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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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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98
그리스도안의 날과 절기
로마서 14 : 5 - 9
서 론 : 초대 교회시대에 있어서 먹는 문제와 절기를 지키는 문제는 교리적 논쟁의 중심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교리적인 혼선을 빚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신약적인 교훈이 필요로 했습니다. 바울은 이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근거로 이 문제를 이곳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의 증거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먹는 일과 날을 지키는 문제는 어떤 법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각기 신앙적 양심에 비추어 자기 마음에 확정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법에 얽매인 생활이 아니라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교회에서의 날과 절기
교회의 초기에는 아직 계시의 미비로 여러 면에서의 교회의 질서가 정돈되지 못했었습니다. 초대교회엔 자연히 구약적인 교훈이 강력히 머리를 쳐들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이 같은 풍조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논쟁은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율법적인 적용문제가 심각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행15:1-5).
바울은 이 날과 절기 문제에 대하여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 지니리”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바울이 말한 이날과 저 날은 그 당시 교회에서 지켜오고 있는 여러 날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아마 유대교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유대교인들은 좀처럼 율법적인 안식일의 관념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을 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규례로 주신 민족적 절기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마땅히 지켜야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중 교회에 들어 온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날과 절기 등이 율법에 구속받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날을 정하여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제각기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바울은 이 같은 날과 절기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2) 날 중에 큰 문제로 부각된 날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안식일을 고수하는 교파가 있어서 구약의 안식일의 준수를 구원문제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신약이나 구약의 시대적 차별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원한 규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주시기 이전 창세기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고 십계명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7일 중 하루를 지칭한 날입니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이스라엘에게 율법적 규례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실인즉 신약시대에는 안식일이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에서 나온 것이며 신약시대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십계명은 그 모두가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규례가 아닙니다. 그 중에 안식일은 율법에 속한 절기에 관한 문제이므로 포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안식일은 그 안식일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히3:18,19). 안식일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잘 지켰지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실질적 자격요건인 순종에 불합격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에 실격자가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참 안식의 뜻을 이처럼 명백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이 말씀은 복음에 순종하는 자가 안식일을 지키는 자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임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히4:1-11).
2.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이런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적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지키려 할 때 율법적인 저주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따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구약전체에 있는 안식일에 대한 조항을 지켜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뿐 아니라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만약 그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는 율법의 저주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안식의 성취입니다. 주님과 연합된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장차 우리의 온전한 안식의 소망인 것입니다. 주님의 완성된 안식, 우리의 안식의 실현이 될 부활을 소망하면서 주의 부활의 날을 우리는 ‘주의 날’로 정하고 이 날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적인 절기문제 역시 동일한 각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민족적인 절기로 지켜 온 삼대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를 보아도 이 절기가 단순히 구약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회생제물이 되심으로 이미 성취된 일입니다(고전5:7).
하나님 앞에 첫 열매를 드리는 오순절 역시 그날에 성령이 임하시므로 그 첫 열매로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행2:1-4). 초막절은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일을 기념하는 절기인데 우리는 지금 성령의 내주 하심으로 은혜의 초막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구약적 절기는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실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림자를 벗어 버려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골2:16,17).
그리스도인의 생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리라”고 말했습니다. 안식일 문제나 절기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최선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인 것입니다. 이 같은 삶의 푯대가 분명하다면 지엽적인 안식일이나 절기나 음식문제로 하나님의 교회를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 론 : 바울은 주님께서 “이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위하여’란 말씀의 뜻은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드리는 생활을 위하여”란 의미입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죽은 자에게 주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그의 살아나심은 산 자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복된 소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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