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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5: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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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http://www.bamjoongsori.org 밤중소리 |
로마서 강해102
서로 받아 드리는 사랑
로마서 15 : 7 - 13
서 론 :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은혜를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 나타내시는 각도에 따라 혹은 안위의 하나님, 혹은 인내의 하나님, 혹은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평강의 하나님(롬 15:33),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용어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역사를 나타내 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하나님이 우리로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너희도 서로 받으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잡다한 인종, 여러 가지 성품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흩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성장과 부흥을 이루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이처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서로 받아 드림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서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 데 우리를 받아드리신 것입니까?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그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받아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약한 자로서의 시험을 받으심으로 시험을 받는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시면 서도 그들을 배척하지 아니하심으로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인내하심으로 고난을 받는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본은 우리들로 예수를 배우게 하심으로 그 아들의 형상을 이루시려는데 있습니다(롬8:29, 갈4:19). 바울은 우리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받아 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바울은 여기서 주를 본받아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서로’라고 말한 대상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서로 ‘받으라’ 곧 서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로마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간에는 많은 갈등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로운 생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선민의식 등이 갈등을 빚어내 ,교리적인 충돌이 잦았습니다. 서로 받아 드리지 아니하므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① 여기서 서로 받아드리는데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툼이나 판단은 교만이나 자기 우위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이해하고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 주려면 먼저 자기보다 다른 이를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빌2:3). 예수님도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20:27).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나은 사람으로 대우해 준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경우를 본받아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차원 높은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② 서로 받아 드리는 일에는 서로의 약점을 서로가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약점을 판단하면 그곳엔 분쟁이 생기고 파벌이 생깁니다. 상대편의 약점을 자신의 약점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약점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보자기가 필요합니다.
③ 서로 받아 드리는 일에는 서로가 신앙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한 가족으로 한 울에서 행복스럽게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서로의 협력에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은 주님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율법의 준행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얽매이실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그가 친히 율법의 준행자가 되신 이유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함 없이 서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위하심이란,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주신 언약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메시야이십니다. 이 같은 약속은 그의 조상들에게 언약으로 수도 없이 주셨습니다. 그 일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는 그가 유대인으로 태어나셔야 했으며 율법 아래에 태어나 그 율법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다른 한편 예수님은 이방인에게도 약속된 구주가 되십니다. 창세기 3:15절의 ‘여인의 후손’의 약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약속입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대인들에게 국한시킨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방인들도 그 약속에 포함된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창12:3). 이 일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이방인파 유대인의 담을 헐어버리고 서로 받아 드리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인용한 구약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 근거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2. 소망의 하나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소망을 품고, 소망을 바라고,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생활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망이 아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확실한 소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사죄를,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그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부활의 소망을 확실히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소유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소망을 친히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증하신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모든 기쁨과 평강이 성령 안에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과 평강과 소망 안에서 살아가도록 항상 힘써야 하며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받아 드리는 생활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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