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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8: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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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3.6.13 성암교회 |
네 종류의 인간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
눅8:4-15
우리가 수요일엔 신약성서읽기를 합니다. 지난 해 구약성서읽기를 통해 재미를 본 연유로 금년에 이어서 하게 된 ‘영적 프로젝트’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도 꽤나 큰 유익을 주어서, 구약성서를 한 눈에 보게 된 것은 물론 이려니와 성서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게 힘이 되어서 지난해에는 여러 지방연합 사경회에 강사로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요즘 새벽시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서의 뜻들을 알려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구역성서읽기’와 ‘신약성서읽기’의 연장선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신약성서읽기를 시작할 때 성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책들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이후 성전 중심의 신앙을 토라(문서, 경전)중심의 신앙으로 바뀌는 과정에 만들어진 ‘미쉬나’ ‘미드라쉬’ ‘선조들의 어록’ ‘랍비 지혜서’같은 책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 중에 BC300년 전부터 AD200년 사이에 60 여명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남긴 교훈을 기록한 <선조들의 어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서 이전의 유대교 문헌 중에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취급하는 이 책은, 성경 공부를 통하여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바로 알려면, 그래서 성경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을 제대로 보아야 하겠지요. 그 성경을 ‘제대로 보는 법 또는 읽는 법’이 <선조들의 어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평소에 해석이 분분한 신약성서의 한 본문을 이 <선조들의 어록>에서 유대인들은 어떤 관점으로 보았느냐를 살펴봄으로 좀 더 정확한 해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이른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마13:1-23, 막4:1-20과 눅 8:4-15에 나옵니다. 우리는 이 비유가 단지 ‘설교를 듣는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나 태도’에 관하여 이해를 해 왔지만, 사실 이 말씀은 ‘안식일 논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규례에 대해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일행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을 두고 격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고의로 어기면 돌로 때려죽이거나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게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엣세네 공동체에서는 그 사람은 공동체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실수로 어겼을 때는 2년 동안 회개하고 재심을 통해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수의 일행들이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안식일에 밀 이삭을 훑어 먹었고, 그걸 빌미로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아담)을 위해 만들어 진거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아담)이 만들어 진 게 아니다.”(막2:27)라고 맞받아침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2:1-8을 보아야 합니다.
7절에 나오는 말씀,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다”라는 문구는 호세아서 6:6절을 인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웃에게 베푸는 자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주일에 빠지지 않고 잘 나오느냐 아니냐(주일 성수)하는 말은, 단지 그 행위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리나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지 말고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유대교 문헌에 가장 으뜸인 <선조들의 어록>에는 안식일의 위와 같은 해석을 전제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사는 뜻은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에게 자비를 한껏 베풀기 위한 세 기둥 위에 서 있다”
이웃에게 자비를 한껏 베풀며 사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새 기둥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려는 계명이 ‘안식 법’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그러므로 ‘남에게 나의 자비를 내 보이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인간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4 종류의 인간이 있답니다. 이제 선조들의 어록에는 그 네 종류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이건 천한 사람의 유형이며 소돔형 인간이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내 것이다>
이는 천한 사람이다.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도 네 것이다>
이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이는 사악한 사람이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소돔>은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도시입니다. 안식일 논쟁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인간을 이렇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결국 ‘안식일’에 흡족한 ‘자비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도 네 것이다>의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온전한 안식일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유대인들이 사람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문헌이 복음서로 넘어 오면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바뀐 것입니다. 선조들의 어록에 나오는 사람의 네 가지 유형과 대조하여 들으면 이 비유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금 새 알 수 있습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 먹었다>
이는 깨닫지 못한 천한 사람이다.
<씨가 돌밭에 떨어졌는데 곧 말라 버렸다>
이는 즉시 받아들이지만 한때뿐인 사람이다.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숨이 막혀 버렸다>
이는 재물의 유혹이 심한 사람이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 몇 십 배로 열매를 맺는다>
이는 말씀을 깨닫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다.
자, 이제 <선조들의 어록>에 나오는 이야기와 <예수님의 말씀>을 도표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 선조들의 어록
길가에 뿌려진 사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천한사람
돌밭에 뿌려진 사람/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라는 보통사람
가시덤불에 뿌려진 사람/ 내 것도 네 것도 다 내 것이라는 사악한 사람
좋은 땅에 뿌려진 사람/ 내 것도 네 것이고 네 것도 네 것이라는 ‘자비를 한껏 베푸는 사람’
이제 뭐가 조금 보이십니까?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뭘 말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즉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이나 돈이 지출되는 일이면 뒤로 쑥 빠집니다. 이게 ‘돌밭에 씨가 뿌려진 보통 사람’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씨가 뿌려진 사람이란, 재산의 유혹이 심한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사악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진 사람이란, 자비를 한껏 베푸는 사람으로 그의 수확은 몇 십 배라는 겁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얻는 자리는 내세의 자리이고 하늘 왕국으로 들어가는 증표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한 ‘眞覺者’입니다.
선조들의 어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지키는 사람은 자비로운 사입니다. 삶 속에서 ‘한껏 자비를 베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계명을 잘 지키는 신앙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언명으로 전해지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자비로운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마19:16-22의 내용입니다. 안식일을 어겼다고 해서 사람의 생명을 해하려고 드는 것은 남의 죄를 용서하고 남에게 한껏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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