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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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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0-04-04 http://www.yullin.org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롬 1:3-4)
I. 본문해설
사도 바울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집안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보다 중요한 표현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예수를 힘입어 구원을 받는 사람들 모두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직전까지 신학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였다.
II. 바울의 신학적 혼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 사이에서 신학적인 혼란을 경험하였다. 그러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에 해 경험했던 신학적 혼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그 혼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담긴 유대인들의 의도와 부활 사건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A. 십자가와 처형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죽이는 방법으로서 십자가 형벌을 채택한 것은 유대인들의 교묘한 종교적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형에 처할 것을 고집했다(막 15:13).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하는 방법으로서 십자가 형벌을 채택한 것은 단지 그 형벌의 고통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가 숨어있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더라도 여전히 그가 평소의 예언대로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며 따르는 무리들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그러한 염려를 불식시키는 방법이 바로 십자가 형벌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나무에 매달려 죽은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로 여겨졌다(신 21:23). 그러므로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나무에 매달려 형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을 의미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들은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벌로 처형하기를 고집했던 이유이다.
B. 부활사건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분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대화도 나누었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 사이에서 커다란 신학적 혼란을 경험하였다. 첫째, 나무에 매달려 죽은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표이다. 이것은 뒤집을 수 없는 명제였다. 둘째, 그럼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이 직접 만났다. 더욱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이것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였다. 이를 토대로 사도는 구약에서 많은 경우들을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사실 그 전에는 부활사건이 없었으나 엘리야나 에녹 등, 이를 암시한 일들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의 매우 특별한 인정을 받았던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III. 바울의 깨달음
사도 바울은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 사이에서 신학적 모순을 느꼈으며, 이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요구했다. 결국 이 깨달음을 통해 사도 바울은 회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었다.
A. 십자가의 신학적 의미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도 사실이고, 부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마지막 남은 질문은 죽음의 이유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신 사람이라면 결코 다시 살아날 수가 없었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정도로 인정하신 사람이라면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선택된 백성들을 위한 대신적 죽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 사이에 신학적 모순은 극복되고, 오히려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구약의 역사 속에 예표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사렛의 한 이단자라고 믿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였으며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임금이시며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알게 되었으니 그분이 곧 하나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사도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킬 때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우리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우리를 대신(代身)해서, 둘째는 우리의 이익(利益)을 위해서, 셋째는 우리를 대표(代表)해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과 제자들이 구원의 도리를 전파할 때 그들의 외침은 단순하였다. ‘믿으라’는 것이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사실을 전파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믿으라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다음 사실이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Jesus died for us).”이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어야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기초로 용서해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이러한 사실은 은혜의 경험과 함께 엄청난 지성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종교관 그리고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온 교회의 중심이며, 역사의 중심이며, 또한 우주의 중심이시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로써 사도 바울은 유대교인으로 가지고 있었던 세 가지 커다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첫째로 신학적 편견이었다. 그것은 나사렛의 젊은이가 결코 메시아일 수 없다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게 되었다. 둘째로 심리적 편견이었다. 그것은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며 나머지 모든 이방인들은 지옥의 땔감에 불과하다는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었다. 셋째로 영적 편견이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육적 이스라엘 나라와 동일하다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려는 새로운 나라는 다윗 왕국의 복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써 이루어지는 영적 왕국임을 알게 되었다.
B. 새로운 자원에 눈뜸
회심하기 전, 사도 바울의 종교적 헌신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자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새로운 자원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곧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다. 회심하기 이전에 그는 지상의 자원으로만 살던 사람이었다. 유대교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고, 단지 차가운 율법과 의무에 대한 복종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자 자신의 영혼을 다시 살리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전에 죄와 사망의 법에 얽매여 있었던 마음과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철저하게 죽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려는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통해 공급해 주시는 완전히 새로운 자원을 가지고 새로운 질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도의 이 경험을 토대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부활하신 뜻을 배우게 된 것이다.
IV. 결론 : 유일한 희망,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죄라는 뿌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상의 자원으로 인간을 그 고통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죄라는 질병에서 생겨난 증상들을 완화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고통은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이며 고통이라는 증상은 그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이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렇게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고, 또한 현재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험한 세상을 이길 거룩한 능력을 거기로부터 공급받으며 복음의 격려와 위로를 누린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깨닫고 거기에 사로잡힌 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성품과 그 성품의 행사되는 방식을 배움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찬란한 복음 진리의 빛과 충만한 성령의 은혜의 능력 안에서…. 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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