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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주시는 사랑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1943 추천 수 0 2013.07.27 0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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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1:15-17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믿어주시는 사랑
2010년 1월 2일(토) 신년수련회 샤밧예배, 텔아비브 욥바교회

새해 첫 샤밧예배는 갈릴리호수변 베드로수위권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요21:15-17

 

오늘 우리는 베드로수위권교회에서 샤밧 예배를 드린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때로 힘들고 지칠 때 난 이곳을 찾는다. 그래서 주님의 손길을 다시 느끼고 다시 힘을 얻는다.

  이곳을 제일 좋아하고 이곳에 와서 힘을 얻는 이유가 있다. 이곳이 요한복음 21장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시몬 베드로와 도마, 나다나엘, 세베데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다른 제자 둘이 갈릴리 호수변에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집이 있었던 가버나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몬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우리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원래 어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어부를 천직이라 여기고 물고기를 잡았다.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고 만선의 기쁨도 있었을게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이전과 같은 고기 잡는 즐거움이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베드로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주님의 부인한 죄책감이었다. “주를 위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는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여지없이 무너진 그였다.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한 그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는 너무나 기뻤고 감격스러웠지만 동시에 그를 짓누르는 죄책감이 있었다. ‘이런 내가 어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격이 없어. 예수님도 나를 이전처럼 여기지 않으실 거야. 제자는 무슨 제자. 이 전처럼 물고기나 잡으며 사는 게 나아.’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이곳 갈릴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이 말을 하는 베드로의 심정은 무거웠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 물고기라도 많이 잡이면 그나마 위안이 될 텐데 한 마리도 잡질 못했다. 더 힘이 빠지고 허탈하고 죄책감이 그를 짓누른다.

  그때 날이 새어 아침이 되어갈 때쯤, 누군가가 바닷가에 서서 크게 묻는다. “당신들에게 물고기가 있습니까?”

  아직 새벽녘이고 거리가 있어 누군지 모른다. 제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을 것이다. “없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런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시오. 그러면 잡힐 것이요.”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그물을 던졌다. 왜 그랬을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배 오른편에서 물고기들이 만들어낸 물방울들이 올라왔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물을 던졌고 잡힌 물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자들, 그중에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즉 요한이 베드로에게 알려준다. “주님이시라”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거의 반사적으로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렸다. 육지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없이 가보았더니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을 굽고 따끈한 빵을 준비해놓고 계셨다.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 무어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유구무언,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그러신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제자들의 수에 맞게 생선을 구우시더니 그러신다. “와서 아침식사를 해라”그리곤 손수 빵을 건네주시고 생선도 건네주신다.

  그것을 받아든 제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특히 베드로의 심정이 어땠을까? 제대로 목으로 넘어갔을까? 밤새 고기잡이를 했으니 배가 고팠겠지만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었을 것이다. ‘이 식사를 마치면 주님께서 뭐하고 하실까? 무어라 주님께 말할까?’하는 생각이 식사 내내 그의 머릿속을 채웠을 것이다.

  이제 식사가 끝났다. 드디어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신다. ‘이제 때가 왔구나.’죄인이 받을 것은 벌밖에 더 있겠는가? 두 눈을 감고 주님 앞에 섰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엉뚱한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님의 입에서 책망과 야단을 생각했는데 사랑을 물으신다. 갑자기 정신이 없어진다. 비록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서 겨우 들릴듯 말듯 대답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랬더니 주님이 또 다시 엉뚱한 말을 하신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그리고 또 물으신다. 그것도 똑같은 질문이다. 또 겨우겨우 대답했다. 또 그러신다.

  “내 양을 치라”

  이제 끝나나 했더니 세 번째로 물으신다. 똑같은 질문이다. 세 번씩이나 물으시니 이젠 근심이 된다.

‘왜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시나?’ 근심하며 대답한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역시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요한복음 21장의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세 번의 질문을 학자들은 언어적으로 해석을 한다. 첫 번째와 두번째 물으신 사랑은 헬라어 성경으로 agapao이다. 우리가 아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고 희생적인 사랑이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다. 그렇게 물으셨다. 영어로 하면 “Do you agapao me?"

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phileo라는 말로 대답을 했다. 필로스의 동사형인데, 이 말은 친구간의 우정을 뜻하는 말이다.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이름이 여기에서 왔다. ‘친구간의 우정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필로스는 사랑이긴 하지만 아가페적인 사랑은 아니다.

  시몬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질문하는 예수님께 친구간의 우정을 뜻하는 필로스로 대답했다. ”Do you agapao me?" "I phileo You" 이렇게 대답했다.

  두 번을 그렇게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세 번째에서는 agapao가 아니라 phileo로 바꾸어 물으셨다. “Do you phileo me?" 그러자 베드로는 똑같이 ”I phileo You"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헬라어로 이렇게 쓰여있기에 그 의미를 놓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비록 요한복음의 기록은 헬라어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썼던 말은 아람어였다. 히브리어의 사촌언어이다.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사용된 언어이다. 아람어로도 과연 이런 차이가 있는 단어를 쓰셨을까? 이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여기서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하신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베드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그것도 세 번씩이나.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 나 사랑해?” 이 말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자주 쓴다. 사이가 좋을 때는 사랑 고백을 듣기 위해서이고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의도이다.

  그런데 다른 의도에서 “당신, 나 사랑해?”라고 물을 때가 있다. 그때가 언제인가? 상대방이 나를 배신했거나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때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웠다. 혹은 내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나는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한다. 그랬을 때 이 질문을 한다. “당신, 나 사랑해?”

  이 질문을 할 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사랑 고백을 듣고 싶어서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상대방을 향한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당신은 나를 배신하고 나를 부인하고 내게 상처를 주었지만 나는 당신을 여전히 믿고 있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고 있는 질문이다.

  예수님의 질문이 이런 의도가 아닐까? 이 장소를 여러 번 왔다가 묵상하던 중에 든 생각이었다. 나는 베드로에게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의 마음이 이것이었다고 믿는다. 베드로에게 무슨 사랑의 고백을 받으시겠다고 이런 질문을 하셨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겨우 필로스인데. 비록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베드로 안에 있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모르셨겠는가? 눈만 봐도 안다.

  예수님의 질문에는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시는 의도가 담겨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부인하고 나를 떠나 이곳에 와 있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믿고 있고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 내 양을 치라. 이제 다시 일어나서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예수님의 마음이다. 베드로가 이 질문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았다. 예수님이 자신을 변함없이 믿어주시고 동일하게 사랑해주시는 그 마음을 깨달았고, 그것이 베드로의 깊은 죄책감과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주님의 믿어주시는 그 사랑이 베드로를 치유하시고 동시에 다시 일어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이다.

  그 이후에 베드로를 보라. 다혈질의 베드로, 욱하는 성격의 베드로, 행동보다는 말이 앞섰던 베드로가 어떻게 바꾸었는지. 베드로전후서만 봐도 그가 얼마나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십자가 형을 받았다. 예수님처럼 받을 수 없다며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달라고 부탁하며 감사함으로 순교를 당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의 변함없이 믿어주시는 그 사랑이 그를 치유하였고 새롭게 하였고 성숙하게 하였고 주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사역하게 한 것이다.

  이것 아는가? 예수님께서는 나도 변함없이 믿어주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나는 변함없이 주님을 믿고 사랑하지 못한다.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도 하고 주님께 수많은 상처를 준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라가지 못한다. 주님을 사랑하기는 하는데 실수가 참 많다. 딱 베드로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똑같이 변함없이 믿어주시는 사랑으로 대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 앞에 자신의 모든 마음의 무거운 짐과 상처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있는 죄책감, 무거운 짐, 상처 그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 그리고 들으라. 그 손길, 주님의 부드러운 터치를 받아들이라.

  “사랑하는 누구야. 힘들지? 많이 아프지? 나에게 죄스럽지. 그런데 아니? 난 너를 믿는단다. 나는 변함없이 너를 믿는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단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렴. 이제 일어나 내 양을 치렴. 내 양을 먹이렴.”

  주님의 믿어주시는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터치가 닿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길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삶이 건강하길 원하신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길 원하신다. 우리 안에 있는 무거운 짐들과 상처, 죄책감을 마귀는 공격한다. 그러면서 정죄한다. 자꾸 들춰내고 아프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길 원하신다. 건강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 닮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하신다. 우리를 치유하고 건강하시는 힘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 변함없이 나를 믿어주시는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의심하지 말라.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변함없이 나를 믿어주시는 그 사랑이 나를 치유하게 하고 나를 이끌게 하고 그 사랑이 힘이 되어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라.

  나는 이런 예수님이 너무너무 좋다. 이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신 것이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난 그 무엇과도 예수님을 바꾸지 않는다. 아니 바꿀 수 없다.

  나는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너무 짐을 무거울 때마다 이런 예수님 앞에 엎드린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다시 듣는다. 그리고 다시 주님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일어설 수 있었고 베드로처럼 점점 더 주님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한 번 권고한다.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짐이 무거울 때,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 십자가 앞에 엎드리라.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 변함없이 믿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들으라. 그리고 다시 일어서라. 치유 받고 더 주님 닮은 사람으로 자라나라. 그것이 나를 한결같이 믿어주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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