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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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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9-08-12 http://www.yullin.org |
마지막 소원 (2)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I. 본문해설
이 시는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초창기의 시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대적과 원수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말고 당신이 노하심으로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때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쓴 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시련과 고난은 우리 자신 안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형통한 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적절한 때에 시련과 고통을 주시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경험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땅히 유지해야 할 성도로서의 궁극적인 소원을 저버리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시고 또 일깨우십니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좌절과 고통은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의 각도로 해석하게 되면,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에 붙어있지 못하도록 훈계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고통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 시인은 인간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누리고 영고성쇠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시련과 고난의 계곡을 지나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남아있는 소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구속주 하나님이십니다.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이중의 신지식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먼저 하시고 나중에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 때에는 구속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볼 때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II. 고난 속에서 찾은 소원
B. 하나님을 사모함
시인의 첫 번째 소원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존귀와 건강을 잃는다 해도, 그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역을 할 때, 회심치 않은 교인들로 인해 그는 많은 고난을 받습니다. 구제 사역과 목회와 수많은 신학적 논쟁을 위해 애쓰는 칼빈을 사람들은 비난했습니다. 온갖 고초를 겪은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하나님의 큰 주권 속에서 인생에 일어나는 좋고 나쁜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일어나는 일이다. 나의 소원은 오직 주께 있사오니…”
현실은 요동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에게 비추이면 고난을 통해서는 주님을 붙들게 되고, 평온한 환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를 이끄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참된 지식의 빛이 없다면,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떠날 것이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는 자기 힘을 믿고 하나님을 버릴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 그 때 비로소 나 같은 인간을 부르셔서 당신을 사랑하라고 부르시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어디에서 여호와를 앙망하고 싶다고 고백합니까? 바로 여호와의 전입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집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다윗시대에는 아름다운 성전이 있지 않았습니다. 성막이 있었습니다. 성막은 가장자리가 광목 같은 천으로 에워싸여져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성막 뜰이 나오고, 그 다음은 번제단, 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성소가 나오는데, 12평은 성소이고 6평은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그 지붕은 물돼지 가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햇빛에 그을고 비를 맞고 마르고 하면서 긴 세월이 흐르니 오래 사용한 가죽 가방처럼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러한 성막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살던 왕궁이 화려했겠습니까? 성막이 화려했겠습니까? 당연히 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성막 안에서 발견한 그 아름다움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막 안에서 이루어진 제사입니다.
그 제사를 통해 시인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성소에서 자기가 키운 양이 번제단에서 불붙을 때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며,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금빛 도구 때문이 아니라 제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사람들이 교회에 왔을 때, 외관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보여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공동체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혼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잘 믿어야지 하고 도전 받게 해주는 것은 교회 지체가 하나님 말씀에 감동 받으면서 주님을 믿으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에게만 알려주시지 않고 교회에서 보여주십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 주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만큼 지체들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어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III. 결론
여러분 안에 있는 많은 욕망을 버리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어제 김복남 전도사님 강의를 들으면서 그렇게 성경한 장을 넘기기 위해서 뺨을 부비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필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에게 없다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습니까. 욕심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해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소원을 아뢰십시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사랑함.” 변하지 않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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