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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목표를 구별하세요.

빌립보서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061 추천 수 0 2013.07.27 0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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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2-14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과정과 목표를 구별하세요.
2010년 1월 1일(금) 신년수련회 오후 집회, 텔아비브 욥바교회
빌립보서 3:12-14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올해 원하는 것들을 기록했다. 개인적인 것도. 가정적인 것도.
어떤 내용들인가? 개인적인 것들은 직장에서의 실적, 공부, 진로, 신앙성장, 게임기...
가정의 경우-건강, 화목 등등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진정한 목표, 궁극적인 목적이다.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가?

  인류가 시작된 이후 이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모두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싶어 한다. 이 질문을 위해 나름대로 답을 찾는다. 그런 책들도 많고 많은 가르침이나 말들이 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잘못되어 있다. 출발점이 잘못되어 있으면 인생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그 출발점은 우리의 인생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아는 것이다. 바르게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진화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연이거나 아니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대답해보라. 나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인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내가 진화론을 믿느냐 창조론을 믿느냐의 질문이 아니다. 나의 실존에 관한 문제이고 동시에 나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질문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나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찾을 수 없다.

  내가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고 하면 나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무슨 삶의 의미가 있나, 무슨 목적이 있나? 우연히 태어난 존재, 그저 잘 살다가 가면 된다.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된다, 폼 나게 살다가 가면 되고 조금 더 목표를 높게 잡으면 착하게 살고 세상에 이름 남기고 가면 된다.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므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나름대로 성공, 취업, 행복, 돈, 권력, 인기 등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만 실제로는 삶의 의미도 목적도 없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다. 허무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것저것으로 인생의 목표로 삼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허무하고 갈증이 난다. 이러한 것들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라.

  창조를 단순히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사실이다. 진화론은 우주의 시작을 설명 못한다. 빅뱅이론을 내세우지만 우주의 삼대요소인 시간, 물질, 공간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시간은 그렇다 치고 우주 공간은? 빅뱅이라는 물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화론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의 바탕에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추구다. 그러니 엄청나게 긴 시간과 우연이라는 억지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것이 정답이다. 하나님이 각 종류대로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다. 이것이 정답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것이 정답이다.

창조의 핵심은 계획과 목적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 우주를 봐라. 지구상의 모든 자연현상을 보라. 너무나도 정확한 질서가 있다. 이것도 우연의 결과인가? 창조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앙이라는 선입견을 버리라. 창조는 사실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앞서 창조의 핵심은 계획과 목적이라 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우연의 산물도 아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인간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에 따라 창조된 존재이다. 이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인생의 의미와 목적도 제대로 알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만드셨나 하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 인간을 만드셨나? 당신의 자녀를 삼기 위해서. 당신과 관계 맺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26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다.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한다. 그래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과 개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개가 인간을 왜 그렇게 따르는가? 동물의 본성이다. 자기보다 힘센 존재,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존재에 대한 충성심이다. 그래서 꼬리를 치며 따르는 것이다. 결코 인격적인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으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한 존재의 의미가 있고 삶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깨어졌다. 그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함이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복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죄용서 받아 구원받고 천국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첫 번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이다. 영접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안 된다.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가? 예수님 안에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근처에서 자랐고 교회도 나갔었다.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닌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학생회 회장도 하면서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가 고2 말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든 생각이 있었다. ‘나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답이 없었다. 교회는 다녔는데 답이 없었다.

그러면서 방황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공부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의욕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교회도 떠났다. 대학은 들어갔지만 공부할 이유를 찾지 못하니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노는데 시간을 보냈다. 영적으로 완전 암흑이었다.

그러니 큰 아버지 환갑잔치 사회를 보면서 제사상 앞에 서른 번 이상을 절했다. 전에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무릎만 꿇고 절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영적으로 깜깜하다 무감각하다. 내가 그랬다.

  그러다가 21살 가을에 예수님을 만났다. 정말 제대로 만났다. 성경 말씀 속에서 만났다. 내게 주어진 말씀을 읽고 두 시간 동안을 울었다. 왜 그렇게 지은 죄가 많던지... 그렇게 울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온 세상이 달라지더라. 사실 달라진 것은 나밖에 없다. 내가 달라지니 세상이 왜 그렇게 아름답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랑스럽고 불쌍해 보이는지!

  그러면서 동시에 내 마음 가득 채워진 것이 바로 삶의 의미와 목적이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다. 왜? 내가 누구인지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누가 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그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를 말했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내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다. 하나님이 되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갈망이 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 뜨거운 열망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가? 예수님을 만나야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야 한다. 내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과업이고 우선순위다. 이것이 안 되면 교회를 다녀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다.

  예수님을 만나는데 목숨을 걸라. 청년 때, 청소년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공부가 중요한 것 아니다. 대학 가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다. 취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온 존재이고 인간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 존재라는 이것이 곧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 무슨 뜻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맞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의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존재이다. 이 땅 위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살아감으로써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의미이고 목적이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의 무엇에 하나님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그것일까?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업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다. 우리의 직업이나 직분, 업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가장 우선되고 큰 관심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다.

  내가 21살 때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고 나서 내 안에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갈망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기도제목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진로, 어떤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를 사용해달라는 것이었다. 나의 관심은 doing이었다. 21살 때부터 28살 때까지 7년간 나의 기도제목은 나의 doing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28살 때 마침내 응답하셨는데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큐티하던 말씀을 통해 응답하셨다. 왜 청소년 때, 청년의 때에 큐티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찾지 마라. 하나님의 뜻은 말씀에 있다.

  그때 주신 응답이 무엇인지 아는가? “너는 이런 일을 해라. 너는 이런 직업을 가져라.”가 아니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말씀이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관심사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의 관심사는 늘 doing이었다. 내가 어떤 진로,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나의 doing이 아니라 나의 being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하나님의 관심사였고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청년의 때 7년 동안 나의 being이 아니라 doing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사는 doing이 아니라 being이다. 청년들에게 말하면 진로와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직업은 무엇을 해도 좋다. 죄짓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만 아니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 좋은 것, 만족하는 것, 기쁜 것, 나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그것 하면 된다. 무엇이든 좋다.

‘어떤 직업 가질까요’그런 것으로 고민하지 마라.‘자장면 먹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냉면 먹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그런 기도하지 마라. 하나님의 답은 분명하다. ‘니가 먹고 싶은 것 먹어. 니가 먹고 싶은 것 먹는 것이 내 뜻이야.’하나님 위해 살겠다고 괜히 신학교 가겠다고 하지 마라.

  인생의 큰 목적을 발견했으면 직업, 진로는 무엇이든 괜찮다. 수많은 직업 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 그걸 하면 기쁜 것, 나에게 맡는 것, 그걸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은 것을 해라. 그 직업을 즐겨라. 그리고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라.

예수님의 정신으로 하고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해라. 예수님의 인격과 삶이 나타나게 해라.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내가 무슨 직업을 갖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께 하듯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더 관심을 두신다. doing이 아니라 being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나의 being 자체가 하나님께는 귀하다. 하나님은 인정은 being이다.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둘째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착각을 한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런지 안다. 나의 being,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는 너무나 귀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에 있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내가 다시금 당신을 닮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이시고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영생으로 들어갈 때 doing이 남는 것이 아니라 being이 남는 것이다. 내가 영생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나의 업적이 아니라 성품을 가지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기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이고 궁극적인 목표이고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할 책임이다.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한다. 선악과가 무엇인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 아닌가? 바벨탑이 무엇인가? 하나님처럼 높아지겠다는 것 아닌가? 인간복제가 무엇인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내가 하나님이 된다. 내가 주인되어 내 고집대로, 내 욕심대로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남는 것은 철저한 죄성밖에 없다.

죄성이 무엇인가? 죄의 성향이다. 죄의 성향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불순종한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닮아가겠는가? 그리고 죄성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대로, 탐욕대로 행하고자 한다. 세상의 탐욕을 따라가게 된다.

  인생의 방향은 결국 둘 중 하나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생이 되느냐, 내 안에 있는 죄성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죄성을 따라갈 때 그 끝이 무엇인지는 성경을 보면 잘 안다. 파멸이다. 당신은 무엇을 따라가는가?

  꼭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사는 분명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회복되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사다. 이것이 내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의 실적, 승진, 성공, 대학 진학, 취업, 가정의 화목, 평안은 그 과정이지 이것이 우리 인생의 의미이며 목적이 아니다. 과정과 목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의 의미이며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나는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청년 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것이다. 청년 때에 나는 주의 종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확신이 없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닮은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존재로 만들기 위해 청년 때 7년 동안을 다듬으시고 훈련시키셨다. 그때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 나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까 주의 종으로서의 부르심이 주어졌다.

  나는 일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사람도 좋아했지만 일을 좋아했다. 청년 때 정말 교회 일 많이 했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칭찬을 많이 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난 burn out이 되었다. 탈진하고 말았다. 상처받고 말았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교회 봉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 그냥 일하지 마라. 내가 드러나는 그런 일 하지 마라. 자기만족을 위한 일 하지 마라. 예수님을 닮기 위한 일을 하라. 예수님을 닮은 섬김을 하라. 예수님을 닮은 겸손을 실천하라.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수고를 하라.

  당신의 봉사와 수고에 예수가 없으면 그건 아무 의미 없다. 기껏 자기만족이고 자기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봉사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거나 자신이 상처받고, 교회의 덕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봉사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봉사가 되어야 한다.

사역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의 목회 사역이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한 사역이 되기를 소원하고 예수님이 보이는 목회가 되기를 바라며 하고 있다.

  교회 홈페이지 목회칼럼에도 썼는데,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 나도 거기 없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어느 방송국에서 몇 달 전인가에 특집 다큐로 방송한 것이 있는데,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라는 제목의 다큐였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난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좋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많이 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만한 시간도 많지 않고 드라마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내가 김명민이란 배우를 접한 것은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에서였다.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내게 든 느낌은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저랬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어느 특정 배우를 보고 그런 느낌이 든 적은 처음이다. 그 후 김명민이란 배우가 좋아졌다. 연기도 잘 하는데 믿음도 좋은 신앙인이라니 더 좋을 수밖에...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 무슨 뜻인가? 그가 맡은 배역마다 그 캐릭터를 나타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그 결과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아닌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배우라는 뜻이다.

하루는 그가 슈퍼마켓에 갔는데 자기를 알아보는 이들이 별로 없더란다. 이미 스타가 된 이후다. 이에 대해 서운한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더란다.
  왜? 사람들은 김명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연기한 그 캐릭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란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제목은 어떨까? "류공석은 거기 없었다."

  이 말은 다름 아니다. 내가 목회한 자리, 내가 살아간 자리에서 나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나는 거기 없었다"는 말이 나의 목회에 대한 평가였으면 좋겠고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평가였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내가 흔히 말하는 목회의 성공과 부흥을 이루었다 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만 남으면 내 목회는 성공한 것이 아닐 게다. 오히려 실패한 목회, 잘못 살아온 삶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이 기억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사역하던 목회지에 있었던 이들이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서운한 일이다. 다만 내가 기억나는 그 사람의 머릿속에 예수님이 함께 떠올랐으면 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 그리고 나를 기억하면 할수록 나보다는 예수님이 더 떠올랐으면 하는 것이 내 진정 소원이고 바램이다.

예수님을 가려버리는 그런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그런 목회자이고 싶은 것은 나의 기도의 제목이다. 내가 있었던 목회의 자리에서,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그런 기억이 떠오를 수 있다면 난 성공한 목회자요 잘 산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내 인생이 끝나고 주님 앞으로 가기 전에 나에 대한 평가가 “나는 거기 없었다.”였으면 좋겠다. 내가 섬겼던 교회의 자리에서, 내가 사역했던 사역의 현장에서, 내가 살았던 삶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평가는 “나는 거기 없었고 대신 예수님이 있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었다.”라는 평가가 주어지기를 축복한다. “류공석은 거기 없었다.” 멋있지 않은가?

  여러분들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제 궤도 수정을 하라. 방향을 바꾸라.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닮아가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될 때 어떤 열매가 주어지고 결과가 주어질지를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행복해진다. 가장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가 있다. 그것은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력으로도, 성공으로도, 쾌락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진정한 만족으로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 사는 이유가 분명해 질 것이다. 단순히 눈앞에 있는 성공과 실패 때문에 흔들리고 비굴해지지 않을 것이다. 삶의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인격과 가치관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예수님이 분명하게 보이고 십자가가 또렷하게 보이는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점점 더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인해 가족이 화목해지고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당신의 섬김과 봉사와 사역에서 예수님 닮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진정한 섬김의 기쁨을 알게 될 것이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다시 하나님께로 가는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영원을 위한 준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 이것을 당신의 삶의 목적으로 삼으라.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이 상을 위해 달려가라. 이것을 푯대로 삼으라. 가장 중요한 것을 푯대로 삼고 그 푯대를 향해 달려가라.

  가정의 목표와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으로 세우라. 아빠가, 남편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그 가정이 어떻게 될까? 엄마가, 아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될까?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엄마아빠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 가정의 화목은 그저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에베소서 4:22-24을 통해 볼 수 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할 일 첫째,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22절의 말씀이다.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이다. 죄성을 따라 살던 사람이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따라 살던 사람이다. 세상의 유혹을 따라 살던 사람이다.

이런 옛 사람과 작별하라는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고 더 이상 입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는 닮고 싶은데 여전히 옛 사람의 옷을 입고 산다, 이건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다시 입지 말라.

  둘째, 사고방식을 바꾸라. 23절이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이 말씀은 로마서 12:2 말씀과 같은 의미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무슨 말인가? 세상을 거스르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문화와 흐름, 가치관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라. 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기준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남들 다 그런다고 나도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영향력이다.

  로마서 12:2에서 말하는 변화는 영어로 transform이다. 이 말의 헬라어 원뜻의 의미는 나비 유충이 나비가 되기 위해 거치는 엄청난 변화를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충돌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 애벌레처럼 나뭇잎만 갉아먹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비가 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나비가 되라.

  세상 중심, 나 중심의 사고에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바꾸라.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도 별로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기도 많이 해도 그 인격과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라. 그리고 삶을 바꾸라.

  셋째, 24절이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무슨 뜻인가? 새롭고 거룩한 습관을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품은 습관이 모아진 것이다. 좋은 습관에서 좋은 성품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은 새롭고 거룩한 습관을 발전시키라. 기도의 습관을 발전시키라.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습관을 발전시키라. 예배의 습관을 발전시키라. 하나님 앞에 정직한 습관을 발전시키라.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납하는 습관을 발전시키라.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섬기고 발을 씻기며 사랑의 수고를 하는 습관을 발전시키라.

  이러한 새롭고 거룩한 습관들이 모아져 성품이 되는 것이다. 그저 내가 예수님 닮아가야지 한다고 해서 예수님 닮은 인격과 삶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살아가라. 예수를 살아가라. 예수님 닮은 습관을 발전시키라. 그럴 때 예수님 닮은 성품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님께 순종하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만드시는 것이 성령님의 일이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는가? 성령님이시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가? 성령님이시다. 누가 우리 안에 변화를 일으키시는가? 성령님이시다. 우리 안의 변화의 힘은 성령님께 있다.

   성령의 힘은 어떤 신비한 체험, 접신이나 어떤 격렬한 감정이 아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치유 같은 은사가 아니다. 그건 단지 경험이고 은사일 뿐이다. 성령의 힘은 인격과 삶의 변화이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 내 안에서 늘 내게 선택을 요청하신다. 그리스도를 닮는 선택을 요청하신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모방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사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가 하는 선택을 통해서 일어난다. 성령님께서 내게 그리스도를 닮은 선택을 요청하실 때 그것을 선택하라. 그것이 바로 순종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리신다. 내게 힘이 생기거나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믿음이 자란 후에 하겠다고 하지 말라. 나중에 하겠다고 하지 말라. 지금 하라. 지금 순종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라. 이것이 성령님과 협력하고 우리의 인격이 세워지는 방법이다.

  성장에는 능동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씨앗이 심겨져야 하고 가꾸어져야 한다. 건물도 지어져야 한다. 성장을 위해 먹고 운동해야 한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우리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성경은 힘쓰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닮아 성장하는데 “힘쓰라”고 하신다. 계속해서 힘쓰라고 하신다. 왜냐? 영적 성장은 점진적이며 계속적인 과정이며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이다.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장을 계속해서 힘쓸 때 하늘에는 보물이 쌓이게 된다. 보물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정이다. 나의 doing이 아니라 나의 being이 결국 보물이 되는 것이다. doing 자체도 귀하지만 그것 역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장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doing이 되어야 한다. 그런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 되라. 올 한해 하늘에 있는 여러분의 창고에 보물이 많이 싸이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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