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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의 기도

마태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282 추천 수 0 2013.06.10 12: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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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6-7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9-09-06 http://www.yullin.org 

골방의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6-7).

 

I. 본문해설

본문은 산상수훈에 포함된 구절입니다. 5장부터 시작된 산상수훈은 천국 백성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별히 6장에서 주님은 기도할 때의 외식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외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짐짓 선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기도할 때조차 다른 사람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그 답이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어귀에서 두 손을 높이 들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도 그들은 똑같이 사람들이 자신을 잘 볼 수 있도록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와 같은 식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외식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천 년 전에 주님의 경고는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II. 기도의 오류

 

예수님은 먼저 기도생활의 오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외식하는 기도였습니다.

 

A. 외식하는 기도

 

기도는 언약백성이 하나님과 만나는 교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교통의 수단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아뢰고, 주님이 주신 마음을 받기 때문에 기도생활은 언약백성으로서의 독특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신약시대는 물론 구약의 백성들도 기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 성품의 빛 아래서 또한 분량만큼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이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것인데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지없이 그것은 기도의 목적에서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외식하는 기도의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원래 중언부언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성경에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으나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기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하나님께 드렸던 간절한 기도는 세 번이나 똑같이 되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장에게 호소하는 과부의 간절한 기도 역시 되풀이 되었던 기도임이 틀림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중언부언의 기도가 말의 반복이 없다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드리는 모든 기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영혼의 시선이 하나님께 꽂히지 않은 가운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기도는 모두 중언부언의 기도인 것입니다.

 

B. 기도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

 

또한 주님은 이런 지적과 함께 기도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 이방인들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였고 자기의 신들은 많은 말을 해야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깨우쳐주지 않으면 신들은 모든 일을 다 알지 못하고, 알려주었더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이기에 되풀이해서 더 많이 기도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마음을 바치지 않더라도 기도문을 자꾸 외우면 신들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기도의 오류를 범한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배울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그분은 이미 우리가 언제 기도할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아십니다. 만약 인간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깨우쳐 드릴 것이 있다고 하면 그분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한두 번 기도해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시고 여러 번 간절히 때로는 가혹할 만큼 자신의 마음을 단련한 후에 겨우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어떠한 경륜일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확신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이고 둘째는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영혼을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바쳐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 몸밖에 있는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부여하시기에 우리로 그렇게 기도로 매달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십시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많이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깊이 녹아졌을 때입니다. 기도가 이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불길 옆에 놓여서 은근한 열기를 지니고 있지만 한 번도 망치질을 받아 쓸모 있는 칼로 변모된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로 달구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랜 기간의 신앙의 경륜을 자랑하지 말고, 단 쇠와 같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두드리실 때 변화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달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가 기도해야만 겨우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고 받아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로 향하게 하시고 집중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보다 우리의 기도제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도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 기도제목보다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직시하게 됩니다. 또 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 앞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거짓과 더러움의 찌끼가 있다는 것도 기도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악들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떨쳐버리려고 순전한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그런 간절한 기도의 과정을 통해서입니다. 마치 땀을 통해 중금속과 노폐물들을 쏟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시는 것도,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인 것입니다.

 

III. 경건의 능력과 개인기도 생활

 

이러한 기도의 실천이 경건의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개인의 기도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기도생활이 자주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하나이지만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보이는 한 교회의 한 지체들로서 교회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 전체는 아니더라도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위해 손을 잡은 작은 모임을 통해 기도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지식, 물질이 흘러가며 하나님이 일하심을 함께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나눔과 용서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적 기도는 매우 중요하고, 그 기도의 불길을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거룩한 부흥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공동체적 기도의 강조가 개인기도의 필요성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는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A. 기도와 은밀함

 

사실 함께 드리는 공동체적 기도가 은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개인기도는 충분히 자기를 숨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좋은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을 응시하는 은밀함이 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골방은 처음부터 만들어질 때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만든 방이 아닙니다. 필요가 없는 물건을 치우거나 혹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골방을 가리킨다기보다 개인기도의 은밀성을 강조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골방은 진짜 골방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빈들과 벌판, 깊은 밤,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은밀한 가운데 드리는 개인기도 생활이 우리의 모든 경건의 능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늘 분주하게 지내지만 공허감이 깃든 것을 경험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이 명령하신 개인기도 생활의 현저한 부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의 골방이 있으십니까? 골방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개인 기도를 하도록 하나님과 약속된 시간과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언제가 당신의 기도 시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특별한 기도의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늘 기도합니다.”라고 답한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워낙 깊은 기도 속에서 살기에 모든 삶 전체가 기도의 영에 의해 압도된 사람이든지, 아니면 거의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 속에는 기도의 영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하셨지만 예수님은 보다 많은 시간을 개인의 기도 속에 바치셨고 정해진 기도의 시간과 공간이 있었습니다. 골방과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빈들, 한적한 곳으로 명명되어지는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은폐된 공간을 찾으시고 그 공간을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의 골방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무너진 개인기도생활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에 그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골방조차 없다면 그는 거의 기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골방이 없다면 깊이 반성하고 나머지 시간들이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지 되물어야 합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든지 관계없습니다. 골방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승리하는 기도생활의 비결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기도를 위해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골방에 늘 들어가고 외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느껴진다는 기도의 은밀함과 깊이가 없습니다.” 주님의 다음 충고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B. 은밀함과 집중

 

주님은 다음으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충고하십니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하나님을 향한 섬김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하는 기도지만, 마음으로 하는 모든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각과 말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행동과 감각도 마음에서 해석되고 발현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없는 행동도 사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마음의 기도를 강조하시는 이유는 그 마음 전체가 다른 것들을 향해서는 닫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방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지 못하고 문이 활짝 열려서 세상의 근심과 염려, 유혹과 자랑이 함께 들어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은밀한 기도가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문이 닫힌 골방을 가진 것은 기도의 은밀함과 집중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방사람들이 중얼거리는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임으로 하나님을 법칙처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장 사악하게 여기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여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집중입니다. 그리고 이 집중은 은밀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무엇에도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함 그리고 기도자의 마음 중심이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점령되지 않으려는 배타적 독점성, 이런 것들에 의해 기도가 하나님을 향해 집중될 때 그 기도는 마치 렌즈를 통해 모아진 햇빛처럼 강력한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없었던 교통을 도입하는 놀라운 힘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집중이 그런 위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집중된 마음을 순결한 마음으로 보시고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껍질뿐인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몸으로는 많은 일들을 섬기고 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해 말하지만 그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그 사람들에 관해서 간구하는 기도의 시간은 현저히 적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히 지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무한한 경쟁에 내몰립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경쟁사회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이 경쟁에서도 패하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겨우 경쟁자들에게 치이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업가가 되지 말고 유능하여 성공해서 주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만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겨우 졸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뛰어나 그 지식으로 나라와 이 사회에 이바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쏟아야 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경쟁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동안, 기도하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그분 한 분만을 바라보기에는 의지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매우 커다란 영적인 손해입니다. 하나님 없이 몸부림을 친 일 년보다 주님과 동행한 하루가 더 많은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번영을 꿈꾸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음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시선, 심지어 자기의 시선으로부터도 멀리 떠나 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한분만을 앙망하며 그분만을 전심으로 바랐던 시간들이 얼마나 없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그래서 기도하는 순간 “나의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충만히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라고 한 일치의 상태가 얼마나 드문 경험이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개인기도 생활에 진지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동안 우리의 경건의 능력은 흐려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물질에 대한 욕망에 불타고 마음은 끊임없이 헛된 것을 따라다니며 영혼과 정신은 피곤함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마음을 새롭게 하였던 영적인 총명은 흐려지고 정서는 정욕에 물들고 의지는 선한 곳에는 게으르고 악한 길에는 재빨랐습니다. 순간 일어나는 분노는 삭힐 것이 없어서 그 분노 속에서 매일을 허비하고 하나님 앞에 주님이 주신 귀한 은혜들을 우리의 욕망과 헛된 분노로 소멸하지 않았습니까? 급기야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풀무불 속에 들어가 녹아진 경험이 없고, 있었다 할지라도 지금은 식었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서도 반성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IV. 결단 : 개인기도의 부흥이 필요함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섬길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특권입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놀라운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길 수 있게 하시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 한숨을 쉬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잃어버렸을 때 저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서 물러난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십시오. 다른 것보다 그의 기도생활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한때 교회에서 생애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녹는 기도 가운데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오로지 구속한 주님 품으로 깊이 들어가던 절절한 개인의 기도생활이 사라진 것입니다.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칼빈은 고난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기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에 관한 많은 교훈과 설교, 주석 등의 기독교강요의 내용은 깊은 기도 속에서 산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도의 심층적인 문제들까지 기록해내고 있습니다. 감당해야 했던 많은 고난과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 배신을 당하면서 죽음의 위협까지 경험해야 했던 끔찍한 환경 속에서 그에게 유일한 위로는 주님께 드리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를 쏟아 붓는 강렬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질그릇처럼 약했고 지푸라기처럼 가냘팠지만 하나님이 그를 붙드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덜 중요한 시간은 과감히 빼고, 기도시간을 확보하고 힘껏 한적한 곳을 찾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미끄러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시고 총명이 흐려진 사람에게는 성령의 조명으로 빛을 주시고, 말씀의 은혜에 싫증난 사람들은 다시 말씀의 미각을 회복시켜 주셔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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