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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blog.daum.net/kjeddh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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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하여 가는 제자와 영성의 길 것이니라”
좇을 나를 지고 십자가를 제 날마다 부인하고 자기를 따라오려거든 “아무든지(눅 9:23).
If any person wills to come after Me, let he deny him-self(di sown himself, forget, lose sight of himself and hi s own interests, refuse and give up himself) and take up hi s cross daily and follow Me(cleave steadfastly to Me, conform wholly to My example in living and if need be, in dying also
기독교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상징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기독교 혹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열어졌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예수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가 더 기독교의 실체와 가까워 보이는 것도 십자가가 품은 의미 때문이다. 또한 십자가는 십자가를 통하여 얻게 된 새 생명을 가진 자들의 삶의 출발점이며 그 과정이며 종착지가 될 수 있다는데 그 중요성이 더 부여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출생한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예수 생명의 실체를 누린다. 또한 날마다 그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십자가의 삶을 실감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를 전파하며 그 속에서 호흡한다. 십자가 속에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구원교리가 들어있다. 십자가 속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십자가 속에 신앙인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성인으로 올라가는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위의 본문이다.
1. 믿어야 할 십자가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요 1:29;19:17-30). 그것은 죄를 위한 영원한 죄의 제사였다(히 10:12;계 5:10). 십자가의 도는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고전 1:18).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전 1:23). 거기서 구원함을 받는다(벧전 1:18,19). 분명히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다. 의로움과 새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된다(고전 1:30). 여기서 예수를 따라가려는 삶이 가능해진다. 사실, 갈보리의 구속의 십자가를 마음에 믿어 의지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배워야 할 제자들이다(마 28:18-20). 다만 여기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를 것인지의 여부가 선악과나무 앞의 자유 및 선택의 의지처럼 남아 있다. 따라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는 말은 믿어야 할 십자가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께로 가는 길이 보인다.
2. 못 박혀야 할 십자가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위하여 살 것으로 인도하신다(고후 5:15).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말이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아니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우리 내면에서 참으로 사시도록 하는 역설적인 원리이다(갈 2:2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듯이, 그를 믿는 자는, 그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자는 그와 함께 못 박혀 죽었다(롬 6:3,4). 그것을 확실하게 실존의 삶에서 체험할 수 있을 때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의 구체성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육체도 정도 욕심도 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는 것을 알고 만끽하게 된다(갈 5:24). 갈보리에서 예수의 몸이 찔리우고, 못 박히고, 창에 터졌듯이, 진지하게 자신의 몸과 정과 욕심까지 다 갖고 그곳에서 피 흘리는 연합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거기서 못 박힐 십자가는 자기부인을 낳게 된다. 제자로서의 삶과 영성훈련으로서의 길도 여기에서 본격화 된다. 전인격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날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천금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 된다.
3. 짊어져야 할 십자가
믿어서 구원을 얻은 십자가에 전 존재를 장사지내고 못 박혀 죽은 십자가는 이제 개인의 어깨로 가져와야 한다.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십자가의 거치는 것들을 기꺼이 감당한다(갈 5:11).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당하는 일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준 생명과 영광을 현세적인 것들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 것이다(갈 6:12). 이미 십자가에서 죽어버린 자아, 그리스도만 살아서 생명이 넘쳐흐르는 자아에서는 날마다 나는 죽노라고 외치며, 날마다 그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지만 결코 내려놓지 않는다. 날마다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좇아가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영성훈련에 진력하는 것으로 길들여지면 십자가는 가벼운 멍에가 되고, 가속도가 붙은 고난과 핍박의 삶은 이력이 나서 기쁨이 된다. 이쯤 되면 십자가는 날개가 되고 삶의 행복 자체가 된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삶은 바닥짐이 없는 트럭처럼 지나치게 가벼운 인생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이 특권이라는 것을 안 사람은 바울같이 그깟 것들을 피하느라 십자가를 감추지 않는다고 소리친다(갈 5:11;6:12).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4. 전파해야 할 십자가
이젠 자랑거리가 되는 십자가이다. 주님을 좇는다는 것은 주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그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전파하는 것은 그를 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심이 된다(갈 6:14). 그가 자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자랑이 되는 사람,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과와 능력과 의미를 자랑하는 사람은 그것이 그의 긍지요 자부심이 된 것이다. 그 아래 있는 자기의 이름과 자랑거리는 모두 지워졌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가 다 지워지던 날, 우리의 별스럽지도 못한 자랑과 이름도 지워버린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나로 자랑스럽고, 그 십자가에 죽어 있어 그리스도만 살아 있는 내가 자랑스러우며,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며 고난을 당하는 내가 사랑스럽고, 그 아래서 얻은 빛과 생명과 능력과 삶의 본질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예수의 흔적 하나는 갖고 살게 되고(살전 6:17), 그것이 자신의 본질을 형성하게 된다. 예수 때문에 난 흔적, 그것은 영원한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삶의 체험이요 남겨진 자국이다. 그것은 영성훈련으로 다져진 인격과 삶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향기 같은 것이다. 아픔을 견디고 이겨낸데서 나오는 향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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