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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일하시는 방법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424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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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1-15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
2008. 8. 30.(토)
요한복음 6:1-15     

본문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아마 교회 다니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셨다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이 기적을 사복음서의 저자들이 모두가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제자들에게도 매우 놀랍고 감동적인 사건이었던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셨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당시에는 주로 성인 남자만 세었으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만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단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먹이셨고, 게다가 그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놀라운 사건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그런 사건입니다.

  한번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건을 사실로 믿습니까? 교인들 가운데에도 이 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군중이 갈릴리 북쪽에 있는 평지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지역은 먹을 것이 없는 빈들이었기 때문에 성격이 치밀한 유대인들은 나름대로 먹을 것을 준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도시락을 싸왔다는 것이지요. 시간이 흘러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얼른 자기 도시락을 꺼내서 먹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소년이 자기 도시락을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이것을 받아 드신 예수님은 너무 감격하시면서 무리 앞에서 도시락을 높이 들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이제 밥먹을 시간이구나 하면서 각자 가져왔던 도시락을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모두 도시락을 먹고 나서 정리를 하다보니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했던 사건을 나중에 제자들이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예수님이 마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무리들을 먹이신 것으로 과장해서 기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소개한 이 해석은 실제로 어느 교회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입니다. 이 교사는 조금 자유주의적인 신학교에 갓 들어간 젊은 교사로서, 어설프게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전한 것이지요.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어린 영혼들을 책임질 교사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전했다는 겁니다. 그 교사에게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과연 어떤 신앙인으로 자랐을까요? 제대로 신앙 가졌을까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실제적인 사건으로 믿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여.’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려는 자는 결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자꾸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것도 믿지 못합니다. 출애굽도,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믿지 못합니다. 자꾸만 자기의 이해의 폭에 성경을 끼워 넣고 자기의 머리에 하나님을 집어 넣으려고 합니다.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믿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으면 모두가 도시락을 싸왔다가 한꺼번에 먹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부인하고 성경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쇠퇴하고 맙니다. 유럽의 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나 예수나 똑같은데 뭐 믿을 게 있고, 헌신할 게 있어요. 다 떠나는 겁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친히 만드신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되신 그분이 어떻게 배고픈 군중을 앞에 놓고 떡 다섯 덩이를 가지고 먹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사건을 부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 기적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믿어지길 바랍니다. 그럴 때 이 사건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먼저 얻게 되는 교훈은 사람을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인 남자만 오천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만명이 넘는 수인데, 이것은 당시의 인구수에 비하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 찾아왔습니까? 말씀을 들으러, 기적을 보기 위해서, 병고침을 받기 위해, 혹은 호기심에 왔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영의 양식을 먹이신 것입니다. 틀림없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푹 젖어있었고, 즉석에서 고침받은 환자들로 인해 환호하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로 모릅니다.

  우리의 경우도 풍성한 은혜를 받을 때는 배고픈 것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밥심으로 사는 사람들이지만 정말 은혜에 푹 젖으면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배고픈 것도 잘 모릅니다.

해방 후에 박재봉 목사님이라고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기적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집회를 통해 은혜가 넘치니까 사람들이 일어날 줄 모르고 먹을 생각도 안하더라는 겁니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집회가 오후 3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집회를 마쳐도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어떤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받은 은혜를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은혜에 푹 젖으니까 실제로 배고픈 것을 잊게 된 것입니다. 당시 무리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했겠지요.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말씀을 듣는데 그 은혜가 오죽했겠습니까? 아마 먹을 것에 대해 잊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많은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이 배고픔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하기 전에 그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영혼만 아니라 육체까지 중요하게 보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32에 보면 오병이어와 다른 또 하나의 기적이 나옵니다.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사건인데,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이 얼마나 인자하고 자상하신 모습이십니까? 우리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을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여기에 시험이란 단어가 있는데, 말 그대로 test, 시험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문제를 내셨습니다. 시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5절, “...빌립더러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것은 제자들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문제에 대해 빌립이 무어라 대답합니까? 7절,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7절을 보면 빌립이 대단히 수에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계산을 해댑니다. 이백 데나리온이면 얼마인지 아십니까?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니까, 7만원으로 계산하면 천 사백만원의 돈입니다. 천 사백만원 정도의 떡을 사다가 나누어주어도 이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데는 부족할 것 같다는 말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된다는 소리입니까? 안 된다는 소리입니까?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돈을 구한다한들 어디서 사오냐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빌립처럼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이해타산을 따집니다. 합리적인 계산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론은 대부분 안된다는 쪽으로 나게 됩니다.

한 예를 들면 예전에 IMF가 터졌을 때 많은 교회들이 긴축정책을 폈습니다. 예산을 동결하거나 축소시켰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가 그동안 하던 선교사업들을 줄였습니다. 선교사의 선교비를 줄이거나 아예 끊어버린 교회도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우려다 포기해버린 교회도 있습니다. 인건비 줄인다고 교역자 수를 줄였습니다. IMF라는 경제위기에서 인간적인 계산에 의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땠는지 아십니까?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교회들이 IMF가 터진 그 해의 헌금이 전년보다 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IMF때 그렇게 한 것은 그동안 교회 운영을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IMF가 오니까 선교비 줄이고 교회개척도 포기하고 한 것입니다.

반대로 IMF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선교하고 교회 개척한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교회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 성장했고 더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를 지탱해주고 이끌어 가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 아닙니까?

교회는요, 어려울수록 더 선교하고 선교사 한 명 더 파송하고 교회 개척도 더 하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께 대한 믿음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IMF때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인데, 출석 교인 5천명쯤 되는 큰 교회입니다. 그 교회기 십년 전쯤에 오래되고 좁은 교회 건물을 재건축했는데, 재건축할 당시에 그 교회에서 일산에 교회 하나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 개척교회 역시 교회 건물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본교회 건축과 개척교회 건축이 동시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러분들이라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교회당부터 짓고, 그 다음에 여력이 되면 개척교회 건물을 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은 개척교회 건물부터 짓기로 했습니다. 기도 중에 갖게 된 생각인데, ‘우리는 비록 낡고 좁아도 예배드릴 예배당이 있다. 하지만 개척교회는 제대로 예배드릴 공간이 없다. 그리고 본교회당을 짓기 전에 개척교회부터 잘 지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 결정하시고, 개척교회부터 짓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비축해놓았던 건축헌금이 몽땅 개척교회를 짓는데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반대와 비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결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개척교회가 부흥되었고, 본교회도 부흥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정했던 시일내에 본교회 건축을 해서 지금은 넓고 좋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어리석은 일로 보였지만, 믿음의 결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계산이나 합리적인 판단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탱되는 것이고, 믿음의 원리로 운영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원리로 주님 앞에 나아갔던 사람이 바로 안드레입니다. 빌립이 인간적인 계산을 갖고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안드레는 믿음의 가능성을 갖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안드레는 어느 소년이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비록 그가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상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앞에 갖고 오면 무언가 될 것이다라는 믿음의 가능성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무슨 답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잘은 모르지만 주님 앞에 갖고 오면 주님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것이란 믿음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자세와 똑같지 않습니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책없이 주님 앞에 갖고 나왔더니 주님께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무슨 대책을 갖고, 답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고 대책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시고 도우심을 간구할 때,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길이 뚫리는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산하게 되면 항상 부족함밖에 없습니다. 7절을 보면 빌립이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조금씩, 부족하다’, 이것은 인간적인 계획과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나오는 소리입니다.

  반면에 안드레의 방법으로, 즉 믿음의 방법으로 나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조금씩 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나누어주고, 뿐만 아니라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로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것들을 누리게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빌립의 방법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부족합니다. 반면에 안드레의 방법으로 나아가면 원대로 먹고도 남는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될 것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빌립의 길을 걸어갈 것이 아니라 안드레의 길,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앞에서 본 것처럼 믿음의 방법이고, 또 하나는 작은 헌신을 통해서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가치로 보면 별 게 아닙니다. 보리떡,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리로 만든 빵이지요. 보리빵은 당시 빈민층들이 먹던 가장 싼 빵이었습니다. 제과점에서 파는 그런 보리빵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하니까 맛좋은 굴비 두 마리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물고기는 갈릴리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 정어리인데 작은 물고기입니다. 맛이 별로 없는 값싼 생선입니다. 퍽퍽한 보리 빵만 먹기가 힘드니까 반찬삼아 소금에 절인 물고기를 같이 먹었던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우리나라 돈 가치로 계산해보니까 한 이천원 정도의 가치밖에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고 보잘것 없는 것을 통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바친 소년에게는 사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부였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었지만 이 작은 헌신을 통해 예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우리 손에서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졌을 때는 큰 것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작은 헌신을 통해서 크게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 전체를 변화시켰던 무디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원래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학벌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왔기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려고 해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글도 읽을 줄 모르고 말씀을 전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 교회에서 교사를 시켜주지 않으니까 무디는 자기 혼자 나가서 학생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무디가 만든 주일학교 아이들 수가 교회의 교사들 이삼십 명이 가르치는 아이들 수보다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무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담임교사만 맡겨주십시오. 학생들은 내가 불러모아 전도해서 가르치겠습니다.” 무디는 결국 50명, 100명, 나중에는 수백명까지 이끌게 되었고, 마침내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디와 같이 배운 것이 없고 구두 수선공에 불과했지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면 엄청난 일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까? 아마도 우리 가운데 무디보다 못하게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설사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뒤진 것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대한 열정가지고 엎드려 기도하고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안드레와 같은 믿음과, 오병이어를 바친 소년과 같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왔을 때, 또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렸을 때,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은혜는 드리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그 받은 은혜를 가지고 뒤로 빼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바치라고, 주를 위해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지고도 일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바치고 우리의 재능을 바치고 우리의 귀한 것들을 바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시겠습니까?

내 가진 것 모두, 아니 주님께 받은 것 모두 다 주님께 다시 돌려 드려서 헌신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인들의 신앙과 봉사 정도에 따라 몇 개의 그룹으로 구분을 합니다. 아주 열성적으로 헌신 봉사하는 헌신자 그룹이 있고, 비교적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참여자 그룹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 혹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참여하기도 하고, 발을 빼기도 하는 중간그룹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에 대해 전혀 관심없는 방관자 그룹이 있고, 참여하거나 협조하지도 않으면서 비판만 하는 그룹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나 이러한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소수의 헌신자 그룹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참여자 그룹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헌신자 혹은 참여자만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유기체적인 교회는 다수의 헌신자와 거의 전체의 참여자 그룹이 있는 교회입니다.

교인 모두가 헌신자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교인 전체가 참여자 그룹만 되도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수의 헌신자들이 있어서 교회의 흐름을 주도하고, 7,80%의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 중에 하나가 어느 교회지요? 바로 우리 텔아비브 욥바 교회입니다.

  교회의 흐름은 소수의 헌신자 그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행사나 계획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이들에 의해 활동력이 좌우됩니다. 제가 초점을 두고 하는 것이 핵심적인 헌신자 그룹을 양성하고, 보다 많은 교인들을 헌신의 자리로 이끌고 참여의 자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헌신자 그룹과, 헌신자 그룹이 이끄는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부흥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직책을 맞고 봉사하는 분들은 지금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늘 새로운 마음으로 보다 더 열정적인 헌신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 흐름을 건강하게 주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헌신의 자리, 참여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소수의 헌신된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 은혜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방문 중에 우리 교회를 후원하는 교회들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우리가 해왔고 하고 사역들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참 감사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꿈을 주셨고, 우리를 통해 그러한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우들이 한결같이 헌신된 모습으로 섬겨왔고, 또한 이스라엘에 잠시 머무는 분들까지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왔기에 이러한 부흥과 사역들이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더욱 더 드릴 수 있다면 우리를 통해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 땅에 하나님께서 뜻하신 놀라운 일들이 능히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설교 후 기도:

1.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안드레와 같은 믿음을 주시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소년처럼 나의 것 주님께 드려 헌신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일하시는 능력을 보게 하소서! 우리 교회에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드리는 헌신자들이 불일듯이 일어나게 하소서!

  2. 중보기도: 오늘 세례받는 이들을 위해, 몸이 아픈 이들과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세계 각국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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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7 마태복음 바라바냐 예수냐 마27:11-26  신윤식 목사  2013-06-25 2322
9346 마태복음 힘없는 메시야 마27:1-10  신윤식 목사  2013-06-25 1884
9345 마태복음 베드로의 부인 마26:69-75  신윤식 목사  2013-06-25 2980
9344 마태복음 검으로 망함 마26:47-56  신윤식 목사  2013-06-25 1673
9343 마태복음 기도하라 마26:36-40  신윤식 목사  2013-06-25 2080
9342 마태복음 예수님의 분부 마28:16-20  신윤식 목사  2013-06-25 2202
9341 마태복음 불쾌한 부활 마28:1-10  신윤식 목사  2013-06-25 1972
9340 에배소서 아버지의 사랑과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 엡6:4  한태완 목사  2013-06-23 2492
9339 에배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 엡1:17-23  강종수 목사  2013-06-23 3035
9338 마태복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요? 마5:4  류공석 목사  2013-06-22 2473
9337 하박국 감사의 비밀 합3:17-19  류공석 목사  2013-06-22 3100
9336 마태복음 온유한 자! 마5:5  류공석 목사  2013-06-22 2398
9335 마태복음 역설의 진리 마5:3  류공석 목사  2013-06-22 2225
9334 고린도전 나를 기념하라! 고전11:23-29  류공석 목사  2013-06-22 2273
9333 마가복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 막1:9-11  류공석 목사  2013-06-22 2053
9332 갈라디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갈6:6-9  류공석 목사  2013-06-22 2198
9331 데살로전 울타리를 치세요 <4> 기도 [2] 살전5:16-18  류공석 목사  2013-06-22 2240
9330 에배소서 울타리를 치세요 <3> 말씀 엡6:4  류공석 목사  2013-06-22 2361
9329 창세기 아, 아담이여! 창3:8-12  류공석 목사  2013-06-22 1711
9328 마가복음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 막3:13-19  류공석 목사  2013-06-22 2073
» 요한복음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 요6:1-15  류공석 목사  2013-06-22 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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