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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과 보아스의 삶이 주는 교훈

룻기 허태수 목사............... 조회 수 6108 추천 수 0 2013.07.14 08:05:59
.........
성경본문 : 룻4:13-2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3.5.25 성암교회 

김경태 교우를 위한 맞춤 설교

[룻과 보아스]의 삶이 주는 교훈
룻4:13-22 마5:14


펜실베니아주 랑케스터라는 마을에 18년 동안 성극만 하는 아주 큰 극장이 있었습니다. 한 번 공연에 3천명이 관람을 하는데, 지금까지 400만 명의 신앙인들이 모세, 다윗, 천지창조, 요셉, 노아 같은 성극들을 관람 했답니다. 아주 작은 동네였는데 극장 때문에 모텔이 즐비했습니다. 2013년에는 ‘노아’를 공연합니다. 성극을 보고 돌아  오면서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해 5개의 DVD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김경태 교우에게 드릴 마음으로 샀는데, 그게 오늘 설교를 하려고 하는 구약의 여인 ‘룻’입니다. 김경태 교우는 연극인이고, 극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참에 성극전용 극장하나를 꿈꿔 보는 것도 한국 종교사에 의미 있는 일이라 싶은 마음이 미국서부터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김경태 교우가 ‘룻’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아 두 주간에 걸쳐 설교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왜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맞춤 설교’말입니다. 김경태 교우의 신앙 진보는 ‘맞춤 설교’ 를 들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 교우들에게도 새로운 깨달음이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이런 이런 설교를 해 달라’고 주문하시면 거기에 맞춰서 설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청도 거듭난 삶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이라야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룻은 가난한 집에 시집을 와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베들레헴 출신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는 일찍 죽게 되었고, 나중에 나오미는 모압 여자들을 며느리로 맞이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룻입니다. 룻은 먹을 것을 찾아 외국까지 온 이방사람에게, 더욱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시집을 왔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결혼한 지 10년 만에 그 집의 두 아들이 다 죽게 되어 룻은 청상과부가 됩니다. 나오미는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왔다가 다시 먹는 것 때문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환영을 했는데, 그때 나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21 나는 가득 찬 채로 이 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나를 텅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치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불행하게 하셨는데, 이제 나를 나오미라고 부를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룻 1:20-21)

‘나오미’는 본래 ‘기쁨’이라는 뜻인데 이제는 ‘마라’(괴로움, 괴로운 여자)라고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삶이 괴로우면 자기 이름마저도 부담스러웠을까요? 나오미는 고향으로 오기 전에 두 며느리를 떠나보내고 혼자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한 며느리는 그렇게 했지만 룻은 나오미의 말을 듣지 않았지요.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룻 1:16-17)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룻은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좋아서 시집을 왔겠지만 살다보니 시어머니에게 정이 든 것입니다. 남편이 죽었어도 친어머니한테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하고, 시어머니가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도 낯선 타국땅까지 따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들 둘 사이에 고부간의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녀 사이의 사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다 죽고 여자들만 남았으니 그 집에 슬픔과 통곡만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시어머니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룻이 있었기에, 슬픔과 어둠은 걷히고 새날이 밝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2장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분위기가 바뀝니다. 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룻 2:1).

‘보아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빠름, 쾌속’이라는 뜻인데, ‘쾌활한’, ‘활력이 넘치는’과 비슷한 뜻입니다. 실제로 그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해가며 전체적으로 쾌활하고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로 변해갑니다.

연속극 같은 것을 보면 흔히 가난한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그의 불행한 처지가 강조되지만 그에게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서 희망이 생기고 재미가 있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그것은 <신데렐라> 모델이라 할 수 있는데, 흔히 그런 주제는 통속적이고 대개 여주인공은 미모가 빼어나고 남자는 돈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룻 이야기는 아주 오래 된 <신데렐라>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릅니다. 룻이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성서는 그의 외모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거든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성서는 룻의 외모가 아니라 그 됨됨이를 드러냅니다. 룻이 어떤 사람인지는 보아스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이봐요, 룻, 그대는 주께 복 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금 그대가 보여 준 갸륵한 마음씨는, 이제까지 보여 준 것보다 더욱더 값진 것이오.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마시오, 룻. 그대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그대가 정숙한 여인이라는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 (룻 3:10-11)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온 그 갸륵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았고 그만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갸륵한 성품에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11절에서 “정숙한 여인”은 “현숙한 여인”(개역)으로도 번역되는데 본래 히브리어의 뜻은 “유능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에셋 하일’인데, 2장 1절에서 보아스를 ‘유력한 남자’(개역) 또는 ‘재력있는 남자’(표준새번역)라고 할 때 쓴 히브리어도 ‘이쉬 깁보르 하일’입니다. ‘하일’이라는 형용사는 ‘유능한’이라는 뜻인데 보아스에게는 ‘유력한’이라고 하고 룻에게는 ‘현숙한’으로 번역한 것이죠. 우리말 ‘현숙하다’는 ‘어질고 깨끗하다’는 뜻이니, 유능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유능한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바꾼 것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가부장주의 때문입니다. 잠언 31:10-31에도 이른바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 길게 나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는 현숙한 여인이라기보다는 유능한 여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양털과 삼을 가공해서 돈을 벌고, 상인의 배와 같이 먼 곳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기도 하고, 일꾼들을 잘 관리하고, 부동산 매입도 신중하게 하고, 사업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숙한 여인상과는 다르죠. 그는 유능한 여인이고 가정과 사람들을 환하게 만드는 빛나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잠언의 이야기가 오늘날 여성들에게는 너무 짐을 지워주는 얘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고, 그 핵심은 그 여인은 아주 적극적이고 유능하여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장면들을 보면 룻은 그저 순종적인 순한 여성상은 아닙니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2:2)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수줍은 과부의 모습은 아니죠. 자기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해서 그가 우연히 가게 된 곳이 보아스의 밭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우연이 아니라 일부러 그곳에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룻은 그냥 이삭줍기를 한 것이 아니라, 일꾼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여, 보아스와의 만남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가 대답하였다. ‘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일꾼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곡식단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저렇게 서 있습니다. 아까, 여기 밭집에서 잠깐 쉬었을 뿐입니다’”(룻 2:7).

이삭줍기는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기 위해서 법으로 제정된 것입니다(레 19:9; 23:22; 신 24:19-20). 그러니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줍기는 수확이 끝난 빈 들판이나 곡식 단을 치운 곳에서 하는 것이지 곡식 단 사이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요구는 일꾼들이 허락할 수 없는 특혜인데,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니까 일꾼들은 들어줄 수도 없고 룻은 하루 종일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결정권자인 보아스가 그녀 앞에 나오도록 유도한 셈입니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나서는 룻에게 아주 호의를 보입니다.

그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만 일하고, 자기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우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일을 빌미로 남자들이 여자에게 추근대는 일도 있었는지,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다고 까지 말합니다. 목이 마르면 주저하지 말고 물 단지에 입을 대고 마시라고 합니다. 게다가 새참 때가 되니까 룻을 불러다가 같이 음식을 먹고 음식 먹는 방법까지 일러줍니다. 그리고 또 볶은 곡식을 내줍니다. 또 일꾼들에게 일부러 곡식 단에서 이삭을 뽑아 흘려서 룻이 줍게 하라고 일러두기까지 하죠.

룻 이야기의 절정은, 룻이 낟가리 곁에서 누워 자는 보아스와 옆에 눕는 자면입니다. 정말 대담한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오미는, 마치 리브가가 야곱에게 축복을 가로챌 작전을 지시해주듯이, 룻에게 보아스를 사로잡을 계획을 짜주고 그대로 실행하게 합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지시대로 목욕하고 향수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단장하고서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잠자고 있는 보아스의 발치께에 누웠습니다. 잠자다가 인기척을 느낀 보아스가 누구냐고 묻자, 룻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 어른이야말로 집안 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 (룻 3:9)

이보다 더 로맨틱한 장면도 어디 있겠어요? 요즘 젊은이들이라고해도 이만한 행동을 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룻의 프러포즈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보아스가 애초에 룻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또 이렇게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받고서 더욱 좋아진 것 같습니다. 홀딱 반했다는 말이 그것 아닐 까요? 그는 그 자리에서 룻과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만 결혼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는 즉시 그것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그 다음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공표하게 됩니다.
보아스가 룻을 유능한 여인이라고 칭찬한 것도 룻에게서 그런 용기와 밝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와서 이방 땅에 살면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그 모습이 그가 보기에도 갸륵하고 복 받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마시오, 룻. 그대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밝은 사람에게 이끌리는 법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고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룻은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밝은 성품을 가진, 매사에 적극적이고 유능한 여자였다’ 이것이 룻기를 보는 관점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깃드는’은총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보아스도 ‘이쉬 깁보르 하일’ 즉 ‘유능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표준새번역은 ‘재력 있는 사람’이라고 의역하였는데 너무 좁은 의미로 한정한 것 같습니다. 그가 그저 돈 많은 사람이고, 룻이 그저 얼굴 예쁘고 현숙한 여인이어서, 둘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통속적인 <신데렐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유능한 사람이고 그 또한 밝은 사람입니다. ‘밝고 유능한 사람’ 이게 룻과 보아스가 지닌 공통점입니다.

룻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세심하고 자상하고 적극적인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룻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일꾼들을 시켜서 일부러 이삭을 떨어뜨리게 하여 룻이 이삭을 많이 줍게 만들기도 하고, 룻을 만났을 때는 “당신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주님의 날개 아래 들어왔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다”하고 축복해 줍니다. 룻에게 새참에 초대할 뿐 아니라 밥 먹는 방법까지 가르쳐 줍니다. 집에 갈 때는 시어머니께 빈손으로 가지 말라면서 곡식을 되어 주었습니다. 룻과 결혼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아주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그날이 가기 전에 해치워버립니다. 그의 이름대로 그는 빠른 사람이고 쾌활한 사람이고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에셋 하일’이 ‘이쉬 깁보르 하일’을 만난 것이고, 유능한 여자가 유능한 남자를 만난 것이고, 밝은 여자가 밝은 남자를 만난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올 때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비밀을 알려줍니다. 룻이 하나님을 알고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시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보내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매우 적극적이고 유능한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야곱에게 형 대신 축복을 받도록 지시를 내리는 리브가와 같지 않습니까? 나오미에게 그런 적극성, 밝음이 있었기에 어쩌면 룻은 남편도 시아버지도 없는데 시어머니 한 분을 따라 그 낯선 타국 땅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 덕분에 그도 유능한 여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 유능한 사람 보아스를 만나서 복 받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학교나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권위적이고 그랬는데, 교회에서 만난 강 목사님은 미남은 아니지만 얼굴이 밝았습니다. 늘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내가 병을 고치지 못해 강제 퇴원을 했을 때도 강 목사님은 왠지 나를 멋있는 데로 이끌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분이 좋아서 교회를 들락거리다보니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은혜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밝은 데로 이끌립니다. 나를 밝게 해주고 환하게 해주고 기를 살려주는 사람이 좋아서 따라갔는데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어서 예수 믿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은 이렇습니다.

“댁이 한 일은 주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룻 2:12)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행동은 흔히 ‘날개로 덮는다’는 은유로 표현이 되곤 합니다.

“그 때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다가 너를 보니, 너는 한창 사랑스러운 때였다. 그래서 내가 네 몸 위에 나의 겉옷 자락을 펴서 네 벗은 몸을 가리고,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언약을 맺어서,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16:8)

그런데 룻이 타작마당의 보아스 발치께에 누웠을 때 보아스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표준새번역 룻 3:9)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개역)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룻 3:9)의 “옷자락”이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룻 2:12)의 “날개”는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knp)입니다.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결국, 하나님께서 룻에게 복을 베푸시는 것은 보아스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중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룻이 보아스의 옷에 덮여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께서 룻을 날개로 감싸주시는 행동의 일부라는 것이죠. 룻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룻은 보아스의 옷자락을 통해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밝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환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보아스도 마찬가지죠. 보아스는 룻의 유능함, 밝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환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이끌어주는 방법입니다. 나오미가 룻을 이끌었고 룻이 보아스를 이끌었고 보아스가 룻을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이끌리는 가운데 점점 더 밝은 데로 나가게 되고 결국은 우리를 날개 아래 보호하시는 하나님께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며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마 23:37)

우리는 저마다 예수를 믿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의 밝음에 이끌려 믿게 되었듯이, 여러분도 그 누군가의 밝음에 이끌려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또 다른 사람에게 밝은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포근한 옷자락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날개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밝은 사람, 기분 좋은 사람에게 이끌립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로 인해 밝은 사람 기분 좋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답게, 예수께 이끌린 사람답게, 유능하고 밝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룻 이야기는 그저 로맨틱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매우 파격적인 사회 개혁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신명기 법전(신 23:3-4)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국제결혼을 금지했습니다. 또 자기들만 선민이라는 국수주의도 있었습니다. 이방 여인 룻, 유능한 여인 룻, 밝은 여인 룻은 이 엄청난 관습, 그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낡은 틀을 과감하게 깼습니다. 룻은 모압 여자이지만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고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이스라엘이 칭송하는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능하고 밝은 여인 룻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룻의 승리는 그 자신만의 승리가 아니라 나오미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룻 4:15-17)

1장에서 나오미는 자기 이름 대신에 ‘마라’(괴로움)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룻 덕분에,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의 그 이름을 버리고 ‘마라’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나오미를 축하하였으며, 룻을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라고 칭찬하고,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성을 질러댑니다. 이것은 룻의 기쁨이 나오미의 기쁨이요 룻의 승리가 나오미의 승리임을 보여줍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지 않았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병아리가 암탉의 날개를 벗어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의 날개 아래 들지 못하면 밝음도 행복도 승리도 없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입니다.

결국, 룻과 같은 우리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위로 하나님을 만나 그의 날개 아래 드는 것이고, 매사에 밝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덩달아 나도 유능하고 밝은 존재 즉 ‘빛의 자녀’가 됩니다.

마태복음 5:14절에 나오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은 바로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와 같은 존재들의 삶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빛의 자녀 즉 ‘하나님의 날개 아래 깃든’존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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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5 느헤미야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자 느3:1-6  한태완 목사  2013-07-14 2203
9414 마태복음 보물을 하늘에 쌓으시오 마6:19-20  허태수 목사  2013-07-14 1929
9413 마태복음 교회가 설치한 여러 교리적 장치의 필요성 마5:3-6  허태수 목사  2013-07-14 1640
9412 누가복음 네 종류의 인간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 눅8:4-15  허태수 목사  2013-07-14 3563
» 룻기 룻과 보아스의 삶이 주는 교훈 룻4:13-22  허태수 목사  2013-07-14 6108
9410 마태복음 먼저 할 일 마6:32-33  김동호 목사  2013-07-14 2119
9409 잠언 마땅히 행할 길을 우리 아이들에게 잠22:6  김동호 목사  2013-07-14 1725
9408 갈라디아 교회를 위한 해산의 수고 갈4:12-20  김동호 목사  2013-07-14 2231
9407 요한계시 처음 사랑과 신앙을 회복하자 계2:1-7  한태완 목사  2013-07-12 2729
9406 출애굽기 일을 하기 전에 등용성이 문제다. 출2:1-10  김경형 목사  2013-07-11 1899
9405 마태복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 마22:37- 38  한태완 목사  2013-07-11 2778
9404 사무엘상 희망을 갖는 사람 삼상27:1-12  최장환 목사  2013-07-10 3216
9403 여호수아 좋은 관계를 갖자 수16:1-10  최장환 목사  2013-07-10 3128
9402 열왕기상 끝까지 잘하십시오 왕상11:1-8  이한규 목사  2013-07-09 2243
9401 사사기 나라의 망조 3가지 삿17:1-13  이한규 목사  2013-07-09 2827
9400 사사기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는 삶 삿16:18-31  이한규 목사  2013-07-09 2619
9399 사사기 패망의 선봉 4가지 삿16:1-17  이한규 목사  2013-07-09 2258
9398 시편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길 시20:1-9  이한규 목사  2013-07-09 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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