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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비밀

하박국 이익환 목사............... 조회 수 3100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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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합3:17-19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감사의 비밀
2009년 10월 3일(토) 추수감사예배, 텔아비브 욥바교회
 하박국 3:17-19

  오늘은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추석이 되면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어느 할머니 집에도 추석을 맞이해서 모처럼 손주들이 와서 몇 날을 묵고 갈 것이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이 할머니는 너무 기뻐서 감사헌금을 오만원을 드렸습니다. 이제 추석도 지나고 며칠 후 손주들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다 돌아간 후에 이 할머니가 얼마의 감사헌금을 드렸을까요? 십만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오늘 우리는 추석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인 수콧, 초막절을 맞이해서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계십니까?

어제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게 해주셔서, 지켜 주셔서, 행복한 가정 주셔서, 일용할 양식 주셔서... 많은 감사의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감사헌금의 금액도 정했어요. 그러니까 온 가족이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되더군요. 매주 그러기는 어렵겠지만 추수감사헌금은 온 가족이 함께 나누어 보십시오. 자녀들도 감사의 의미를 알고 참 좋습니다.

  우리가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릴 내용이 참 많습니다. 종이를 꺼내놓고 감사의 제목을 써 내려가면 대부분 꽉 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나 해볼 수 있습니다. 감사는 조건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조건이다 라고 했을 때는 무언가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감사하는 것 아닙니까? 내게 무엇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령, 가족의 건강 지켜주시고, 아이들 학교 공부 잘 하게 해주시고, 좋은 학교 가게 해주시고, 남편 일 잘되게 해주시고... 등등. 무언가 눈에 보이는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주셨어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고 하면 어떨 것인가 하는 겁니다. 오늘 하박국서 본문에 있는 것처럼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경우에 어떨 것인가 하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그런 경우가 찾아왔다고 하고 그랬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하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하나님께 보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령 재정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생활 자체가 힘들어졌어요.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내가 하던 일에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어요. 건강에 문제가 생겼어요.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려운 일이나 상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내 삶이 모두 헛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상황이 찾아왔을 때 나는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는 실제로 그런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겪으신 분들도 있겠고, 그런 경험이 없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정말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상황, 혹은 그런 상황의 연속일 때 과연 나는 어떠한 반응을 하나님께 보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서 걸리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언가가 잘 되거나 잘 풀리거나 내 손에 무언가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감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가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사라졌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처럼 욥처럼 내게 있는 모든 것들에 문제가 생기고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과연 나는 어떤 반응을 하나님께 보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일년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감사가 조건인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감사는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게 주어진 것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무엇으로 감사드리는 내용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감사는 조건이 아닙니다. 즉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건 히브리어 원뜻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감사의 뜻으로 성경에 쓰이는 대표적인 단어가 ‘ידה’입니다. ‘안다’라는 뜻의‘ידע’와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원뜻은 ‘무언가를 던지다’입니다. 좀 이상하죠? 감사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의 원뜻이 ‘무언가를 던지다’라는 겁니다.

무엇을 던질까요? 적어도 감사의 의미니까 부정적인 것은 아니겠지요?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던지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단어의 2차적인 의미를 보면 알아요. 2차적인 의미는 ‘소리를 지르다, 고백하다’입니다. 그럼 무엇을 던져요? 누군가에게 소리를 던지는 겁니다. 고백을 던지는 겁니다. 그 느낌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럼 또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소리냐, 어떤 고백이냐 하는 것이지요. 이 단어의 그 다음 뜻을 보면 압니다. 이 단어의 3차적인 의미는 ‘찬양하다, 감사하다’입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우리가 잘 아는 תודה입니다.

  아, 그럼 어떤 소리? 어떤 고백? 찬양의 소리, 감사의 고백, 이것을 던지는 겁니다. 누구에게? 구약성경에 보면 이 단어가 쓰인 목적어는 거의 대부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감사가 무엇이다? ‘하나님께 찬양의 소리, 믿음의 소리, 감사의 고백을 던지는 것’이것이 감사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감사를 드릴까, 어떤 태도로, 어떤 마음으로 감사를 드릴까 생각해보세요. 감사의 의미는 무언가를 던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감사해요. 어떻게 할까요? 던지는 겁니다. 무엇을? 나의 고백을! 어떻게? 크게 외치는 겁니다. 그게 찬양이에요. 그것이 감사입니다.

운동경기나 축하자리에서 보면 우승하거나 상을 받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습니까? 환호성을 지르고 꽃을 던지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게 감사입니다. 그것이 찬양이고 예배입니다.

  그래서 이‘야다’라는 단어가‘무엇을 던지다’라는 의미에서‘소리 지르다’,‘고백하다’라는 뜻으로, 나아가‘찬양하다’,‘감사하다’란 의미로 사용이 된 겁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던지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고백을 던지세요. 크게 소리치세요. 그것이 찬양이고 감사고 예배입니다.

  그래서요, 감사는 기본적으로 고백입니다. 즉 이 말은 감사는 조건이 아니란 뜻입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고백, 즉 다른 말로 하면 태도입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그것이 고백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가 제대로 되어 있을 때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감사의 조건이 많아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못 던집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 되고, 인색하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안할 수는 없지요. 체면이 있으니까.

  그러나 진정한 감사, 하나님께서 정말 기쁘시게 받으실 수 있는 감사는 못 던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나는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던질 수 있습니다. 정말 소리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나님, 영광 받으세요!’내 안에서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고백을 하나님께 던질 수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그 감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향기로운 제물로 흠향하시는 겁니다.

  흠향이 무엇인지 아시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하나님이 그 냄새를 흠향하신다고 했는데, 단순히 고기냄새 맡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 제물의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면서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물인데 어떤 제물은 기분이 좋은 향기가 나고 어떤 제물은 기분을 나쁘게 하고 불쾌하게 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을 잘 읽어보세요. 똑같은 제물인데 하나님께서 어떤 제물은 향기가 너무 기분이 좋다 하시면서 기뻐하시고 어떤 제물은 불쾌하고 역겹다라고 진노하십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안에 고백이 없어요. 분명 감사제물이라고 드리는데 그 안에 감사의 고백이 없어요. 감사의 마음이 없어요. 억지도 드리고 습관적으로 드리고 인색하게 드리거든요.

  마음이 없는 예배, 중심이 없는 예배, 진실된 고백과 마음이 없는 감사, 수 만 번을 드려도 하나님은 모른다 하십니다. 그 예배, 그 감사 난 모른다 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예배드리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서 그랬단 말입니다. 번제단에 불이 꺼진 적이 없었단 말이지요. 날마다 제물을 드렸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 하십니까?

  말라기에 보면‘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겼다’(말 1:7),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말 1:12)라고 하십니다. 역겹다는 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감사, 진실된 고백이 없는 그런 예배, 그런 감사제물, 이젠 역겹다는 겁니다. 그건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식탁을 경멸히 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 내가 드리는 감사가 과연 하나님께서 ‘야, 정말 향기 좋다, 너무 기분 좋다’ 하시면서 즐겁게 받으실 예배와 감사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기억 못하시는 그런 것인지, 혹은 말라기서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하나님의 식탁을 경멸히 여기고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 태도가 하나님 보실 때 올바르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감사가 되고 예배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신실하다, 무슨 뜻입니까? 믿을만하고 성실하다, 그 뜻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정말 믿을만하고 성실하신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믿을 만합니까? 누가 믿을 만합니까? 돈이요? 권력입니까? 사람을 믿어요? 나를 믿습니까? 믿을 만하면 믿지요. 그러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왜요? 변하거든. 달라지거든. 상황에 따라, 생각에 따라, 자기 마음에 따라, 욕심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변할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변합니다. 다 달라집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상황에 따라, 여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아니, 하나님밖에는 믿을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요, 믿을만한 분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변하는 것, 믿을 수 없는 것, 믿어서는 안될 것을 믿는 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변함없으시고 믿을 수 있는 오직 한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서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는 겁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만 바라볼 때 내 안에서부터 감사의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 하나님은 성실하시기까지 합니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언약을 지키신다,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 참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일단 택하시고 사랑하시기로 약속하시면 끝까지 가셔요. 우리는 그 은혜를 기억 못하고 배신과 불순종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나에게도 성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나를 택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시는 것을 믿습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 중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지금 사도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고, 교회를 섬기는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어 이렇게 충성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된 것은 내가 노력하고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나를 택하시고 나를 향한 선하신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신 그 은혜로 된 것이라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결국 사도 바울을 만든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향해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성실하신데, 그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나는 하나님의 그 성실하심에 반응이 없어요.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반응이 없어요. 끊임없이 보여주시는데 그때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라고 했을 때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성실하신 그 은혜에 대해 사도 바울 역시 믿음으로 순종으로 자기 부인으로 성실히 반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나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 무엇이겠습니까? 따라가는 겁니다. 믿고 따라가는 겁니다. 순종입니다. 그리고 끝없는 자기 부인입니다. 이러한 태도에서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이러한 태도에서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 내 안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겁니다.

  감사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는 조건이 아니고 태도입니다. 이 태도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어떤 조건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도 하박국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 그분입니다. 다른 것 없어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는 겁니다. 근사하죠?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이런 감사드릴 수 있단 말입니다. 얼마나 근사한 감사입니까? 이런 감사드리고 싶지 않으세요?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손에 있는 선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해도 다행이지요. 요즘은 감사를 몰라요.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녀들이 부모 손에 들려있는 선물, 그리고 나에게 준 선물로 인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죠.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당신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인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이걸 깨닫는 것이 철드는 겁니다. 맞지요? 그냥 이 분이 나의 아버지시고 이 분이 나의 어머니이신 것이 감사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사가 되는 겁니다. 저도 나이 들고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 나이 들어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분들이 나의 부모님이신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더라고요. 철든 것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선물, 혹은 내게 주신 선물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소리쳐서, 우리의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들린 그 무엇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변함없으시고 내가 정말 믿을만한 분, 아니 믿을 수 있고 믿을 수밖에 없는 오직 한 분,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내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과 상황 가운데서도, 그 가운데는 좋은 일도 있지만 힘들고 어렵고 아픈 일도 있는데,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시는 그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나도 하박국처럼 조건에 얽매이는 감사가 아니라 조건을 뛰어넘는 감사를 드릴 수 있고, 나도 욥처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감사의 단계까지 나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조건 때문에도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던질 수 있지만, 조건이 없어도 하나님 자신이 조건이 되어서 더 깊고 넘치는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럴 때 하박국 선지자가 고백한 것처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우리도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감사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은 눈물의 골짜기요 낙심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힘이 되어주셔서 나의 발을 사슴처럼 튼튼하고 힘이 있게 하심으로 그 상황을 뛰어넘게 하시고 그 골짜기들을 뛰어넘어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십니다.

  이것이 조건을 뛰어넘는 감사,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의 비밀이고 능력입니다. 이 감사의 비밀이, 이 감사의 능력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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