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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요?

마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473 추천 수 0 2013.06.22 18: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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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4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요?
2009년 10월 17일(토) 텔아비브 욥바교회
마태복음 5:4

  하나님이 주신 치료제가 둘이 있습니다. 눈물과 경청입니다. 정말 아프고 힘들 때,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이 있을 때 울 수 있다는 것, 이것으로 위로가 됩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치료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울어야 하는데 울지 못할 때가 위험한 겁니다. 많이 우십시오. 그래야 건강해집니다.

  경청,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인데, 이 경청 역시 하나님이 주신 치료제입니다. 경청은 그저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게 경청입니다. 상담의 기본이 경청입니다. 잘 들어주는 상담자가 최고의 상담자입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털어놓고 또 인정해주고 들어주는 경청의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이 두 가지 치료제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울고 정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해 보십시오. 놀라운 위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씻기시는 분이시고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 경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작은 신음까지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울며 정직하게 나의 모든 것을 고백해보십시오. 눈물과 경청이라는 치료제를 주신 그 하나님 앞에 드리는 눈물과 정직한 고백이라면 그 눈물과 고백 위에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정말 속상할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애통해 할 때 이 말씀을 읽으면 참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해서 애통하는 그런 의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배경이 되는 말씀을 봐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유념해 두셨던 구약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토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사야 61:1-4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이 말씀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야께서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메사야께서 오시면 하실 일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마태복음 5:4과 관련 있는 말씀이 바로 2-4절입니다. 먼저 2절 하반절에 보면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슬픈 자’는 마태복음 5:4의 ‘애통하는 자’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가 나옵니다. 이어지는‘그 재를 대신하며’ 이 말도 역시 슬퍼하는 자를 표현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애곡을 하거나 할 때 재를 뒤집어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슬퍼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 보면 그들은, 즉 슬퍼하던 자들이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슬퍼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온에서 슬퍼한다고 했고, 그들이 오래 황폐했던 곳을 다시 쌓고 무너졌던 곳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한 성읍을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 이방민족에게 짓밟히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성전까지도 파괴되어 다 무너졌고, 상당수가 포로로 끌려간 그 상황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그곳에서 울며 통곡했습니다.

남겨진 자들은 파괴된 잿더미밖에 없는 시온에서 울며 통곡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편 137편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즉, 슬퍼하는 자, 애통하는 자는 이스라엘이 파괴되고 황폐화된 것을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황폐함이 자신들의 죄악과 불순종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끝없이 경고하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과 불의와 부정과 불순종의 죄로 인해 너희가 이방민족에게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아모스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믿는 것 같았지만 자신들의 탐욕과 욕망이 하나님 되어서 하나님은 그저 내게 복주는 존재로서만 족할 뿐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뜻,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 이런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어요.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는 데는 하나님도 좋고 바알신도 좋았어요.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데 그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어요. 그러니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온갖 불의와 부정과 불순종과 우상숭배와 음란밖에는 없는 겁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경고하셨습니까?

  지금의 예루살렘의 황폐함과 자신들이 이방나라로 포로로 끌려와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죄악과 불순종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의인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슬퍼했던 겁니다. 이사야서 61장과 마태복음 5:4에서 애통하는 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황폐함과 그 황폐함이 자신들의 죄악과 불순종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겉으로는 그다지 황폐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헤롯 대왕이 성전을 크게 보수하여 그 어느 시대보다 성전은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또한 비록 로마의 식민지였지만 팍스 로마나라고 하는 로마의 경제적, 문화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제한적이었지만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에는 참된 예배가 없었습니다. 그저 상인들과 결탁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강도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은 웅장하고 화려할 줄 모르지만 참된 예배가 없고 참된 거룩과 순종이 없는 성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강도의 소굴이고 회칠한 무덤일 뿐입니다. 헤롯 성전이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지만 예수님 당시에 이미 영적으로는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지요. 율법의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외식주의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혹독하게 책망하시고 저주하셨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팍스 로마나의 번영이 가진 자들에게 편중되면서 경제적인 불균형이 심각했습니다. 더 가지기 위해 세리들을 이용해서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세금이 부과되었습니다. 사회적인 정의 역시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소수지만 그 현실을 탄식하며 슬퍼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 바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이 말씀입니다.  

  다시 이사야서 61:2로 돌아가서 말씀을 봅시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메시아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 중에 하나가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선포하셨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공의와 법으로 심판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악인은 모두 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음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61:2의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이 올 것인데, 그 날이 악인들에게 엄중한 심판과 재앙과 멸망의 날이지만 의인들에게는 은혜의 해고 구원의 날이고 하나님께서 원수 갚으시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메시야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선포와 함께 4절 말씀처럼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해 황폐화된 것들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서 무너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지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선포를 하신다는 겁니다. 이러한 선포와 사역을 통해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선포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바로 이사야 61장에 예언된 바로 그 분,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장에 예언된 그대로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셨고, 죄와 율법과 죽음과 사탄에게 포로되고 갇힌 자들을 자유케 하셨고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위로이십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셨고 의로운 체하나 악한 자들을 책망하셨고,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 무시당하던 자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구원과 영생이 주어지지만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영원한 죽음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여호와의 은혜의 날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심판의 날이며 멸망이 날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 안에는 놀라운 변화와 소망이 생깁니다.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함이 생기고 죄용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상처가 치유됩니다. 내 안에 무너진 것들, 황폐화된 것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다시 세워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참된 기쁨이 주어집니다. 참된 평안이 주어집니다. 참된 위로가 주어집니다.

나도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이 생깁니다.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라는 소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길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이 세상의 무너진 것들, 황폐화되고 무너진 것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애통하는 자들이 위로함을 받고 무너지고 황폐화된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고 우리 사회의 무너진 것들이 다시금 세워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합시다. 애통하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무너지고 황폐화된 것들을 보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러한 황폐함을 불러온 불순종과 죄로 인해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애통하는 자는 이 황폐함과 죄와 불순종 위에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애통함을 가지고 슬퍼하고 탄식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애통해 해 보셨습니까? 우리 민족이든 다른 나라든 무너지고 황폐한 것들을 보며 애통해 해 보셨습니까? 한국 교회를 보며 영적으로 무너진 것들을 보며 애통해 해 보셨습니까?

가정을 보며, 내 남편을 보며, 내 아내를 보며, 내 자녀들을 보며, 내 부모를 보면서 무너지고 황폐화된 것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애통해 해 보셨습니까? 다른 교우들을 보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무너지고 황폐한 것들로 인해 애통해 해 보셨습니까?  

  팔복은 단순한 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태도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령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애통하는 자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누가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의 무너지고 황폐화한 것을 보며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한국 교회의 무너진 것을 보고 애통해 하며, 유럽 교회와 미국 교회의 무너지고 황폐한 것을 보고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가정이 붕괴되고 남편들이 붕괴되고 아내들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황폐화되는 것을 보며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다른 교우, 다른 사람들의 무너진 것을 보고 애통해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아닙니까? 예수 믿는 우리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계셔서 이미 우리의 애통함을 위로하셨고 또한 지금도 한없는 사랑과 은혜로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밖에 누가 있겠습니까?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뒤집어엎고 싶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무너지고 황폐화한 것을 보며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용서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슬퍼하는 자들, 애통해 하는 자들을 위로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애통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통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보십시오. 북한 보십시오. 제 정신들이 아닙니다. 이러다 망합니다. 무너지고 황폐한 곳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통해야 할 때입니다.

  열방을 위해 애통해 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참 생명의 진리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을 위해 애통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해마다 청년들과 함께 해외단기선교를 갔었는데, 그때 6개월 동안 많은 연습을 하고 기도하고 준비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 받으시는 것은 그 나라와 민족을 향한 우리의 애통해 하는 마음과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열방을 위해서 애통해 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보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어려워집니다. 싫어집니다. 미워집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모습은 아닙니다.

그들로 인해 마음이 어려워질 때, 그들이 싫어질 때, 그들이 미워질 때 애통해 합시다. 그 속에 예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속에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 예수가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애통해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부터 제 마음 가운데 소망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스라엘과 아랍권을 위해 애통해하며 중보 기도하는 센터가 되는 소망입니다. 미국에 가면 IHOP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24시간 중보기도를 사역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이스라엘에도 여기에서 세운 24시간 중보기도의 집이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계에 아주 중요한 영적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 기도 운동입니다. 영적 부흥과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이러한 영적 흐름에 우리 교회가 참여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와 선교훈련을 할 수 있는 센터를 우리 교회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 숙소로 쓰고 간간한 성경공부 하는 그런 차원의 센터가 아니라 누구든지 올 수 있고, 특별히 많은 중보 기도자들이 와서 이스라엘과 아랍권을 위해 기도하고, 나아가 이스라엘 선교와 아랍선교에 꿈이 있는 이들을 훈련시키고 지원하는 센터를 세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과 우리나라와 세계 열방을 위해 애통해 하며 기도하는 이들로 가득 찬 센터, 그런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너지고 황폐한 곳들을 다시 세우고 회복시킬 수 있는 우리 텔아비브 욥바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 또한 가정을 위해 애통해 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들, 아버지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내들,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들 보세요. 정말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성공입니까? ‘우리 아들, 우리 딸, 어느 학교 갔어. 어느 직장 다녀.’ 이 말 듣는 것이 아직도 소원이십니까? 한국 부모들을 보면 그저 성적표만 잘 받아오면 다 돼요. 정작 자녀들의 영적인 상태와 인격과 마음은 무너지고 황폐화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이 말씀이 단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거든요. 내 가정을 위해, 내 남편을 위해, 내 아내를 위해, 내 자녀를 위해, 내 부모를 위해 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속상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너지고 황폐한 것을 보고 울고, 세상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위로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정직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애통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내 안에 무너진 것들, 내 안에 황폐화된 것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 그것을 가지고 애통해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더 순종하지 못한 나를 보며 애통하고, 더 사랑하지 못한 나를 보며 애통하고, 더 믿지 못하고 더 맡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십시오. 거기에 주님의 크신 위로가 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진정으로 애통해 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평상시에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애통해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애통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애통해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에 아픔이 생겼습니다. 가정에,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는 정말 애통해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다 애통해 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누가 애통해 할 수 있습니까?

  평상시에 사랑하고 섬김의 수고를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애통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평상시에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애통해 하기는 하는데 분해서, 그저 속상해서, 억울해서 애통해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아니면 남의 문제입니다. 그 아픔이 내게 별로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그러면 남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애통해 합니까?

  평상시에 교회와 가정과 다른 교우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던 사람들이 아픔의 상황,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애통해하며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애통의 눈물이 있는 공동체, 교회,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비록 아픔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수는 있지만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말씀 그대로 무너진 곳들이 다시 세워지고 황폐화한 곳들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애통해 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이고 이것이 곧 애통해 하는 자가 받는 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단교회 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텔아비브에 있는 수단 난민들이 세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난민 신분으로 있어서 제대로 노동을 할 수도 없고 유엔이나 기타 엔지오 단체에서 주는 약간의 보조로 힘들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정부에서 수단 난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또 상당수는 다시 수단으로 돌려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돕고 있는 수단교회 역시 전에는 백명 가까이 예배를 드렸는데 얼마 전에 가보니 30명이 채 안되었고 많은 교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교회 리더 중에 한 명인 사이먼이란 분이 추방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던 분인데 그런 명령을 받았습니다. 몇 달 전에 설교 요청을 받고 방문했을 때 그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표정이 참 묘했습니다.

‘기도해 달라.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행하실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얼굴이 환했습니다.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 눈에는 참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애통해 하는 자의 눈이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마나 눈물로 기도했겠습니까?

  교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하고, 텔아비브 외에는 예배 드릴 만한 곳도 없고, 리더 중에 한명은 추방 명령을 받았고, 예배처는 우리 교회와 서울광염교회의 도움으로 얻었는데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안되고, 제대로 된 신학 교육을 받겠다고 나사렛에 있는 신학교에 등록해서 일년은 무료로 다녔는데 앞으로 2년을 더 공부해야 하는데 등록금과 주중에 머물 숙소 렌트비는 없고...

  그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정말 애통하는 자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처럼 애통하는 자의 위로를 주셨습니다. 추방 명령을 받은 사이먼은 이스라엘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요, 서울광염교회에서 수단 교회 두 명의 리더들이 앞으로 2년 동안 신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학비와 주중에 머물 숙소 렌트비를 지원해 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지난 주중에 수단교회 창립 2주년이었는데 정말 큰 하나님의 위로 아닙니까?

  연 7,500불 2년 간 지원인데, 이것 결정하는데 그리 시간 걸리지 않았어요. 저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느냐? 없어요. 같은 교단도 아니고 그저 안식년 때 이스라엘 방문하셨을 때 제가 며칠 안내해드리고 우리 교회 한번 오신 것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저를 믿고 하시겠다는 겁니다. 믿음 좋으시죠. 지난 번 수단교회 예배처에 대한 지원도 그랬고요.

  멋지지 않습니까? 보통 교회에서 이런 일 결정하려면 당회 열고 절차 따지고 한두달 가요. 원래 예산에 책정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서울광염교회는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간단해요. 지원하는 겁니다. 담임목사님과 선교부에서 상의하고 바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요. 교인들에게도 알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인들이 잘 했다고, 더 하자고 댓글을 달아요.

돼는 교회죠? 강도만난 사람이 있으면 바로 도와주는 겁니다. 지금 피 흘리고 있는데 바로 해줘야죠. 그게 교회가 할 일이지요.

  지원 결정을 듣고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제가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우리 교회가 부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광염교회 참 멋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우리 교회에는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어떤 사람들은 부자 교회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 교회 미자립 교회입니다. 재정적으로 자립한 교회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요 부자 교회입니다. 매달 적지 않은 재정을 선교비로, 그리고 수단교회를 돕고 청년들을 섬기고 다른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이 일을 더 많이 했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 사랑을 실천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많이 돈을 쓰는 교회가 되고 그 현장에 갈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애통해 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서울광염교회 같은 교회가 있다 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애통하는 자가 됩시다. 평상시에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는 일에 더욱 힘씁시다.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시편 126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구하며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 그것이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방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가정과 자녀를 위해, 다른 교우들과 영혼들을 위해 애통해 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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