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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가는 이유(Reasons to Walk the Way)

마가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161 추천 수 0 2013.06.21 21:56:53
.........
성경본문 : 막9:30-37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2년 9월 23일 주일 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그 길을 가는 이유(Reasons to Walk the Way)
--마가복음(Mark)  9:30-37

1.

지난 주일, 저는 "군중인가, 제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날, 적지 않은 교우들께서 "죄송합니다. 저는 군중입니다"라고 말씀하면서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제가 더 미안했습니다. 누구보고 '왜 아직도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까?'라고 꾸중할 자격이 제게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함께' 제자로 발돋움할 것을 호소하려 했을 뿐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 군중은 언제나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내적 사명'(inner calling)과 '외적 사명'(outer calling)에 모두 충실해야 합니다. 내적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이 영적 성장을 도모하여 온전한 제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외적 사명은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적으로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도'(evangelism)와 '선교'(mission)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받들고 있다면, 그 교회 안에는 늘 군중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예수의 도를 탐색하러 온 사람들 혹은 세례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막 알아가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그런 사람들을 '군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군중의 상태를 거쳐서 제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설교를 하는 저도 한 때 군중이었고, 지금도 때로 군중의 상태로 뒷걸음질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나는 군중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분들은 그로 인해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것이 거쳐가는 과정이 아니라 최종 목적지가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예수를 따라 다닌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믿음의 도약을 미루고 있다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보 신앙에 그대로 머물러 산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하겠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군중은 항상 존재해야 하지만, 새로운 군중이 유입되고 한 동안 군중으로 있던 사람들이 제자로 도약하는 순환 또한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혈액 순환이 잘 되는 몸이 건강하듯, 이러한 순환이 잘 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군중의 상태에서 제자의 상태로 나아가야만 그 믿음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편, "죄송합니다. 저는 군중입니다"라고 말하는 교우들 가운데는 생활고로 인해 군중의 상태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는 분들도 계십니다. 새벽기도회에도 나오고 싶고, 주중에 성경 공부도 하고 싶고, 속회에도 참여하고 싶고, 봉사와 선교 활동에도 참여하고 싶지만, 그럴 겨를 없이, 겨우 주일 설교에 목 매고 살아야만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난 주 설교가 그런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나 않았을지, 염려가 됩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사는지나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형편을 속히 펴 주셔서 마음껏 제자로 자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날 우리는 '제자'라는 말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 시대의 학교 제도와 예수님 당시의 학교 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제자'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운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disciple)라는 말보다는 '학생'(student)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반면, 예수님 당시의 '제자'는 스승과 함께 살면서 보고 배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을 '도제'(徒弟)라고 하고 영어로는 disciple 혹은 apprentice라고 부릅니다. 스승과 함께 살면서 그분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워 스승처럼 되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 인생 전체를 던집니다. 따라서 제자의 운명은 어떤 스승을 따르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군중에서 제자로 도약한다는 것은 인생 전체를 예수님에게 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생 전체를 걸기로 한 그분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요즈음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유망해 보이는 후보에게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인생을 걸어 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이사랴 수양회'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의 뜻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모두 심각한 의문에 빠졌을 것입니다. 과연, 이분에게 인생을 걸어도 좋은가? 과연 이분을 계속 따라가야 할 것인가?

교회력(Lectionary)에 따라 읽은 오늘의 말씀은 '가이사랴 수양회'를 끝내시고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시금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머지 않아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며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귀에는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난받고 죽는다"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 마가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32절)

제자들은 아직도 메시야로 오신 예수께서 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묻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들은 너무도 두려워서 묻지도 않았습니다.
이 심정을 이해하십니까? 마치, 조직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만난 사람이 뭔가 불길한 예감 때문에 결과에 대해 묻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뭔가 불길한 것이 오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너무도 불길해 보여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묻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모른 척,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한 다음, 제자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이사랴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들은 앞 서 가시는 예수님 뒤에서 누가 높은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통치자는 소위 '논공행상'(論功行賞)이란 것을 합니다. 새로운 왕국을 세우는 데 끼친 공로를 따져서 상을 베푸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새로운 왕국을 세우시고 논공행상을 하실 때 누구를 '일등 공신'으로 알아줄지를 두고 싸운 것입니다.

제자들은 앞 서 가셨던 예수님이 이 사실을 모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35절)

그런 다음,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시고 껴안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37절)

우리는 이 말씀이 처음 들었던 사람들에게 주었을 충격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낮은 존재였습니다. 가장 낮은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당신을 대접하는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한 말씀입니다.


3.

제자들은 '가이사랴 수양회'가 지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당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말씀이 사실이라면, 과연 이분에게 인생을 걸어도 될까? 그 모든 말씀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에게도 그 고난과 죽음의 위협이 미칠 터인데, 과연 그 길을 걸어가야 할까? 왜 그 모든 고난과 아픔을 감수하면서 이분의 제자가 되어야 하나?" 이러한 질문들로 인해 그들은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 고민은 2천년 전에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제자로의 부름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절실한 고민입니다. 구경꾼으로 혹은 군중으로 예수를 따라 다니는 것은 좋은 취미 생활일 수 있습니다. 미국같은 나라에서 군중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은 괜찮은 문화 생활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적대 감정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공직에 출마하려면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어느 하나의 교파를 선택하여 자신이 신실한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교인으로 혹은 군중 신자로 사는 것은 손해보다는 이익을 더 많이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제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자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제자로 발돋움하는 것은 적잖히 두려운 일입니다. 제자로 발돋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만사형통하게 하기보다는 더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인으로 등록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저런 책임을 감당하고,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며, 구제와 선교를 위해 헌금하는 것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제자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주 목요일 새벽, '제자됨'에 대해 묵상하는데, 그 동안의 묵상이 몇 가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묵상이 끝난 후, 얼마 전에 시작한 Facebook에 그 생각을 적어 올렸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1. 그분에게 길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2. 그래서 그분과 함께 사는 것......
3. 함께 살며 그분을 닮으려고 힘쓰는 것......
4. 함께 살며 그분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것......
5.  그리고 마침내 그분처럼 죽는 것......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제자가 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주일에 무엇을 하느냐가 전부가 아닙니다. 수입의 10분의 1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기도하느냐의 문제만도 아니고, 성경 말씀을 얼마나 읽고 묵상하느냐의 문제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로 산다는 말은 삶 전체의 문제입니다. 숨쉬는 일부터 살고 죽는 일까지, 삶의 모든 것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그분에게 맞춘다는 뜻입니다.


4.

그렇습니다. 그분에게 길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분과 함께 살기를 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분과 함께 살란 말입니까?"라고 물으십니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장로 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을 보았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계시록3:20)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때로, 제자들처럼 육체적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은 우리가 제자들보다 더 유리한 상황에 있습니다. 육신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에 계셨지만,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그분과 함께 동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리가 운명을 걸리고 선택한 그 스승이 자주 이 세상과는 정반대로 생각하시고 행동하십니다. 갈릴리의 수 많은 군중이 왕이 되어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데, 예수님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왕좌에 오를 수 있는데, 왕좌대신 십자가에 오르겠다고 하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더 높아지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데, 그래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류 문명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싸움"(war of every man against everyman)이라고 규정했는데, 예수님은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이 진정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모두들 지체 높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 바쁜데, 예수님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바로 당신을 찾는 것이며 성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과연 이분을 따라 이분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만 이렇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며, 서로 밟고 올라서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직장에서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나의 배우자와 자녀들과 부모 형제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에서 제자답습니까? 직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지위에 앉히시든, 그 지위와 권세를 가지고 낮고 힘 없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섬길 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전심하고 있습니까?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어떻게든 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줄을 대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를 찾고 있습니까?

제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제자로 산다는 것은 매일, 매 순간 이렇게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살고 그분을 닮고 그분의 길을 가려면, 그 동안 세상에서 배운 모든 가치관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더라도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알아 듣더라도 모른척 외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 그리고 제자로 사는 것,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손해보는 일입니다. 고단한 일입니다. 불편한 일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힘겹습니다.


5.

사정이 이렇다면, 자연히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가 되어야 합니까? 왜 제자로 살아야 합니까? 그냥, 예수 믿어서 죄 사함 받고 죽고 나서 천당 가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까? 굳이 이렇게 애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특별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선행이나 하며 살면 되지 않습니까?"

굳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말릴 방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렇게 사시고 그렇게 죽으신 것은 그것이 가장 복된 길이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은 우리를 복되게 하시려는 것이며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복되게 하시려는 까닭이었음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옛날 스승들은 제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시키면서 훈련시켰습니다. 붓글씨를 배우러 온 제자에게 몇 년 동안 먹을 가는 일만 시킵니다. 목수가 되겠다고 온 제자에게 몇 년 동안 도끼질만 시킵니다. 도자기를 배우겠다고 온 제자에게 몇 년 동안 흙반죽만 시킵니다. 때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허드렛일만 시킵니다. 왜 그럽니까? 스승은 제자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고 있으며, 제자는 그 스승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는 그 어떤 황당한 일을 시켜도 우직하게 순종합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동안에 장인으로서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즉 하나님 나라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나라를 보이는 것처럼 믿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보이는 것에 기준하여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예수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선택과 판단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면, 그분이 보았던 하나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예수님이 그 나라를 참되게 아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를 환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 그분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안다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순종하고 실행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장인 목수의 제자가 되어 갖은 고생을 감당하는 이유는 그 고생이 그를 스승과 같은 장인으로 만들어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작은 오두막집도 제대로 지을 실력이 되지 않지만, 장차 언젠가 궁궐을 지을 꿈을 꾸면서 노력하고 인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그분의 말씀 중 아주 작은 것조차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지만, 장차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데 거침이 없고, 아름답고 거룩한 인생의 집이 지어질 것을 상상한다면, 제자로 살아가는 불편을 능히 견디고도 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로 도약하기를 결심하고 제자로 살아가도록 힘쓰는 것은 결코 손해도 아니고 실패도 아닙니다. 물질만 본다면, 손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불필요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 예수께서 그렇게도 철썩같이 믿으셨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면, 제자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 사는 것이며 진실로 성공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죄 사함 받고 죽은 다음 천국 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을 '뱀파이어 신자'( Vampire 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말로 하면 '흡혈귀 신자'라는 뜻이 되겠지요. 아닙니다. 제자에게는 예수님의 보혈만이 아니라, 그분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에게 배우고, 그분을 본받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처럼 살고, 그분처럼 죽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설교에만 목 매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설교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사람도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설교를 듣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겸손하게 경청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도약은 설교를 통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될 때 그리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같이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셔야 합니다. 깊은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그분의 정신을 마셔야 합니다. 성찬을 통해 그분을 먹고 그분이 우리의 존재 깊이 들어오시도록 초청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속회로 모이고 성경 공부로 모여 서로의 영적 여정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히 여기고 낮아져서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나의 것을 내어 주는 일에 인색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자로 자랄 수 있습니다.


5. 

이렇게 질문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밤을 낮 삼아 땀을 흘려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런 사람에게 제자가 되라구요? 제자로 살라구요? 말도 마십시오. 그런 것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생각할 일입니다. 저는 그냥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족합니다. 혹시나 물질 축복을 부어 주신다면 감사하구요. 그 이상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정을 속히 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제자가 되는 것은 사정이 좋아진 다음으로 미룰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언제 우리의 호흡이 끝날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때가 있을 때,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제자로 자라가는 것이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역경은 물리적인 노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물리적인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 시간을 잘라내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할 때면 위로 솟아 오르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시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하여 안심할 것은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보자면, 그러한 여유가 제자로 발돋움하는 것을 더 심각하게 방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핑게를 대자면 한이 없습니다. 어려울 때는 어려워서 못하고, 여유로울 때는 즐기느라 하지 못합니다. 영적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상황이 어려운 사람만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할수록 영적 능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있든, 제자로 발돋움하고 제자로 자라가기 위해 힘써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권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께 권합니다. 제자 되십시다. 군중의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고, 제자로 도약하십시다. 제자로 자라가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립시다. 제자로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십시다. 제자로서 치뤄야 할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십시다. 때로 불편하고, 때로 고통스럽고, 때로 억울하고, 때로 포기하고 싶어도, 우리 주님이시요 유일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분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기를 결심하십시다. 그렇게 할 때, 그분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거룩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실 것입니다. 아멘!

오, 주님,
제자 되기 원합니다.
제자로 살기 원합니다.
저희로는 안 됩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받으셔서
주님의 것으로 만드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2년 9월 23일 주일 설교
"그 길을 가는 이유"(Reasons to Walk the Way)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507장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마가복음 9장 30-37절을 읽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 있던 생각을 헤아려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0분)
4.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나만 말해 보십시오.
2)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 할 때, 당신이 보게 될 가장 큰 손해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께서는 그 손해를 어떻게 보상해 주시리라고 기대합니까? 제자로 살아갈 때 당신이 얻을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겠습니까?
4) 제자로 자라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5. 기도
1) 제자로 살아가기를 기도 중에 결단하십시오.
2)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6.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7.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510장
8.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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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0 창세기 머물지 않는 신앙 창11:27-32  류공석 목사  2013-06-22 2443
9319 로마서 하나님과 친해지기: 두 자아의 싸움에서 롬7:15-8:2  류공석 목사  2013-06-22 2025
9318 출애굽기 청년이라 불리웠던 사람 출33:11  류공석 목사  2013-06-22 2017
9317 사도행전 하나님과 친해지기 10: 성령 행4:32-35  류공석 목사  2013-06-22 2312
9316 사도행전 욥바 교회 이야기 행9:36-43  류공석 목사  2013-06-22 2643
9315 출애굽기 어머니의 젖줄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하나님 교육.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22 1602
9314 마가복음 은혜를 떠나 길을 잃다 (Being Lost Away From Grac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3-06-21 2661
9313 마가복음 천국은 멀지 않다(Heaven Is Not Far) 막12:28-34  김영봉 목사  2013-06-21 2419
9312 마가복음 길 가에 서라 (Stand By the Side of the Road) 막10:46-52  김영봉 목사  2013-06-21 2457
9311 마가복음 기준이 다르다 (Our Standard Is Different) 막10:1-12  김영봉 목사  2013-06-21 2197
9310 마가복음 십자가를 진다는 말의 의미 (Meaning of Bearing the Cross) 막9:38-50  김영봉 목사  2013-06-21 3882
» 마가복음 그 길을 가는 이유(Reasons to Walk the Way) 막9:30-37  김영봉 목사  2013-06-21 2161
9308 마가복음 군중인가, 제자인가?(The Multitudes or the Disciples) 막8:27-34  김영봉 목사  2013-06-21 2649
9307 야고보서 누굴 믿는지 안다면... (If Only We Knew Whom We Believe) 약2:1-4  김영봉 목사  2013-06-21 2320
9306 아가 사랑, 그 소중함에 대해 (Love, About Its Preciousness) 아2:8-14  김영봉 목사  2013-06-21 2332
9305 시편 광야에 샘을 내는 법(To Make a Spring in the Desert) 시84:1-7  김영봉 목사  2013-06-21 2458
9304 에배소서 시간의 장터에서(In the Market Place of Time) 엡5:15-20  김영봉 목사  2013-06-21 2223
9303 요한복음 그런 기도는 없다 (There Are No Such Prayers) 요6:47-51  김영봉 목사  2013-06-21 2063
9302 마가복음 풍랑 속에서 잠 자는 법 막4:35-41  김영봉 목사  2013-06-21 2850
9301 에배소서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하다 (Evil Is Strong And We Are Weak) 엡6:10-13  김영봉 목사  2013-06-21 2278
9300 요한복음 우리는 공범이다 (We Are Accomplices) 요20:19-2  김영봉 목사  2013-06-21 2186
9299 요한복음 내 기도는 너무 사치스럽다 (My Prayers Are Too Luxurious) 요6:47-51  김영봉 목사  2013-06-21 2391
9298 스바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습3:17  한태완 목사  2013-06-19 3720
9297 누가복음 믿음을 실천하자 눅18:18-43  최장환 목사  2013-06-19 2959
9296 고린도후 환경은 나의 선생님 고후8:1-24  최장환 목사  2013-06-19 3147
9295 출애굽기 내 속에 있는 모세를 잘 키우고 있습니까?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18 2070
9294 시편 나의 마음과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 시33:13- 15  한태완 목사  2013-06-18 2605
9293 로마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8  민병석 목사  2013-06-17 3038
9292 로마서 성령의 탄식과 간구 롬8:26-2  민병석 목사  2013-06-17 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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