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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3: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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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눅 3:3-17
2009. 12. 6, 오전(대림절 둘째)
한번 사는 삶. 후엔 한 두 줄로 그 삶이 정리되고 기억되겠지요. 오늘은 대림절 둘째, 12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연말을 맞으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께 부름을 받게 될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까? 옛 시인의 노래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대림절 기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진지하게 준비하는 기회를 가지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의 핵심사역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세례 요한이 살던 시대적인 배경,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에 대한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1-2)
이 본문은 세례 요한이 언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였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는지 비교적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니라."
우리 귀에 익숙한 몇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디베료 가이사(Tiberius Caesar, A.D. 14-37)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통치하던 연대를 적는 것은 성경시대의 역사기술방법이요 이 책의 저자인 누가의 역사기술 방식입니다. 이 때는 A.D. 29년입니다. 이 때가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던 때요 예수님이 구원을 위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시던 때입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저자 누가는 당시 유다의 정치적인 형편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분봉왕 세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알기 위해서는 당시 팔레스틴의 정치조직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날 당시에 유대왕은 헤롯왕입니다. 그에게 알려진 아들이 여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당시의 지배국인 로마에 그의 아들들에게 나라를 분할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로마 정부는 그의 청원을 받아들여 그의 아들 가운데 네 명을 왕으로 앉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왕의 이름을 "분봉왕"(ՔՅՔՑՁՁՑՏՕՍՔՏՒ)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봉왕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1/4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치하던 아켈라오가 잔인무도하게 통치함으로 백성들이 로마 정부에서 직접 다스려 주기를 탄원하였습니다. 로마 정부는 이 탄원을 받아들여 A.D. 6년부터 총독을 파견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빌라도는 제 5대 총독으로서 26-34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사역하던 당시의 정치적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당시의 정치적 형편뿐만 아니라 종교적 형편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대제사장직은 종신적이며 세습적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직은 현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민35: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제사장이 두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종교행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로마의 정치권력에 따라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로마 법정에 내어주어 사형을 내리게 한 사람들도 "대제사장들"이라는 복수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안나스와 가야바는 장인과 사위 사이였는데 당시의 타락한 종교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메시지(:3-14)
세례 요한의 독특한 사역은 그의 이름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세례 요한"(ԩՙՁՍՍՇՒ ץ ՂՁՐՔՉՆՙՍ)이라고 부릅니다(마3:1; 막1:4). 이것은 그의 이름에 세례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요한의 독특한 사역이 세례를 베푸는 일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사람 요한"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3:3에도 보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목적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를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추수,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곳곳에 나옵니다. 3절 회개의 세례, 8절 회개에 합당한 열매, 9절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지고, 17절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알곡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때에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 나눔에 대하여
인도의 캘커타 빈민굴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다 영원한 품에 안긴 테레사 수녀를 기억하시지요? 테레사 수녀가 분주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기록한 책자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 밤 한 남자가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말했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랜 전부터 아이가 여덟이나 있는 한 가족이 굶고 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그 가족에게 나눌 적은 양식을 가지고 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 집 아이들 얼굴에서 지독한 굶주림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량을 받은 그 어머니는 밥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들어온 여인에게 “어디에 가셨었습니까?” 그랬더니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는 이웃이 또 있습니다.”
나는 그 여인이 양식을 나누어주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여인이 이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이 가족은 힌두교 가족이었고, 그 가족은 이슬람교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이웃이 고통 받고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 중에서 자기의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실제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 여인은 자기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기에 앞서 나누어 주는 마음의 넉넉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가족 즉 우리의 남편, 우리의 아내, 우리의 아이들보다 우선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사항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자기 자식이 굶주림으로 쓰러져 있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식보다도 이웃을 생각할 줄 알았던 여인, 도저히 여인의 관심이 자기 집 밖으로는 향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도 그 여인은 굶주리는 이웃이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먹을 것이 생겼을 때 비록 그가 자신과는 종교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를 남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에게보다도 먼저 그에게 식사를 전하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여인의 이야기가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던 것은 다이어트 열풍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고, 또한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는 경제적인 풍요를 이야기하지만 결식아동을 비롯하여 북녘 동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고 있을 때 바로 곁에 있는 우리의 동포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못하면 넉넉해도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돕는 일에도 때가 있어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누면 남는다는 사실을 뜨거운 나눔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옷'을 나타내는 '키톤'은 기다란 겉옷 '히마티온'안에 입는 옷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틴 지방은 일교차가 심해 밤에 기온이 떨어질 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벌옷을 가지고 다니거나 껴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이러한 여벌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삶의 결단과 실천으로써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또한 음식물에 대한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을 선포한 것입니다.
* 우리나라 인구의 3.3%인 150만명이 절대 빈곤층, 굶는 결식 아동이 50만명,
뿐만 아니라 사랑의 쌀 나누기. 심장병 재단. 생명의 전화, 장애인단체. 개척교회 등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나눔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 마음에 오시기를 바랍니다.
2) 정한 세율만 받으라.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죄인들'이라 지칭되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관세나 통과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탁받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의 주머니를 털어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로마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접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세리를 고용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세금 관계 일로 그들의 압제자인 로마 사람들과 접촉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정죄하는 입장에 서는 대신, 세리들이 지위를 남용하거나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서 지나친 과세(課稅)를 하지 말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제도나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삼지 말라는 것(세금 징수, 개발정보를 알게 된 정보로 부동산 투기나 투기 세력에 결탁하는 일 등)입니다.
예) 눅 19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삭개오의 삶은 어떠했을까? 왜냐하면 그가 토색한 것(속여서 빼앗거나 강탈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눅19:8)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선언한 삭개오의 파격적 행위는 토색한 것이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주님을 만난 후 자기 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격적인 회개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월급을 족한 줄로 여기라.
본문에서 '군인'은 로마 군인이 아니라 국내 정세를 담당하는 유대의 군인들을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들은 업무상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세리들의 징세 업무를 도와 수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탈'을 나타내는 '디아세이오'는 '맹렬히 흔들다', '협박하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또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로 족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강압적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강탈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고 당시 군인들이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군인을 향한 외침일 뿐 아니라 조직과 힘을 이용한 축재에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메시지에 대한 결과(:15-17)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자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던 메시아로 생각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과 비교하여 오실 메시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그리고 완전히 심판하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은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말씀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고, 또 하나는 알곡은 모아 곡간 안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시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언한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어 심판하실 것이지만,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는 완전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의 재림을 대망하는 대림절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완전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믿은 사람은 항상 그의 생활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말며, 그가 가진 지위를 가지고 폭력이나 거짓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이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는 과연 구원을 받아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구원함으로 받아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이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주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스스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기 보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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