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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1-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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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곽면근 목사 |
참고 : | 2010.05.16 누림교회[기침] http://www.nurim.or.kr/ |
출11장1-12장14
기적을 더하리라
Ⅰ. 기적을 더하리라.
1. 쫓아내리니
흔히들 말하기를 고대의 전쟁은 왕들의 전쟁도 아니고 국가 간의 전쟁도 아니요 양국의 신들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애굽은 양쪽의 군대가 동원되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출애굽기에 나오는 상황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첫째, 양국의 신은 서로 자신의 신이 강하다고 믿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조차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둘째, 애굽의 신이 지는데 애굽은 항복을 하거나 나라를 내어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이 애굽을 이겼다면 당연히 애굽을 차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껏 얻어낸 승리의 결과가 찬란한 문명국가 애굽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광야로 나가는 것입니다. 패배한 애굽 백성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이스라엘이 쫓겨나는 것입니다. 10가지 이적의 목적은 결코 영토 싸움이나 노예해방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목적
11:5절의 말씀은 이 말씀은 이미 4:23절에 나와 있었습니다. 4장은 아직 10가지 이적이 시작도 하지 전입니다. 그러니까 10가지 이적은 하나를 행하고 안 되니까 두 번째를 행하고, 그래도 안되니까 세 번째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10가지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듭거듭 시행착오를 하다가 최종 마지막 판에서 역전승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애굽의 신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애굽의 신들은 실체가 아니라 백성들이 신으로 간주하는 것들입니다. 정작 깨어져야 하는 것은 애굽의 신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애굽 백성들의 마음, 즉 죄인들의 마음, 인간들의 죄적 종교성입니다. 죄인의 마음, 죄인의 사고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이적에 이적, 기적에 기적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Ⅱ. 유월절 어린 양
1. 예물이 아니라 식물
12:3~4절의 내용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서는 어떻게 이해가 됩니까? 첫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제 신이 사역을 펼치실 것이니까 먼저 신에게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물이면 예물의 특성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신에게 드리는 예물이니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한다면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타종교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과 이방신의 성품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조건과 이방신의 요구조건 또는 하나님의 행동양식과 이방신의 행동양식이 똑같다면 굳이 하나님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입니다. 즉 유월절을 위하여 잡은 양이나 염소는 ‘예물’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물은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신이 드시도록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은 신이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것입니다. 애시당초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이 식물을 드신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것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애시당초 기독교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을 위한 예물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인간이 행하는 것은 예물, 즉 신으로 하여금 역사하도록 하는 조건물이 아닌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아홉 가지 이적을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인간이 매번 이적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예물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은 이적의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종교행위는 언제나 나중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우선되고, 신이 반응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선행하고, 인간의 반응이 나중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왜 먹을까?
10번째 이적이 등장하기 전에 잡은 양이 예물이 아니라면 12:5절도 예물의 조건이 아닙니다. 12:5절 ‘표현이 왜 등장합니까? 신에게 드릴 것이니까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시면 안 됩니다. 정반대로 표현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먹을 것이니까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해도 인간의 질병 중에 절반은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흠이 없고 가장 좋은 상태의 것을 먹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날 음식을 먹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날 가장 좋은 것을 먹으라고 하실까요?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그날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날 밤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백성이 행한 것은 없지만 되어 진 것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 밤에 살아난 것입니다. 원래 그들도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 죽었어야 하는데 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나기 위해서 행한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대로 ‘죽다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 있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있는 것에 감격해서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3. 변화의 인식
자기가 행한 것이 없어도 자기에게 되어 진 것은 인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기를 ‘이 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면 그 음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괜히 양한 마리가 죽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밤에 죽었어야 하는데 내가 목숨을 부지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죽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면 감격 그자체입니다. 당연히 잔치를 벌이고, 가장 좋은 양을 잡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물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변화된 인간의 삶에 대한 감격을 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감격이 있으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복을 간구하는지 아십니까? 자기에게 되어 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되어 진 일이 없으니까 되어 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되어 질 일을 기대하는 소망과 희망의 종교가 압니다. 물론 종말을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되어 진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완성의 종교입니다. 죄인이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삶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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