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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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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101
하나가 되는 교회
로마서 15 : 1 - 6)
서 론 :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성도는 하나님의 집에 속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똑같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한 분을 함께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 아버지의 자녀들은 한 형제요 한 자녀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그저 빈말로 적당히 부르는 형용사가 아니요 정말로 한 아버지의 형제들이 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한 가정이 잘되고 평안하려면 그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가족의 이해와 관용과 사랑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가 되는 교회에 대하여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1.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
한가정의 평강과 행복은 가족들간의 화목에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인 교 회의 화목에 대하여 첫 번째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기쁨은 자기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한 바울의 교훈은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기쁨까지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샘솟듯 솟구쳐 나와야 합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평안입니다. 소망이란 우리의 영생과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같은 기쁨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으며 절제할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2)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한 의미는 다른 형제들의 신앙생활에 시험이나 유혹이나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의 위치를 스스로 과대평가 하여 자신의 믿음을 으뜸으로 내세우기도 하며 누가 무엇이라 하든 자신의 믿음을 고집하는 생활에 만족하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독단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세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그 약점을 담당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로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성장한 신자로 모든 일에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의 중직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교회에는 많은 약점을 들어내놓을 수밖에 없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더 오랜 세월, 믿음의 연단과 시련과 신앙적인 체험을 통해서 앞으로 강한 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초기에 연약한 자의 과정을 걸어야 합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은 믿음이 장성하여 강한 자에 이르기까지 ① 믿음이 견고치 못하여 혹 날이나 절기나 식물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알고 있는 지식이나 양심의 거리낌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② 다음에 아직 세상적 습성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형제들로, 이들은 양심의 갈등 속에서도 술이나 담배에 대하여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성품 적으로 쉬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④ 말씀의 지식이 부족하여 교리적으로 밝지 못하여 실수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들의 연약한 부분을 친히 담당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담당한다는 말은 그 짐을 내가 진다는 뜻으로 그들에게 덕을 세우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해 주며 화평의 일을 도모하므로 양육자의 입장에 서서 강한 자가 되기까지 돌보아 주라는 뜻입니다.
2.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
바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생활로 다른 형제들에게 신앙적 손상을 주는 생활로부터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해 주는 적극적인 생활’로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내 이웃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은 이웃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이웃에 대한 선은 그 이웃의 유익을 말합니다. 이 같은 이웃에 대한 선은 사랑의 생활에서 나옵니다(고전13:4-7). 또한 자신의 견해나 입장이 옳고 자기 행위가 타당하다고 해도 이로 인하여 이웃과 다투는 일이 없도록 덕을 세우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생활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맏 형님이 되시는 예수님의 모든 행실은 우리의 모범이 되는 생활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일은 그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의 본을 보여주신 일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빌2:6-8). 그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희생이 되셨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의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오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내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살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바를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 같은 생활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상급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내와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4)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똑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치는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잡다한 모든 사람들이 제 각기의 성품과 습성을 가지고 한 우리 안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움직일 수 없는 공통적인 위대한 공동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존재하는 웬만한 문제점은 이 목적의 그늘아래 깊숙이 파묻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이 절대적인 삶의 대 명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모여 하나를 이룰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뜻을 같게 해 주십니다.
결 론 :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그리스도안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용서하고 선한 일과 덕을 세우는 일로 한 가족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자기의 기쁨을 나타내려는 생활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기쁨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생활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이 보이신 남을 위한 희생 생활을 본 받아 내 형제를 위해 회생하는 생활로 서로를 아끼며 섬겨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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