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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멀지 않다(Heaven Is Not Far)

마가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19 추천 수 0 2013.06.21 21:56:53
.........
성경본문 : 막12:28-34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2년 11월 4일 주일 설교

와싱톤 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천국은 멀지 않다(Heaven Is Not Far)
 --마가복음 12:28-34

 

1.
얼마 전에 목회 칼럼에서 언급했던 <Proof of Heaven> (천국의 증거)이라는 책이 지난 주간에 나왔습니다. 미리 주문을 했더니, 나오자마자 집으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미 Newsweek 매거진이나 ABC News 같은 매체에서 소개가 되었습니다. 신경 외과의(Neurosurgeon)로 혹은 신경 과학자(Neuroscientist)로서 명성을 날리던 에벤 알렉산더(Eben Alexander) 박사의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임사체험'이라는 말은 의학적인 의미에서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한 상태에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경험한 것을 가리킵니다.

사실, 임사 체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록으로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임사 체험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뇌과학자들은 뇌에 일어난 비정상적인 충격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심리학자들은 그 사람이 자라난 문화적인 요소들이 환상을 통해 현실처럼 보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까닭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을 환각 상태에서 생긴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현대인들에게 과학은 진리에 대한 최종 심판관의 자리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신비로운 사건이 일어나도 과학자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대로 믿습니다. 임사 체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종 뇌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에벤 알렉산더 박사의 임사 체험이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신경 과학과 뇌과학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실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국내의 유수 대학 병원에서 뇌수술의사로 일했고,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하기 전에 임사 체험 이야기들을 뇌의 이상 기능으로 인해 생긴 일종의 환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자신이 이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일 주일 동안에 머물렀던 상태는 완전 뇌사 상태, 즉 뇌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 피질(cortex)이 완전히 작동을 멈춘 상태였습니다. 많은 임사 체험들이 심장이 정지되었으나 뇌는 여전히 작동을 하는 상태에서 일어났는데, 알렉산더 박사의 경우에는 뇌 자체가 기능을 멈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겪은 임사 체험은 뇌 안에서 일어난 이상 작용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뇌가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환각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알렉산더 박사는 '실재하는 것'(what is real)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넓은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그 광활한 세계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알렉산더 박사가 자신의 임사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증언하는 진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보아 알게 된 그 세계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안타까워 그는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남은 인생의 가장 큰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증언은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실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는 진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외치셨던 진실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진실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수 많은 신앙인들이 여러 경로로 체험하고 깨달은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땅의 나라가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경마 경기를 보면, 말이 다른 곳을 보지 못하고 앞만 보도록 양 눈에 가리개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사는 것은 항상 눈 가리개를 하고 사는 말의 형편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는 것은 세계관이 전적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박사는 하나님 나라를 믿기 이전에 알던 세계를 '지렁이의 눈으로 본 세계'(Earthworm's View of the World)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나니, 그 이전에 알았던 세계가 얼마나 좁다란 것인지를 알았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체험 이야기를 읽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 환히 눈 뜨고, 그 나라를 좀 더 진하게 경험하고픈 열망이 제 마음에서 솟구쳤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나라를 보아 왔고 또한 체험해 왔지만, 더 깊이, 더 확실하게 그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코마 상태에 빠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틀림없이 되살아 난다면, 그리고 틀림 없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을 할 수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마음 다해 기도하는 것이고, 예배 드릴 때마다 정성을 다하며, 더 자주 길 가로 내려 서기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 나라를 확실하게 경험하는 길이 또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율법학자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실 때의 일입니다. 예루살렘은 여러 모로 갈릴리와 달랐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에는 율법에 도통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틈만 나면 논쟁을 걸어 옵니다. 어떻게든 함정에 빠뜨리려는 까닭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라운 기지와 지혜로써 그들을 침묵시키십니다.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어떤 율법학자가 평소에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28절)


이 질문은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자주 논쟁을 벌였던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구약성경 안에 613개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때로 율법들이 서로 상충되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율법이 더 우선되는지를 판단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가지의 율법이 충돌합니다. 십계명의 제 4 계명 즉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과 제 5 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충돌하는 겁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면 아버지를 고통 중에 내버려 두어야 하고,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려면 안식일 계명을 어겨야 합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613개의 율법을 두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장 큰 율법은 무엇인지를 두고 토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먼저 신명기 6장 4-5절을 인용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이 본문은 '쉐마'라는 별명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말씀 중 하나였습니다. 다른 성경은 몰라도 이 말씀만은 누구나 외우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당시 꽤 많은 율법학자들이 이 쉐마 본문을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질문을 던진 그 율법학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끝나자 마자 예수님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하나님 사랑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대답할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다른 율법학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의 계명에 이웃 사랑의 계명을 붙여 놓으십니다. 마태복음에도 동일한 본문이 나와 있는데, 그곳에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똑 같이 중요하다는 의미의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율법과 계명의 핵심은 바로 이 사랑에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말인가?'라고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과 비교할 수 없이 높고 큰 계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웃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미워할 경우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 계명이 똑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은, 두 계명이 아닙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는 계명 안에는 "너 자신을 사랑하여라"는 계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이 이미 충분히 밝혀낸 바와 같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계명은 그 뿌리에 있어서 서로 얽혀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제일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참되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연히 따라 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대답으로 인해 대부분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던졌던 그 율법학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대답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32-33절)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가 마음에 드셨습니다. 34절에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라고 쓴 것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의 대답을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율법학자에게 덕담을 해 줍니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34절)


이것은 분명히 덕담이요 칭찬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율법학자들에 대해 쏟아 부은 비판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율법학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38-40절)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구실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차별했기 때문에 율법학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혹독한 심판을 대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큰 칭찬입니다. "너는 다른 율법학자들과 달리 진리를 깨닫는 마음이 살아 있구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영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율법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 책망입니다. 그는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살았기에 당연히 자신이 하나님 나라 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은 아니라고, 조금 더 가야 한다고,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34절의 마지막 문장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든 트집을 잡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논쟁을 거는데, 그 때마다 함정에 빠지는 것은 그들 자신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시비를 걸수록 드러나는 것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불의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두려워서 더 이상 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덕담으로 던진 그 말씀이 그 율법학자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가망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핵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율법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사실, 모든 제사와 번제가 사랑 때문에 생긴 것이며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랑이 참되다면 하나님 사랑이나 자기 사랑이나 이웃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율법학자가 "하나님 나라가 너의 것이다"라는 선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율법학자와 하나님 나라 사이의 거리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에게 아직도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깨달은 사랑의 원리를 실천하는 것, 바로 그것이 그에게 필요했습니다. 그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가야 합니다. 그 남은 거리를 좁히려면 사랑을 행해야 합니다. 사랑은 오직 행함으로써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4.

진정한 사랑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행할 때,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이 그 진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요일 4:1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일 4:16)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나라를 좀 더 분명하게, 좀 더 확실하게, 좀 더 진하게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알렉산더 박사처럼 인생의 궤도를 확 바꾸어 놓을만큼 확실하게 그 나라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영적 체험이나 임사 체험 같은 것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신비한 체험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사랑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배운 사랑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이기심으로 속속들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의 얼굴을 한 증오이며 집착이며 폭력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보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사랑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순도 100%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사랑에 취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랑에 항복해야 합니다.

에벤 알렉산더 박사가 코마 상태에서 천국 여행을 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듣고 느끼고 본 메시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기억하기로 세 가지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는 You are loved and cherished, dearly, forever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절절히, 그리고 영원히"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You have nothing to fear였습니다. "너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셋째 메시지는 There is nothing you can do wrong이었습니다. "너는 아무래도 괜찮아"라는 뜻입니다. 그가 들은 모든 것, 본 모든 것, 느낀 모든 것이 이 세 가지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그에게 전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본성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참된 사랑에 눈을 뜹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사랑을 경험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천국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때, 우리 자신이 달라 보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눈 뜨기 전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스스로를 판단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니, 세상에서 뭐라 하든 나는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로 지어졌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 죄와 멸망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해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지으신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찌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비로소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 뜨고 나면, 자신이 그 동안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자신의 이기심의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집니다. 그리고는 진정한 사랑 안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 사람도 사랑하고 계심을 알기에 이제는 아무 조건 없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는 계명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진정한 사랑은 삼위일체적(trinitarian)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마치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처럼, 각각 뚜렷이 구별되지만 또한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된 것입니다. 그 삼위일체적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그 나라의 기쁨과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것이 천국을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각자에게 한 번 진지하게 물어 보십시다. 여러분이 믿는 믿음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일마다 예배로 모이고, 주중에는 성경 공부로 모이며, 정기적으로 속회로 모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던 그 율법학자처럼, 오늘 우리는 "나의 이 모든 신앙 생활의 초점이 무엇입니까?"라고 심각
하게 물어야 합니다.


사랑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관심사 중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매일의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이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가장 큰 갈망이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제 아무리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파산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왔던 그 율법학자처럼 천국은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사랑을 외면하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은 철 없을 시절에 한 번 경험하고 마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 외에는 아무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존재를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분투합니다. 사랑에는 철저한 패배자로 살면서 다른 것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대신에 미움으로 살기도 합니다. 미움은 아주 강력한 생의 에너지원입니다. 하지만 미움의 에너지는 상처와 파괴만을 낳습니다. 지옥은 죽음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어느 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 추운 계절을 앞두고 우리가 더욱 생각할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잎을 떨어내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도 이 계절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비우고 서서 그분의 사랑을 더욱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겨울 바람보다도 더 찬 바람이 불어치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이유도, 삶의 동기도, 삶의 방법도, 삶의 목적도 사랑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고개만 끄덕일 것이 아니라, 지갑을 꺼내어 손을 내미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작은 실천이 큰 실천을 불러옵니다. 사랑은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바로 그 사랑이 우리의 두 발을 하나님 나라에 든든히 세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들어야 할 말씀은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너의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올 때, 비로소 그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도 에벤 알렉산더 박사만큼이나 강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사랑은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이 사랑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그 사랑 때문에 살게 하시고
주님처럼 사랑하게 하시며
사랑으로 인해
늘 하나님 나라 안에 살게 하소서.
아멘.

<속회자료> 2012년 11월 4일 주일 설교

"천국은 멀지 않다"(Heaven Is Not Far)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299장(통 418장)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마가복음 12장 28절부터 34절까지를 읽고, 율법교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10분)
4.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나만 말해 보십시오.
2) 당신은 "아, 하나님 나라가 내 곁에 있구나!"라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그 체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3) 삼위일체적인 사랑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당신의 관심사에서 진정한 사랑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4) 사랑에 있어 자라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5. 기도
1)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 사랑에 있어 자라가도록 기도하십시오. 
6. 중보기도
돌아가면서 기도 제목을 나누십시오. 각자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적어 두고 매일 한 번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7.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305장(통 405)
8.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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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8 출애굽기 청년이라 불리웠던 사람 출33:11  류공석 목사  2013-06-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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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6 사도행전 욥바 교회 이야기 행9:36-43  류공석 목사  2013-06-22 2643
9315 출애굽기 어머니의 젖줄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하나님 교육.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22 1602
9314 마가복음 은혜를 떠나 길을 잃다 (Being Lost Away From Grac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3-06-21 2661
» 마가복음 천국은 멀지 않다(Heaven Is Not Far) 막12:28-34  김영봉 목사  2013-06-21 2419
9312 마가복음 길 가에 서라 (Stand By the Side of the Road) 막10:46-52  김영봉 목사  2013-06-21 2457
9311 마가복음 기준이 다르다 (Our Standard Is Different) 막10:1-12  김영봉 목사  2013-06-21 2197
9310 마가복음 십자가를 진다는 말의 의미 (Meaning of Bearing the Cross) 막9:38-50  김영봉 목사  2013-06-21 3882
9309 마가복음 그 길을 가는 이유(Reasons to Walk the Way) 막9:30-37  김영봉 목사  2013-06-21 2161
9308 마가복음 군중인가, 제자인가?(The Multitudes or the Disciples) 막8:27-34  김영봉 목사  2013-06-21 2649
9307 야고보서 누굴 믿는지 안다면... (If Only We Knew Whom We Believe) 약2:1-4  김영봉 목사  2013-06-21 2320
9306 아가 사랑, 그 소중함에 대해 (Love, About Its Preciousness) 아2:8-14  김영봉 목사  2013-06-21 2332
9305 시편 광야에 샘을 내는 법(To Make a Spring in the Desert) 시84:1-7  김영봉 목사  2013-06-21 2458
9304 에배소서 시간의 장터에서(In the Market Place of Time) 엡5:15-20  김영봉 목사  2013-06-21 2223
9303 요한복음 그런 기도는 없다 (There Are No Such Prayers) 요6:47-51  김영봉 목사  2013-06-21 2063
9302 마가복음 풍랑 속에서 잠 자는 법 막4:35-41  김영봉 목사  2013-06-21 2850
9301 에배소서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하다 (Evil Is Strong And We Are Weak) 엡6:10-13  김영봉 목사  2013-06-21 2278
9300 요한복음 우리는 공범이다 (We Are Accomplices) 요20:19-2  김영봉 목사  2013-06-21 2186
9299 요한복음 내 기도는 너무 사치스럽다 (My Prayers Are Too Luxurious) 요6:47-51  김영봉 목사  2013-06-21 2391
9298 스바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습3:17  한태완 목사  2013-06-19 3720
9297 누가복음 믿음을 실천하자 눅18:18-43  최장환 목사  2013-06-19 2959
9296 고린도후 환경은 나의 선생님 고후8:1-24  최장환 목사  2013-06-19 3147
9295 출애굽기 내 속에 있는 모세를 잘 키우고 있습니까?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18 2070
9294 시편 나의 마음과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 시33:13- 15  한태완 목사  2013-06-18 2605
9293 로마서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8  민병석 목사  2013-06-17 3038
9292 로마서 성령의 탄식과 간구 롬8:26-2  민병석 목사  2013-06-17 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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