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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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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선택할 때 우선순위
본문: 마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세계적인 테너 가수로 성장하기 까지는 그의 아버지의 힘이 컸습니다. 빵가게를 하던 아버지는 파바로티가 어렸을 때 남다른 음악적 재능과 타고난 목소리를 지닌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 소질을 계발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파바로티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졸업할 때 “음악과 교육” 사이에서 방황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던 파바로티에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두 의자의 사이를 크게 벌려 놓고 두 의자에 동시에 다 앉으려고 하면 바닥에 떨어진다. 평생을 보고 하나의 의자만 택하라. 그리고 그것은 네가 결정할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트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란 선택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한 여인을 아내로 선택하게 되면 다른 여인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결정하기 어려운 때는 동전을 던지거나 제비를 뽑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행6:3)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은 도처에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느니, 평생을 좌우한다느니 하는 광고 문안이 있으나 신앙의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신앙은 양자택일 가운데서 좋은 길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지니라 하니...”(왕상18:21)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들 이삭이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 37, 38)
한국인 선교를 위하여 만주에서 일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1941년 10월 일본 경찰에 연행된 미국 정통 장로교 소속의 헌트 선교사가 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겨울이 되면서 날씨가 추워져 생활하기가 곤란하여 요를 넣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외투 한 벌만으로 딱딱하고 찬 감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는 소문이 감옥 안에까지 퍼져 술렁거리던 어느 날 헌트 선교사는 소장실에 불려갔습니다. 소장실 입구에는 전에 감옥 측에 부탁한 짚을 넣은 요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몸집이 크고 공부 깨나 한 것 같은 일본인이 책상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 미국에 돌아가기를 원합니까? 물론 우리가 당신을 보낼 것이라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러나 만약 갈 수 있다면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이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감옥에서 많은 모욕과 고난을 받은 뒤 이 나라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문 앞에 있던 누더기 요를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이냐? 아니면 저 요 대용품을 가지고 한없는 감방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냐?"
헌트 선교사는 결정했습니다.
"나 자신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보내신 것을 확신하며 따라서 내가 있어야 할 그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일본인 간수는 진노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우리는 선택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고난의 길)과 세상 부귀영화의 길, 육신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 중에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롬8: 5- 18)
여러분은 세상으로 통하는 넓은 길을 택하시렵니까? 좁은 길로 방향을 돌리십시오. 그 길은 예수님께서 안전하게 만드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 14)
저는 공군에서 제대하고 국제상사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주일성수냐 직장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나는 주일성수를 위해 국제상사를 버리고 학교 교사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십자가의 군사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알고 선택하여야 합니다. 사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산소, 전파, 양심, 사랑이 없으면 어찌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돈이나 보석 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돈 보다 더 보배롭고 귀한 것은 시간, 건강, 지혜, 부모형제, 명예, 자유, 미(아름다움), 국가, 믿음, 소망, 사랑, 생명,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일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내 열 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 30 :15∼20)
성경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하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마19:16- 22) 부자 청년은 재물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야곱과 에서의 선택을 보십시오. 야곱은 장자권을 원했고, 에서는 어리석게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를 보세요,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그리고 자기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는 선택을 하여 천추에 치욕을 당하는 멸망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길을 택하였고,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운다는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다니엘의 3친구도 금송아지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뜨거운 풀무불에 던지우는 사실을 뻔히 눈앞에 보면서도 절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친구를 선택할 때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1. 어리석고 미련한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잠17:12)
2. 말이 많고 입술을 벌린 자입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2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10:19-21)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
3. 분노를 쉽게 내는 자입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잠22:24)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14:17)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시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 19)
4. 술과 탐식, 쾌락을 즐기는 자입니다.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23:20)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23:29-31)
5.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거부하고, 권세자를 미워하고 정치 비판만 일삼는 자와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24:21)
‘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겔20:38)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
6. 음행하며, 음란한 말을 일삼는 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전5:9)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7. 믿지 않는 자, 우상숭배자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6:14)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8. 교만하고 오만방자한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 보다 나으니라.'(잠16:19)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숯을 만지면 너도 더러워지고 오만한 자들과 사귀면 너마저 오만해진다.
9.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어떤 부부가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 잘 보여?"라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네, 아주 잘 보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럼 자리 바꾸자. 내 자리에서는 안 보여"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1- 2)
이기주의자들은 약속을 하고,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손해가 날 것 같으면 쉽게 약속을 파기하고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할 것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죄인이고 부족하고 허물이 있습니다. 잘못이 있어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10-11)
우리가 옷을 입을 때 겉옷을 먼저입고 속옷을 뒤에 입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밥을 지을 때 쌀부터 먼저 넣고, 한참 후에 물을 부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한 부자 처녀에게 3명의 청년이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들 중 누구를 선택할 까 고민했습니다. 특히 자기의 돈을 탐내 결혼하자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마라톤 시합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합 도중에 많은 현금을 뿌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2청년은 돈을 줏기에 열심하여 탈락하였다고 합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 13)
배우자를 선택할 떼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신앙, 미모, 재능, 재력, 성격, 가정 중 어느 것을 어느 것을 중시하겠습니까?
유머: 어떤 노총각이 한 가지 소원만 들어주는 요술 방망이가 생겼는데 돈과 여자를 동시에 말했더니 돈 여자(정신 이상)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도자나 친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고 함께 갈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교회 선택이 배우자 선택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교회가 먼저 할 일은 화려하고 큰 성전 건축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전하는 것, 구제, 봉사, 성도의 교제입니다. 어떤 중국인과 미국 청년이 대화하는 중에 중국인이 물었습니다. "당신네 미국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수염 깎고 세수를 합니다." 그러자 중국인은 "그래요? 우리 중국 사람은 제일 먼저 옷을 입는데요" 하면서 서로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도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루의 생활에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우선순위를 바로 택하는 것은 그날의 성패를 크게 좌우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일생의 우선순위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실로 누구에게나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이는 돈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듯하고, 어떤 이들은 권력을, 어떤 이들은 지식을, 어떤 이들은 명예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들 자체가 인간의 삶의 최고 목표가 되겠는가 하는 문제는 깊이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돈이나 지식, 지위나 명예 등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삶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최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 보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의식문제에 목표를 두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공의, 긍휼, 사랑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더 앞서야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선순위를 세상적인 것이나, 육적인 것보다 하늘나라일과 영적인 것을 우선해야 하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에도 어느 쪽이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 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선택하여야 바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신30:19, 왕상 18:21)
모든 사람은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돼야 합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이 잠시 있을 것보다 중요함은 당연합니다. 영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중요하고, 하늘에 속한 것은 땅에 속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보통 사람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과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1851년, 스웨덴의 오페라 가수 제니 린은 최고의 명성을 날리며 뉴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팬들의 수는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대는 더 이상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무대를 떠난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대에 오르는 일 때문에 성경을 묵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더구나 이생 너머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전혀 없었죠.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우선순위 목록 맨 위에는 하늘의 일들이 올라가야 합니다. 물론 세속의 일들은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큰 일과 작은 일,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정말로 중요한 일은 하찮게 여기고 중요하지도 않은 하찮은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정말로 나는 내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내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중요한 일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고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나의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구두로 돈을 엄청나게 벌은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구두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 성공의 비결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매사에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셋째는 구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하여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까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때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며, 하나님의 뜻인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먼저 선택하여야 합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베벌리 셰아(Beverly Shea)라는 한 월급쟁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극심한 불황으로 회사마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그는 찬송가를 연습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회사문제로 인해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셰아는 건반 위에서 조그마한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그것은 어머니 레아 밀러(Rhea Miller)가 괴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적어놓은 시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하길 원했습니다. 셰아는 이 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붙여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찬송가 94장, (통)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입니다. 어머니의 지혜와 사랑이 한 젊은이의 방황을 멈추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교통순경입니다.
함께 찬송부르겠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둘째, 우리는 선택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마6:33)
허버트라는 목사가 6,25동란시 북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를 괴롭히는 인민군 간수가 성경을 한 손에 들고 감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네가 믿는 예수를 멸시한단 말이야! 자, 어디 네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그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 보여 달란 말이다. 내가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을 것인데, 어떤 손에 내가 성경을 들었는지 네 하나님께 가르쳐 달라고 해! 만약에 너의 대답이 틀리면 나는 권총으로 너의 머리를 쏘아버릴 것이다.”
험악한 간수는 이렇게 말하며 두 손을 등 뒤로 감추었습니다. 허버트는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었습니다. “어디보자, 너는 네 하나님께 기도를 했나?” 간수가 물었을 때 허버트는 고개를 끄덕했습니다. “자, 그러면 그 하나님은 내가 어떤 손에 성경을 잡고 있는지 말해 주더냐?” 허버트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그것을 여쭈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물어보았단 말이냐?” 허버트는 간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첫째는 내 마음이 분노로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고, 둘째로는 당당히 죽을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간수의 얼굴은 일그러지며 총을 들었던 손은 무릎 앞으로 힘없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는 후다닥 감방에서 뛰어 나가 버렸습니다.
셋째, 세상으로 통하는 넓고 쉬운 길 보다는 십자가의 길, 의의 길,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합니다.(마7:13-14, 눅13:24)
뉴욕의 한 유대인 여자가 예수님을 영접헀습니다. 가족들은 그 여자로 하여금 새로이 얻은 믿음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유럽여행을 시켜주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만 한다면 갖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어떤 일이라도 다 하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굳세게 버티었습니다. 마침내 여자의 부모는 딸을 위해 만찬회를 베풀고 모든 친구들을 다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식탁에 서서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밤 특별한 이유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 딸이 저 비천한 나사렛 사람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밤 내 딸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단념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부모의 집을 떠나든가 해야 합니다.” 이 말에 놀라고 당황한 딸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얼마후 딸은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후부터 예수로만 보배 삼겠네....” 노래를 마친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꾸려 부모의 집을 떠났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마6:24)
넷째, 생명력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신30:19-20, 잠11:30)
큰 저택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 집 여주인은 겁에 질려 홀로 뛰쳐나왔다가 갑자기 불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귀중품이 들어 있는 보석상자를 안고 나오면서 “아, 이제 살았다. 내 귀고리, 내 목걸이, 내 팔찌, 모든 보석을 다 찾았다. 참으로 다행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사람들이 “저기 보세요. 아이들이 불이 난 집의 창가에 있어요”라고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내 아이들!내 아이들!”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불 속에 있음을 알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이미 불은 아이들의 생명을 삼켜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의 귀중한 생명을 건지지 못했습니다.
세상일과 생명을 구하는 일 중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
민수기17장에 보면 고달픈 광야에서 40년을 청산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갗추고 있을 때 그들은 한 가지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중 한 지파를 선택하여 제사장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모든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재판하는 권한을 가진 막중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지파가 서로 선출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열두지파의 대표자가 지팡이에 이름을 세기고 하루동안 제단의 법궤앞에 두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열두 지팡이 중에서 레위지파의 대표인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렸습니다.(레17:8) 결국 모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결과대로 이 지팡이의 소유자인 아론이 속한 레위지파를 제사장지파가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때 무엇보다 먼저 생명력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다섯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되는 계명입니다.(마22:36-40, 신6:5) 다른 어떤 계명보다도 이 계명을 우선적으로 순종해야합니다.
룻은 모압여인으로 결혼한지 몇년 만에 남편도 죽고 이제 시어머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자기의 나라에 남아 새출발하고 싶었겠지만 그러나 그녀는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인가를 생각하고 단호히 시어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또한 롯은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신의를 철저히 실천했습니다. 그의 시어머니가 새출발하라는 권고도 물리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7)라고 하며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 시어머니를 봉양하였습니다. 그래서 후일 그녀는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뜻을 먼저 앞세우며 살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마12:50, 롬15:32)
누가복음 10장 30절 이하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만나 거의 죽게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도 피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에게 아마도 바쁜 일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바쁘고 소중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러나 여행 중인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이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 사랑을 실천한 지혜로운 선택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의와 희락과 평강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도록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시고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선택할 때 먼저 주님의 나라와 공의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환난이나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선택하고, 믿음에 견고히 서는 성도가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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