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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7: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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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하나님과 친해지기 12: 예수님의 기도
2008년 6월 21일(토)
요한복음 17:6-26
지난 주에 어느 성도님과 대화를 하다가 이분이 지금 성경을 읽으시는데, 구약성경을 보는데 좀 어렵더랍니다. 그러면서 나온 말 중에 하나가 구약성경에 보니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된답니다.
출애굽기 20:5 등에 '질투하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 부분은 특별히 십계명 중 두번째 계명에 나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하신 겁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시지요?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신다는 것인데, 왜 질투를 하실까요?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왜 질투합니까?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기껏 하는 짓이 우상숭배라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놔두면 됩니다. 별로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그냥 놔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세요.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도 질투하시지만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해하려고 하거나 빼앗아가려 할 때 하나님은 또한 질투하셔요. 그래서 그냥 놔두지 않으세요. 우리를 향하신 그 깊으신 사랑이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인데요, 이 기도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단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6절과 8절에 보면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고, 10절에는 "내 것", 24절에도 "내게 주신 자"란 말씀이 나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내 것"이라고 했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너는 내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가슴 벅찬 감동을 받습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인 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내 것이다”
우리를 '내 것'이라 부르실 정도로 소중한 존재로 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질투를 하십니다. 그 질투가 무엇이냐 하면 그 무엇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정말 축복된 사람들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투는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의 질투가 바로 우리를 향하신 기도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애착심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서 내가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마음이 어떨까요? 남다른 애착심을 갖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 특별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떻습니까? 남다른 강한 애착심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 위해서는 얼마 기도 못하는 사람들도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오랫동안 눈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왜요? 내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니까 그런 애착심이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은 질투하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12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 주님께서 우리를 보전하여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 손대지 못 하도록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실 때도 그러셨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그와 같은 애착심을 가지고 당신의 것인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으십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제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참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그로 인해 제 마음이 무척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도사나 목사는 힘들어도 힘든 표시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들었지만 교회에서 힘든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웃고 더 힘있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그 권사님이 저에게 그러는 겁니다. “전도사님, 제가 전도사님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는 기도할 때마다 전도사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더 많이 기도해요. 성령께서 더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울뻔 했습니다. 정말 힘든 때였거든요. 심방을 가도 제 마음이 편하질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그 권사님이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도 성령께서 더 기도를 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얼마나 큰 감동이 되고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권사님의 기도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다시 힘을 낼 수 있었고, 저의 문제들 역시 하나씩 다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저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감동받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분들은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에는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눈물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만 들어도 감동을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시면서 '이 사람은 내 것이다. 아무도 손대지마. 내가 기도한다.'하는 애착심을 가지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 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이 사실 하나만 깨달아도 우리는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겁나는 것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믿고 이 세상을 산다면, 어떤 고난 앞에서도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만큼 놀라운 은혜란 말씀입니다.
왜 우리 모습이 초라해집니까? 왜 우리가 고독을 느낍니까? 왜 우리가 어떤 자그마한 일 앞에도 두려워합니까?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고 계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안다고 해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만큼 확실하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까?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받으면 여러분은 삽니다. 믿음을 가지고 않고 그저 적당히 들으면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은혜도 안되고 힘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셨던 주님, 세상을 떠나시면서 기도하셨던 그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계십니다. 더욱이 그 기도 대상에는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나와 함께 하는 주님의 이 기도 앞에 세상의 그 무엇이 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면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시금 힘차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심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릎에 있습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기도가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눈물이 곧 주님의 눈물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그대로 받으십니다. 사랑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본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요?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네 가지 중요한 제목을 놓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 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삼위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요, 한 분이십니다.
"완전한 하나가 된 성부, 성자, 성령, 우리와 같이 저희들도 이 세상에 있을 동안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21-22절에 보면 주님은 이 기도를 또 한번 반복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중요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가 되나 둘, 셋이 되나 그게 그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할 때는 몇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원인은 거룩과 사랑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교회가 거룩을 잃어버릴 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거룩의 모습을 잃어버린 교회는 세상을 고치는 소금이 아니라 짓밟히는 소금이 되고 맙니다. 거룩의 모습을 잃어버린 성도들로 가득찬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17절에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에게는 거룩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아멘 하며 믿고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사나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거룩함을 주시고, 세상을 이길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바로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들 손으로 성경을 펴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세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으세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거든 변명하지 말고 합리화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뒤로 미루지도 말고 순종하십시오.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그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진리가 되고 거룩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사랑이 식어질 때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사랑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것을 희생합니다. 사랑은 겸손이고 남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있는 교회는 하나될 수 있지만, 그러한 사랑이 식어진 교회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내가 드러나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주인행세를 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서로 존경하고 섬기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섬기기 보다는 편하게 있기 원하고 섬김 받기를 원하게 됩니다.
교회의 능력은 거룩함에 있고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능력 역시 거룩함에 있고 사랑에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될 수 있는 힘도 바로 거룩함과 사랑에 있습니다. 이것이 식어지거나 없어져 버리면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하고 아무런 능력도 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을 뿐만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고 오늘도 우리가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 텔아비브 욥바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고 많은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돈? 건물? 일꾼들? 아닙니다.
거룩함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능력이 있고 여기에 열매가 있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지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고침받고 변화되어 성장하는 것을 소홀히 할 때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되어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섬기는 것을 게을리할 때, 서로를 형제 자매로 여기고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것으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을 귀찮아할 때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우리 교회를 자랑합니다. 좀 걱정하는 분들은 그래요. "개척교회라서 힘드시겠어요. 일꾼이 많아야 하는데... 청년들, 출창자들이 많다지요?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힘드시겠어요." 나름 걱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럼 저는 그렇게 답합니다.
"아니요. 전 행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교회인 것이 맞고, 일꾼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때로는 힘들 때도 있지만 못할만큼 힘들진 않고요, 오히려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는요, 사랑이 있고 예배의 은혜가 있어요. 모든 교인들이 사랑으로 즐겁게 섬기고 있고요, 말씀을 사모하며 순종하는 살아있는 예배가 있어요. 그래서 교회가 늘 밝고요, 분위기 좋고요,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괜히 좀 안다고 말만 많고 주인행세 하는 사람들 많은 교회보다 훨씬 나아요."
제가 바르게 말한 것 맞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스라엘 땅에서 텔아비브 욥바 교회에서 만난 것,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과 사랑으로 하나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더욱 더 하나되기를 힘씁니다. 더욱 더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 말씀으로 여러분을 채우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들의 거룩의 근원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더 사랑합시다. 더욱 더 자신을 낮추고 형제 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깁니다. 사랑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거룩과 사랑으로 하나되기를 힘쓸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크고 멋진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두번째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악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가셨고, 우리도 세상에 두셨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 은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놓고 떠나시면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도 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세상은 악한 곳입니다. 세상에는 악한 세력이 여전히 건재해 있으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24시간 쉬지 않고 공격을 합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죄에 빠지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신앙 생활할 수 없도록 하려고 온갖 함정을 파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악의 유혹을 피하고, 악을 대적해서 막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악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 모든 악을 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들을 보전하사 악에서 지켜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똑같은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건재한 것도 다 이 기도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이 기도가 없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악한 세상에서 이만큼 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만 이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고도 이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주기도문에 있지 않습니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이는 절대 우리가 악한 세상의 공격을 이기고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악한 세상이 두렵습니까?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때로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아도, 우리가 필요할 때 찾아오지도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살려 달라고 소리칠 때 아주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이상,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삼킬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세번째는,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아이고, 나는 어제도 죄 짓고, 오늘 아침에도 죄 지었는데 거룩하기는 뭐가 거룩하냐? 목사님 거짓말 하시네'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요, 예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이 거룩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악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거룩을 잃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지킬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야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항상 그 말씀을 지킬 때 우리는 거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거룩을 지켜야 되는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세상의 어떤 유혹이 찾아옵니까? 여러분의 거룩을 더럽히려고 하는 개와 돼지들이 주변에 우글거리고 있습니까? 내 힘만으로는 절대 나의 거룩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해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네번째 기도는, 주님의 영광에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누리고 계시는 그 영광은 도무지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는 차원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을 따라서 산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던지 그것을 보자마자 제자들은 요사이 말로 뿅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우리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삽시다. 제가 나무 가지로 텐트 몇 개 칠 테니까 여기서 삽시다." 사실 이 말은 멍청한 말입니다. 텐트 하나 달랑 가지고 어떻게 살자는 것입니까? 무슨 먹을 음식이 있길 합니까? 그러나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영광이 그만큼 대단했고 황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누리고 계신 그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목표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목표를 바라보며 소망을 붙들고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예수님 자신이 누리는 그 영광을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 17장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주님께서 이 네 가지 기도를 가지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구나.'하고 생각할 때면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오면 목회자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전부 서론입니다. 한 10분 안에 다 끝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본론이 누구입니까?
"주여, 우리 집의 철이를 아시지요? 이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여, 우리 집 영희 아시지요? 이 딸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하고 입을 열면 1시간도 좋고, 2시간도 좋은 것입니다.
제 어머니도 그런 분 중 하나입니다. 새벽에 나오시면 1-2시간 앉아 기도하시는데 그 기도야 뻔하지요. 전부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삼십년 가까이를 그렇게 기도해 오신 분이십니다. 예전에 아버님 생신 때 식사기도를 어머니께 부탁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배고파 죽을 뻔 했습니다.
식사기도를 하면 음식을 놓고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셔야 할텐데 식탁에 앉아서 눈을 감고는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우리 형제들, 매형들, 손자 손녀들까지 줄줄이 엮어 나가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날따라 성령충만하셨나 봅니다. 맛있는 고기 냄새는 나지요 배는 고프지요, 기도가 끝나고 나니까 밥이랑 국이 모조리 식어버렸습니다. 조카 녀석은 졸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기도 때 그렇게 자녀들을 위해서 줄줄이 기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항상 기도하던 기도 제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수십년을 기도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눈만 감아도 그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눈만 감으면 자식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켜 '내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를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 배후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뒤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있는 이상 세상에 우리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낙망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비겁하게 살지 마십시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더불어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기도처럼 우리의 기도에도 하나되기를 구하고, 악에 빠지 않기를 구하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구하고, 주님의 영광의 참여하는 소망을 갖고 살게 해달라는 간구가 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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