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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사5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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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노열 목사 |
참고 : | http://www.koabbey.com/30168 |
관상설교란? - 하나님께서 하시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하나님 면전에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관상설교란 이유는 설교자가 "관상상태"를 유지하면서 하는 설교이기 때문에 다른 설교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를 이름이 없어 "관상설교"라 스스로 이름 붙였다. 좀 교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면서도 꼭 "관상설교"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누가 무어라 하든지 그것이 "관상적 설교"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물론 온전한 관상상태 속에서 설교는 어렵지만 지향하고 노력하고 있다. 본문 묵상과 자료 수집하고 기도(관상기도)하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부탁한다. 설교 전에 준비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성령께서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비운다. 예배전 관상기도를 통하여 성령께서 하나 되어 주심을 최대한 유지한다. (주님 나와 전인적으로 하나되시어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 하소서...) 그리고 전 예배 인도를 성령께 맡긴다. 설교 시간에는 더욱 나(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를 믿음으로 주께 맡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내 속에서 한없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들는 그대로 전한다. 체면이나 미움도 사랑도 계획도 의욕도 다 버린다. 하나님 면전에서이기 때문이다. 영감을 주는 대로 다시 말해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한다. (때로는 마음 속으로 이것이 아닌데 싶더라도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평가가 있으시기 때문이다.(보시고 들으시기 때문이다)- 고려수도원 박노열 목사
사 53:1~9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제:11. 대속. 2008. 10. 26.
◎ 서론
: “고난받는 종의 노래”(요한의 제자 폴리갑)로 “이미 성취된 구약 성경의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심오하며 고상한 내용”(델리취) 이라고 격찬했다. 하나님의 종은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신약의 복음서(마 8:17, 막15:28, 눅 22;37, 요 12:37,38,). 서신서의 일부(행 8:32,33, 롬 10:16, 벧전 2:24,25 )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직접 인용되어진 사실은 하나님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점을 더욱 명백히 증명해 준다.
※ 사 53:4~12과 벧전 2:21~25은 비슷한 구절이 반복된다.
1.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 (1~3)
※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메시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1). 백성들이 여호와의 종을 불신함 (1)
※ “우리” 선지자들을 말한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환영하지 않고 불신했다.
※ 백성들의 태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했다.
그를 메시야로 영접하지도 않았다.
2). 여호와의 종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감춰짐 (2)
※ 스스로를 낮추어 고난에 처한 여호와의 종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추어져 있다.
※ “연한 순” “마른 땅의 뿌리” 그는 그루터기 한 켠에서 겨우 자라나는 나약하고 미미한 순과 같았다.
더군더나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튼튼하지 못하고 뒤틀린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 세상적으로 눈길을 끌거나 호감을 줄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눅 2:4~7, 21~24, 41~47)
3). 여호와의 종의 멸시 당함 (3)
※ 여호와의 종의 외모를 보고, 멸시하고 배척했다.
※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말은 온갖 고통을 겪어서 슬픔을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배척과 조롱 배신 등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겪으셨다.
※ “질고를 아는 자”는 병을 아는 자란 의미이다. 그분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충분히 아셨다.
※ “얼굴을 가리는 것” 얼굴을 돌리는 행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특별히 문둥병자에게 한다.
2. 여호와의 종의 당하는 고난의 의의 (4-6)
※ 사실과 진리 즉 여호와의 종은 자신의 죄나 허물 때문에 멸시와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배척한 자들, 곧 자기 백성의 죄악과 허물을 「대신해서」 멸시와 천대 질고와 고통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내용인 “대속사상”이다.
1).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오인했다.(4)
※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다”라고 오인했음을 밝힌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오인한 것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참된 의미 곧 자기희생적 고난을 깨닫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였고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에도 모욕적인 언사로 비방하는 죄를 범하였다.
※ 빌라도 총독은 그의 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죄로 말미암은 형벌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 다.
(마 27:24, 눅 23:4,14,22, 요 18:38 )
2).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고난의 참된 의미 (5)
※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유를 밝힌다.
※ 예수 그리스도의 찔림은 가시관(마 27:29; 막 15:17; 요 19:2)과 못(마 27:35; 막 15:24; 눅 23:33; 요 19:17; 행 2:36)과 로마 병정들의 창
(요 19:34, 37 )에 찔려 상함을 받았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결과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된 것이다.
※ 사도 베드로의 증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라고 의미를 밝혀준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참된 의미를 깨달아 그 고난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고후 1:7, 벧전 4:13 )
3). 인간의 범죄의 본성과 하나님의 해결책 (6)
※ 인간 범죄의 본성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이라고 표현했다.
※ 하나님의 해결책 :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킨”것이다.
※하나님의 속죄와 구원의 섭리에 대해서는
① “잃은 양”의 비유(마 18:12~14, 눅 15:1~7 )
②“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눅 15:8~10 )
③“돌아온 탕자”의 비유(눅 15:11~32 ) 이다.
3. 고난 받는 종의 자세 (7~9)
※ 여호와의 종은 그 고난의 짐을 어떻게 감당했는가를 묘사한다.
1). 끝까지 침묵하였다 (7)
※ 그 종은 죄 없이 고난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다.
※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안나스와 가야바, 헤롯과 빌라도에게서 심문받는 것을 묘사한다.
※ 침묵을 지키는 그 종의 모습은 마치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으로 비유하였다.
(마 26:59~63, 27:11~14; 막 14:60~61, 15:2~5; 눅 23:8~11; 요 19:8~9)
2). 저항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8)
※ 그가 반항하거나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순종한 것은 자신의 사명을 충분히 인식하고, 보내신 자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 마땅히 형벌 받을 백성들의 허물을 위하여 기꺼이 수난을 당한 여호와의 종의 자세는 백성들의 허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3). 온전히 온유하였다. (9)
※ 자신의 사명을 기거이 수행하는 종의 모습은 “온유함”의 본보기였다.
※ 대적들의 포악함과 무자비함에 대하여 온유함으로 일관하신 여호와의 종 메시야는 마침내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대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시며 최종 승리를 선포하셨다.
※ 십자가의 죽음과 관련해서
①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된 것이다. “무덤”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의 죽으심을 의미한다.
②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된 것이다. 아래마대 사람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 되었다.
◎결론
1.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자기희생적 고난을 깨달아 그 고난을 소중히 여기며,
2.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고후 1:7, 벧전 4:13 )
3. 잃어버린 양 같은 우리를 죄를 속죄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해결책)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다.
4. 도전 : 이제 우리의 삶은 ?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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