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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4:3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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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하나님과 친해지기 10: 성령
2008. 5. 10. 텔아비브 욥바 교회 성령강림주일 및 어버이주일
사도행전 4:32-35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데, 정말 행복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행복이 영어로 happy, happiness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happen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happen이 무슨 뜻이지요?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축복인데, 영어로 bless입니다. 이 단어는 bleed, 피흘리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피흘림을 통해서,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분명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 축복은 희생을 통해 주어집니다.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흘림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라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진정한 행복은 희생을 통해 주어집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희생하여 섬길 때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희생을 통한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그 보다 더 본질적으로 행복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희생 이전에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아담과 하와입니다. 적어도 그들이 범죄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깨끗하고 순결한 상태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었고, 음성과 음성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막힘없이 교제를 나누었던 이들이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에녹 역시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리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노아 역시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구원받아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믿음의 조상, 축복의 조상이 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을만큼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다윗 스스로도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했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생활을 했던 부러울 정도로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인간은 행복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과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왜 행복합니까? 마치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부모가 있을 때 행복한 것처럼,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존재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있고, 참된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그들에게 있었고, 성령의 충만하심이 늘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성령님 역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님께서 계십니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십니까? 성령님과 동행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꿈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꿈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꿈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꿈꾸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령이 임할 때 사람들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임할 때 이상을 보고 환상을 보고 비전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을 때 가나안은 불가능한 땅이 아니라 능히 차지할 수 있는 약속의 땅으로 보였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비전이 생겨났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마른 뼈들이 살아나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는 자신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줄을 알게 되었고,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꿈꾸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꿈꾸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 땅의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꿈을 갖길 원하십니까?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요엘서 2:28에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보십시오. 성령께서 임하시면, 성령충만을 받으면 어떤 일들이 나타납니까?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본다는 겁니다. 장래 일, 꿈, 이상, 이 셋은 한가지를 다르게 말한 것입니다. 한 단어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꿈, 비전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자녀들이 꿈을 갖게 되고, 노인들도 꿈을 갖게 되고, 청년들이 꿈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교우들과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던 모든 분들이 성령충만하여 꿈을 꾸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청년들을 볼 때마다, 또 생각할 때마다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청년들에게 꿈을 주시기를, 자신의 인생만을 바라보는 꿈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지시고 보여주셨던 바로 그 꿈,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땅과 온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꿈, 내 인생을 통해, 내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어가는 꿈,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꿈, 모든 사람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꿈,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땅을 만드는 꿈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제목이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입니다. 저는 그 연설을 녹음 테이프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열정이 담겨져 있는지 그 연설을 듣는 저의 마음이 뜨거워질 정도였습니다.
그가 가진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은 흑인차별로 대표되는 인종차별이 심각했습니다. 그러한 인종차별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비폭력, 무저항으로 인권운동을 폈고, 그래서 미국의 인종차별정책을 철폐시켰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분입니다.
비록 1968년에 백인우월주의단체에 의해서 암살을 당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 마틴 루터 킹 목사님 한 사람이 가진 꿈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변화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꿈에 전염되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와 옥스퍼드 대학의 20여명의 젊은이들이 성령충만하여 꿈을 꾸었을 때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휩쓴 부흥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성령께서 주시는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꿈을 보여주시고 나누어주시길 원하십니다.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요엘서에 예언되어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장래 일을 보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고 비전을 품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십니까?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보면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100% 아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100% 아십니다. 그러기에 성령 받은 사람, 성령충만을 입은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됩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게 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대충 머리로 ‘그래 알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전도단의 대표를 지내셨던 홍성건 목사님의 저서 가운데,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란 책에 보면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시는데,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온 영혼과 마음과 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청년 사역을 했을 때 매해 여름마다 단기선교를 갔었는데, 그 때마다 가장 중요한 준비로 대상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 가운데 가장 우선되고 빠지지 않는 기도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 가운데 기름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무딘 심령에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가슴이 아파 오고,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터집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민족을 사랑하시는지, 그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시며 얼마나 아파하시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지난 2월말에 여리고에서 '비전 이스라엘'이란 집회에 참석을 했었지요. 그때 우리 교우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했었는데, 그때 성령께서 부어주셨던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을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 이스라엘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주셨고, 그것이 느껴져 눈물로 기도했었습니다.
여러분,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분들,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으신 분들도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 때 자녀된 우리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행복한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슴마다 이 민족 이스라엘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지길 축원합니다.
4. 자유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3:17에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보다도 죄에서의 자유, 죽음에서의 자유, 율법에서의 자유를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자유케 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자유하십니까?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규칙을 초월하는 것을 의믜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틀에, 형식에, 전통에, 경험에, 율법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성령을 그 안에 가두려하지 마십시오.
자유는 곧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변질되지는 말되 변화는 되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마십시오. 성령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예배와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유함으로 예배하며 찬양합니다. 다윗이 성령충만할 때 왕이라는 신분임에도 춤을 추며 찬양한 것처럼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유함으로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자유함이 있습니까?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자유 가운데는 물질의 염려로부터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 분이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실 때 우리는 물질의 염려, 생활의 염려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이 무엇인지 기억나십니까? 티테디오스, 염려로부터 자유한 사람, 염려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란 뜻을 가진 티테디오스라는 별명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물질의 나눔과 공유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가지려고 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탐욕스러운 것이 우리 인간의 본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의 것을 팔아 함께 나누어주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들이 성령충만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물질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나눔의 영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소유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집착과 욕심이지만, 성령의 본성은 자유이고, 사랑이고, 나눔이고, 흐름입니다.
한국에서 청년들을 지도할 때 예배찬양팀 MT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일정을 끝내고 찬양팀 자체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flowing이라는 것을 하더군요. flowing이란 말 그대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른 지체에게 흘려보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보는데 참 기가 막히데요.
이 친구들이 먼저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주관하시도록 뜨겁게 한시간 가량인가를 기도합니다. 그런 후에 flowing을 하는데, 어떤 형제는 책을 주고, 어떤 형제는 정말 갖고 싶은 것을 사려고 모아둔 거금을 필요한 다른 지체(이 지체는 돈이 없어 학교 등록을 못한 상태)에게 주고, 어떤 자매는 CDP를 주고, 어떤 자매는 양말을, 어떤 자매는 베이스기타를 주고 그러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침 7시까지 벽에 등을 기대지도 않고 앉아서 듣기만 했는데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는 짓들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 모습을 보시면서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었거든요.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밭과 집이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사도들에게 내어놓고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앞 구절 끝에 나옵니다.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33절하)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자원하는 심령을 줍니다. 그래서 움직이게 만듭니다. 사랑하게 만들고, 섬기게 만들고, 헌신하게 만듭니다.
은혜 받으면 부자가 됩니다. 성령충만하면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면 부자가 되요. 그래서 자기의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되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지체들에게 흘려 보내줄 수 있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부자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정이 많고 건물이 커서 부자 교회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서 마음이 부자인 교회, 그래서 사랑하고 섬기고 자신의 것을 흘려보내는 데 부자인 교회, 부자인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곧 성령충만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무엇이 행복인지, 어떠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꿈이 있는 사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이 행복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성령충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임재는 일회적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그 순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 가지고 버티려 하지 마십시오. 맨날 ‘아 옛날이여’ 하지 마세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고백은 ‘날마나 새롭도다’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성령충만한 상태인지는 자신이 압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세요. 누가복음 11:13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 믿고 성령충만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성령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충만한 사람들이었고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었습니다. 실수 많고, 욕심많고 자기 중심적이었고, 좌충우돌하고, 성격 급하고, 서로 으뜸이 되겠다고 다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무엇보다 성령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꿈꾸는 사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한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도 성령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모하시기 바합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꿈꾸는 사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 자유함이 있는 사람들 다 되어서 이 땅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어 가는 진정으로 행복한 주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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