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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사야 이상호 목사............... 조회 수 3998 추천 수 0 2013.06.12 2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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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46:3-4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46:3-4                                            

09. 5. 10, 어버이주일

 


* 이제까지 어버이주일에는 효도하라는 설교만 했습니다. 즉 젊은이들에게 한 설교였습니다. 오늘은 노인, 어버이들에게 설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년기의 시작을 언제쯤으로 보아야 할까요?

존 맥아더 장군은 78세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늙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노쇠하는 이유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린 자는 마음의 주름살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에는 65세를 노년의 나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65세가 되면 자신도 노인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하고 주변에서도 노인으로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늙을 수도 없고 무기력한 노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노인에 관한 많은 편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인이 되면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그럭저럭 여생을 보내다가 죽어야 하는 시기이다'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시기이다' 노인은 재발견 되어져야 합니다. 노년기는 실패의 자리가 아닙니다. 누구나가 늙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성장의 한 과정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것 없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필요는 더구나 없습니다. 노년기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이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늙었다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년기를 결코 부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습니다. 만약 노인의 계절을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우리세대와 다음세대들을 위해 더욱 완숙한 공헌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 자신부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년기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노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노년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하고, 또 그분들을 위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까요?

 

1. 외로운 노인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공원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노인을 봅니다. 그 노인의 삶을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을 것입니다. 뜨거운 사랑도 있었을 겁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흥분된 마음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던 행복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 노인의 모습은 과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외로운 패장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뼛속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외로움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 마음속에 쌓이는 살얼음입니다. 외로움이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따돌림 당할 때 내 마음 한 부분을 도려내는 아픔입니다. 외로움이란 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나를 떠나 버릴 때 내 마음 속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같은 것입니다.

외로움이란 꼭 엄동설한의 한겨울 같아서 외로움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마음이 얼면 얼마 안가 몸도 얼면서 육신의 기능이 마비됩니다. 수많은 죽음의 원인을 캐어 보면 결국 마음이 얼어붙어 작동하지 않는 데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뿌리는 외로움입니다.

 

한 사람만 그 마음의 외로움을 알아준다면 어떤 사람도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살 심리의 원칙입니다. 우리 주위의 노인들을 만나 보십시오. 부한 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그들은 외로움의 옷을 두껍게 입고 있습니다. 노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요즘 사회에서 노인은 외롭고, 핵가족 시대에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는 노인은 허허 벌판에 내던져진 고아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6남매를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느라 허리가 굽은 어느 노부부는 칠십 진갑날 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6남매가 건넛방에서 싸움판을 벌인 것입니다. 싸움의 동기는 어느 자식도 부모는 모시지 않으려 하면서, 부모의 유산에만 욕심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70평생을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해 온 노부부는 가슴이 아파오는 외로움을 앓으며, 그 밤을 서로 붙들고 울기만 했습니다. 일평생을 사랑해 온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의 병을 몇일 앓다가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셨고, 그 후 일주일이 채 안된 어느 날 새벽 할아버지까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두 분 다 심장마비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진짜원인은 동사(冬死)입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 때문에 두 분의 마음속엔 외로움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가면서 마음이 얼어붙고, 이와 함께 몸도 얼어붙어 결국 세상을 뜨게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농촌 노인들의 사망률이 도시보다 2.5배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날마다 노동하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데, 왜 사망률이 그렇게 높은가? 자식들 모두 도시로 떠나 버리고 단 둘이, 아니면 홀로 남은 노인들은 결국 외로움의 혹한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겨울은 계절따라 오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외로움의 겨울은 오뉴월 삼복더위에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만으로는 못 삽니다. 음식으로부터 얻는 영양분과 함께 인간과의 만남에서 얻는 사랑의 영양분도 똑같이 섭취해야 합니다. 음식물의 영양섭취가 너무 부족하면 영양실조로 결국은 죽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 외의 다른 사람, 특별히 식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영양분을 전혀 섭취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정신 기능 상실과 함께 결국은 육체의 기능 마비로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노년기는 손실의 계절입니다.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손실이 오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노년기는 고독합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합니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가 심합니다. 열등감, 권태감, 소외감, 절망감 등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유없이 자주 우울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 어떤 노인이 배를 타려고 부둣가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배가 떠나려 할 때 그 노인은 갑자기 다시 배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러더니 부둣가에서 놀던 소년 하나에게 동전을 쥐어주면서 "애야 배가 떠날 때 날 위해서 손을 좀 흔들어줄 수 있겠니?" 그 노인의 고독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인생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고독한 길입니다. 그 고독한 길에서 우리를 아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따라서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약속입니다. 다같이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2. 행복을 창조하는 노인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노년기를 부정적인 계절로 볼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노인들이 위에서 말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상태를 잘 이용하여 성숙한 노년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늙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들에게 어떠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융이나 에릭슨에 의하면, 인생의 후반기는 하향길이 아니라 새로운 인격의 통합을 이루는 절정의 시기라고 합니다. 융에 있어서 노년은 자기 자신의 내적 세계를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이 내적 세계가 지금까지 자기가 오랫동안 예속되어 있던 외적 세계를 가치있는 세계로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이 완숙되는 계절이라는 것입니다.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또한 무의식 속에 방치해 두었던 가능성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시기가 노년기인 것입니다.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노년의 아픔이 크기는 하지만, 아픔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기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기만 하다면 노년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인의 기쁨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습관화된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노년에는 젊었을 때와 똑같은 힘이나 업적을 수행하여 만족할 만한 인정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 시기에는 젊은 시절과는 다른 만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년이 되기 전에 미리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은퇴한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자가 자기 처지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익을 위하지 않고 자기 취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적극적인 노인들은 스스로 만든 새로운 일에다 자신의 에너지를 쏟습니다. 일은 너무 지나치지 않고 거기에서 만족을 느낄 정도면 이상적입니다. 이럴 때 자기의 역할과 존엄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즐기는 동안 온몸의 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하여 혈액순환을 돕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신도 따라서 건강해집니다. 일의 종류는 그것이 의무이거나 봉사이거나 간에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준다면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80세를 넘은 이 노인은 매일 새벽 자루를 어깨에 메고 시가지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길에 버려진 깡통을 줍습니다. 노인은 이것을 모아 팔아 수백 만원의 장학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그 일로 자신의 삶을 즐길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서는 낡은 정신을 볼 수가 없고, 아직도 싱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인이란 상대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도 나이로 보면 늙었으나 정신적으로 늙지 아니한 것입니다.

 

한 때 신문의 모든 지면을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현대신화의 주인공, 정주영회장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는 86세의 나이로 임종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사람의 역사는 한국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청년시절 그가 인천부두에서 일할 때에 일입니다. "청년 정주영이 머물렀던 합숙소에는 빈대로 들끓었다. 정주영은 어느 날 빈대에 물리지 않을 꾀를 내어 탁자위에서 잠을 잤다. 잠시는 괞찮았다. 그러나 빈대가 탁자 다리로 기어올라와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정주영은 또 꾀를 내었다. 탁자다리 네 개를 물담은 양재기 위에 놓고 잠을 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빈대들이었다. 빈대들은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사람을 목표로 뚝 떨어져 목적을 달성했다.

그때 정회장은 하찮은 빈대도 물이 담긴 양재기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려 그토록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최선을 대하면 무엇을 못하겠냐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을 회고하면서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제목이 "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실패는, 불가능은 없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노년기가 절망감과 실패감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행복을 창조하는 노인이 되어야 합니다. 노년기의 변화를 수용하십시오. 그리고 홀로서기 연습을 하십시오. 창조적인 삶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자기 민족을 이끄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안나는 84세에 기도를 통해서 삶의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약속했던 땅을 달라고 정복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사도요한은 90세에 환상을 받아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안고 복의 근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준비하십시오. 죽음을 수용하십시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죽음이후엔 영원한 천국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여는 시작인 것입니다.

 

3. 노인들의 친구되어 주기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노인을 둔 우리들이 도울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1) 사랑하기

현대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노인들은 비교적 행복했습니다. 그 시대의 노인들에겐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옆에 있었고, 언제나 품에 안을 수 있는 손자들이 있었습니다. 집만 나서면 마음이 통하는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것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만남에서 오는 사랑의 영양 부족은 느끼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올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양분이 만남에서 오는 사랑의 영양소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노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든, 아니면 식구들이나 주위 이웃들의 노력으로 인간과의 만남에서 오는 사랑의 영양을 섭취하는 길입니다.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노인에게는 절실하게 요구되는 항목입니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데서 인간은 만족과 기쁨을 느낍니다. 반면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가 상실되면 슬픔과 좌절, 또는 분노가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정서가 지속되면 쇠약해지고 늙어가게 됩니다. 그러ㅡ로 사랑으로 정신적 영양을 섭취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이야기하기

노인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에서 힘을 얻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그들의 추억이나 아픔을 들어 주는 것이 그들을 돕는 길입니다. 그 때문에 노인들이 생에 활력을 느끼게 되면 자신 삶의 역동성을 갖게 됩니다. 즉, 노인을 돕는 일은 노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돕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일은 누구나 즐기는 현상이지만 특히 노인에게 있어서 추억의 회상은 중요한 자산이요, 정신활동입니다. 추억의 회상은 오락과 치료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노인들에게 여러 면으로 굉장한 영향을 미칩니다. 추억의 회상이 오락이나 치료적으로 표현될 때 일상적인 생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창의력의 가능성을 불러일으켜 노인의 생을 재생시키는 수도 있습니다.

 

3)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드리기

노인을 노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역할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은 노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의무감을 갖게 해서 시들어가는 에너지를 다시 소생시키게 합니다. 노년의 즐거움은 이디엔가, 누구에겐가 자기를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서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찾고, 말할 상대를 얻을 수 있다면 영적, 지적, 신체적 건강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봐르 여사는 “늙는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안타깝고 슬픈 일이 되지 않기 위한 단 한 가지 방법은 인생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목적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노년기의 사람도 자기가 집착할 수 있는 일에 머리를 계속 사용할 수만 있다면 뇌 세포가 소멸되지 않고 계속 살아서 활동한다고 합니다. 노인들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노인은 내일의 나 자신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하지만, 노인은 절대로 무시되거나 홀대를 받아서는 안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선생이고 자원입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위기 19: 32).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 16: 31).


노인 성도들과 함께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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