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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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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마하나임과 종이호랑이
2008. 7. 26. 텔아비브 욥바 교회
창세기 32:1-12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참전해서 죽은 군인들의 수가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3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 가운데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총알 맞아 죽은 사람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있지만 한 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시한부 종말론 이단, 사이비 종교들을 보면 말세에 대한 진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두려움을 잔뜩 고조시킵니다. 그리곤 집 내놔라, 돈 내놔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두려움에 사로 잡히면 그런 사기를 쳐도 사실로 여기게 됩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소설책이 있었는데 ‘휴거’라는 책입니다. 휴가가 아니라 휴거입니다. 끌어올릴 휴(携) 들 거(擧),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휴거되고, 휴거되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이 겪는 환란을 묘사한 책인데, 재미있기도 하면서도 은혜도 되고, 한편으로는 으시시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반영한 것이라 신학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만, 그 때는 꽤나 인기있던 책이었고, 제가 다녔던 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돌려읽을만큼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책을 빌려서 집에 와서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읽고 있었던 부분이 믿는 성도들이 휴거되는 장면이었는데, 그 부분을 읽고 있는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까 집안이 너무 조용한 겁니다. 그 때 제 조카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인데 그 시끄럽게 울던 아이 소리까지 않나는 겁니다.
어머니 소리도 않들리고. 전혀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순간적인 고요함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겁니다. 어머니를 불러 보았는데 대답이 없는 겁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더니 어머니도 없고, 조카애도 없는 겁니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나만 남겨두고 다 휴거된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순간적으로 그 생각이 드니까 정말 섬짓하더라구요. 저희 어머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신앙생활 잘 하시는 분이셨고, 그 책에 보니까 갓난아이들은 아직 죄짓기 전이기 때문에 휴거된다고 하고, 그럼 나만 남은 거예요.
물론 저도 교회는 다녔지만 죄지은 것이 많다고 느꼈거든. 나만 남고 다 휴거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긴 겁니다. 그러던 중에 잠시 후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어머니가 조카애를 업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반찬 사러 슈퍼에 잠시 갔다왔답니다. 그때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보통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예외가 아닙니다. 청년들의 경우는 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사업이나 장래 일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겁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있는데, 이 두려움이 사람에게 아주 않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심한 경우는 노이로제, 불면증, 소화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 정신장애에 시달릴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 여러분들은 두려움이 왜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의 정신과 의사로 평생을 공포증에 대해서 연구한 조셉 볼프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 조셉 볼프 박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극도로 놀랐던 사건에서 시작된 특정한 두려움 때문에 거의 평생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지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10대 청소년이 장난으로 물에 빠뜨려져서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그 아이가 앞으로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제공하게 됩니다.
운전의 경우도 초보 때 면허증 땄다고 기분 좋게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분들은 대개 다시 운전을 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에게 심한 놀림을 당했거나 웃음거리가 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두려워서 뒤를 힐긋힐긋 보는 분들은 왜 그렇습니까? 무언가 연상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뭐죠? 귀신영화입니다. 그런 영화를 보다보니까 어느샌가 그런 두려움이 생긴 겁니다.
결국 두려움의 근원에는 과거의 어떤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경험들로 인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도 보십시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인데, 7절에 보면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되어있습니다. 왜 야곱은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했습니까? 에서가 4백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맞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왜 두려움의 대상입니까? 역시 과거의 경험 때문입니다. 어떤 경험입니까? 예전에 에서에게 죄지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 먹이고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던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27:41에 보면 이 사실을 안 에서가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그래서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도망간 것인데, 야곱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에서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도 잘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그 두려움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데,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알아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근원은 대부분의 경우가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째 방법입니다.
. 두려움을 극복하는 두 번째 방법은 두려움 속에 담겨있는 거짓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두려움 중에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두려움이 담고 있는 거짓을 알아야 합니다.
한 예를 들면, 데이트를 하고 있는 한 남자와 여자를 상상해 봅시다. 데이트를 하다가 중간에 헤어진 여자가 남자에게 말합니다. “오빠, 오늘 밤에 전화할게” 저녁시간이 천천히 지나갔고, 지금은 한밤중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전화가 없는 겁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 가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아마 차가 많이 막혔나보지. 혹시 내가 조금 전에 잠시 심부름을 다녀오는 동안 전화를 했던 것은 아닐까? 곧 전화가 오겠지.”
처음에는 이성적인 단계에서 하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서 이런 생각으로 바뀝니다. “혹시 그녀에게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분명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혼자 길에 버려져 있을지도 몰라. 생명이 위급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예뻐서 혹시 누가 납치한 것은 아닐까?”
혹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 그녀는 나를 버린거야. 나를 좋아한다고 해놓고. 요즘 좀 이상한 것 같더니. 아,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어!”
많은 경우가 이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단계에서 시작되는 두려움이지만 나중에는 그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서 벼라별 걱정을 다 하게되고 큰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90% 이상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10%도 일어날 확률이 별로 없는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가리켜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두려움의 일차적인 원인은 과거의 경험이지만, 이차적으로는 사탄이 주는 마음일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특히 그 두려움을 크게 만드는 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을 마음이 생길 때 그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어서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짓눌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탄이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있지도 않은 일 가지고 두려워하게 만들고, 일어나지 않을 때문에 염려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해치고, 영적으로도 다운되게 만듭니다.
우리의 원수인 마귀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두려움의 마음을 주고,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될 때 그 두려움을 크게 만들어 떨게 만들고 짓누르고, 그래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괴롭게 만들고 다운시킵니다.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의 생각은 거의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이나 염려의 97%가 실제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겁니다. 3%밖에 안되는 가능성 때문에 쩔쩔매고 어둡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두려움의 대부분은 거짓입니다. 그 거짓을 주는 것은 우리의 원수 마귀 사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알아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 세 번째 방법은 가장 중요한 것인데, 두려움 뒤에 있는 진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국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처치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경험담인데요, 윌로우크릭 교회 예배당을 공사할 때의 일이랍니다. 하루는 공사하는 예배당 안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때는 철골 공사가 진행중이었는데, 갑자기 H빔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답니다.
대략 6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었고, 폭은 20센티였는데, 그 위를 걸어서 끝까지 갔다오고 싶은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가서 중간쯤 걸어가고 있는데, 그 때 교회 직원 한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직원이 발견하고는 표정이 어떠했을까요? 깜짝 놀라서 목사님을 부르며 두려워서 안절부절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직원의 그러한 얼굴을 보니까 그 때서야 정신이 차려진 겁니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깨닫는 그 순간 찾아온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보였던 6미터의 높이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까 공포가 찾아오는데 갑자기 숨이 차기 시작하면서 맥박이 빨라지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몸이 차가워지는 그런 두려움이 자신을 가득 메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으려니 정신이 없는 겁니다.
이 분이 어떻게 이 두려움을 이겼는지 아십니까? 자신에게 진실을 말했다는 겁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또 자신을 건져주실 하나님의 마음에 관한 진실을 자신에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구조물이 땅 위에 있는 것이었다면, 전혀 문제없이 이 위를 걸어서 일 마일이라도 갈 수 있었을 거야. 그러니 나는 지금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 상황 가운데서 지켜주실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말하고 나니까 맥박이 다시 정상이 되어갔고, 평형감각도 되돌아왔고, 천천히 자신 있게 구조물 위를 걸어서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 수상을 지낸 바 있는 원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두려움에 등을 돌리고 피함으로써 그 두려움이 없어질 것을 바란다면, 그 두려움은 두 배로 커져서 점점 더 누르는 힘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즉시 직접적으로 대면한다면, 그것이 가하는 힘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거짓을 드러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두려움을 똑바로 대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른바 정면돌파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거짓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고 절망감에 시달리게 만들지만, 진실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나는 능히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능히 이길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를 잘 보세요. 그에게 있어서 거짓은 무엇입니까? 형 에서가 4백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오는데, 그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 누구도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온다고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그리고 그 두려움이 점점 커지다보니까 에서가 오는 것은 자기를 죽이려고 오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진실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읍시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
보세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습니까?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겁니다. 그런데 야곱은 무엇에 마음에 빼앗겼습니까? 에서의 4백명. 진실은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인데, 야곱은 과거에 형 에서에게 잘못한 경험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에서가 4백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한번 두려움을 갖게 되니까 7절에 있는 것처럼 “심히 두렵고 답답해”질 정도로 두려움에 짓눌리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 말에 종이호랑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실 야곱이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했던 에서의 4백 군대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종이 호랑이가 어찌 할 수 있습니까? 조금도 나를 해치지 못해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진짜 호랑인줄 알고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안절부절하고 답답해했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종이 위에 그려진 호랑이지만 호랑이만 보고 있으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호랑이 자체에 대한 경험,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두려움의 경험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용인 에버랜드엘 갔습니다. 사자, 호랑이를 풀어서 키우는 사파리를 구경했는데, 숫사자 한 마리가 평상 위에 앉아 있는 겁니다.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그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보여주는데, 차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 눈높이가 똑같은 겁니다. 차 유리창하고 한 10센티미터밖에 안될 정도로 바짝 차를 댔는데, 지금까지 사자를 그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입니다. 정말 폼나데요.
눈앞에 있는 사자를 보고 있는데, 이 놈이 갑자기 입을 쩍 벌리는 겁니다. 하품을 하는건데, 섬짓 놀랐어요. 내 머리가 딱 들어갈 정도로 입을 벌리더라고요. 정말 섬짓했어요.
그런데 사자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 그 차의 유리는 방탄 유리거든. 지가 입을 아무리 크게 벌리고 으르렁거려도 절대로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요.
제가 그 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 바로 종이호랑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예요.
“아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제나 두려움의 대상은 사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사자가 아무리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면서 나를 잡아먹으려 달려들어도 방탄유리로 안전하게 보호되어있는 차 안에 내가 있는 한 절대로 안전한 것처럼, 내게 세상의 어떤 두려움이나 환난이 다가오고 원수가 나를 위협하고 어찌 해보려고 해도 내가 하나님께 붙어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나를 둘려싸고 있다. 그 안에 내가 있는한 나를 절대로 안전하다. 내가 잠시나마 두려워했던 것은 사자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지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 종이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다 거짓입니다. 진실은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아무리 염려되고 두려움이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아니 실제 호랑이라 할지라도 내 뒤에는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내가 하나님의 군대 안에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나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한 그것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앞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염려되고, 걱정되고, 두려워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움 자체를 보지 말고 두려움 뒤에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 자체를 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 뒤에 있는 진실,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보시길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1: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9에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점령해야할 사명을 안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요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 가지고 주의 능력에 힘입어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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