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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을 주는 성령의 사람

사도행전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927 추천 수 0 2013.06.12 2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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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8:24-28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유익을 주는 성령의 사람
행 18:24-28                                              

09. 6. 7, 성령강림절 샬롬여신도회 헌신예배


두 젊은이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젊은이가 승진을 한 것입니다. 같이 입사한 다른 직원은 사장의 불공평한 대우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그래서 사장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두 직원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지금 당장 시장에 나가서 감자가 어떻게 거래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오게.

”얼마 뒤, 승진하지 못한 젊은이가 먼저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농사꾼들이 지금 감자를 팔고 있습니다.”

사장은 이 젊은이에게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또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이 젊은이는 “그것까지 알아 오라고 하지 않으셨잖아요.”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에요.

 

잠시 뒤, 승진을 한 젊은이가 왔고 그 역시 사장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은 감자 마흔 포대가 거래되고 있으며, 가격은 한 포대에 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자 하나를 보이면서 “이 감자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합니다. 사 두면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라고 제안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만 가득한 젊은이는 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왜 승진을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하는 직원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사장의 마음을 읽고 사장이 원하는 것을 행동하는 직원의 모습일까요? 아마 누구나 다 후자의 모습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직원의 입장에 섰을 때에는 앞선 그 불평에 찬 젊은이처럼 상대방의 처사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신앙의 차원에서도 공통되게 적용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단지 내가 저 사람보다 부유하게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런 기준과 판단으로 살기에 주님께는 감사와 찬송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앞서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열망, 비전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난 주 성령강림절이었습니다. 부활 후 40일을 계시다가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곧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까?

어떠한 외적 기준과 조건도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단 하나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 까지 약속한 것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 나선 우리가 사탄의 중요한 전략을 한 가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방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우리가 이미 그것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우리는 이미 받았다고, 찾았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님께서 주실 것은 엄청나게 크고 많은데 이미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니 이제 더 구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슬며시 넘어가게 하고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작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날 수 있는 아볼로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훌륭한 자질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달변가였고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방법으로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행18:24-25). 하지만 그에게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직접 체험으로 알았던 것이 아니고, 머리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볼로에게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아볼로가 신령한 능력을 받지 않고 그냥 인간적인 선량함과 우월감에 안주하기를 소망했고 체험 없이 가르치는 자로서 만족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성령 강림주일에 아볼로를 통해 성령의 외침을 듣고자 하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 아볼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면 그만이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죄 짓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데.. 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볼로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학문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답게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기도 했지만 아볼로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예화) 예수에 관한 것 - 김익두 목사와 이야기 하면서 계속해서 김익두 목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청년들

아볼로의 가르침이 복음적이지 않음을 알게 된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주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에게 더욱 자세히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일까요?

 

승천하시는 주님의 당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단지 착하게 살 것이다. 남에게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에게 가르친 것은 신앙인이라면 머리로 알고 깨닫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권능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권능이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다. 권능이라는 단어는 다이나마이트의 어근인 듀나미스입니다. 권능을 받은 성령의 사람은 순하고 착하게, 법 없이 살 수 있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나마이트처럼 큰 바위도 파괴하고 산도 부수는 큰 힘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고 가둘 수도 없는 능력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을 비롯한 성경의 어느 부분도 아무리 신앙의 차원에서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실패와 부끄러움에 대해 외면하거나 감싸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 왕의 경우입니다. 그는 통일 왕국을 열었던 왕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부러운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그 누구도 범하지 않는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부하의 아내를 취했고 그리고 그 죄 때문에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역사 기록자의 관점이 다윗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의 부끄러운 과거와 치부를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영웅으로,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본문인 아볼로 이야기의 위치를 살펴보십시다.

위대한 전도자 사도 바울의 실패 기록이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명한 스승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헬라 문화에 대해 일가견을 가지고 있던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으로 하지 않고 단지 철학적 지식과 학식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권능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19장에는 성령에 관하여 듣지도 알지도 못한 에베소 교회의 주의 제자들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천하의 전도자 사도 바울의 실패 경험과 19장에 이어지는 에베소 교회의 성령 받지 못한 제자들의 이야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행17장의 바울이나 18장의 아볼로나, 19장의 제자들이든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의 믿음이나, 사역이나 헌신도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담고 있는 두 가지 복음이 있습니다.

1) 성경은 단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지적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아볼로에게 부족함이 있었다는 지적으로 끝이라고 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며 우리에게 무슨 결정적인 교훈이 되겠습니까?

부족했던 아볼로를 위해 좋으신 주님께서 성령의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곧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직업이 같았습니다. 곧 천막을 만드는 부부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크게 내세울 것은 없는 부부였을지라도 그 부부에게는 복음을 위한 엄청난 열정과 헌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사도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기를 요청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사도 바울을 위하여,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는 엄청난 열정과 헌신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러한 열정과 헌신은 사람의 결단과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성령의 권능이 부족했던 아볼로에게 성령의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보내어 그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2) 아볼로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관계를 생각해보십시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사람이지만 유대인이요, 회당에서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 사람이었고 평신도였습니다. 아볼로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영향을 받는 것이 쉬울까요? 본문의 내용대로 되는 것이 쉬울까요?

세상의 관점과는 달리 회당에서 가르치는 사람이요 유대인인 아볼로가 이방 사람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아볼로에게 필요한 것은 교만을 이용하는 사탄의 계략을 이겼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사탄의 계략을 이기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유익을 주는 성령의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gentleman 또는 Good man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대의 신앙의 사람들을 향해 더 이상 “좋은 사람(Good man)”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God's man)”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좋은”과 “하나님” 사이에는 철자 하나의 차이만 있지만 이것이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에도 안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선하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가집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주변에 유익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주변에 유익을 주는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하나님의 징계를 위해 나아가는 천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던 아브라함처럼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이나마이트처럼 세상이 알지 못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알지 못하는 위로부터, 곧 만군의 여호와로부터 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이고 사자 굴속에 던져져도 상함이 없습니다.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방 왕 다리오 왕은 말하기를 “내 나라 관할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재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6:26-27)

 

하나님의 사람은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으로 세상에 유익을 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의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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