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롬9:6-8 |
---|---|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72
약속의 자녀
로마서 9:6-8
서 론 : 바울이 논증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면 이스라엘의 선택과 우위성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가슴이 아픈 나머지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말한 바울은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의 제기입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폐하여졌고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된 것이 아니냐?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를 파헤쳐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원의 섭리, 곧 하나님의 예정과 유기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폐하여지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
4,5절에서 바울이 증거한 이스라엘의 특권이 그들의 불 신앙으로 상실되어 버렸다해도 그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참으로 선택한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을 약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논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스라엘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곧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선민으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유대인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의 자녀를 얻기 위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육신으로 태어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손인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이 무익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이처럼 증거 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마3:8,9).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고 나무라셨습니다(요8:39,40).
(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습니다. 구약에 언급된 말씀은 영적인 깊은 뜻이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참 모습을 들어내 놓는 것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말씀의 영적인 뜻이 신약에 와서 새로운 계시로 그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얼굴에 수건을 쓴 채 얽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 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 했습니다(고후3:14-16).
그리스도를 배격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마음이 회개치 못한 완고한 마음 때문에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을 쓴 채 읽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서면 그 수건이 벗겨져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완고하여 회개 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호4:6).
2. 씨로 여기심을 받는 약속의 자녀
바울은 이곳에서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적용시켰습니다.
(1)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청할 것임이니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해석입니다{창21:12). 이 말씀을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전혀 무관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서 태어날 이삭이란 아들만을 아브라함의 씨로 언약하셨던 것입니다(창17:19).
(2) 그러면 이삭으로부터 난 자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삭으로부터 태어난 육적 이스라엘을 가리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이스라엘은 다 바로 이삭의 씨로부터 태어난 혈통적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곧 약속의 자녀란 영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약속의 자녀란 영적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예정된 참 이스라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원섭리를 간략하게 이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 그를 부르셨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들로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삭으로 약속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만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갈3:28,29). 이 같은 일은 신약에 와서 새삼스럽게 나타난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그러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만 그같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3) 이스라엘에게는 물론 바울이 지적한대로 이방인보다 우월한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그들의 특권이 결코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란 보증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타난 율법으로 인하여 교만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 참 지식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이 같은 놀라운 특권 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들이야말로 참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 그같은 영광스러운 일을 걷어차 버렸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할지라도 바울의 증거처럼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견고해진 것입니다.
결 론 : 이스라엘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우월하고 아름다운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같은 특권의 뜻을 잘 이해하고 선용했었다면 그들이 결코 버림 바 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버림받았고 이방인인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 것이 아니라 더욱 굳게 세워진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