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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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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84
아직 소망이 있는 이스라엘
로마서 11:7-12
서 론 : 유대인들 중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이방인들 중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가장 궁금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복음으로 넘어졌으며 이방인들이 오히려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스라엘이 넘어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얻지 못한 이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약속된 메시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메시야를 약속 받았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한 말을 보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했습니다(요1:45). 안드레가 자기형인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를 소개할 때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요1:41). 메시야의 약속에 대하여는 다니엘 9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한 예언을 계시 받은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62이레가 지날 것이요… 62이례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9:25,26)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기름 부은 자란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약속된 구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구원은 메시야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메시야 왕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원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이 구해 온 이 같은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자신들이 구해 온 것을 얻지 못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된 지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 속에 깊숙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죄하는 율법의 의만 알았지 죄에서 벗어나게 하며 완전한 의를 얻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읽었다고 했습니다(고후3:14,15). 구약은 수건으로 덮어져 있는 글입니다. 그 수건이 벗겨져야 진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건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성경지식은 메시야에 대한 지식의 오류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라고 원한 메시야는 영광 중에 나타나는 정치적인 메시야였습니다. 그들이 대망해 온 메시야는 죽지 아니하는 메시야로 그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메시야였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고 공박했습니다(요12:34).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바라보고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고 물었습니다(행1:6).
2.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는 이유
바울은 7절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택한 자와를 구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이스라엘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으로서의 하나님의 백성된 영광을 얻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여러 곳에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롬9:6-8). 여기서 밝히고 있는 육신의 자녀란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말하고 약속의 자녀란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 택하심을 입은 자란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그의 택하신 백성으로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을 그의 백성들을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예정된 백성 외에는 아무런 특권도 주어질 수 없습니다. 육신적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으로 태어난 특권,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를 주장해 오신 사실,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신 일, 제사제도를 주셔서 사죄의 길을 주신 일 등에 대한 축복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같은 특권도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 외에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2) 택하심을 입은 자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구원 얻을 약속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녀가 아닙니다. 그의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갈3:28,29). 이스라엘이 완악하여 믿음에서 떨어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이라고 바울은 밝혔습니다.
3.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바울은 11절에 와서 이스라엘이 실족한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5절에서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 놓으신 그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의 하나님의 섭리의 배경에 대하여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명심할 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구원받을 백성들이 있는데도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그처럼 예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받은 백성은 은혜로 택하신 대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일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어 주신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시기는 아직 그 때가 이르지 아니했습니다. 아마 주님의 재림 시에 그들의 시기심이 격발되어 그들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민족적인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슥12:10). 바울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시편 69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죄과에 대한 보응임을 예언했습니다.
결 론 : 바울은 이스라엘의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받는 십자가에 대하여 종말에 가서 넘치는 은혜의 축복이 있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그들의 그 역사로 인하여 온 세계가 축복 받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축복이란 선지자로 예언하신 것인데 그리스도의 왕국의 축복입니다. 이 땅에 세워질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년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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