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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념하라!

고린도전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273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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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1:23-29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나를 기념하라!
2009년 9월 5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고린도전서 11:23-29

  지난주에 요단강 세례터인 야르데닛에서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세례와 더불어서 중요한 예식이 바로 성찬예식입니다. 성찬, 성찬식, 성만찬, 성찬예식 등등으로 불리는데, 성찬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거룩한 식사라는 뜻입니다. 성만찬이라고 했을 때는 어떤 의미입니까? 거룩한 저녁식사라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성만찬의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성찬이라는 의미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왜 거룩한 식사일까요? 성경에서 거룩하다고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셨거나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구별되었을 때 거룩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입니까? 거룩한 무리, 거룩한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요즘은 직분을 받지 못한 분들에게 사용되는 말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은 엄청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도, 거룩한 무리,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자신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은 하나님께 그 기준이 있는 것이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릇 하나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 구별하여 사용하면 거룩한 물건이 됩니다. 여기 앞에 성찬기, 주전자, 컵, 그릇, 포도즙과 무교병이 있는데, 이것들을 성물, 거룩한 물건이라고 부릅니다. 왭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따로 구별된 것들이고, 게다가 성찬식을 위한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거룩을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찬을 거룩한 식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다른 말로 하면 친히 구별하신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떡은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주님께서 친히 구별하시고 제정하신 식사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행하셨을 때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 페삭이 시작되는 날 저녁에 식사를 합니다. 말 그대로 저녁식사, 만찬입니다. 그것을 페삭 세데르라고 부릅니다. 그날 유대인들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식탁을 준비하고 온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유월절의 의미를 나누면서 식사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그런 식사를 하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유월절 세데르라고 하는 저녁식사 때 성찬을 행하셨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대단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이 있었지요? 애굽의 모든 첫 번째 것, 사람이든 짐승이든 첫 번째 태어난 것들이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넘어갔습니다. 어떻게? 어린양의 피를 문인방(문위의 가로대)과 양쪽 문설주에 바름으로 그것을 보고 그 무서운 재앙이 넘어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페삭, Passover, 한자로는 유월, 넘어갔다라고 하는 겁니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날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월절 식탁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 마짜와 포도주가 반드시 놓이는데, 그 빵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 잔은 나의 피며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월절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유월절 식탁을 차려놓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하는 예식을 갖는데, 그 구원이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의 재앙이 넘어간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우리의 죄로 인한 죽음의 저주가 뛰어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페삭 세데르라고 부르는 유월절 만찬에 참여를 해보았는데, 거기에 성찬의 의미가 들어가면 최고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였던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아들이신 예슈아를 통해서 참되고 완전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내년 유월절에는 우리 교회에서 성만찬의 의미를 살린 유월절 세데르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세데르라고 하는 저녁식사 때 빵과 포도주의 의미를 십자가에서 찢기는 자신의 몸과 피로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고, 그에 따라 초대교회 때부터 성만찬이 거행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는 예식적인 의미가 되었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만찬, 저녁식사와 함께 거행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것도 저녁식사였기 때문입니다. 식탁을 차려놓고 먼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성찬식을 거행하고 그러고 나서 온 교우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나눈 것이지요.

그냥 상상해보면 참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 아닙니까? 함께 모여 성찬식을 하고 이어서 사랑하는 교우들과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 참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성만찬이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본문 앞의 17절부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고린도교회 역시 당시 다른 교회들처럼 저녁식사를 하면서 성만찬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안식일과 주일을 같이 지켰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마도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성만찬을 했을 겁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샤밧 카발라라고 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 식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보통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음식은 안식일 전에 만들어놓습니다. 당시에도 교인들이 각자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저녁식사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린도교회는 분파가 있었습니다. 4개의 분파가 있었습니다.

아볼로파, 바울파, 바나바파가 있었고, 나는 다른 파 싫다, 나는 예수님께 속한 자다 하면서 심지어 예수파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도시 자체가 빈부격차가 심했었는데, 고린도교회 역시 교인들 간의 빈부격차가 심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사회적인 신분이나 경제적인 수준이나 정치적인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교회 내에 이런 분파가 있었고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늘 끼리끼리 모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성만찬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부유한 교인들은 푸짐한 음식을 해가지고 일찍 올 수 있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교우들은 상대적으로 가져오는 음식이 적었고 못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늦게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 안에 교회다운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좀 기다리던가, 아니면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음식을 따로 남겨놓던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찍 온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늦게 온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는 것이지요. 이는 가난한 교우들을 업신여기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었으며(22b절) 그로 인해 모임이 유익하기는커녕 도리어 해로움이 되었다는 겁니다(17절).

게다가 자기가 가져온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었느냐? 천만에. 자기 분파끼리. 아볼로파는 아볼로파 끼리. 바울파는 바울파 끼리 그렇게 끼리끼리 먹어치웠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만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그것도 성만찬이라는 예배로 모인 저녁식사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는 한 공동체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과 나눔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성만찬은 어떻게 했을까요? 제대로 했을까요? 천만에. 대번 짐작이 갑니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배고픈데 성찬식 대충하고 밥 먹읍시다.’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성찬식을 하기도 전에 자기 배부터 채운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주님의 몸과 피라고 주는 빵과 포도주를 보통의 빵과 포도주 먹듯이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앞에 놓인 맛난 음식에만 관심이 있지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성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냥 우리가 형식적으로 하기 쉬운 식사기도처럼 여겼을 겁니다.

  이건 성만찬이 아닙니다. 그저 끼리끼리 모여 음식을 탐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죄악의 자리일 뿐입니다. 주의 만찬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한 만찬이었을 뿐입니다. 성만찬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그 안에는 주의 만찬도 없었고 주의 살과 피를 나눈 한 공동체라는 의식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27-29절에서 책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무엇이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나누어주는 빵과 포도주의 의미를 모르거나 무관심하거나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보통 빵과 포도주를 먹듯이 먹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눔으로 한 형제 한 자매라는 의식과 섬김과 배려와 사랑이 없는 성찬은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고, 그것은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고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한 식사라고 하는 성찬이 오히려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고 맙니다.

  무엇이 성찬의 참된 의미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을 토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어떠한 사랑을 보이셨는가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빵을 받고 포도주를 받을 때 무엇을 기억하라는 겁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의 죄를 씻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모진 고문을 당하심으로 살이 찢기고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셨을 겁니다. 그 영화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체포되셔서 고문을 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을 고문하는데 그 중에 보면 앞에 납덩이가 달려있는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실제로 고증된 것으로 그런 도구로 예수님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 채찍에 맞으면 어떻게 됩니까? 앞에 납덩이가 달려있기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내리치면 몸을 휘감게 됩니다. 그리고 잡아당기면 납덩이가 살이 뜯으면서 나가게 됩니다. 그 채찍에 몇 대만 맞으면 온 몸이 살이 찢겨 나가 너덜너덜해지고 피 범벅이 되고 기절해버린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 채찍에 맞으며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가해질 때 예수님께서는 비명을 지르며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

  모진 고문에 피범벅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실 때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정신이 흐릿해지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받아 마시라.”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모진 고통과 치욕스러운 십자가 처형과 죽음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피니”

  바로 나를 위한 찢김이었고 나를 위한 피 흘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고 죄악을 일삼고 이기적인 탐욕에 가득차서 살 던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찢기시고 그렇게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어떻게 해서든 죄용서 받게 하고 그래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그렇게 찢기시고 그렇게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살아가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렇게 찢기시고 그렇게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이 갈기갈기 찢기고 피범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미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수 천 명을 살리신 능력을 행하신 그분께서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 지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그분의 피로 내 죄가 씻음 받고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호흡이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빵을 나누어주시고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을 받아먹으라 하시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나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빵과 포도주는 더 이상 우리가 보통 때 먹는 빵과 포도주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것이 곧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로 빵과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빵과 포도주에 담겨있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고 받는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살과 피로 와 닿게 됩니다. 그 믿음 위에 주님께서 친히 임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분명 빵과 포도주를 먹었지만 나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은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임재 하시게 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연합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와 말씀, 성령충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지만 성찬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체험할 수만 있다면 성찬식은 우리에게 연합의 신비를 알게 해주는 큰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21살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고 나서 성찬식에 참여를 했었습니다. 그때 빵과 포도주를 받는데, 정말 빵이 주님의 살처럼 느껴졌고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고는 바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입에서 계속해서 고백되는 것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이렇게 찢기시고 피 흘리신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성찬식이 다 끝나갈 때에야 입에 넣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분명히 기억합시다. 이 빵이 왜 나를 위하는 주님의 몸인지, 이 포도주가 왜 나를 위하는 주님의 피인지를 기억하고,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여라도 보통의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없이 먹고 마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찬의 두 번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며 나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찬을 통해 기억해야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언제나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고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영원히 살아계시고 마침내는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도 살아계십니다. 내 안에 살아계셔서 나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욱 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고 역사하실 수 있고 나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더욱 더 인정하고 모셔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주인 되어서 내 맘대로 살고자 하는 뿌리 깊은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 자신을 믿지 마십시오. 지금은 은혜 받아서 신앙적인 결심도 하고 하지만 언제 또 다시 내가 주인 되어서 내 맘대로 살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고백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성찬 때마다 분명한 고백과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시고 주님의 뜻에 내가 순종하겠으며 주님께서 나를 다스려달라는 고백과 인정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위해서 내가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주인으로 왕으로 계시고,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이 연합이 성찬을 통해 다시금 확인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확인과 연합이 있는 사람의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내 안에는 사는 것은 그리스도시니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분을 위해 죽겠다는 겁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는 겁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찬은 바로 이런 확인과 고백이 있는 시간입니다. 당장은 이 고백을 확실하게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모하십시오.

‘주님, 아직도 나의 주인은 나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내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주시고 인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을 엽니다. 내 안에 더욱 충만히 임하셔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내가 그렇게 인정하길 원합니다. 또한 아직까지 주님을 위해 살고 있지 못하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소원도 주시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소원하십시오. 그렇게 소원하면서 성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 소원대로 여러분의 주인이며 왕이 되실 겁니다.

  세 번째 성찬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한 몸과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과 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남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고 자매라고 한 가족이라고 고백합니다. 왭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으로는 김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남남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한 형제자매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 때마다, 또 모임 때마다 이 사실을 확인해야 하지만 구체적으로 또한 깊이 있게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단순히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고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는 차원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처럼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요? 그럴지라도 그분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구원하길 원하시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성찬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사회적인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빈부의 차별도 없고 인종의 차별도 없고 지역의 차별도 없고 남녀의 차별도 없고 나이의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차별을 뛰어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3-22)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원수된 것을 허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원수 되어서 중간에 막한 담이 허셨고, 둘을 화평케 하시고 한 몸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외모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신앙적인 스타일도 다릅니다. 출신 지역도 다르고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원수되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가 성찬식 때마다 확인하고 더욱 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배려하고 섬기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모든 차이점들과 차별들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해갈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셔서 그의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안에 다른 교우들로 인한 서운한 마음, 혹은 싫거나 미운 마음,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심 갖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죠?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내 안에 형제자매에 대한 불편한 마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마음 예배 전에 해결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성찬에 참여할 때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성찬식에도 그런 마음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마음들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달라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관심갖고 배려해줄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성찬은 거룩한 식사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식사이며 연합의 식사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이 확인되고 다짐되고 실천되는 자리가 바로 성찬식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성찬에 참여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린아이들도 참여하고 세례와 상관없이 참여를 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성찬의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참여할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신앙교육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이 제한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8세부터 참여를 했는데, 오늘부터는 10세 이상으로 제한을 하려고 합니다. 이 나이는 우리 교회처럼 어린아이들도 성찬에 참여하는 교회들이 대개 열 살로 정합니다. 8세 이상으로 정하는 데로 있지만 10살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나이가 이성적으로 성찬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참여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지요. 옳다고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도 자녀들에게 성찬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야겠지만 부모들 역시 성찬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셔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성찬에 대해 가르쳐주었습니다. 성찬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마음자세로 받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잘 이해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교회 다녀와서 이야길 해요. ‘오늘 그거 예수님의 몸과 피 맞지요?’의미를 알고 참여할 수 있다면 성찬식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입니다. 잘 가르쳐주십시오.

  많은 경우 세례를 받은 경우에만 성찬에 참여를 하는데, 그 제한을 두지 않는 이유는 본래 성찬은 그런 구별 없이 단지 성찬의 참된 의미를 알고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성찬의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참여하라는 것이지요. 단서는 성찬의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아무리 세례를 받았어도 성찬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믿음의 고백도 없이 아무렇게나 참여한다면 그것은 합당치 않은 겁니다.

  그래서 28절에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든,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들이든, 어린아이들의 경우든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자기를 살피고 그래서 성찬의 참된 의미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매월 첫째 주에 시행하는 성찬식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담겨져 있고 놀라운 연합의 신비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찬을 바르게 받음으로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성찬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다시금 내 안에 확인되고 주님과 하나 되는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금 용서함을 받고 주님의 사랑으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내 영혼이 강건케 됩니다. 살아나게 됩니다.

  요 6:55-57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성찬에 바르게 참여할 때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으로 인해 영혼이 살고 내 삶이 살고 육체가 살아납니다.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를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는 주님의 성찬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성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주안에서 새로워지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확인되고 채워지길 바랍니다.

모든 악한 역사와 악한 생각들이 떠나기를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연합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서로를 용납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피를 나눈 형제자매의 사랑이 더욱 더 충만해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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