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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3: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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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은석 목사 |
참고 : |
[광복절] 출애굽 - 해방
출13:1-10
자비로우신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진리를 구하는 저희들에게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옵소서. 억울한 사람을 돌보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며, 집 없는 사람에게 잘 자리를 공급하게 하옵소서. 저희들을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교만하지 않게 하옵시고, 분열의 상처를 만들지 말게 하옵시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날마다 수고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ear our prayers, most precious God. Grant unto us hearts and minds to seek your Truth and inspire us to do your will in all that we undertake. Open our hearts to the concerns of our neighbors that we may seek justice, care for the afflicted, feed the hungry, and shelter the homeless. May we be the instrument of your love and grace in this world. Deliver us from pride, hypocrisy, divisions, and all evil and grant that in our lives and labors we may praise your holy name,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Amen. (from V.C. Anderson, "Prayers of our Hearts.")
이스라엘은 430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 했습니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강물에 던져야 할 정도로 생존 자체에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포함한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Israel was liberated from 430 years bondage. Such a long time, Israelites served Egyptians as slaves. They met very critical crisis for life even throwing their baby sons into the Nile River. And God saved Israel, with the mighty power, showing the ten plagues.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때, 단순히 애굽을 망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거룩케 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분되어 애굽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In the time of Exodus, God did not save them by just destroying Egyptians. Israel experienced holiness. They came out of Egypt as free people. First of all, God gave Israel freedom.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고향입니다. 거기가 바로 이스라엘이 거해야 할 땅입니다. Israel went forward to the promised land, Canaan. Canaan was the homeland of Israel. It was the very land where they had to stay.
해방은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곧 다른 모습의 굴레에 속박되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더 나쁜 굴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A liberation has to have a destination. With but a goal of coming out of bondage, they could be enslaved by another power. Probably something worse might happen to them.
성도의 삶도 그렇습니다. 영적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애굽은 죄악의 땅입니다.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영적 광야를 지나 영적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Christian life can be depicted as the same way. We need to come out of spiritual Egypt. Egypt is sinful land, the site of death. We should come out of the bondage and pass through the spiritual desert, to the spiritual Canaan.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은 영적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우리의 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바름으로써 우리는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This salvation was done with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Jesus died on the Cross as the sacrificial lamb of the Passover. With the death, we are separated from the Egyptians. With the blood of Jesus Christ pained on the door frame of our hearts we have been separated from the world. Now we could escape from the punishment of God.
애굽에서 나오게 된 이스라엘은 ‘초태생’을 모두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초태생을 드렸다 함은 실제로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As they came out of Egpyt, Israelites returned what were born first. That they returned the first-born means they all devoted their lives. The kept the Passover, painting the blood of the ramb on the door post.
이어서 한 주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매해 첫째 달 14일에 지킨 절기입니다. 이어지는 한 주간은 ‘무교절’입니다.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로 만든 떡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했습니다. And they kept the Feast of the Unleavened Bread. For the following week, they ate the unleavened bread and remembered what God had done for them: the salvation.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입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손이나 미간에 기호나 표를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어, 날마다 가르치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God commanded Israel: "It shall be to you as a sign on your hand and as a memorial between your eyes, that the Lord my be in your mouth." Here God commanded Israel to remember the salvation always and teach it to their children always.
우리는 옷이나 실내 장식 등 패션 자체의 주제가 ‘기억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엇을요? 하나님께서 해방시켜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Our fashion and decoration are to be something reminding us of the liberation of God.
아니라면, 철저히 상업적 계산에 따른 희생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If not, we are the very victims of commercial devices.
성경에서 강조하는 "기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What are the memories the Bible teaches us now?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God saved Israel.
2. 이스라엘은 애굽땅에서 종노릇하면서 살았습니다. Israel were slaves in the land of Egypt.
3. 놀라운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별하셨습니다. God seperated Israel from Egypt with powerful miracles.
4. 광야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마시게 하셨고, 먹고 입히셨습니다. God was with Israel in the desert. God provided water and food.
5.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God let Israel enter the land of Canaan.
종합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In all of these, Israel were to remember God. It was the way of salvation.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We must remember God who saved us.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런 글씨, 그림, 문화를 만들어가십니까? 가정생활은 어떻습니까? 집안 장식물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음악은 어떻습니까? How do you remember God with letter, picture, and culture? What about your family lives? Look at the home decorations. What about your music? Are they reminding you of God and his salvation?
기호식품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어렸을 때 익힌 음식을 평생 버리지 못합니다. 특히 발효식품이 그렇습니다. 김치나 된장이 좋은 예입니다. A man cannot forget the food he loved when he was a child. Especially, the fermentated food, like Kimchi and Denjang are the case.
사람은 입으로 맛을 느끼기 전에 ‘기억’함으로써 맛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미국에 살아도 민족마다 다른 음식을 먹습니다. 세대마다 맛을 보는 것이 다릅니다. Before taste the food with tongue, a man feels the taste as he remembers. Living in the US, therefore, each race favors different food. Each generation has different choice.
나는 오이를 씹어 먹습니다. 길거리 가면서 오이밭에서 한 두 개씩 따먹던 어린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한 입 베어 먹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정’까지 해서 겨우 한 입 먹였는데, 무슨 크게 장한 일을 했다는 표정을 보았습니다. I eat cucumber without sauce, as I remember the young time when walking the small country path I took some cucumbers and ate without seasoning. Some days before, I asked my son to bite and eat it; at first he refused. Amazed how he could not understand the wonderful taste, I asked him again, and he did with sense of responsibility.
무를 깎아 먹습니다. 겨울 밤에, 땅에 묻어 놓았던 무를 꺼내 칼로 깎아 먹던 기억이 새롭기 때문입니다. 고구마를 깎아먹던 기억도 지울 수 없습니다. 고구마나 감자를 마당 모깃불에 구워먹던 기억도 참 새롭습니다. I sometimes peel off radish and eat without seasoning. I remember old days when we pull out the radishes from the underground chamber in winter time and peeled off them to eat. We used to eat yams and potatoes uncooked.
어렸을 때 다들 고생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를 기억나게 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맛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삶의 맛입니다. Most of us had hardtime when young. But eating the foods reminding us of the days, we sense the wonderful taste of young days. This is a taste of life.
우리가 한국을 방문하면, 먼저 ‘떡복이’를 먹겠다든지, 하는 것은 다 ‘추억’과 관계 있습니다. You may say, "Next time in Korea, I would like to have some ddokboki." That came from your experience.
그런데, 그 지난 날들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Out of memorable things, the salvaiton of God is to be centered.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발효되지 않은 빵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맛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맛 이전에 ‘기억’해야 할 어떤 것이 있습니다. According to today's text, God commanded Israelites to eat the unleavened bread. It does not taste good. But before taste, it has something to remember.
맛으로 기억을 삼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으로 맛을 삼는 것입니다. We do not have taste as remembrance; instead, we take remembrance as taste.
확실히 ‘맛있는 음식’을 따라가는 것은, ‘미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먼 길 가는 것처럼, 맛을 느끼기 위해 시간을 들일 수 있습니다. Following taste, it may be called dainty food. Like driving long distance for music or art, epicures drive long for food.
그런데, ‘기억’을 따라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It is highly recommendable that we cook food according to remembrance.
대개 맛이란 ‘기억’과 관련될 때 더 깊이 느껴지는 법입니다. Taste will be felt seriously when related to remembrance.
맛, 문화,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억으로 ‘집중’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런 모든 방식을 ‘신앙생활’로 넓게 규정할 수 있습니다. It is very important for us to focus on the salvation of God with taste, culture, and all the things. This way of living is the walk of faith.
기독교교육의 성격과 범위도 그렇습니다. ‘반복’이 자연스러운 방법인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반복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억은 반복체험입니다. As for Christian education, its character and scope will be confined by remembrance. Repetition is very useful method. Remembrance will be fixed in hearts with repetition.
신명기 6:4-9에 드러난 바처럼, 유대인의 자녀교육의 방식입니다. This is the way of children education of the Jews, as revealed in Deuteronomy 6:4-9.
미주에 사는 한국인은 한 세대만 지나가면 신앙교육도, 민족교육도 한계를 드러냅니다. 기억의 공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Korean families in the US fail the education of faith and nationality, because they fail in sharing the remembrance.
“출애굽 구원”은 성경의 주요 주제입니다. 바벨론에서의 구원과 함께 구약에 두 번 등장한 구원사건입니다. Exodus is a main theme of the Bible. Two times happened in the Old Testament: one from Egypt, the other from Babylon.
신약에서도 두 번 등장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유월절 어린양으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In the New Testament, two Exodus appear. One is the Crucifixion of Jesus Christ. He died on the Cross as the lamb of God of the Passover.
마지막은 재림하신 주님께서 심판하셔서, 성도를 천국에 임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The second is the salvation in time of the Second Coming of Jesus Christ. Jesus will judge peoples and separate saints into the Heaven.
오늘 우리는 '스스로 교육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녀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We are to educate ourselves. We ourselves as well as our children are to remember the salvation every day.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다시금 생명을 얻은 존재라는 인식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 속에 들어 있습니다. The recognition that we are the new beings God saved from the sin and death is very important. Listen to me sharing a story.
어떤 목사님이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길이었습니다. 옆 차선 앞쪽을 달리던 차가 깜빡이등을 켰습니다. 목사님은 손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속도를 줄였습니다. 그 차는 안전하게 차선을 변경했습니다. 운전자는 손을 높이 들어 감사를 표했습니다.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A pastor was driving at a highway. A vehicle driving at the next lane ahead turned on the left-turn signal. The pastor raised his hand and signed that he could do. And the pastor reduced the speed. The driver showed his thanks with a hand. He became happy.
그 순간 범퍼에 붙은 글을 읽었습니다. "Jesus First, You Second, Me Third!" 목사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러면서 크리스찬의 삶의 방정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고정값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너"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자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 다음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생은 참 살맛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t the very moment, he read a sticker at the back bumper: "Jesus First, You Second, Me Third!" The pastor's heart was full of joy. And he thought that was a way of Christian living. Jesus and I are fixed. The "You" would be different each day, but its place also is fixed. It is next to Jesus. This method will help us enjoy the world.
섬기는 사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노예로서 섬기는 사람이 있고, 자유인으로서 섬기는 이가 있습니다. 노예는 섬기면서 늘 불평불만입니다. 날이 갈수록 증오심을 키웁니다. There are two kinds of service. One is service as a slave, the other is as free man. Serving master, a slave meets hatred. As time goes by, the hatred grows.
그러나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섬깁니다.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해방'과 '자유케 하심'을 맛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자유함이 없으면 결코 남을 기쁜 마음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We are different. We serve others as free men. This way of service is possible only when we experienced liberation. Without such an experience, serving others with joy is not possible.
세탁소나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섬기는 일'입니다. 자유함 없이 섬길 때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하게 됩니다. '억울한 생각'이 가득 들어차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한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할 때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Working at a laundry story or a restaurant is service. Without freedom, you may be full of anger and complain. A man of freedom, however, serves others with delight.
처음 도서관 circulation desk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길다랗게 늘어선 사람들을 한명씩 도와주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내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기뻤습니다.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Several years before when I first served peole at a circulation desk of a library, I wal full of joy when I helped the long-lined people. They might have felt I be somewhat wrong, but I was really happy, so I could not stop smiling.
자유한 사람이 남이 자유케 되는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A free man can help others be free.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죄에 속박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그 여자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돌을 하나씩 들고 와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A woman was taken at the very moment of adultry. She was a woman of sin. She needed freedom. But Jews did not forgive her. Each of them brought a stone to kill her.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용서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바닥에 글을 쓰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씩 부끄러움 속에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떠나고 난 후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At that time, Jesus forgave her. He said, "Anyone innocent hit her first!" He was writing something on the ground. Each of the crowd escaped from the site. After their disappearance, Jesus said, "I do not condemn you, too. Go and do not commit sins again."
참 자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속박에 매여 있는 사람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자유한 사람은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도 형제 자매의 속박을 풀어 해방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를 해방시키신 주님께서는 우리도 해방시키는 일에 종사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Jesus Christ, the true Free Man, liberated people under the yoke of sins. Any free man copies the spirit of Jesus. As Jesus did, we are to liberate our brothers and sisters. We have been called by God for the very service. Jesus Christ the Liberator called us to liberate people.
진정한 해방은 '고통을 함께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통의 나눔 없이 해방이란 '말놀음'에 불과합니다. A true liberation comes with sharing the suffering. Jesus Christ was crucified for the purpose of forgiving our sins. The liberation without sharing the suffering is but a word-play.
폴란드 바사 공작과 부인 카탈리나 자겔로의 사랑은 유명합니다. 폴란드 왕 에릭은 바사 공작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그의 아내 카탈리나는 왕을 찾아가 청원했습니다. "저도 남편과 함께 복역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왕은 말했습니다. "종신형이 무엇인지 아시오? 죽어서야 감옥 문을 나서게 되는 겁니다. 무죄한 당신이 왜 감옥에서 죽어야 합니까?" 부인은 손가락의 반지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거기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고 새겨 있었습니다. A love story of Poland between Duke Basa and Catalina, his wife, is very famous. King Eric judged the Duke Basa guilty for a high treason and sentenced him the life-long emprisonment. Catalina visited the king and asked: "Let me be imprisoned with my husband." "Do you know what is the life-long imprisonment? You could come out of the jail gate after your death. You are innocent, and why do you want that?" Catalina pulled her ling out of her finger and showed it to the king. It was engraved like: "until the death separates us..."
"종신형을 받았어도 남편과 저는 한 몸입니다. 결혼식 때의 약속은 죽을 때까지 유효합니다. 저를 감옥에 넣어 주십시오." "Even if he got the life-long emprisonment, he and I are one. The agreement of marriage is useful until our death. Let be be with him in the jail."
결국 카타리나는 남편과 함께 한 감방에 투옥되어 17년을 복역했습니다. 에릭 왕이 죽자, 부부는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식 때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한 사람의 매임을 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묶임의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Catalina was put into the same jail chamber with her husband for 17 years. As King Eric died, both were released. They kept the promise of marriage. A true love has power liberating a person's bondage, with sharing the suffering of bondage.
노예되었던 이스라엘은 섬기는 기쁨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알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백성으로서, 해방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방인이지만,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이 구원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Israel in time of bondage did not know the joy of service. But after liberation, they knew the joy of serving God. And they got the mission to service people, delivering the good news of God's salvation. When they discarded this mission, God used gentiles like us. We are saved, and we got the mission to deliver the good news to the world.
섬기는 삶은 자기 구원을 확증하는 삶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의 일화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전도하러 나섰을 때, 한 친구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추위에 떠는 행인을 만났습니다. 친구는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그를 엎고 출발했습니다. Service is the confirmation of your salvation. A last story. Sundasing, a Indian saint, crossed over Himalayas to Nepal. A friend was with him. They met a stranger, trambling with cold. Sundasing asked his friend to help the stranger together. But his friend refused and started earlier.
한참 걷다 보니, 혼자 먼저 떠났던 친구가 얼어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추워 자기 체온을 의지하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자기가 들쳐 업은 사람의 체온 때문에 오히려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Sundasing carried the stranger upon his back and walked slowly. At a certain time, he met his friend dead on the road because of cold. Sundasing was, however, sweaty because of the stranger.
기억합시다.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쓰임 받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나같은 죄인을 이처럼 아름답게 쓰신다는 것이? 아멘. Remember how to remember God and his salvation through eating, clothing, and all of living. As we do this, we will be used as the servants of God. His using us is itself blessing. What a beautiful fact God uses us, the sinners! Amen.
기도 Prayer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깊이 기억하면서, 날마다 신앙의 길을 걸어갑니다. 천국에 이를 때까지 소망의 꿈을 품게 하옵소서. 주님의 종들로서, 세상에 참된 해방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ving Lord. Remembering you deeply, we take the walks of faith each day. Let us dream the hope being with you until the last step to the Heaven. As your servants, let us serve the world, delivering the good news of your liberation to the world. In Jesus' name, Amen.
봉헌기도 Offering Prayer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셔서, 저희가 믿음으로 하는 모든 일에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귀한 수확을 주님께 바치오니, 주여 받아주시옵소서. 온전한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가정에 귀한 열매를 날마다 허락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O Father God. As our Father, you have given us power and wisdom in all we do. We return what we have had in the fields. Let us have victory daily with the pure faith you gave. Provide good fruits at each home of us. In Jesus' name, Amen.
축도 Benediction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our Father,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Amen.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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