 예수님은 어리석의 부자의 얘기를 들려주며 자기를 위해 재물을 땅에 쌓지만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쓰라고 도전합니다(눅 12:21).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에 먹을 것이 넉넉하면 영혼이 만족할 줄 알았지만 영혼은 세상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의 문제보다 탐심의 문제가 크고 또한 절대적인 빈곤 문제보다 상대적인 빈곤 문제가 더 큽니다. 배고플 때는 먹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만 조금 살만 하면 남의 것 때문에 고민합니다. 절대적인 빈곤은 육신의 고통을 주지만 상대적인 빈곤은 마음의 고통을 줍니다. 없을 때는 우애 있게 살다가 조금 살만 하면 외적인 다툼이 생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탐심을 다스리는 나눔의 훈련을 하십시오.
옛날에 사이좋게 사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동생이 결혼하고 분가했습니다. 그해 농사를 잘 짓고 형이 생각했습니다. “살림을 새로 차린 동생이 살기 어렵겠지.” 그래서 형이 곡식 단을 지고 동생에게 갔습니다. 그때 동생도 생각했습니다. “형은 부모님 모시느라 힘들겠지.” 그래서 동생도 곡식 단을 지고 형에게 갔습니다. 그렇게 밤에 곡식 단을 지고 가다가 중간에서 둘이 부딪쳤습니다. 서로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가 사연을 알고 서로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런 우리민족의 얼이 성도의 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잘 살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오히려 더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과일 빛깔을 좋게 하려고 농약을 듬뿍 뿌려서 생선이나 채소도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처럼 탐심 때문에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만 돈 벌면 된다고 불량식품을 만듭니다. 또한 탐심 때문에 영적으로도 점차 빈곤해지면서 교회도 유럽과 미국 교회처럼 점점 비어가고 있고 형식적인 믿음을 가진 성도도 점차 늘어나고 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 의사가 처갓집에서 차 열쇠, 집 열쇠 2개를 받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사 친구는 차 열쇠, 집 열쇠에 병원 열쇠까지 3개를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열쇠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놀러온 처남이 보는데서 열쇠 문제로 싸우다가 아내를 발로 차서 낙태까지 시켰습니다. 결국 이혼하게 되었는데 그 청년의 아버지가 교회 장로였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지금 탐심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면서 무서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탐심이 많은 인색한 사람은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하나님과 물질을 겸해 섬길 수 없다!” 결국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 덕목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교사님들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도 필요한 것이 많지만 더 필요한 곳으로 우리 시선을 끊임없이 돌릴 때 탐심도 극복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소원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갈등과 문제의 제일 원인은 탐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약 1:15). 그러므로 탐심을 멀리하고 드림과 나눔과 베풂의 삶을 열심히 실천하십시오. 그때 가정에는 우애가 넘치고, 교회에서는 시험 드는 일도 적고, 인간관계가 깨지는 일도 거의 없게 되고, 삶의 보람과 행복은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항상 잘 비우고 잘 나눔으로 행복과 평안을 얻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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