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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담이여!

창세기 이익환 목사............... 조회 수 1711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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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8-12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아, 아담이여!
2008년 9월 13일(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창세기 3:8-12

 조선 시대에 한 과객이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마침 중 한 사람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잤는데 새벽에 중이 먼저 일어나서는 갑자기 엉뚱한 짓을 합니다. 무슨 생각인지 자기 짐 보따리에서 머리 깎는 칼을 꺼내 가지고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사람의 상투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빡빡 깎아버린 후에 슬그머니 먼저 주막을 떠나버렸습니다.

자던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가 시원합니다. 만져보니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자기의 머리가 반질반질한 중머리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중머리가 되어있고, 같이 자던 중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사람이 혼자 방에 앉아서 자기 머리를 만지면서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중얼거립니다.  
  "중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이것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현대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입니다. 알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아는 일에 열심입니다. 또 실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어보십시오. 모두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알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 꼭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아는 내 모습을 나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합니다. 실제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 스스로는 남들보다 나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데 스스로는 진실하며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병이 그 영혼과 육체를 좀먹고 있는데도 스스로는 건강한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모르는 체 살아간다면 언젠가 나의 참 모습을 깨닫게 될 때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줄 알았는데 병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내 능력을 진단하고, 내 건강을 진단하고, 내 모습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안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나의 모습을 아는 일입니다. 돈이야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없는 것을 알았다면 아쉽지만 큰 마음 먹고 포기하면 됩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몰랐다면 망신 한 번 당하면 그만입니다. 잘난 줄 알았는데 못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한 번 크게 울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잘못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중에 후회 한번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영적 자아를 바로 아는 일입니다. 나의 영적인 위치, 영적인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고 계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아담은 지금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했습니다. 그리고는 용서를 빌기는커녕,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이렇게 숨어있는 아담을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담이 어디 있는지 그 장소를 몰라서 묻는 것 아닙니다.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을 하나님이 모를 리가 없지요. 그런데 왜 물으십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아담 스스로 자신을 생각해 보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아담아, 네 상태가 지금 어떠한 상태이냐? 지금 네 영혼이, 네 인생이 어떤 형편에 있느냐”묻는 것입니다.  아담이 스스로 범죄한 자기의 형편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스스로 어디 있는지 생각해보고,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 하나님의 목적은 벌을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시는 모습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8절에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시는데 그 모습이 동산에 거니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한가로운 사람이 산책하듯이, 그런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왜 그러하셨겠습니까? 범죄한 아담이 가뜩이나 두려워하고 있는데 공포를 더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아담을 벌을 주기 위해 오셨다면 급한 모습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아담, 이놈의 자식, 내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생각이었다면, 우리로 말하면 아마 팔을 걷어붙이고, 손에 회초리 들고 씩씩거리면서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정말 벌을 주기 위해서라면, 천둥 번개를 내리셔서 나무들을 불태워 버리던가 아니면 회오리바람과 폭풍우 가운데서 나무들을 뿌리 채 뽑으시면서 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오시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한가하게 거니시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신 시간도 그러합니다. '날이 서늘한 때'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저녁 해 질 무렵을 가리킵니다. 캄캄한 밤에 오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캄캄함 밤에 오셨더라면 범죄한 아담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뜨거운 정오에 찾아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불타는 격노를 가지고 왔을 것으로 생각할까봐 낮 시간도 피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다음 즉시로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벌을 주시려했다면 즉시로 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자신을 살피며 잘못을 깨달을 만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녁 서늘할 때, 하루 중에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에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벌을 주시려면 물어볼 필요 없습니다. "아담, 네 이 놈! 여기 숨어있구나"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담이 어디 있는 것 모르시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면서도 묻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너 지금 어떻게 된 것이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그런 뜻입니다.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기쁨을 누리며 성령충만하여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범죄한 아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감격과 기쁨은 사라졌고, 믿음은 식어졌지 않았습니까?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헤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 내 영적 모습, 내 영적 위치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의 현주소를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보십시오. 아담이 대답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자신의 상태를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가 무엇이라 대답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동산 중앙의 과실을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고, 그래서 이렇게 두려워하며 숨어 있다”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위치를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대답을 자세히 보십시다. 먼저 두렵다고 했습니다. '두렵다'는 것은 솔직한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 두렵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문제는 왜 두려워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에드가 앨런 포가 쓴 '고자질하는 양심'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여 자기 집 지하실에 묻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흔히 말하는 완전범죄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밤부터 죽은 사람의 심장 고동소리가 그의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꿍덕, 꿍덕,... 죽은 사람의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막아도 들리고 잠을 자도 들려옵니다. 그 섬뜩한 심장의 고동 소리를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온몸이 식은 땀으로 축축이 젖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심장 고동 소리는 바로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자신의 심장 고동소리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가 있을 때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궁궐이나 최고급 호텔에 누워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죄가 있을 때 두려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아담은 지금 죄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죄는 고백하지 않은 채 두려움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이유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는 숨겨 놓고 두려움만 호소합니다. 원인을 내 놓지 않으니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까?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 때문이다, 저것 때문이다,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두려움의 근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거기 두려움의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서 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두렵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서 잃어버려진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숨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아담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나무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허망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피해 겨우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 범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한 기자가 장난을 쳤습니다. 사회 저명 인사 12사람에게 똑 내용의 전보를 보냈습니다. 보내는 사람은 누구인지 밝히지 아니하고 전보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모든 것이 드러났다. 빨리 도망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사회 저명 인사 열 두 사람의 집을 방문해 보았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열 두 사람 모두 도망가 버리고 없더랍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를 숨겨두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떳떳하게 대로를 활보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숨어서 살고 있습니다. 범죄를 저질러서 현상 수배를 당하고 숨은 사람만이 숨어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개를 쳐들고 뽐내면서 살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숨어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향한 것처럼 들린다면 더욱 숨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겠습니까? 내 모습 이대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숨었습니다.”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에 은총이 있고, 여기에 살 길이 있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참 자유와 평강,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지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이것은 아담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라도 아담은 "하나님 내가 범죄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딴 소리를 합니다. "아내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했습니다.

참 한심한 남자지요? 하나님이 하와가 먼저 따먹은 사실을 모르시겠습니까? 아시면서 왜 하와에게 묻지 않고 아담에게 묻습니까? 아담이 책임자로서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질문은 아담에게 주신 회개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너 선악과 따먹었구나 벌받아라" 하면 끝입니다. 그래도 "따먹었느냐"고 묻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끝까지 다른 사람 핑계 대기에 급급합니다. 그것도 자기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어제까지는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고했던 그 사랑하는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남자망신 다 시켜놓고, 결국 아담은 모든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잘못된 것은 전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잘못이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핑계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성격 나쁜 것도 가족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 아내 때문에 내 성격이 고약해졌다고 합니다. 안그랬는데 남편 때문에 독해졌다고 합니다. 그런 말하지 마세요. 착한 사람은 어디 가도 착합니다. 다른 사람 핑계될 것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요, 내 책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담의 핑계를 자세히 보십시오. 이건 하와에게 핑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왜 내게 아내를 주셨습니까? 제가 장가 안 갔으면 이런 죄 안 지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장가가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의 책임을 하나님에게까지 돌리고 있습니다. 핑계는 결국은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갑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배우자나 가족에게 핑계를 돌리십니까? 배우자나 가족을 내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핑계를 돌리는 것입니다. 모든 핑계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저 사람의 잘못도 내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백을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했다면 하나님은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처음부터 벌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담은 용서받았을 것이고 다시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내 모습을 깨닫고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은혜를 회복시켜 주십시다.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것입니다. 그런 그가 무사할 리가 없습니다.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났고 제비를 뽑았을 때 요나가 뽑힙니다.

이 때 요나가 말합니다. "이 풍랑이 나 때문입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풍랑이 잠잠해 질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아무 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깨끗하게 내 잘못이라고 고백합니다. 요나의 바로 이 자세로 인해 풍랑이 잠잠케 되고, 요나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요나를 통해 계속됩니다.      

  여러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시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에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이 힘들고 두렵고 괴로운 분 있습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고, 하나님 앞에 숨었던 분들 있습니까? 혹은 굳어지고 포장되어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괜찮은 척, 문제 없는 척, 신앙 있는 척 하는 그런 분은 없습니까? 어찌되었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내가 범죄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 앞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바로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크신 은혜와 위로 가운데 주님의 사랑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 물음 앞에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새롭게 회복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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