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울타리를 치세요 <4> 기도

데살로전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240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
성경본문 : 살전5:16-18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울타리를 치세요 <4> 기도"

2009년 6월 20일(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20세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가 30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자녀들은 다 성장했고, 부부의 나이는 어느덧 50세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열심히 살아온 이들 부부를 위로하시려고 각자에게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고, 그녀의 손에는 부부동반 세계여행권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남편에게 소원을 물으시자 남자는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소원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피해주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서른 살 어린 여자와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 남자는 즉시 80세 노인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기도 잘 해야 합니다. 오늘은 '울타리를 치세요' 네번째로 기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어떠한 영적 울타리를 쳐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울타리가 되는 것처럼 기도는 우리 자신과 가정을 지켜주는 튼튼하고 강한 영적 울타리가 됩니다. 결론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왤까요? 기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겁니다. 한국에 있을 때 교인들을 보면 기도회를 싫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선 너무 시간이 길고 시끄럽다는 것이지요.

  경건한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신 분이 좀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로 옮겼는데, 기도회에 참석하고 나서 첫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경끼하시겠네' 자신이 있던 교회에서는 조용히들 기도했는데, 새로 옮긴 교회에서는 기도를 하는데 다들 두 손 들고 주여 삼창하면서 소리를 질러가며 기도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는 말이 '왜 그렇게 시끄럽게 기도하냐? 그렇게 안하면 하나님이 안들으시냐? 하나님, 경끼 하시겠네.' 그랬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뜩이나 기도회 안가는 양반이 핑계 삼아 더 안나가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개인 기도는 좋아하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건성이고 일관성이 없고 항상 부담만 갖고 있습니다. 늘 죄책감이 있고 간만에 기도하면 회개기도하는데 바쁘지요.
  사람들은 왜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왜 부담만 느끼고 정작 기도하지를 않을까요? 우선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는 왠지 주눅이 들게 하고 이질적이고 혼란스런 느낌을 준다는 것이지요. 창조주에게 어울릴만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말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지요. 기도를 잘 못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확신이 없으니까 괜한 시간 낭비 같기도 하고... 무엇하러 고생하냐는 것이지요.

  어떤 경우는 기도는 하는데 집중하지 못하는데서 오기도 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찾아와서 기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기도를 하다 보면 처음에 1-2분은 진지하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얼마 지나면 문득 딴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기도 하다가 차가 생각 났어요. '내가 차 문을 잘 잠갔나? 세차 할 때가 됬는데... 요즘 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비소에 가봐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그냥 팔아버리고 새 차를 살까? 아니지... 당장 그럴 만한 돈이 없어. 요즘 무이자 할부로 해주는 데도 많다는데 그렇게 할까? 사실 차 바꿀 때도 됐잖아? 아내하고 상의해볼까?' "여보, 우리 차 새로 살까?" 그러고 방에서 나간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잡념에 빠지다 보면 자신이 기도하던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결국 제대로 기도생활을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에 대한 의무감이랄까 부담감이 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기도에 열심인 분들도 있고요, 반대로 늘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분들 역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분과 친밀한 관계, 성장하는 관계를 지속하는 데는 애를 먹습니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갖고 산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것을 가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고민도 하고 실망도 하고 죄책감도 갖고 그런다는 것이지요.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가 기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봐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배우기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한국 교회의 경우를 보면 대개 대표기도를 통해 배웁니다. 특히 대예배 때 하는 장로님들의 대표기도를 통해 기도를 배웁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대표기도를 해보라고 선생님한데 요청을 받았는데, 어찌어찌 기도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대예배 대표기도를 흉내낸 것이더라고요. 많은 경우 대표기도를 들으면서 기도를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 때든, 구역예배 때든, 가정예배 때든 누군가 대표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기도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대표기도가 은혜로울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 집사님들 대표기도 참 은혜가 있어요. 3분 내외의 기도를 위해 금식하면서 준비하기도 하고 일주일 내내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면서 기도문을 작성하고 그렇게 대표기도를 하시거든요. 그러니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우리는 대표기도를 통해 무언가 형식을 배우게 됩니다. 한국에서 보면 대표기도 때 정말 미사여구 잘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를 통해 자기 할 말을 다해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인가 보다 할 때도 있고, 대표기도가 무슨 교회에 대한 성토가 되기고 하고 너무 길어서 아예 기도를 질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기도에 익숙하다 보니 기도는 그렇게 하는 건가 보다 하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도 그런 스타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형식적이고 어렵고 갑갑한 기도가 되기 쉽다는 겁니다.

  혹은 기도에 대해서 그저 식사 전이나 잠자기 전에 하는 기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그것 외에는 기도를 본 적이 없거든요.

  아니면 기도를 무슨 산신령이나 불상 앞에서 자신의 소원을 정성껏 비는 그런 것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이 기도인지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겁니다. 해야한다는 것은 아는데 모르니까 하기도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기도의 가장 단순한 정의는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입니다.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입니다. 의사소통이란 무엇입니까? 나의 생각, 느낌, 감정, 사고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란 무엇이든 통하는 방식으로 내 생각, 느낌, 감정, 사고를 하나님께 그대로 전하는 겁니다.

  기도는 나를 지으셨고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분과의 깊은 의사소통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나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단순히 전지전능한 창조주시고 거룩하시고 공의와 심판을 행하시는 분으로만 알기 때문에 그분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쓰는 말도 자꾸 무언가를 꾸미려고 하고 자꾸 형식적이 되고 주눅이 들어 무언가를 숨기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의 기도가 그러합니다. 신을 달래거나 신에게 복종하는 차원에서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의사소통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지으셨고 나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당신의 전부를 주신 하나님과의 깊은 의사소통이 바로 기도입니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어떨까요? 두려울까요? 자꾸 주눅들고 무언가를 숨기려고 할까요? 무슨 말을 할까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말할까요?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까요?

  그렇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는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범죄함으로 깨어졌어요. 망가졌어요.

그래서 누가 오셨습니까?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깨어지고 중지된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 영접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게다가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우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 역시 성령님을 초청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분께서 나와 대화하길 원하시는 겁니다. 편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기도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의사소통이라고 했을 때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이 있지만 오늘은 예레미야를 봅시다.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예레미야의 기도가 종종 나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지 아십니까? 정직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를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직입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나님께 말씀 드릴 때 절대로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장 요점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20:7을 보면 예레미야가 기도 중에 괴로워 울부짖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이 구절을 현대어 번역인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기도인데 어떠십니까? "주께서 나를 속이셨습니다." 좀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이 기도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른 기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대표기도에 익숙해져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신중하고 정선된 고급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그의 기도는 경우 바른 기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절대로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하나님이 정말 예레미야를 속이신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그 당시 예레미야의 솔직한 느낌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속인 것 같았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참 불경스러운 말임에도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예레미야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가리는데 익숙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왔어요. '참아야 한다, 다 말해서는 안된다, 남자가 그러면 안된다, 아파도 안아픈 척 해라...' 이렇게 배워왔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으례 그렇게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늘 무언가가 쳐져 있어서 정직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도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도라고 하는 것이 늘 똑같은 형식과 의미없는 미사여구가 되고 겉도는 기도가 된다는 것이지요. 어쩔 때는 아첨같은 말도 합니다.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조정하고 싶은데 그러러면 하나님이 듣길 원하실만한 그런 말로 기도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 하나님은 무어라 말하고 싶으실까요? "진짜 류공석 어딨니? 진짜 류공석 나와라." 그렇게 말하고 싶으실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기도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생각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정돈되지 않은 혼란함이 있습니까? 그대로 하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생각 다 정리된 다음에 기도하시겠다고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서 보고를 받고 싶으신 것이 아닙니다. 듣길 원하시고 도와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아픈 상처가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을 치유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세요. 두렵습니까?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쫒는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세요.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  

  끝없는 의심과 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쏟아 놓으세요. 그분께서 주시는 평안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감추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능히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분께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다 쏟아내십시오. 그분께 당신의 온 마음을 드리십시오.

  어느 목사님이 그러더군요. 하루는 여섯 살 된 딸이 묻더랍니다. "아빠... 하나님은 아픈 내 금붕어에게도 관심이 있나요?"

  딸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답니다. 나도 금붕어에는 관심이 없는데 하나님이라고 관심이 있으실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때 어린 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금붕어에 관심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왤까요? 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으십니다.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기에 그분은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면 무엇에든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 삶의 세세한 것들에까지 관심이 지대하십니다. 이것을 알았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했던 당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6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무엇을 하나님께 아뢰라고요? 크고 어렵고 중요해 보이는 일만? 아니죠. 크고 어렵고 중요해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만 기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의 머리속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분께 가져가세요. 하나님은 세계 평화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와 북한 핵문제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시지 무슨 이런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겠냐 하는 것까지도 다 하나님께 가져가세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외로우십니까?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외롭다고 아뢰십시오. 하나님께 나와 함께 있어 달라고 하십시오. 지금 곤경에 빠져 있습니까? 그분께 친구에게 하듯이 조언을 구하세요.

  이렇게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느낌과 사고를 하나님께 숨김없이 아뢸 때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빌립보서 4:6부터 7절까지 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리하면, 정직하게 다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즉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의사소통에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당신의 평화와 은혜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저는 저와 가까운 이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지냅니다. 친구들도 있고, 한국에 있는 분들도 있고, 청년들도 있고, 우리 교우들도 있습니다. 가까울수록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은 의사소통을 합니다. 가족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요. 가끔 가족과 떨어져있을 경우 최소한 하루에 한번 이상은 전화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와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십시오. 지속적인 기도는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해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내 삶의 길동무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찬송가 가사처럼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가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들을 준비를 하고 당신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과 날마다 매순간마다 의사소통을 하십시오. 정직하게 기도하고 모든 일에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말씀이 때때로 참 부담이 되고 어쩔때는 죄책감까지 갖게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못한 나를 보면 분명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거든요. 기도는 하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말씀에는 왠지 마음이 편칠 않아요.

  어떻게 해야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그게 그겁니까? 조금도 명확해지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매순간 매순간, 모든 생활의 범위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하라는 겁니다.

  제가 이 기도의 의미를 깨달은 적이 청년 때 한번, 그리고 아빠가 되고 나서 한번 있었습니다. 청년의 때는 21살 때에 예수님을 새롭게 인격적으로 깊게 만난 이후인데, 그 후에 저의 가장 크고 중요한 기도제목은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 내 인생을 들어 써주소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장래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저는 저의 20대를 야곱과 같았다고 늘 말하는데, 정말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제 인생을 놓고 하나님께 매어달렸어요. 21살때 시작해서 어쩔 때는 철야를 하면서, 어쩔 때는 산기도하면서, 어쩔 때는 술한잔 하고 교회 뒷마당에서 울면서 그렇게 씨름을 했어요.

그리고 28살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제가 7년 이상을 끈질지게 기도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었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나는 망할 것 같았어요. 그러니 야곱처럼 하나님께 매어달린 것이지요.

  그리고 아빠가 된 후, 우리 장남 하림이가 5살 때 갑자기 코피가 나는데 멈추질 않는 겁니다. 알고보니 자반증, 혈소판 감소증이었어요. 피를 응고해주는 혈소판 숫자가 감소가 되는 병입니다. 혈소판 수가 줄어드니까 코피가 나면 잘 멈추질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혓바닥에 붉은 점들이 생겨요. 그래서 자반증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겨우 5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의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코피가 쏟아지는 건 처음 봤어요. 이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엘 갔습니다. 5일 동안 입원하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 말이 머리가 부딪치면 안된다는 겁니다. 머리 안에 피가 나면 피가 멈추지 않게 되기 때문에 큰 일이 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이를 작은 침대에 가두어 놓고 24시간 내내 지켜야 되는 겁니다.

  그때 우리 부부가 어떻게 했을까요? 아이를 지켜보면서 기도했어요. 눈 감고 기도하고 눈뜨고도 기도하고, 아이 보다가 기도하고, 잠시 어디 갔다 오면서 기도하고, 정말 5일 내내 거의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어요. 지금 하림이는 다 치료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기도했을까?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 삶에 있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냐는 것이지요.

언제나, 어디서나 나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가 나의 삶의 모든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이렇게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꼭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때 전 무릎꿇고만 기도한 것 아닙니다. 서서도 기도했고, 걸어다니면서서 기도했고, 눈뜨고 아이를 보면서도 기도했고, 샤워를 하면서도 기도했고,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기도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꼭 카페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편지로도 하고 이메일로도 하고 전화로도 한단 말이지요.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생활 영역 모든 곳, 모든 때에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집중하는 그런 기도시간도 있어야 하지만, 그외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내가 사람을 만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산책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샤워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앉아서도 기도할 수 있고 서서도 기도할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매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거든요.

  길게도 하고 짧게도 기도하세요. '하나님, 지금 회의를 해야 합니다. 지혜를 주시고 잘 진행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지금 누구를 만나야 합니다. 인도해주세요. 하나님, 지금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하는데 제가 지금 기분이 그리 좋질 않습니다. 제 마음을 다스려 주세요. 하나님, 오늘 산책을 하는데 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세상에 이스라엘에 와보니 아카시아 꽃이 노란색도 있고 빨간색고 있고 보라색도 있네요.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만드셨어요. 역시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세요. 우리 사람들도 이렇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살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가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창의적인 기도를 해보십시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다윗을 보면 참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하고 따로 기도시간을 내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악기를 좋아했는데 악기를 연주하면서 기도를 했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기도했어요. 그래서 나온 것이 시편 아닙니까? 심지어는 함성을 지르면서 기도했어요. 춤을 추면서 기도했어요. 다윗은 정말 기도가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 형식이나 장소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십시오. 악기로도 기도해보고 노래로도 기도해보고 함성으로도 기도해보고 글로 써보는 기도도 해보십시오. 금요일 밤에 한 번 해보세요. 일주일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편지 써 보세요. 다정한 친구에게 편지하듯이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해보십시오. 그래서 평범한 곳을 하나님을 위한 비범한 곳으로 바꾸어보십시오.  
  
  기도는 강력한 영적 울타리가 됩니다. 기도가 없거나 소홀하면 이 영적 울타리가 무너지거나 틈이 생깁니다. 그 틈으로 무엇이 들어오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깊고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영적 울타리를 튼튼하게 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과 깊고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있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한 성소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 전체에 튼튼하고 강력한 영적 울타리가 쳐지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능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고 기쁘고 힘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댓글 '2'

욥바교인

2013.11.20 16:12:14

"비밀글입니다."

:

최용우

2013.11.20 23:21:34

그렇군요. 류공석 목사님의 설교문이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9361 고린도전 문제의 해결책 고전3:1-17  최장환 목사  2013-07-03 2695
9360 사도행전 전화위복 행20:1-24  최장환 목사  2013-07-03 3159
9359 출애굽기 공노국에서 공주국과의 싸움을 하는 모세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7-01 1874
9358 디모데후 바른 교훈과 허탄한 이야기 딤후4:3-5  강종수 목사  2013-07-01 1755
9357 마태복음 항상 깨어 있으라 마24:42  한태완 목사  2013-06-28 5136
9356 고린도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자 고후2:14-16  한태완 목사  2013-06-28 3932
9355 로마서 희생적인 사랑 롬5:8  한태완 목사  2013-06-27 2594
9354 민수기 자신을 점검해보자 민19:1-22  최장환 목사  2013-06-26 2931
9353 출애굽기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 출37:10-29  최장환 목사  2013-06-26 3279
9352 출애굽기 유모적 목회냐, 실모적 목회냐?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6-26 1497
9351 마태복음 몸과 피 마26:26-29  신윤식 목사  2013-06-25 1870
9350 마태복음 신자의 능력 마27:57-66  신윤식 목사  2013-06-25 2033
9349 마태복음 주님의 죽으심 마27:45-56  신윤식 목사  2013-06-25 2113
9348 마태복음 조롱받는 메시야 마27:32-44  신윤식 목사  2013-06-25 1883
9347 마태복음 바라바냐 예수냐 마27:11-26  신윤식 목사  2013-06-25 2322
9346 마태복음 힘없는 메시야 마27:1-10  신윤식 목사  2013-06-25 1884
9345 마태복음 베드로의 부인 마26:69-75  신윤식 목사  2013-06-25 2980
9344 마태복음 검으로 망함 마26:47-56  신윤식 목사  2013-06-25 1673
9343 마태복음 기도하라 마26:36-40  신윤식 목사  2013-06-25 2080
9342 마태복음 예수님의 분부 마28:16-20  신윤식 목사  2013-06-25 2202
9341 마태복음 불쾌한 부활 마28:1-10  신윤식 목사  2013-06-25 1972
9340 에배소서 아버지의 사랑과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 엡6:4  한태완 목사  2013-06-23 2492
9339 에배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 엡1:17-23  강종수 목사  2013-06-23 3035
9338 마태복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요? 마5:4  류공석 목사  2013-06-22 2473
9337 하박국 감사의 비밀 합3:17-19  류공석 목사  2013-06-22 3100
9336 마태복음 온유한 자! 마5:5  류공석 목사  2013-06-22 2398
9335 마태복음 역설의 진리 마5:3  류공석 목사  2013-06-22 2225
9334 고린도전 나를 기념하라! 고전11:23-29  류공석 목사  2013-06-22 2273
9333 마가복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 막1:9-11  류공석 목사  2013-06-22 2053
9332 갈라디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갈6:6-9  류공석 목사  2013-06-22 2198
» 데살로전 울타리를 치세요 <4> 기도 [2] 살전5:16-18  류공석 목사  2013-06-22 2240
9330 에배소서 울타리를 치세요 <3> 말씀 엡6:4  류공석 목사  2013-06-22 2361
9329 창세기 아, 아담이여! 창3:8-12  류공석 목사  2013-06-22 1711
9328 마가복음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 막3:13-19  류공석 목사  2013-06-22 2073
9327 요한복음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 요6:1-15  류공석 목사  2013-06-22 242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