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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3: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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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96
주 재림의 준비
로마서 13 : 11 - 14
서 론 :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거이 마무리 지으려는 끝머리에 가서 주 재림에 관한 성도들의 태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바울이 이곳에서 이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가에 대하여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며 어느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라 해도 이 소망을 소홀히 할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 재림에 대해서는 사도시대로부터 끊임없이 강조되어 오고 있는 경종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필요했던 말씀이라면 정말로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1. 주 재림의 시기는 언제인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물론 인류의 종말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류의 종말이 언제냐는 문제는 성경에서조차 하나의 커다란 숙제로 미루고 있습니다.
(1) 성경에서는 주의 재림이 곧 있을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종말의 예언은 어느 시기를 가르치심이 없다는 것과 그 시대가 어느 시대 사람이건 그 사람들에게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모든 교회들이 주 재림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들로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출현인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마16:28).
더욱이 예수님의 비유 중에 왕위를 가지고 돌아오는 어떤 귀인에 대한 말씀은 사도들이 그들의 세대 중에 주의 재림을 기다릴 만 했던 것입니다(눅19:12-27). 이 같은 견해는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신 서에 밝히고 있는 바울의 종말관은 먼 훗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여러 교회에서 임박한 인류의 종말을 주장하였고 주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질 것을 강조했습니다(고전 1:7. 빌3:20. 딛2:13).
(2)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로 주 재림을 소망으로 신앙생활을 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 증거는 주 재림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비밀에 부쳐 두셨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성도들로 재림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실현시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왕국도, 부활도, 변화도, 영원한 천국도, 그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소망의 종점을 바라보고 경주한다는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신부단장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신부단장에 대한 경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딤전6:14,15).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성도는 바로 주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살아서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소망을 목표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단장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4) 그러나 성경에는 절대로 그 시기와 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시기나 때에 대한 언급에 대하여 경종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24:36).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지 말 것에 대하여 이처럼 경종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경종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살후2:1-3). “영으로나 말로나 편지로나”라고 말씀해 주시는 바는 어떤 경우에도 주의 날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2. 깰 때가 된 이 시기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1)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잠은 영적인 잠을 의미합니다. 만약 주 재림의 시기에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경종한 말입니다. 이 세대는 언제나 악합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생존하고 있었던 그 세대도 악했고 지금 이 세대도 악하고, 주님의 재림의 때에도 악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잠은 이 악한 세대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상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몇과 같이 임하리라”(눅21:34).
(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밤이 깊었다는 말은 영적인 밤은 점점 어두워 간다는 말입니다. 낮이 가까웠다는 말은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말합니다. 종말에 갈수록 영적인 밤은 자꾸 깊어져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인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 낮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다가오는 낮을 바라보고 밤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이 옷은 어두움의 일을 벗을 때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여기에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몇 가지 나왔습니다. 방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탕이란 탕자가 즐겼던 생활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즐거워하는 생활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는 생활로 즐기는 생활입니다. 노아의 때의 사람들, 롯의 때의 사람들이 즐기던 생활입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마24:38).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생활을 즐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술은 영적인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정말로 지금 각 교회에는 술에 취하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즐겨 찾는 그런 시대 속에서 함께 술에 취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는 안됩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종말의 시대상이 바로 음란과 호색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교회도 이 물결에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쟁투와 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쟁투란 싸우는 일로 교권을 위한 싸움, 교회 안의 파벌을 위한 싸움, 정치운동으로 싸우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싸움은 주로 하나님의 종들이 범하는 죄로 주님은 이들에게 악한 종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마24:48-51).
결 론 : 바울은 종말에 살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결론적인 권면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열매 맺는 생활을 말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야말로 주 재림의 시기에 매우 가까운 시대입니다. 지금은 깰 때가 벌써 지난 때입니다.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시대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녹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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